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스피릿의 부활
6년 만에 다시 돌아온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처음부터 끝까지 록 스피릿이 충만했다. 강렬한 록 스피릿을 부활시키겠다는 이지나 연출의 의지, 획기적인 편곡을 선보인 정재일의 재능, 오리지널 록 정신을 구현해준 배우들의 노력이 한데 어우러져 청각적인 충족감을 선사했다. 이번 프로덕션이 그간 기울인 노력을 설앤컴퍼니의 신동원 제작PD에게 들어보았다.
관건은 음악의 힘
이번 프로덕션의 첫 번째 목표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이하 <지저스>)라는 작품의 존재감을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그 해답은 바로 음악이었다. <지저스>의 작품성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지저스>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컸던 이지나 연출은 애초부터 록에 집중해 음악을 살리는 것을 작품의 기본으로 두었다. 정재일을 음악 수퍼바이저로 제안한 것도 그녀였다. 그쪽 분야에 정재일만 한 인물이 없다는 정평이 나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험일 수도 있었다. 같이 작업해 본 적도 없고, 뮤지컬 크레딧이 없는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정재일이 음악을 잘 살려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예상외로 정재일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이 작품이 자신의 모든 음악에 영감을 주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하드록에 심취해 있었다는 그는 그야말로 록의 피가 흐르는 뮤지션이었다.
이번 작품의 1순위는 음악을 바꾸는 것! 하지만 그 변화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곡의 순서나 음역대를 바꾸는 것은 원작자와 협의가 가능하지만, 곡을 자르거나 붙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재일 감독은 오케스트라 대신 5인조 라이브 밴드를 쓰고 싶어 했다. 열댓 명 규모의 오케스트라로는 자신이 원하는 풍부한 사운드가 나오지 않아서였다. 오케스트라를 비롯해 작품에 필요한 모든 사운드는 사전에 녹음을 하고, 현장에서는 생동감 있는 리듬 악기들을 구성해 라이브 연주를 하기로 했다. 예상대로 그의 음악은 획기적이었다. 원곡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모든 악기 편성을 다 바꾸어놓았다. 덕분에 굉장히 역동적인 음악이 완성됐다.
오리지널 록 스피릿
음악이 중점이 된 공연인 만큼 그 노래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를 찾는 것이 관건이었다. 우선 캐스팅의 원칙을 정했다. 오리지널 록으로 가자! 록을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 록 정신이 있는 배우를 찾고 싶었다. 날것의 느낌을 원한 것이다. 박은태 배우는 예전부터 <지저스>를 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어 따로 오디션을 봤는데, 노래를 들어보니 느낌이 왔다. 마이클 리는 <미스 사이공> 때부터 <지저스>를 기가 막히게 부른다는 소문을 들어 언젠가 같이 작업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오디션에서 적격자를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을 때 퍼뜩 그가 떠올랐다. 미국으로 연락을 했더니 그도 이 작품을 좋아한다며 반겼다. 특히 박은태와 마이클 리의 ‘겟세마네’를 들으면서 ‘이제 캐스팅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겟세마네’는 지저스에게 가장 중요한 장면 아닌가. 이 한 곡으로 좌중을 압도하지 못하면 이 작품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번 프로덕션은 ‘겟세마네’에서 최대한 지저스의 모든 것을 보여주기 위해 조명부터 세트까지 모든 걸 그 배우에게 맞추기로 했다. 노래 자체가 지닌 무게감이 엄청나기 때문에 음역대가 가능하더라도 무대 위에서 존재감이 없으면 배우가 초라해질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두 배우는 뛰어난 기량을 지니고 있었다.
한편 한국어랑 영어를 말할 때 마이클 리의 톤 자체가 달랐기 때문에 입에 잘 붙는 쪽으로 가사를 선별해 영어를 혼용하기로 했다. ‘겟세마네’에서 박은태는 ‘죽을게요’로, 마이클리는 ‘I will die’로 달리 부르는 식이다. 이렇게 단어 하나를 체크하면서 배우에게 더 좋은 느낌을 찾아가는 과정이 선행되었다. 추후 관객들이 영문 가사가 많아 번역이 성의 없어 보인다는 피드백을 주셨는데, 사실 우리의 상황은 그 반대였다. 너무 고민을 많이 하다 보니 원문대로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 것이다. 적당한 한국어를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 원어만큼 잘 표현해줄 수 있는 단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감을 느끼는 캐릭터 설정
작품에 대한 대중의 선입견을 깨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 크리스천들은 <지저스>를 기독교 정신에 위배되는 이야기로 여기고, 크리스천이 아닌 이들은 너무 기독교적인 이야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기독교적으로 어떠한 메시지가 있느냐로 접근하는 순간 작품의 한계가 드러나기 십상이었다. 우리는 중도의 길을 걷기로 했다. 연출가가 선택한 새로운 포지셔닝은 캐릭터와 스토리 자체에 중점을 두는 것이었다. 각각의 캐릭터들이 저마다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충분히 보여주며 공감대를 끌어내고자 했다. 나아가 지저스나 유다란 이름을 덜어내더라도 충분히 재미있는 스토리를 전달하는 데 집중하였다.
지저스는 누가 봐도 매력적이고 완벽한 남자이되 내면의 고뇌가 느껴지는 인물로 설정됐다. 연출가는 지저스의 고뇌가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되기보다는 내면으로 드러나길 원했다. 이미 가사에 깊은 고뇌가 충분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지저스는 초인 같은 느낌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손짓 하나로도 모든 걸 말할 수 있어야 했다. 박은태는 손 라인이 길쭉길쭉해 표현이 잘되었지만, 손이 작았던 마이클 리는 손톱을 기르는 등의 디테일을 더하기도 했다. 지저스에 대립하는 유다 역시 섹시한 남성성이 부여됐다. 지저스가 절제된 섹시미라면, 유다는 폭발적인 섹시미였다. ‘수퍼스타’ 장면에서 유다는 남성성을 폭발적으로 극대화하며 관객들에게 자신을 계속 어필해야 했다.
심플함과 임팩트
무대와 의상은 심플하게 제작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비주얼적인 측면에서의 온갖 실험적인 시도가 음악에 대한 집중도를 방해한다는 판단이었다. 연출가는 <지저스>가 특정한 시기에 국한된 시대극이 되지 않길 원했다. 무대 디자인의 경우 사막이되 지구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사막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스타워즈1>의 배경처럼 약간 미래의 모습을 띠면서도 지구가 아닌 듯한 느낌으로 말이다. 의상 역시 <스타워즈1>에서 영감을 얻어왔다. 고대 로마 시대에 한정된 의상보다는 좀 더 미래에 가까운 느낌을 살린 것이다. 개인적으로 ‘수퍼스타’ 장면에서 유다에게 검정 가죽 옷을 입히지 않았으면 했는데, 그 제안이 반영되기도 했다. 록을 한다는 이유로 틀에 박힌 옷을 입는 것은 너무 재미없지 않은가.
비주얼적으로 강한 임팩트를 준 부분은 빌라도가 지저스를 벌하는 장면이었다. 수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완성된 것이다. 연출가가 원하는 것은 채찍질을 하는 순간 지저스의 등에 선명하게 핏자국이 맺히는 것이었다. 작품에서 중요한 장면인 만큼 강한 임팩트를 주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생동감을 더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고안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채찍에서 피가 뿜어져 나올 수 있도록 특수 장치를 써봤는데, 채찍을 휘두르는 순간 온 무대가 피범벅이 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고민 끝에 지저스가 매달린 곳에서 피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장치를 쓰게 됐는데 효과가 좋았다. 극에 확실한 임팩트가 생겼다.
이번 프로덕션이 비록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무대였다. 다음에 <지저스>를 올리게 될 때는 스타 없이도 작품과 배우의 실력만으로 승부를 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작품의 존재감을 이루고자 했던 애초의 목적은 달성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저스의 마지막 대사 “다 이루었다”처럼 말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8호 2013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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