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뉴욕타임스>에 연재된 한국 공연 시장에 대한 기획 기사(‘Musicals Couldn't Be Hotter Off Broadway’, ‘K-Pop Stars Selling Stage Musicals in Korea’, ‘Korean Cash Takes Broadway Bows’)는 국내 공연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몇몇 국내 공연 관계자들은 브로드웨이에서 실패한 작품들이 한국 시장을 수익 창출의 돌파구로 바라보고 있다는 기사와, 국내의 스타 캐스팅 현실에 대해 다룬 기사에 대해 불쾌감을 느낀다고 했다. 혹자는 어떤 식으로든 브로드웨이 뉴스 미디어에서 언급됐다는 사실 자체가 긍정적이라고 이야기했다. <뉴욕타임스>는 어떻게 한국 시장에 대한 기사를 기획하게 됐으며, 이 기사는 현지에서 어떤 반응을 얻었을까. 해당 기사를 기획한 <뉴욕타임스>의 공연 담당 기자 패트릭 힐리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브로드웨이의 중요한 해외 시장으로 떠오른 서울
한국 공연 시장에 대한 기획 기사를 세 차례에 걸쳐 연재했다. 이는 한국 시장을 꽤 비중 있게 다룬 게 아닌가. 어떻게 이런 기사를 기획하게 됐나.
5년 전, 공연 파트 담당자가 되고 나서 브로드웨이 프로듀서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외국에 세 개의 중요한 시장이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런던, 독일의 함부르크, 한국의 서울이 그 세 개 시장인데, 이 세 곳은 조금씩 다른 이유로 미국 뮤지컬 시장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했다. 특히 최근 한국 시장에 대한 브로드웨이 관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개인적으로 한국 시장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한국은 한국 배우들이 한국어로 번역된 대본으로 한국적인 정서를 살려서 공연한다는 게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왜 서울에서 뮤지컬이 인기가 있는지, 어떻게 서울이 이런 큰 시장이 됐는지 궁금했다.
브로드웨이 프로듀서들이 런던과 함부르크, 서울을 중요한 시장으로 꼽는 것은 이 세 곳이 수익성이 가장 크다는 이야기겠지?
그렇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브로드웨이 프로듀서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다. 그런데 브로드웨이의 많은 프로듀서들은 브로드웨이에서 돈을 벌지 못한다. 브로드웨이 공연 이후에 돈을 번다. 무슨 이야기냐면, 브로드웨이는 제작비가 비싸서 수익을 내기가 힘들기 때문에 대부분 해외 시장에서 라이선스료나 로열티로 돈을 버는 것이다.
런던과 함부르크, 서울, 세 시장의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고 말했는데, 각각 어떤 특징이 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런던은 브로드웨이 공연을 올리기가 쉽다. 런던과 뉴욕은 항상 서로의 시장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까. 대본을 번역할 필요도 없고, 극장 배우 조합과 관련된 법조항도 비슷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런던은 브로드웨이보다 제작비가 훨씬 싸다. 브로드웨이 공연 제작비의 25퍼센트 비용이면 런던에서 공연을 올릴 수 있다. 한 예로, <슈렉>의 브로드웨이 공연 제작비는 2,500만 달러(255억 3,750만 원)였는데, 웨스트엔드 프로덕션의 제작비는 700만 달러(71억 5,050만 원)였다. 함부르크가 중요한 이유는 <캣츠>나 <오페라의 유령> 같은 대형 블록버스트 뮤지컬 대부분이 거기서 초연됐기 때문이다. 수도 베를린이 아닌 함부크르가 큰 공연 시장이 된 데는 1980년대 중반 함부르크의 유일한 대형 극장에서 공연됐던 <캣츠>의 영향이 크다. 당시 <캣츠>가 굉장히 크게 흥행했는데 그 결과 지역에 극장이 하나둘 생기면서 큰 시장이 형성됐다. 서울의 강점은 극장과 프로듀서, 비즈니스맨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은 다양한 크기의 극장이 정말 많다. 아마 런던보다 서울에 극장이 더 많지 않을까? 많은 프로듀서와 작가, 작곡가들이 서울에 다양한 규모의 작품을 가지고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최근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데, CJ E&M이 투자한 <킹키 부츠>가 지난해 토니상에서 최우수 뮤지컬상을 받은 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까? 한국 공연계에서는 국내 제작사가 투자한 작품이 토니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서 이를 고무적으로 바라봤다.
CJ가 <킹키 부츠>에 적은 돈이 아니라 100만 달러(10억 원)라는 큰돈을 투자하지 않았나. 사실 브로드웨이 공연에 투자를 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도박인데, 그렇게 크게 투자한 작품이 성공했기 때문에 한국 시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거라고 본다. 일단, <킹키 부츠>가 뉴욕 다음에 런던이 아니라 서울에서 두 번째로 공연된다는 것 자체가 큰 사건이다. 최근 CJ에서 뉴욕으로 직원을 파견해 시장 조사를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무척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려면 뉴욕에서 직접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 누가 현명한 프로듀서인지, 누가 흥미로운 작가인지, 시간을 들여서 하나씩 파악해 가는 게 중요하다.
한국 공연 시장의 특수함
한국 시장 취재 과정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무엇인가.
한국 시장이 흥미로웠던 것은 1990년대 후반 대학로를 중심으로 빠른 시간에 성장했다는 점이다. 그 시기면 경기 침체로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을 때 아닌가. 한국에서는 젊은 관객들이 뮤지컬을 즐긴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브로드웨이는 관객의 평균 연령이 오십대다. 뉴욕의 젊은 사람들은 뮤지컬을 예측 가능한 장르, 쉽게 말해 전통적이고 오래된 예술 매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싼 돈을 내고 뮤지컬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젊은 관객층, 그중에서도 젊은 여성 관객들이 뮤지컬을 감정적으로 와 닿는다고 느끼고, 열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게 흥미로웠다.
혹시 관객층이 젊다는 게 브로드웨이 프로듀서들이 한국 시장에 매력을 느끼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나?
브로드웨이에 젊은 관객층이 없다는 건 프로듀서들이 항상 고민하는 문제다. 브로드웨이 프로듀서들이 한국을 보고 어떤 해답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의 특수한 공연 문화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긴 하다. 특히 젊은 관객들 사이에 한 공연을 여러 번 관람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을 무척 흥미롭게 생각한다. 그게 한국에서 돈을 버는 수단 중 하나라는 것도 알고 있고.
취재차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젊은 관객들이 뮤지컬에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 느끼는 게 있었나.
나도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뮤지컬을 좋아하는 이유가 궁금해서 공연장에서 몇몇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그들이 말하길 뮤지컬을 보면서 감정적인 동요를 경험한다고 하더라. 공연을 보면서 울고 웃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했다. 젊은 여성 관객들이 뮤지컬에 열광하는 것은 억압되고 경직된 사회 분위기에서 여성들이 감정을 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 아닐까 생각해 봤다. 뉴욕이라는 외국 문화 자체에 이끌리는 관객도 있는 것 같았다. <머더 발라드> 같은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보면서 문화적인 흥미로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고 할까. 큰 할인율로 티켓 가격이 싼 것도 젊은 관객들이 뮤지컬을 많이 보는 이유인 듯하다. 어떤 공연은 5달러나 10달러짜리 티켓을 팔기도 했는데, 브로드웨이에서는 아무리 싸게 티켓을 산다고 해도 50달러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젊은 관객도 많은 것 같고.
한국에서 본 작품 중에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게 있었나. 순수 창작 작품이든, 라이선스 작품이든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말해 달라.
한국에 머무는 동안 열 작품 정도 봤다. <번지점프를 하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난타> 같은 한국에서 만든 작품들은 대체로 재미있게 봤다. 특히 <난타>를 무척 재미있게 봤다. 개인적으로 넌버벌 퍼포먼스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라이선스 공연을 볼 때, 좀 상반된 감정을 느꼈다. <아가씨와 건달들>은 한국에 맞게 아들레이드를 연상의 여자로 설정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머더 발라드>는 섹시했고 흥미로웠다. 섹스나 마약, 폭력 같은 자극적인 소재를 한국의 젊은 여성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는데, 관객들의 상반된 반응을 보는 게 재미있었다. <요셉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는 케이팝 스타가 출연하는 공연을 봤는데, 그는 뮤지컬 배우라기보다 솔로 싱어처럼 보였다.
연재 기사에서 아이돌 스타의 뮤지컬 시장 진출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뤘다. 그 기사를 보면, 이 같은 현상을 긍정적으로만 보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그런데 스타 캐스팅은 브로드웨이에서도 이뤄지지 않나. 지금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헤드윅>만 봐도 그렇고. 한국 스타 캐스팅의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했나?
뮤지컬 배우로서 훈련이 되지 않은 스타들이 무대에 서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몇몇의 아이돌 스타들은 무대 위에서 존재감과 카리스마는 확실했지만, 뮤지컬 배우로는 보이지 않았다. 몇몇의 브로드웨이 관계자들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한국에 라이선스 사용권을 줄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춤 실력이다. 최근에는 한국의 어떤 프로듀서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라이선스를 계약하길 원했는데, 성사되지 않았던 일이 있었다. 춤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인데, 이걸 한국의 배우들이 소화할지 모르겠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래서 한국의 제작사에서 이 작품을 위해 댄스 아카데미를 만들 거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어쨌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프로덕션에서는 한국의 그 제작사가 이 작품의 안무를 소화할 수 있을 때까지 라이선스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한 걸로 알고 있다.
사실 스타 캐스팅은 한국 뮤지컬 시장의 제작비 상승의 주된 요인 중 하나다. 브로드웨이 제작비가 비싼 것은 우리와는 사정이 좀 다를 것 같은데, 어떤가?
브로드웨이는 배우와 스태프, 오케스트라 등 각각의 모든 파트가 조합을 가지고 있다. 공연 조합이 열다섯 개 정도 되는데, 최근에는 조합의 힘이 점점 세지고 있다. 프로듀서보다 조합들의 힘이 셀 정도로 말이다. 뉴욕은 다른 도시와 비교했을 때 기본적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이 훨씬 비싼데, 각 파트의 임금이 조금씩 오르면 지출 항목이 엄청나게 불어난다. 또 브로드웨이는 극장 임대료가 굉장히 비싸다. 브로드웨이에는 극장이 40개 정도 있는데, 항상 그보다 더 많은 공연들이 이곳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길 원하기 때문에 임대료가 비쌀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덕션에서 티켓 판매액만으로 공연을 위한 주당 지출 비용을 커버하고 이익을 내기가 힘들다.
한국 시장에 대한 기사가 나간 후 현지 관계자에게 어떤 피드백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기사가 보도되고 나서 브로드웨이 관계자들로부터 굉장히 많은 이메일과 전화를 받았다. 기사에 언급된 프로듀서들, 미스터 설도윤(설앤컴퍼니 대표)이나 미스터 송승환(PMC프러덕션 대표)의 연락처를 알고 있느냐고 말이다. (웃음) 뉴욕에서 공연하는 사람들은 투자자를 모으는 게 굉장히 중요한 일인데, 한국을 투자 파트너로 인식하기 시작한 듯하다. 조금 작은 규모의 회사나 젊은 창작자들에게도 많은 연락을 받았는데, 그들은 한국 시장에 진출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하더라. 한국 프로듀서들이 브로드웨이 시장에 진출하는 것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리기는 이른 감이 있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0호 2014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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