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특집_<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사람들>
매일 밤, 무대 위에는 크고 작은 세계가 새롭게 태어납니다. 무대 위와 아래, 당신의 삶을 가득 채운 세계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마지막 인터뷰이는 김성수 음악감독입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페스트> <광화문연가>…. 김성수 음악감독의 이름 앞을 오랜 시간 장식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여기에 예상치 못한 작품이 하나 추가됐다. 바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이다. 김성수 음악감독은 2021년 공개된 시즌1에 이어 지난 26일 공개된 시즌2에도 참여해 다시 한번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보여주었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김성수 음악감독의 이름도 널리 알려졌지만, 그에게 그런 명성은 중요치 않았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전하는 것.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뿐이다. 무대 위, 아래에서 비선형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김성수 음악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사진 촬영 콘셉트 중 하나는 감독님 목뒤의 타투를 담는 거였어요. ‘23‘, 작곡가로서의 예명이죠. 마침 내년이 <포비든 플래닛>(2002)으로 뮤지컬 작업을 시작한 지 23주년 되는 해더라고요.
안 그래도 내년에 콘서트를 해볼까 고민 중이에요. 2020년에 <23 Live>라는 이름의 콘서트를 기획했다가, 코로나19로 인해 취소 했었거든요. 사실 내년이 23주년이라는 자각이 없었는데(웃음) 23주년 기념으로 콘서트를 하면 딱 좋겠네요.
최근에는 기쁜 소식이 있었죠. ‘2024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에서 국무총리 표창을 받으셨어요. 이지나 연출가와 정재일 감독에게 수상의 영광을 돌리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아무래도 제가 공연계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준 두 사람이다 보니 가장 먼저 기억 났던 것 같아요. 이지나 연출님은 말 할 것도 없죠. 제가 공연계에서 꾸준히 활동할 수 있도록 정말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세요. 여전히 남들이 따라 할 수 없는 남다른 감각을 지닌 분이라고 생각해요. 정재일 감독도 마찬가지로 제가 한동안 뮤지컬을 쉬다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2015)의 음악감독을 맡아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오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되어준 친구고요. <오징어 게임>도 정재일 감독이 제 음악을 발견해 주었기에 함께할 수 있었던 거예요. 앞서 말한 <23Live> 콘서트를 준비할 때, 재일이가 ’형 공연이면 무조건 참여한다’고 흔쾌히 이야기해 줬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저도 재일이가 <오징어 게임> 작업을 시작하던 시기에 ’혹시 필요하면 내가 만들어 놓은 음악을 사용해도 된다’고 말했죠. 그다음 날 바로 연락이 와서 ’함께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사용된 곡이 ’Pink Soldiers’예요. 사실 다른 뮤지컬에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 놨던 곡인데, 뮤지컬 작업 당시에는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드는 곡이었던 터라 아쉬움이 남아 있었는데, 정재일 감독 덕분에 빛을 보게 된 거죠. 돌아보면 제 커리어의 전환점에 항상 재일이가 있었어요. 실력으로도, 인성으로도 제가 정말 존경하는 뮤지션이에요.
Q. 처음 뮤지션을 꿈꾸던 시절, 과거 당신의 세계를 구성했던 존재는 무엇인가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잠들기 전에 꼭 들어야 하는 노래가 있었어요. 레드 제플린, 딥 퍼플 같은 록 밴드의 음악이었죠. 뮤지션을 꿈꾼 건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난 후의 일이었지만, 이 음악들이 제게 영향을 준 건 확실해요. 사실 원래의 꿈은 영화감독이었어요. 지금의 저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은 대부분 영화에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196~70년대의 영화들, 예를 들어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 등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나 러시아 영화들이 저의 지적 허영심을 한껏 채워줬죠. (웃음)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들도 저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고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자유롭게 꿈을 꾸기 어려운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서, 스스로 약간의 콤플렉스를 가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콤플렉스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고, 최대한 다양하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 수단이 영화와 책이었죠.
자신의 결핍을 채울 수 있는 건강한 방법을 찾아낸 거군요.
맞아요. 저는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은 사람이었거든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어린 시절에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다방면으로 찾다가 선택한 게 음악, 기타였어요.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기타를 잡았어요.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유학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음대 MI GIT(기타 전공)에서 공부했어요. 그 후 한국에 돌아와서는 주로 인디 뮤지션의 앨범 작업을 했고요. 여러 음악 작업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뮤지컬 계까지 오게 됐죠.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 책 등 다양한 콘텐츠에서 영감을 얻으시잖아요. 최근에 가장 큰 영감을 준 대상은 무엇이었나요?
영화부터 이야기해 보자면 조나단 글레이저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와 하마구치 류스케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즈>. 이 세 작품이 떠오르네요. 보통은 호러 영화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호러 영화 감독들은 테크닉이 굉장히 뛰어나요. 사람의 감정을 움직여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호러 영화 중에서도 특히 어딘가 뒤틀린 이야기,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야기에 관심이 가요. 아리 에스터 감독의 <유전> <미드소마> 같은 작품들. 정말 무시무시하죠.
얼마 전에 유럽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때 봤던 공연 중에는 < The Picture Of Dorian Gray >가 기억나요. 세라 스누크가 출연하는 1인극인데, 무대에 여러 대의 카메라가 함께 올라 촬영한 영상을 무대 연출에 사용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더라고요. 아, 여담이지만, 제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연출가가 로버트 윌슨인데, 얼마 전에 그 분이 한국에 오셔서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죠. (웃음)
로버트 윌슨의 연출작 <블랙 라이더>에 대한 애정은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죠. 우상을 마주하니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좋은 창작자란 무엇인지, 좋은 창작물이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을 듯합니다.
로버트 윌슨에 대한 관심은 그가 작곡가 필립 글래스와 작업한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아요. 비선형적이고 추상적이면서도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작품이라서 감탄했던 기억이 나요. 로버트 윌슨은 마치 건축가처럼 정확하게 작품을 구성하면서, 감각적이고 미니멀리즘한 무대를 보여준다는 점이 좋아요.
좋은 예술가는 답을 정해놓고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의 창작물을 보면서 배웠어요. 답을 정해놓고 시작하면 자신이 정한 답 외의 수많은 가능성을 배제해 버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확하게 하려면 테크닉적인 부분을 구비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만의 기술을 갈고닦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창작자로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은 필수적이고요.
Q. 현재의 자신을 구성하는 존재 중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그리고 앞으로도 잃고 싶지 않은 존재가 있다면요.
지금의 저에게는 책임감인 것 같아요. 저희가 하는 작업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최소한 함께하는 사람에게 피해는 주면 안 된다는 마음가짐은 잃지 않으려고 해요. 또 저와 함께하는 조감독, 연주자들에게 음악감독으로서 책임감을 가지려고 하고요. 잘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은데 그들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는 너무나 적어요. 그들이 실력을 발휘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에 책임감을 가지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나름대로 뮤지컬 계에서 오랫동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뮤지컬 업계에 대한 책임감도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힘든 이들의 권리를 보호해 주고, 그들의 열정이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는 게 선배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심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책임감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사건들을 유독 자주 겪으셨죠. 제작사의 임금 미지급으로 인해 연주자들의 임금을 대신해서 지급한 경우도 있었고, 준비하던 공연이 개막을 하루 앞두고 무산된 적도 있었어요.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일은 더욱 많을 거고요.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책임을 지지 않으니, 저라도 책임을 져야죠. 그 정도의 무게는 짊어져야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니까요. 그 당시, 공연이 끝나고 임금 체불 기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연주자들이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대신 지불했어요. 저와 함께한 동료들이 열심히 일한 대가는 정당하게 치러주고 싶었어요. 그게 당연한 일이잖아요. 이 세상 누구에게든 각자의 사정이 존재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인간에 대한 존중과 예의니까요. 특정 대상 혹은 제작사를 탓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어려운 일이지만, 구조적인 문제가 개선되어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동료들이 보호받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Q. 음악감독, 작곡가의 역할을 넘어 이제는 연출, 각색 등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어요. 다양한 분야를 오가는 창작자로서, 앞으로 만들어 나갈 세계는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요.
저는 모든 콘텐츠의 ‘덕후’예요. (웃음)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여러 장르의 콘텐츠를 매시업 해서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적용하는 게 제 목표 중 하나예요. 저는 비선형적인 작품에 관심이 많아요. 보는 입장에서 ‘왜 이런 감정이 들까’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 웃음이 나오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나는 이야기요. 작품이 지닌 서사를 꼭 텍스트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일종의 체험이 될 수 있는 형식의 공연을 선호하죠.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고, 평범한 듯 유니크한 작품을 선보이고 싶어요. 파인다이닝처럼요.
Q. 당신이 꿈꾸는 새로운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요.
저는 예술이 무조건 대단한 주제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언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기회를 주는 걸로 충분하죠. 옛날에는 인문학이 유희의 수단이었던 시절이 있잖아요. 이제는 공연이 인문학을 대체할 수 있는 지점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해요. 관객이 인문학적 사유를 할 수 있도록, 인간 존재의 가치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공연이 다양성을 가지고 성숙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