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경험이 자양분
‘안무’라 쓰고 ‘에너지’라 읽는다. 화려하고 폭발적인 에너지가 장전된 춤으로 관객의 마음을 들썩이게 하는 젊은 안무가 정도영의 <스트릿 라이프> 안무 이야기.
DJ DOC의 음악으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이라… 사실 22곡이 모두 크게 유명세를 탔던 곡들이고, 전 국민이 알만한 유명한 안무도 있어 신경이 쓰이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뮤지컬 안무는 드라마 안에서 존재하는 것. 대본에 충실하기로 했다. 대본은 내겐 설명서 같은 것이다. 한 신 한 신 드라마에 맞춰서 안무의 색깔을 읽는다. 가끔 음악에 맞춰 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극작가가 정한 색깔에 따라 안무의 색깔을 뽑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명서를 보며 사물을 조립하듯, 대본을 보며 머릿속에서 다양하게 떠오르는 동작들을 드라마에 맞춰갔다.
1막부터 2막 초반까지 안무를 짜는 데 한 달이 걸렸다. 또, 배우들을 트레이닝시키고, 연습시키는 데 두 달이 걸렸다. 이렇게 3개월, 하지만 그 이전에 직접 레슨과 트레이닝을 받고, 해외 댄서들이나 안무가들의 안무 소스와 자료를 수집하고, 연출가와 구성에 대해 회의한 것까지 하면 이 작품에 투자한 시간은 18개월쯤? 성재준 연출가와는 이번 <스트릿 라이프>가 <싱글즈>, <풀하우스>에 이어 세 번째 함께하는 작품이다. 내가 여전히 다양한 춤을 배우는 등 안무 트렌드에 민감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해보고 싶은 대로 다 해보라고 힘을 실어주었다.
<스트릿 라이프>는 세 명의 재능 있는 친구들이 함께 꿈을 이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팀워크를 맞추는 데 주안점을 두고 1막은 쇼, 2막은 쇼 드라마로 구성했다. 아무리 1막을 쇼에 주안점을 두었다 해도 드라마가 있게 마련. 예를 들면, ‘수사반장’ 신은 훈이가 소원해진 여자 친구를 미행하는 과정, ‘I Wanna’ 신은 세 주인공이 연예기획사에 들어가 훈련하고 스타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한 신, 한 노래 안에서 모두 이뤄진다. 이 장면은 드라마와 쇼가 함께 가는 그림으로 짰다. 쇼 부분을 가장 극대화한 장면은 1막 엔딩 ‘런 투 유’다. 관객들이 잘 아는 ‘바운스 미’ 동작을 전면에 배치하여 완벽하게 쇼 안무로만 구성했다. 한편, 2막에서 쇼 드라마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신은 ‘삐걱삐걱(리프라이즈)’이다. 1막에서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던 세 주인공이 가진 건 돈밖에 없는 손님으로부터 자존심 상하는 대우를 받고 ‘삐걱삐걱’을 부른다. 2막에서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한바탕 분노를 풀어내는 ‘삐걱삐걱(리프라이즈)’은 격정적인 움직임을 통해 무대 위와 객석에서의 감정이 폭발할 수 있도록, 1막의 ‘삐걱삐걱’은 노래에 좀 더 힘을 줘서 가사의 의미를 관객에게 미리 전달해놓는 일종의 장치인 셈.
음악의 비트상, 연출가의 컨셉상 세 명이 래퍼면서 가수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트렌디한 안무를 많이 썼다. 스포츠 댄스나 아프리카 스타일 등 색다른 장르를 넣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힙합과 스트릿 댄스, 팝핀, 비보잉이 중심이다. 가장 힘을 준 것은 ‘삐걱삐걱(리프라이즈)’의 클럼프와 승무다. 클럼프는 흑인들이 즉흥으로 추는 저항의 춤인데, 일본 유학 시절 크게 유행하는 춤이었다. 서로 겁을 주면서, 부수고, 꺾으며 자기 안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표출한다. 드라마상, 감정의 극대화를 위해서 군무로 시도해봤다. 같은 신 열린 뒷 무대 사이로는 ‘승무’를 추는 사람이 보인다. 서양의 힙합을 하는 친구들이 주인공이지만, 노래나 정서는 지극히 한국적이라 생각했고, 한국적 정서를 담은 안무이면서도 장례식과 어울릴 만한 춤을 중심적으로 배치하고 싶었다. 승무는 불교 무용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고사를 찾아보면 장례식장에서 혼을 잘 보내기 위해 추는 춤이다. 이런 중심적인 정서의 힘을 받아 등장인물들이 더 격하게 감정을 토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가장 어렵게 만든 안무는 2막의 ‘DOC와 춤을’이었다. 크게 어려운 춤은 없지만, 한 노래 안에서 여러 그림이 반복되어야 했다. 소속사 사장이 ‘스트릿 라이프’를 행사에 보내고, 이들이 지방 순회공연을 다니는 그림, 통장에 행사비가 한 푼도 입금되지 않는데, 중간에 사장이 돈을 가로 채는 그림, 이것이 반복되는 그림. 이 그림들이 전개되면서 음악은 신나게 진행되지만 등장인물들의 정서는 그렇지 않아야 하고, 이것을 추상적이지 않게 표현해야 하다 보니 너무 직설적인 안무가 될 것 같았다. 고민하다가 결국 끝나지 않는 고리인 뫼비우스의 띠로 표현해 무대 위에서 에너지를 잃지 않으면서도 대부분을 다 담을 수 있는 그림을 만들어내었다.
작품을 하면서 늘 ‘그림이 잘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늘 우선한다. 그러다 보니 안무 구성이 많아져서 배우들이 힘들어 한다. 이번 작품은 힙합이 중심이 되는 뮤지컬이라 템포를 당겨야 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국내에 잘 알려진 힙합은 그루브한 성격이 강한데, 관객과 함께 빠른 호흡으로 시너지를 주고받는 뮤지컬에서는 템포가 처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일본에서 배웠던 템포 빠른 힙합을 접목시키고, 가사에 맞춰 안무를 짰다. 무대에서 이동하는 데 보통 8박자를 세는데, 나는 그중 4박자만 사용했다. 그걸 1-2-3-4의 템포가 아니라 1-&-2-&-3-&-4-&이렇게 쪼갰다. 그러면 박자는 반으로 줄지만, 8박자와 똑같은 걸음 수가 나온다. 그만큼 템포가 빨라지고 움직임이 많아진다. 에너지 안배를 위해서 중간 중간 동선 변화를 많이 줬지만, 배우들이 7~8kg씩 빠졌다고 하는 건 절대적으로 이런 이유였을 것이다. 정말 고생이 많았다.
모두가 고생한 덕분에 관객들이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 커튼콜에서의 반응이 그렇게 뜨거운 걸 보면 모두에게 감사한다. 이런 반응이라면 앞으로도 공연이 계속되지 않을까 싶은데, 좀 더 지속적으로 공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은 게 바람이다. 자잘한 부상의 발생으로 안무를 줄여야 하는 것이 아닌지 의견이 있는데, 제대로 된 스윙 시스템을 보완하여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9호 2011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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