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균이 2019년 이후 5년 만에 다시 뮤지컬 <시라노> 무대로 돌아왔다. 2024년 세 번째 시즌을 맞은 <시라노>는 연출도, 무대도, 넘버도 모두 바뀌었지만, 단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시라노라는 인물과 혼연일체 되어 완벽한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주는 조형균의 존재감이다.
5년 만에 다시 뮤지컬 <시라노> 무대에 서게 된 소감이 어떤가요.
저를 다시 시라노 역할에 캐스팅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사실 지난 시즌 당시 이 작품을 통해서 한국뮤지컬어워즈와 예그린어워즈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보니, 이번 시즌에 다시 참여하면서 부담감이 조금 생기더라고요. 감사함과 설렘이 49%, 부담감이 51% 정도 된다고 해야 할까요.(웃음) 이 작품이 내게 상을 안겨줬기 때문에 다른 작품보다 더 소중하다는 마음은 없어요. 제가 임했던 모든 작품이 소중하고, 모든 캐릭터를 사랑해요. 다만 <시라노>는 제가 배우로서 걸어가는 길이 틀리지 않았다고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의 안내 같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고마움이 있어요.
<시라노>는 세 번째 시즌을 맞아 작품에 많은 변화를 주었어요. 바뀐 대본과 음악을 처음 접하고 어떤 생각을 했나요.
‘엥?’(웃음) 혼자 머릿속으로 많이 고민했어요. 왜 바뀌었을까.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많이 노력했어요. 하지만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어요. 저는 지난 시즌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그 틀 안에 갇혀있을 수 있잖아요. 제가 바뀐 부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 좋은 부분을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을 방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변화를 준 이유가 있을 테니,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홀로 그 이유에 대해서 고민했죠.
사실 ’삐리빠라‘ 넘버(달에서 떨어진 나)가 없어진 게 되게 서운했거든요?(웃음) 그런데 그 장면에 등장하는 새로운 넘버를 들을수록 중독이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지난 시즌에 갇혀 있지 말고 새로운 변화도 잘 받아들여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물론 지난 시즌도 좋았지만, 이번 시즌은 캐릭터적으로 다채로워져서 좋아요. ’달에서 떨어진 나’ 넘버에도 시라노의 이야기가 조금 더 많이 담겨서 배우 입장에서는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져 재미있고요. 시라노뿐만 아니라 록산, 크리스티앙의 캐릭터 설정도 많이 발전했어요. 크리스티앙의 전사도 많이 나오고, 록산도 훨씬 주체적인 인물이 되었죠. 그 둘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시라노에게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작품이 발전한 것처럼, 배우 조형균도 성장했잖아요.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작품을 만나니 다르게 다가오는 부분들이 있었나요.
지난 시즌에는 제가 시라노 역할을 맡은 배우 중 막내였어요. 조급한 마음이 들어서 형님들이 하는 걸 보고 배우기에 바빴죠.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래도 이미 한 차례 공연한 적이 있다 보니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많이 지켜보게 돼요. 새롭게 합류한 배우들에게서 나오는 신선한 해석을 보며 또 많이 배우고 있어요.
시라노라는 인물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시라노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부조리한 현실에 절대 굴복하지 않고 선봉에서 맞서 싸우고, 늘 약자의 편에 서는 인물이에요. 또, 록산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하고,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하죠. 죽을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아픈 몸을 이끌고 록산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수도원에 가고요. 그런 록산이 사랑하는 크리스티앙의 비밀을 죽기 전까지 평생 지켜주는 의리도 있어요. 외모 빼고 다 가진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캐릭터를 표현하며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요.
저는 어떤 캐릭터를 만나면 ’톤’에 대해서 가장 먼저 생각해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말투나 음색 등 전체적인 톤이 넘버와 어우러지는지 고민해요. 대사할 때의 목소리 톤은 높은데, 노래는 낮은음으로 부르면 어색하니까요. 또, 전 작품에서 보여줬던 이미지를 최대한 지우려고 해요. 예를 들어, <하데스타운>에서도 빨간 스카프를 두르고 나왔었는데, <시라노> 의상 피팅을 할 때 스카프를 두르니 어딘가 오르페우스 느낌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의상도 좀 더 러프하게, 시라노처럼 보일 수 있게 노력했어요. <시라노>는 대사에 시적인 언어가 많기 때문에 입에 자연스럽게 붙을 수 있도록 대사 연습도 많이 했어요. 배우는 대사를 뱉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연습을 많이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은 확실하게 티가 나거든요. 대사를 체화하는 건 필수라고 생각했어요.
시라노는 큰 코가 특징이잖아요. 이제는 코 특수 분장이 어색하지 않죠?
이제 코를 붙여야 노래가 더 잘 돼요. (웃음) 코 모형은 하나에 1~2회 정도 사용하는데, 되게 가벼워요. 전용 접착제를 사용해서 붙이는데, 붙이는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고요. 공연이 끝나고 나면 떼는 것도 금방이에요. 위기 상황을 대비해서 ‘스페어 코’도 준비되어 있는데(웃음) 공연 중에 코가 떨어지는 등 불안한 상황이 생긴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시라노의 삶이 배우의 삶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 홀로' 넘버에서 '아무도 없는 이 길 가야 한다면 가야겠지'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그게 유독 와닿더라고요. 배우 인생 자체가 '암흑뿐인 길'을 걷는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너무 감사하게도 꾸준히 공연을 하고 있긴 하지만, 언제 갑자기 암흑뿐인 길을 걸어갈지 모르는 거죠. 그래서 늘 시라노처럼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요. 그래야 좋은 연기가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시라노>라는 작품을 관객이 꼭 봐야 하는 이유를 꼽아보자면요.
많은 분들이 이렇게 천천히 흘러가는 고전 같은 뮤지컬은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요즘 많은 이야기들이 짧고 굵게 펼쳐지잖아요. 관객, 시청자가 끌려가게끔 뭐든 빨리빨리 넘어가는 시대죠. 그런데 <시라노>는 관객이 끌려가는 게 아니라, 극 중 인물들과 공감하며 천천히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선물해요. 느림의 미학, 낭만주의가 녹아 있는 작품이죠.
형균 씨가 생각하는 '낭만'은 무엇인가요?
잠시나마 핸드폰과 이별하는 시간이요. 낭만이라는 게 사실 별거 없어요. 쉬는 날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좋다’는 말이 절로 나오잖아요. 그런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는 게 낭만이죠. 요즘은 모든 게 너무 빠르게 흘러가다 보니,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 자신만의 낭만을 갖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시인이자 검객 시라노는 배우 조형균을 어떤 사람이라고 묘사할까요?
음…. 느리게 가지만 결국 누구보다 먼저 도착하는 거북이? 그냥, 저는 계속 그렇게 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