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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피맛골 연가> 첫 출발 극본 작업 [No.81]

글 |박병성 사진제공 |세종문화회관 자료제공| 세종문화회관 2010-08-05 6,037

<피맛골 연가> 첫 출발 극본 작업

 

작년 ‘서울시 대표 뮤지컬’을 제작하기 위한 공모를 통해 배삼식 작가의 <피맛골 연가> 트리트먼트가 뽑혔다. 이를 바탕으로 다시 네 명의 작곡가에게 작곡을 의뢰했고, 작품의 느낌을 가장 잘 살린 장소영 작곡가를 파트너로 선발했다. 현재 배삼식 작가, 장소영 작곡가, 유희성 연출가로 구성된 <피맛골 연가> 프로덕션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오는 9월 4일부터 15일까지 공연하는 <피맛골 연가>의 제작 과정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창작뮤지컬이 제작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드라마의 씨앗, 트리트먼트
<피맛골 연가>의 가제는 <뒷골목 중매쟁이>였다. 피맛골을 배경으로 조선시대부터 1930년대 그리고 개발의 논리로 사라져가는 피맛골의 현재 모습을 담으며, 300년이 넘도록 이어진 사랑을 이야기한다. 병자호란 직전 피맛골 서출 김생은 그의 목숨을 구해준 홍랑과 사랑에 빠지지만 이루어지지 못한다. 이들의 사랑은 살구나무의 혼령 행매의 도움으로 300년 후인 1930년 경성에서 김생으로 인해 생겨난 쥐들의 분란을 해결하면서 이루어진다.
<피맛골 연가>는 김시습의 『금오신화』 중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에서 모티프를 얻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랑을 그린다. 또한 동물이나 사물을 의인한 가전체 소설의 방식을 차용해 2막에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상시키는 듯한 쥐들의 세계를 여행한다. 2009년 8월 배삼식 작가의 초고가 나오고 지금까지 2010년 5월 3일 9고가 나왔다. 이것이 끝은 아니다. 본격적으로 배우들과 연습에 들어가면 구체적인 상황에 접하면서 좀 더 수정할 부분이 생길 것이다. 지금까지의 대본을 기준으로 9고까지의 수정 과정을 점검해본다. 9고까지 진행되면서 극의 구성 요소가 생겼다가 없어지고 다시 생겨나기를 반복했다. 노래의 위치가 바뀌고 나뉘어지고, 노래 사이에 대사가 들어가는가 하면, 아예 통째로 사라지기도 했다. 어떤 부분은 여러 번의 변화를 거치다가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오기도 했다. 캐릭터가 좀 더 분명해지는가 하면 오히려 약화되는 부분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화려함을 줄 수 있는 비주얼 장면이 강화되었고, 행매의 존재나, 쥐들의 세상을 보여준 판타지 장면은 약화된 경향을 보인다. 6고에서는 대사를 최소화하고 노래를 중심으로 한 뮤지컬로 만들기도 했다.

 

 

험난했던 수정 과정
* 홍랑의 죽음
김생이 과거 시험을 대리로 봐준 덕에 홍생이 급제한다. 홍생의 유가 행렬 때 살구나무(행매)가 방해가 되어 자르려하자 이를 말리다 김생은 광에 갇힌다. 그런 김생을 홍랑이 구해준다. 초고에서는 홍랑이 김생을 도망가도록 도와주는 것만으로 인연을 만들었는데, 2고부터는 이들의 인연을 좀 더 부각시켰다. 홍랑의 방에서 김생을 간호하고 보살피다 둘이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초고에서는 홍랑이 죽은 이유를 정확히 묘사하지 않지만 전쟁 통에 죽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후 본에서는 홍랑의 죽음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홍랑이 김생의 죽음을 알고 슬픔에 겨워 자살하는 본도 있다. 이 본에서는 역사적 배경이 중요하지 않으므로 병자호란을 삭제했다. 그러나 둘의 사랑이 자살을 할 만큼 무르익었다고 보기 힘들었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었다. 최종본에서는 김생의 죽음을 안 홍랑이 병자호란 중에 청나라 군사에게 쫓기자 강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청나라 군사에 쫓기는 다급한 상황이었고, 사랑하던 김생이 죽음을 맞이했던 강에 투신한다는 내용이 설득력이 있었다.

 

* 캐릭터의 변화
초고에서 서출 출신인 김생의 캐릭터는 불분명했다. 수정이 더해질수록 김생의 캐릭터가 구체화되었다. 극 초반 피맛골 사람들이 부탁하러 몰려드는 장면을 통해 김생의 캐릭터가 생생해지는데, 출신은 비록 서출이지만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암시했다. 이어 서출 신분을 한탄하는 ‘얼치기 노래’를 다른 서생들과 함께 부르며 서출의 신분을 자조하는 태도를 보인다.
살구나무 정령인 행매는 작품을 지배하는 초자연적인 존재로서 김생과 홍랑을 연결해주는 중매쟁이 역할을 한다. 최종본에서는 홍생의 유가 행렬을 가로막는 살구나무를 베려고 하자 김생이 그것을 막다가 대리 시험을 폭로하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그러나 행매와 김생의 인연은 초고에서는 없었고, 2고에서는 행매를 좀 더 직접적인 역할을 부여해, 노파로 등장시켜 유가 행렬을 가로막다 봉변을 당하게 만든다. 정령이 인간으로 등장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최종본에서는 살구나무 가지가 길을 막았다는 보다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 행매의 존재가 시간을 초월하는 절대자인 듯 여겨지면서도 결정적으로 김생과 홍랑의 인연을 맺어주는 것은 쥐들에게 맡기는 모호한 존재이다. 최종본에서는 피맛골 터줏대감의 역할을 강조해 수 세기 동안 피맛골에서 벌어진 많은 사랑 이야기를 지켜본 존재로서의 의미를 부각시켰다. 판본에 따라 김생과 홍랑뿐만 아니라 성별, 나이가 다양한 사람들이 사랑을 다룬 막간극 ‘숨어라 사랑아’을 넣고 빼고를 반복했는데, 최종본에서는 이러한 행매의 존재를 강조하기 위해 1막뿐만 아니라, 1930년대 경성에서도 ‘숨어라 사랑아’를 리프라이즈 한다.
초고에서 홍랑은 의롭고 정이 많은 여인으로만 비춰졌는데 점점 강한 캐릭터를 부여받았다. 5고에서 홍랑의 캐릭터가 가장 강하다. ‘다섯 살에 끔찍한 일을 겪고, 겨우 몸을 숨겨 상인의 자식으로 물 긷고, 빨래하고, 바느질하며 잔뼈가 굵었죠’라는 직접적인 대사로 전사를 넣기도 했다. 홍랑을 이처럼 억척스런 여성으로 만든 이유는, 김생이 함께 도망가는 것을 망설이고 있을 때 오히려 홍랑이 이를 감행하도록 만드는 여인이기 때문이다. 김생이 돈을 받고 대리 시험을 봐준 이유가 피맛골에 가난한 연인들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는데, 5고에서는 그 약속을 홍랑이 대신 이행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5고의 홍랑은 너무 억척스러워 사랑스런 느낌이 반감되었기 때문에 최종본에서는 ‘한때 집안이 몰락을 겪으며 역적으로 몰려 숨어 살던’ 전력을 드러내는 정도로 수정되었다.

 

 

 

 

 

 

 

 

 

 

 

 

 

 

 

 

 

 

 

 

 

 

 

 

 

* 쥐들의 세상
<피맛골 연가>는 가전체 소설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 초고의 2막은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한 쥐들의 세계이다. 초반부에서는 경성 장면 역시 쥐들이 종로 거리를 거닐고, 전차를 타고 다니는 내용의 완전한 판타지 형식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판타지의 세계로 가는 것에 대한 부담 때문에 5고에서는 경성 거리를 삭제하고 곧바로 행매의 인도로 쥐들의 세계에 가는 것으로 바꿨다. 대극장 공연에서 가장 비주얼적으로 보여줄 것이 많았던 경성 거리 장면을 삭제하는 것은 제작진에게 큰 부담이었다. 결국 최종본에서는 경성 거리 장면은 사람들이 등장해서 시대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는 역할만을 부여하고, 다시 행매에 의해 쥐들의 세계로 이동하도록 했다.
초고에서는 쥐들의 세상에 대한 비중이 컸다. 김생과 홍랑의 짧은 만남이 이루어지고, 곧바로 1930년대 경성 쥐들의 세상으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김생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키는 꼬리얼룩쥐와 몸통얼룩쥐의 함아와 각이의 사랑을 이루어준다. 초고에서 2고, 3고까지만 해도 두 가문의 결혼식 장면에서 여전히 풀리지 않은 자존심 싸움을 한다. 전통 혼례 장면을 상세히 드러내서 비주얼적으로 재미를 줄 수 있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양 쥐 가문의 갈등은 줄어든다. 서출이라고 천대받았던 김생처럼 별것 아닌 것으로 정통과 사이비를 나누었던 꼬리얼룩쥐와 몸통얼룩쥐들의 다툼은 이후로 점점 사라진다. 결국 최종본에서는 초고에 드러났던 신분에 대한 불만과 안타까움이 대부분 희석되어 남아있지 않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1호 2010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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