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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③]<강가에 서서> 정경훈, 늘 새로운 출발점

글 |이솔희 사진 |제이앤씨랩 2026-09-28 89

[무대를 찾아낸 배우들]

선택받기를 기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배우의 숙명. 그 숙명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무대를 찾아낸 배우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세 번째 주인공은 뮤지컬 <강가에 서서>를 선보이는 배우 정경훈입니다.


 

 

배우 정경훈에게 하나의 도전은 늘 또 다른 도전의 출발점이 됐다. 뮤지컬 <오즈>,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 파트원: 밀레니엄이 다가온다> 등에 출연한 정경훈은 지난해 1인극 <드론>을 직접 쓰고 연출해 무대에 올리며 활동의 범위를 넓혔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오는 10월 17일과 18일에는 송파문화예술회관 송파아트홀에서 선보이는 뮤지컬 <강가에 서서>의 배우이자 작가, 연출가, 제작자로 나선다. 배우로 출발한 그의 행보를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익숙한 자리에서 다음 기회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스스로 다음 무대를 만들어왔다는 점이다.

 

신부, 과학자, 운동선수 등 여느 남자아이처럼 여러 개의 삶을 상상하던 어린 시절 정경훈의 꿈은 이내 하나의 방향을 가리켰다. 바로 배우가 되는 것. 어떤 형태의 삶이든 모두 살아볼 수 있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오랜 시간 품고 있던 꿈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후에야 비로소 손에 쥘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로 다가왔다. 서울로 올라와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한 뒤 서울예대 연기과에 한 번에 합격하는 행운이 따라왔지만, 동시에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좌절을 맞닥뜨리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스스로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서울예대에 들어가고 보니 재능 있는 친구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렇게 진짜 현실을 마주하면서 좌절하는 순간도 많았지만, 그 덕에 자기 객관화를 잘할 수 있게 됐어요. 늦은 나이에 연기를 시작했다 보니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는데(웃음) ‘근거 없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무언가에 도전했다가, 실력 좋은 다른 친구들을 보며 또 좌절하고, 그러면서 자기 객관화를 하고. (웃음) 그렇게 한 단계씩 성장해서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2017년 연극 <남산타워 벚꽃은 4월에 진다>로 데뷔한 후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 앤ANNE > 등에 출연하며 내실을 다져온 정경훈. 2023년 뮤지컬 <오즈>와 2024년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무대에 연이어 오르며 배우로서 한 계단 올라섰다는 기쁨도 잠시, ‘이제 어떤 삶을 살 것인가’라는 고민을 품게 됐다.

 

“정말 운이 좋게도, 그 당시의 저에게 감사한 기회들이 찾아왔어요. 특히 <엔젤스 인 아메리카>에서는 이전에 연기한 역할들보다 조금 더 비중 있는 역할을 맡게 되면서 설렘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꼈던 기억도 나요. 그런데 <엔젤스 인 아메리카>는 유한한 삶,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잖아요. 작품이 끝난 후에 자연스럽게 ‘앞으로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인생의 로드맵을 그려봤고, ‘사람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고 싶다’는 제 삶의 목적을 이루려면 더 주체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선택받는 삶이 아니라 선택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마냥 기다리기에는 삶이 너무 아름답고 충만하다. 이 삶을 하루라도 더 잘 살아 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여러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그 후 무작정 유럽으로 떠났다. 원래의 목적은 독일에 살고 있는 지인을 만나기 위함이었지만, ‘이왕이면 의미 있는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렇게 분필 하나로 거리의 시민들과 소통하는 퍼포먼스형 공연 <초크>가 탄생했다. 프랑스에서의 공연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의 다음 스텝은 1인극 <드론>이었다. 우연히 접한 영상 속, 드론 앞에 힘없이 앉아 있는 군인의 모습을 통해 권력을 얻기 위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희생되는 청년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렇게 시작된 <드론>은 전쟁 한가운데 던져진 한 청년의 생존기를 통해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기술과 인간성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됐다.

 

공연장 대관 일정으로 인해 공연까지 주어진 시간이 채 50일도 되지 않는 상황. 연기와 극작, 연출은 물론 홍보, 마케팅까지 전부 정경훈의 몫이었다. 실제 드론을 무대에 등장시키기 위해 드론 전문가를 찾아 일일이 협업 제안 연락을 보냈고, 보도자료도 직접 작성해 언론에 배포했다. 흥미로운 것은 공연을 만드는 과정 자체도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는 ‘48일 만에 공연 올리기’를 주제로 숏폼 영상을 제작해 인스타그램에 공개했다. 단순히 공연을 올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사람이 이 공연에 대해 궁금해할지 고민한 것이다. 그 덕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여러 사람의 도움 속에 <드론>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드론>은 정말 ‘에라 모르겠다’ 하고 시작한 프로젝트였어요. (웃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무작정 시작했어요. 혼자서 기획을 시작했고, 대부분의 과정을 혼자 소화하긴 했지만, 제 열정만 보시고 도움을 주시고, 관심 가져 주신 분들이 정말 많아요. 덕분에 힘을 내서 더 열심히 준비할 수 있었어요. <드론>을 통해 단순히 배우의 입장만이 아니라 제작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드론>은 정식 공연화, 더 나아가 영화화를 위해 열심히 개발하고 있습니다.”

 

‘한일합작영화’를 만드는 것이 그의 다음 목표다. 단편영화에서 장편영화로 스케일을 키우면서 이런저런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지만, 정경훈은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운다. 한 계단씩 나아가면서 끈기를 기르고 있다”고 말했다.

 

 

정경훈이 최근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프로젝트는 뮤지컬 <강가에 서서>다. 2026 송파 문화예술 활성화 지원사업 선정작인 <강가에 서서>는 송파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도미 설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도미와 아랑의 사랑, 개루와의 갈등을 통해 ‘사람의 가치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묻는다. 뮤지컬 <무명호걸>의 이유진 작곡가가 음악을 맡았고, 배우 김소정, 김수정, 김해준, 송효원, 유도겸, 최지훈, 구동욱, 조예진이 출연한다. <드론>에서 혼자 무대를 책임졌던 정경훈은 이번에는 여러 배우와 창작진을 이끈다. 직접 쓴 글을 연출하면서 도미를 연기하고, 음악과 움직임, 무대와 조명, 의상까지 공연의 모든 요소를 함께 조율한다.

 

“조금 더 넓은 시야로 작품을 바라보게 됐어요. 이전에는 몰랐던 제작자의 마음도, 연출가의 마음도, 작가의 마음도 알게 됐고요. 그들이 얼마나 고충이 많았는지, 얼마나 치열하게 작업했는지 직접 경험해 보니 이제야 알겠더라고요. 요즘 가장 크게 느끼는 건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혼자서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을 돌아보니 정말 많은 사람이 제 곁에 있더라고요. 특히 <강가에 서서>는 제가 소화해야 하는 역할이 많다 보니 종종 버거울 때도 있는데, 조연출 친구들이 제 손과 발이 되어주는 덕분에 잘 준비하고 있어요. 두 친구에게 정말 고마워요.”

 

무대 위에 서서 하염없이 기다리기보다는 무대 위아래를 쉬지 않고 누비며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정경훈. 그의 다음 무대는 또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까? 그 누구도, 심지어는 그 스스로도 확답할 수 없겠지만, 그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라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는 없다.

 

“저 진짜 겁쟁이거든요? (웃음)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하는 거예요.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앞으로도 평생 도전하면서 살아갈 것 같아요.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해냈을 때의 쾌감이 훨씬 크니까요. 하나의 목표가 있다면, 도전의 여정 속에서 저는 물론, 저와 함께하는 동료들이, 저를 바라보는 관객분들이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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