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킹키부츠>는 폐업 위기의 수제화 공장 ‘프라이스 앤 선’을 운영하게 된 초보 사장 찰리가 아름답고 유쾌한 드랙퀸 롤라를 만나 함께 ‘킹키부츠’를 만들면서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다. 영국 노샘프턴의 수제화 공장들이 경영악화로 인해 폐업하던 1970년대, 남성용 하이힐을 제작해 유일하게 살아남은 구두공장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실화를 각색해 만든 영화를 브로드웨이 프로듀서인 대릴 로스가 뮤지컬로 제작했고, 2013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을 올렸다. 제리 미첼의 감각적인 연출과 신디 로퍼의 세련된 음악은 물론, ‘자신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포용의 메시지로 호평받아 그해 토니어워즈에서 작품상, 음악상 등 6개 부문을 석권했다.
CJ ENM이 글로벌 공동 프로듀싱에 참여한 <킹키부츠>는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1년 만인 2014년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 라이선스 공연을 올렸고,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초연 이후로 꾸준히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끌어 스테디셀러 쇼뮤지컬로 자리매김한 이 작품은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보는 사람은 없는’ 작품으로 꼽힌다. 좋은 작품에는 행운도 어련히 따라오는 건지, 이번 시즌 개막을 앞두고 한 유튜브 채널의 콘텐츠를 통해 예상치 못하게 ‘Land of Lola’ 넘버가 널리 퍼지며 이제는 정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인기작이 됐다. 10주년 기념 공연도 막바지에 접어든 지금, 공연을 보며 당신의 머릿속에 한 번쯤은 떠올랐을 질문들의 답을 여기서 찾아보시길.
아무리 양심 없는 몸뚱이도 올라탈 수 있게♬(feat. 조지 아저씨)
찰리와 롤라는 쓰러져 가는 구두 공장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다. 바로 남성을 위한 하이힐 부츠, 이름하여 ‘킹키부츠’를 만드는 것! 하지만 기대감에 마음이 부푸는 것도 잠시, 찰리는 곧바로 걱정에 빠진다. 성인 남성의 몸무게를 지탱할 만한 굽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구두 공장에서 오랫동안 일한 조지 아저씨는 해맑게 대답한다. “강철로 만들면 가능할 겁니다.”
그렇게 구두 굽에 강철 심을 넣은, 전체 길이 80cm, 굽 높이 18cm의 새빨간 ‘킹키부츠’가 탄생한다. 구두를 신어본 이들이라면 다들 공감하겠지만, 굽 높이는 5cm만 넘어가도 걸을 때 아슬아슬한 불안감이 들기 마련이다. 발이 쉽게 피로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걸을 때 보폭도 좁아진다. 그런데 무대 위 배우들은 18cm 굽의 부츠를 신은 채 걷고, 뛰고, 춤을 추고, 심지어 백 텀블링을 한다. 실제로 공연 중 배우들이 신는 부츠 역시 찰리와 롤라의 ‘킹키부츠’와 같은 방식으로 제작한 덕분이다. 일반 남성 신발과 달리, <킹키부츠> 속 부츠는 허리쇠(발바닥 부분)에 강철 심을 넣어 배우들의 안정적인 착용을 돕는다. 그렇게 튼튼하게 만들었음에도 격렬한 안무로 인해 구두 굽이 손상될 수 있어서, 부츠는 수시로 상태를 점검하고 굽을 교체한다.
롤라와 엔젤뿐만 아니라 찰리, 돈을 포함한 모든 공장 직원이 부츠를 신고 패션쇼 런웨이에 오르는 마지막 장면이 작품의 백미다. 이 장면을 포함하여 공연 전체에 사용되는 부츠만 20켤레가 넘고, 비상시를 대비해 보유 중인 것을 포함하면 백스테이지에는 30켤레에 달하는 부츠가 줄을 지어 서 있다. 여러 시즌을 거치며 새롭게 제작한 수량 등을 포함하면 한국 프로덕션이 보유한 ‘킹키부츠’는 50켤레를 훌쩍 넘긴다. 새빨간 ‘킹키부츠’ 외에도 공연 중 눈에 띄는 부츠가 있다. ‘프라이스 앤 선’이 남성용 부츠를 제작하는 공장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찰리와 갈등을 겪은 공장 직원 트리쉬가, 완벽한 부츠를 만들어 찰리에게 선보이면서 갈등을 봉합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부츠다. 트리쉬가 부츠를 찰리에게 내밀면, 강한 조명이 그 부츠를 비춘다. 그때, 큐빅이 잔뜩 박혀 화려하게 반짝이는 구두 굽이 찰리는 물론 관객의 시선까지 사로잡는다. <킹키부츠> 의상팀은 “한쪽 굽에만 1,000개 내외의 스와로브스키 스톤이 사용됐다”고 귀띔했다.
패셔니스타 롤라의 비밀
화려한 디자인의 드레스는 물론 그에 어울리는 가발까지, 롤라는 노샘프턴 최고의 패셔니스타다. 공연 중 롤라가 착용하는 의상은 디테일한 변화까지 포함하면 13벌인데, 의상 퀵 체인지를 할 때 롤라 역 배우는 보통 분장 스태프 1명, 의상 스태프 1명의 도움을 받아 2분 안에 환복을 마친다. 의상을 전부 갈아입기까지 1분이 채 걸리지 않을 때도 있다. 롤라는 역동적인 안무를 많이 소화해야 해서 롤라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금세 땀 범벅이 되고는 하는데, 그래서 분장팀 역시 피부 베이스 메이크업을 탄탄하게 쌓고, 땀으로 인해 속눈썹이 떨어지지 않도록 튼튼하게 고정하는 데에 많은 신경을 쓴다.
롤라의 의상 중 제작 및 관리가 가장 까다로운 것은 롤라가 아버지의 요양원에 방문해 부르는 넘버인 ‘Hold Me In Your Heart’ 장면에서 착용하는 노란 빛의 드레스다. 폭이 넓은 실크를 여러 겹 겹쳐 제작한 드레스로, 원단이 예민해서 흠집이 나지 않게 조심히 다뤄야 한다고. 마지막 피날레 장면에 착용하는 강렬한 빨간색의 비즈 드레스도 하나하나 장식을 달아야 하고, 핏과 기장을 잘 맞춰 제작해야 해서 손이 많이 가는 의상 중 하나다.
돈은 10년째 같은 휴대폰 사용 중!
<킹키부츠> 첫 장면이 시작되기 전, 한 사람이 전화를 받으며 뚜벅뚜벅 무대로 걸어 들어온다. ‘프라이스 앤 선’ 구두 공장의 직원 돈이다. 그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이렇게 말한다. “전화 안 돼! 문자 안 돼!” <킹키부츠>다운 재치 있는 공연 안내 멘트다. 그 후에는 통화 상대방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주겠다는 말과 함께, 객석을 배경으로 단체 셀카를 촬영한다.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던 관객들은 돈의 말을 듣고 홀린 듯이 손을 들어 올려 ‘브이’ 포즈를 취한다. 그리고 찰칵-. 뜨거운 함성과 함께 공연이 시작된다.
브로드웨이 버전에서는 공연 중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는 안내 멘트를 하는 평범한 장면이었지만, 한국 초연을 앞두고 돈 역할을 맡은 두 배우 고창석, 심재현이 오랜 시간 고민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관객과 다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장면으로 변화시켰다. 공연 시작 전 관객의 호응을 얻고, 분위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킹키부츠>의 ‘회전문 관객’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생각, ‘저 사진은 정말로 찍은 걸까?’ 답은 ‘Yes’다. 심지어 돈이 들고 등장하는 구형 아이폰은 초연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의 교체도, 초기화도 없이 사용되고 있다. 그 말인즉슨, 2014년 초연부터 10주년을 맞은 올해까지 매 공연 촬영한 사진이 전부 저장되어 있다는 의미다. <킹키부츠>의 10년 역사가 담긴 유일한 소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젠가 돈이 ‘에어드롭’을 켜주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