지난 6월 16일, 제 77회 토니 어워즈가 링컨센터의 데이비드 코크 극장에서 열렸다. 예년과 동일하게 Act 1과 Act 2로 나뉘어 전반부에는 창작진과 디자인 부문, 그리고 특별상 시상을 진행하고 후반부에는 축하 무대와 더불어 작품상과 배우 부문 시상을 다뤘다. 아리아나 드보스가 3년 연속 호스트를 맡았는데, 특별히 토니 어워즈를 위해 제작된 음악과 자신이 직접 안무에 참여한 퍼포먼스로 시상식의 문을 열었다. 마치 개츠비의 파티 속 한 장면처럼 재즈시대 풍의 무대와 의상, 화려한 안무에 흔들림 없는 가창력까지 다시 한번 호스트로서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 파티는 당신을 위한 것’이라는 메시지로 토니 어워즈가 단순히 시상식이 아니라 브로드웨이 커뮤니티의 모두를 위한 축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토니 어워즈 후보에 오르지 못한 작품들까지 포함해 이번 2023-2024 브로드웨이 시즌에 개막한 브로드웨이 작품들은 무려 39개다.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후보에 오른 작품들과 인물들 중 수상의 영광은 과연 누구에게 돌아갔을까?
호스트 아리아나 드보스 오프닝
연극 <스테레오포닉> 축하 무대
최다 부문 후보에 올라 최다 부문 수상한 연극 <스테레오포닉>
뮤지컬 <헬스키친> 과 연극 <스테레오포닉>이 각각 13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연극 <스테레오포닉>은 작품상, 연출상, 무대 디자인상, 음향 디자인상, 남자 조연상으로 5관왕에 올라 77회 토니어워즈 최다 수상을 기록했다. 남녀 모든 출연진이 조연상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 덕분에 오프 브로드웨이 공연에 이어 곧바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 연극에 대한 반응이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뮤지컬 <헬스 키친>이 여자 주연상과 조연상 수상에 그친 반면, 뮤지컬 부문에서는 <아웃사이더>가 음향디자인, 조명디자인, 연출상, 작품상을, <메릴리 위 롤 얼롱>(Merrily We Roll Along)이 뮤지컬 리바이벌 작품상, 편곡상, 남자 주연상, 남자 조연상으로 나란히 4관왕의 쾌거를 이뤘다. <라이온 킹>의 연출가인 줄리 테이머의 조카인 다냐 테이머는 <아웃 사이더>로 첫 토니 어워즈 후보에 올라 연출상 수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연극 부문에서는 <메리 제인>, <마더 플레이>, <프랑스 공화국을 위한 기도> (Prayer for the French Republic), <바냐 삼촌>, <다우트>, <그레이 하우스>가, 뮤지컬 부문에서는 <백 투 더 퓨처>, <스팸어랏>, <노트북>, <워터 포 엘리펀트>, <히어 라이즈 러브>, <렘피카>, <술과 장미의 나날>, <토미>, <구텐버그!>가 후보에 올랐으나 무관에 그쳤다.
토니 어워즈 Act 1 하이라이트
Act 1에서는 2022년 영국 올리비에 어워즈에서 7관왕을 차지한 <카바레>가 올해 토니 어워즈에서는 9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무대 디자인상 단 한 개의 수상에 그쳤다. 뮤지컬 <히어 라이즈 러브>와 <카바레> 두 작품 모두 각각 기존의 극장 구조를 바꾸는 대공사를 이뤄낸 프로덕션이었으나 뮤지컬 부문 무대 디자인상의 영예는 <카바레>의 톰 스컷에게 돌아갔다.
연극 <자자의 아프리칸 헤어 브레이딩>과 <어프로프리엇>(Appropriate)으로 의상디자인상 후보에 오른 디디 아예티가 <자자의 아프리칸 헤어 브레이딩>으로 수상했다. 대사 없이 음악과 안무로만 이루어진 뮤지컬 <일리노이즈>는 작품상을 포함한 4개 부문 후보에 올라 저력을 드러냈으나, 안무가이자 연출인 저스틴 펙의 안무상이 유일한 수상이다.
작품상을 포함해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뮤지컬 <서프스>는 샤이나 타부가 극본상과 음악상을 모두 거머쥐며 창작자로서 가장 큰 쾌거를 이뤄냈는데, 극본상 수상소감에서 작품이 여성의 투표권을 쟁취하는 이야기인 만큼 가을에 있을 미 대선을 위해 투표를 독려했다.
수상 소감 전하는 뮤지컬 <서프스>의 샤이나 타부
브로드웨이 커뮤니티 안에서 한국인들이 두각을 나타낸 한 해였다.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로 의상상을 수상한 한국계 디자이너 린다 조의 수상소감이 특히 인상 깊었는데, 소수 인종으로서 예술계에서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라던 어머니의 걱정어린 말과는 달리 그녀와 같은 소수인종인 16명의 다른 수상 후보들과 함께 토니상 후보에 오른 자신의 모습에 어머니가 무척 기뻐하실 거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뮤지컬 조명 디자인상은 <아웃사이더>의 조명 디자이너 브라이언 맥드빗과 영상 디자이너 하나 S. 킴이 함께 수상했다. 이는 하나 S. 킴의 첫 토니 어워즈 수상으로, 재치 있는 수상소감으로 좌중을 폭소케 했을 뿐 아니라 소감 말미에 한국어로 가족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 더 큰 감동을 안겼다. 아쉽게도 수상은 하지 못했으나 연극 <스테레오포닉>의 지연 장 역시 조명 디자인상 후보에 올랐다.
올해 평생 공로상은 19번 후보에 오르고 5번 토니상을 수상한 작가, 연출, 그리고 프로듀서 뿐 아니라 퍼블릭 씨어터의 예술 감독으로서도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둬온 조지 C. 울프의 공로를 축하하는 한편, 무려 29번의 토니상을 수상한 연출가 잭 오 브라이언의 공로를 축하했다. 잭 오 브라이언은 여기 있는 누구 하나라도 누가 시켜서 공연을 하고 있느냐고, 오히려 가족, 친구, 재무 전문가가 말리면 몰라도 다들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을 특권으로 여기고 있다며, 이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하게끔 도와준 동료 예술가들에게 감사하다는 수상 소감을 전했다. 빌리 포터는 LGBTQ+ 커뮤니티를 위한 사회공헌 활동을 인정받아 이자벨 스티븐슨 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토니 어워즈 Act 2 하이라이트
연극 부문 남자 주연상은 드라마 <석세션>의 엄청난 인기 이후 오랜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 제레미 스트롱이 헨릭 입센의 <민중의 적>으로 수상했는데, 그를 포함한 모든 후보들이 영화, 드라마에서도 활약하고 있는 스타 배우들이었다. 연극 <스테레오포닉>의 윌 브릴, 일라이 겔브, 톰 파신카가 남자 조연상 후보에 올라 한 작품에서 무려 세 명의 후보가 나왔고 윌 브릴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들 외의 남자 조연상 후보들이 스타 배우들이었다는 점에서 최근 브로드웨이의 연극 경향이 스타 배우들을 기용한 작품이라는 것이 다시 한번 여실히 드러났다.
연극 리바이벌 작품상을 수상한 <어프로프리엇>의 사라 폴슨이 여자 주연상 후보 전원이 백인으로 이루어진 가운데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연극 <펄리 빅토리어스>(Purlie Victorious: A Non-Confederate Romp through the Cotton Patch)의 카라 영이 유색인종 여배우로는 처음으로 3년 연속 토니 어워즈 후보에 오른 끝에 올해 여자 조연상으로 첫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연극 작품상 후보에 오른 다섯 작품 모두 비영리 극장에서 올린 연극들로, 작품상을 수상한 <스테레오포닉>은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의 비영리 극장 중 하나인 플레이라이트 호라이즌(Playwrights Horizon)에서 공연된 후 브로드웨이 무대로 옮겨진 사례다. 작가 데이비드 아지미는 작품을 브로드웨이로 가져가는 조건으로 유명 배우들을 캐스팅하지 않고 기존의 오프 브로드웨이 출연진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했던 그의 의견을 따라준 프로듀서에게 감사함을 표했는데, 이는 모든 출연진이 배우 부문 후보에 오른 것으로 그들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뮤지컬 부문 남자 주연상은 조나단 그로프가, 남자 조연상은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수상함으로써 <메릴리 위 롤 얼롱>이 남자 배우상을 휩쓸었고 말리아 조이 문이 여자 주연상을, 키샤 루이스-에반스가 여자 조연상을 수상함으로써 뮤지컬 <헬스 키친>이 여자 배우상을 휩쓸었다.
뮤지컬 리바이벌 작품상은 스티븐 손드하임의 작품 중 유일한 실패작이라는 불명예를 벗고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의 비영리 극장 중 하나인 뉴욕 시어터 워크숍(New York Theatre Workshop)에서의 공연 이후 브로드웨이 무대로 옮겨진 <메릴리 위 롤 얼롱>에게 돌아갔다.
토니 어워즈 축하 무대 이모저모
작가 파업으로 대본 없이 진행된 지난해 토니 어워즈는 시상식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후보에 오르지 못한 작품들의 축하 무대도 선보였지만, 올해는 넘쳐나는 후보작들과 시상자들의 멘트 때문인지 후보에 오른 작품들로만 축하 무대를 꾸몄다. 첫 번째 순서로 뮤지컬 <토미>를 만든 밴드 더 후의 피트 타운센드가 <토미>를 직접 소개하고 기타 연주로 축하 공연을 열었다. <토미>는 1993년 토니어워즈에서 연출상을 포함한 5관왕을 달성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 리바이벌 프로덕션은 유일하게 뮤지컬 리바이벌 작품상 후보에 올랐으나 무관에 그쳤다.
뮤지컬 <메릴리 위 롤 얼롱>의 세 친구 조나단 그로프, 린제이 멘데즈, 그리고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넘버 ‘올드 프렌즈’를 불러 환상적인 하모니를 선보였다. 뮤지컬 <워터 포 엘리펀트> 팀이 선보인 서커스 텐트를 세우는 장면은 이 작품이 자랑하는 아크로바틱 앙상블의 매력을 발산해 관객들의 환호성을 이끌어 냈으나, 올해 축하 무대 중에서는 다소 부족한 인상을 남겼다. 뮤지컬 <일리노이즈>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수록곡 ‘Mystery of Love’를 부른 서프얀 스티븐스의 2005년 앨범 <일리노이즈>에서 영감을 받아 그의 음악을 사용한 댄스 레뷔인데, 작품의 몽환적인 느낌을 살린 장면을 축하 무대로 선보였다.
뮤지컬 <카바레>는 엠씨 역의 에디 레드메인을 필두로 카바레의 댄서들이 객석에서 등장해 작품의 분위기를 백분 활용한 신나는 무대를 선보여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2년 전 영국 올리비에 어워즈에서 에이미 레녹스가 어둡고 극적인 넘버 ‘카바레’를 불렀던 것과는 달리 미국 관객들에 맞춰 밝고 화려한 ‘윌코멘’을 선보였다. 뮤지컬 <헬스 키친> 팀이 주요 넘버를 선보인 무대 직후 작품을 만들고 프로듀서로도 참여한 앨리샤 키스의 피아노 연주로 시작해 말리아 조이 문과 함께 ‘Empire State of Mind’를 부르던 중, 원곡자 Jay-Z가 앨리샤 키스와 사전에 녹화한 영상을 통해 깜짝 축하 무대를 선보였다.
뮤지컬 <아웃사이더> 축하 무대
뮤지컬 <서프스>는 프로듀서 중 한 명인 힐러리 클린턴(우리가 아는 바로 그 정치인 힐러리 클린턴이다.)의 소개 후 ‘Keep Marching’ 넘버를 선보였다. 모든 캐스트가 여성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여성 투표참정권을 위한 투쟁의 역사를 그리며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앞으로 행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뮤지컬 <아웃사이더>는 프로듀서 중 한 명인 안젤리나 졸리의 소개에 이어 넘버 여러 개를 엮은 축하 무대를 선보였다. 1967년 발간된 S.E. 힌턴의 소설로, 1983년에 영화화된 이후 처음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 것인데, 이번 토니어워즈의 축하 무대에서 이 작품의 매력을 십분 발휘했다. 젊은 배우들의 폭발하는 에너지를 표현한 안무, 음향 효과와 조명, 거기에 비 내리는 특수효과까지 더해 더욱 극적인 결투 장면을 연출했다.
올해는 독특하게 연극 중에서도 축하 무대를 선보인 작품이 있었으니, 1970년대 가상의 밴드가 앨범을 녹음하는 상황에서 앨범의 성공을 이끌지 혹은 해체의 수순을 밟을지를 두고 고군분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연극 <스테레오포닉>이다. 작품의 음악을 만든 윌 버틀러는 음악상, 편곡상 후보에 올랐다.
미국의 여느 시상식이 그 해 유명을 달리한 동료들을 기리는 바와 같이 올해 토니 어워즈는 뮤지컬 <선셋 블러바드>로 브로드웨이 데뷔를 앞둔 니콜 셰르징거가 부른 뮤지컬 <코러스>의 넘버 ‘What I Did For Love’와 더불어 특별히 지난 1월 타계한 치타 리베라가 창조해 낸 뮤지컬 <시카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의 명장면들을 오드라 맥도널드 등이 선보였다.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자 조연상을 수상한 호스트 아리아나 드보스가 1957년 브로드웨이에 오른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처음으로 아니타 역을 맡았던 치타 리베라가 아니었다면 자신도 이 자리에 설 수 없었을 거라며 극 중 넘버 ‘America’의 댄스 장면을 선보였다.
주목할 만한 77회 토니 어워즈의 순간들
뮤지컬 리바이벌 작품상 후보에 오른 뮤지컬 <구텐버그!>에 대한 논란을 작품의 주연인 앤드류 라넬스와 조쉬 개드가 직접 나와 해명한 것이 폭소를 자아냈다. 이유인즉슨, 뮤지컬 리바이벌은 브로드웨이에 올랐던 작품을 새로운 해석을 더해 새로운 창작진이 만들어낸 것을 의미하지만 뮤지컬 <구텐버그!>는 이전에 브로드웨이 무대에 한 번도 올랐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토니 어워즈에서 연극과 뮤지컬 작품상 후보 선정의 기준이 심사위원의 결정에 의해 ‘클래식’으로 분류되지 않을 경우, 리바이벌 작품상에 오를 수도 있다고 정한 규칙에 따라 발생한 에피소드임을 밝혔다.
링컨센터의 데이비드 코크 극장에서 토니 어워즈를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데이비드 코크 극장은 링컨센터의 여러 극장들 중 주로 아메리칸 발레 씨어터가 사용하는 1,800석의 극장이다. 오랫동안 토니 어워즈를 진행한 라디오 시티 뮤직 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객석 규모에, 무대까지 작기 때문에 링컨센터에서는 코프로듀서(Co-producers)들이 작품상 수상 시 무대에 올라오지 못하도록 결정해 항의가 빗발쳤다. 그도 그럴 것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브로드웨이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수십명의 코프로듀서들의 투자가 필요하고 결국 해가 갈수록 작품상 수상 시 무대에 오르는 인원의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기 때문이다. 만약 <워터 포 엘리펀트>가 작품상을 수상했다면 70명에 달하는 코프로듀서들이 무대에 오르게 됐을 것이고, 이는 안전 문제와 더불어 생중계 중인 시상식을 지체하는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결국 링컨센터는 코프로듀서들의 모습을 이원 생중계 함으로써 안전상의 문제로 무대에 직접 오르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스크린을 통해 이들의 모습을 무대 위에 올리는 것으로 합의점을 찾았다.
올해 토니 어워즈 연극 연출상 후보 다섯 명 중 세 명이 여성이었고, 마이클 그라이프를 제외한 뮤지컬 연출상 후보들 중 네 명이 여성들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최근 브로드웨이의 지각변동이 얼마나 빠르게 일어났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불과 5년 전, 2019년 토니어워즈에서 뮤지컬 <하데스 타운>의 레이첼 차브킨이 연출상을 수상하던 당시 브로드웨이 뮤지컬 중 유일한 여성 연출가일 뿐만 아니라 브로드웨이의 많은 여성 예술가들이 그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업계의 실상을 지적했을 만큼 남성 위주의 리더십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많았으나 창작진 내부에서의 변화가 이렇게나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진 것이다. 여전히 유색인종 연출가들의 비중은 현저히 낮을 뿐 아니라 작품을 제작하는 프로듀서들은 아직도 백인 중년 남성들이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업계의 전반적인 변화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브로드웨이가 겪어갈 변화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