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설 10년, 뮤지컬 학과의 현재와 과제
국내에 공식적으로 뮤지컬 학과가 개설된 것은 2000년이다. 4년제로는 동서대학교에서, 2년제로는 백제예대가 같은 해 첫 입학생을 받았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0년 2월 <더뮤지컬> 조사에 따르면 공식적인 2·3, 4년제 대학의 뮤지컬 학과가 스물두 곳이다.(대학원 및 학점인증제 교육기관은 제외) 흥미로운 것은 그중 절반 이상이 2005년을 전후로 개설되었다는 점이다. 뮤지컬 학과 졸업생이 조금씩 사회로 진출하고 있는 바로 이 시기, <더뮤지컬>은 그들의 학생 시절과 현재, 그리고 미래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빠르게는 졸업 4년 차부터 한 학기를 남겨둔 재학생, 그리고 현직 교수님이 만나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마련해 보았다.
교수 차순례 (동서대학교 뮤지컬 학과)
배우 조순창 (05학번, 서울예대 뮤지컬 전공 졸|<연탄길>, <노트르담 드 파리>, <햄릿>, <소리도둑>)
배우 서혜리 (04학번, 단국대학교 뮤지컬 전공 재학 중|<모차르트>, <돈 주앙>)
배우 김수영 (06학번, 백제예대 뮤지컬 학과 졸|<로맨스 로맨스>, <달콤한 나의 도시>, <드림걸즈>)
뮤지컬 학과와의 인연
차순례(이하 차) : 성악을 전공했다. 처음엔 동서대에 음악과가 없어서 교양수업을 맡다가, 새로운 예술학과를 만들어 보라는 학교의 제안을 받았다. 그때까지 뮤지컬을 한 편도 본 적이 없었지만, 당시 뮤지컬이 조금씩 부각되던 분위기에 뭐든 처음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학교 측에 뮤지컬 학과 개설을 제안했다. 총장님이 60, 70년대 외국 생활하시면서 뮤지컬을 많이 보셨던 분이라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2000년에 승인을 받아 공연예술학부로 80명을 뽑아 절반씩 뮤지컬과와 연영과를 개설했다. 처음이다 보니 커리큘럼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 당시 배우들에 대해서도 잘 몰라서, 매스컴에 노출되던 박칼린 감독과 남경읍 선생을 교수로 모셨다. 그들과 커리큘럼을 연구하고 해마다 업데이트를 해왔다.
조순창(이하 조) : 99년 대학가요제 출신인데, 담당 PD셨던 주철환 선생님과 학전 김민기 선생님 친분으로 오디션 기회를 얻어, 2000년도에 뮤지컬 <모스키토>로 데뷔를 했다. 그전까지 한 번도 뮤지컬을 접해보지 않아서, 공연하는 1년 동안 한계를 느꼈다. 더 배워보고 싶어 군 제대 후, 당시 학전의 조연출님이었던 정태영 연출님을 찾아갔다. 마침 서울예대 무용과(편집자 주-08년도부터 연기과 소속 이전) 안에 뮤지컬 전공이 있는데, 그 과의 박일규 선생님이 뮤지컬에 관심이 많으시니 2년 동안 짧고 굵게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추천해주셨다. 그 전에 다른 계통으로 4년제를 졸업하고 다시 들어간 경우다.
김수영(이하 김) : 중, 고등학교 내내 성악을 했었고, 외국으로 성악 유학을 준비하던 중에 우연히 2005년 <오페라의 유령> 내한 공연을 보게 되었다. 유학 전에 뮤지컬을 조금 맛보고 가볼까 하고 검색을 하다 서울 뮤지컬 아카데미를 발견했다. 아카데미 대표 겸 백제예대 교수님이신 배해일 교수님에게 잡혀서(웃음) 일주일 사이에 인생이 바뀌고, 집의 온갖 구박과 타박을 받으며 뮤지컬을 시작했다. 처음 접하는 장면 실습, 화술, 살사, 한국무용, 발레, 재즈 댄스를 배우는 게 재미있어서 열심히 했다. 내 세상이란 생각이 들어 재밌게 했다.
서혜리(이하 서) : 실용음악을 전공하여 예대를 목표로 준비를 하던 차에 생활음악과 내 뮤지컬 전공에 관심이 생겨 2주 준비하고 시험을 봤는데, 단국대 예비 1번으로 붙었다. 뮤지컬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혼자 준비했다. 1년 휴학을 하고 다시 실용음악과를 준비하려고 했지만, 뮤지컬에 제대로 도전해보고 싶어 춤과 그 밖의 것을 더 배우고 복학을 했다. 동기들과 윤한솔 교수님, 한정림 교수님을 만나며, 마음을 다잡게 된 것 같다.
커리큘럼 이야기
기본적인 학교의 커리큘럼은 어떤가.
차 : 우리 학교는 연기와 노래, 춤을 기본으로 클래식 위주로 가르친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일주일에 6시간씩 발레를 가르쳤다. 그 후에 다른 춤을 춘다. 노래 수업도 많이 넣었다. 발성 지도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99년도에 브로드웨이에 가서 당시 그곳에서 활동 중이었던 배우 고창욱의 뮤지컬 보컬 선생님께 2주간 뮤지컬 발성을 개인 사사받고 왔다. 그래도 기본 발성은 성악 발성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성, 두성 등 소리를 내는 방법을 다양하게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리사이틀, 뮤지컬 레퍼토리 시간도 있고, 공연제작실습도 6시간씩 있다. 졸업할 때까지 굉장히 많은 작품에 참여한다. 한 학년에 두 작품씩은 참여한다. 많이 하는 애들은 1년에 네다섯 작품에 참여하기도 한다.
일동 : 기본적인 수업은 거의 비슷한 것 같다.
각 학교마다 더 중심이 되는 분야가 있을 텐데.
서 : 우리는 실기와 제작 실습이 적절히 배분된 것 같다. 4학년 2학기의 모든 수업이 오디션에 관련된 수업이었다. 오디션 댄스, 오디션 연기, 오디션 노래, 오디션 준비를 위해 각자의 특기를 짜주는 것이 있는데 도움이 된다. 그 수업이 매우 좋았다. 창작뮤지컬 워크숍이라고 하여 직접 뮤지컬을 만드는 수업도 있다. 극작은 학생이, 음악은 한정림 교수님이 한다. 그 작품으로 대회도 나가면서 수업으로만 국한하지 않고 발전시켜 나가는 수업이다.
차 : 우리도 그런 수업이 있는데 학생이 극작, 작곡 다 한다. 작품이 잘 나오면 프로 작품으로 발전시킬 것을 생각하며 계속 시도하고 있다. 뮤지컬 배우를 하려고 왔는데 극작이나 작곡에 재능이 있는 학생이 있다면 그 재능을 발견하고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이다.
조 : 우리는 확실히 공연제작실습이 주다. 2월 초에 신입생 포함 모든 학생을 불러 모아 첫 모임에 악보와 대본을 주며 오디션 일정을 알려준다. 우리 학교는 방학이 일 년에 7일 정도다. 졸업할 때까지 총 열세 작품 정도 했다. 정규 수업은 수업대로 다 받고, 오후 6시부터는 교수님과의 제작 시간이다. 안산의 학교에서 함께 지내면서 계속 오디션 준비, 공연, 수업을 반복한다. 스파르타식으로 몰아치시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무대에서 떨릴 때 통제할 수 있는 훈련을 하게 된다. 2학년부터는 창작제작실습이 진행된다. 원작 소스들을 가져와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 각색하는 회의를 하고, 각 과에서 참여 할 수 있는 학생들을 찾아 우리 스스로 제작해 나간다.
김 : 2년제인 우리 학교도 역시 스파르타 시스템이었다. 뮤지컬 학과지만, 사실 목표는 뮤지컬 배우보다는 가수, 배우, 댄서를 모두 전문적으로 소화해 낼 수 있는 기능인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성악 교수님이 4분이라면, 시청청음, 개인레슨, 뮤지컬합창, 악보분석을 각각 진행하셨다. 무용도 발레, 재즈, 뮤지컬 레퍼토리, 한국무용, 살사, 차차차 등 세분화됐고, 수업도 연극이론, 뮤지컬 역사, 교양 수업, 워크숍, 제작실습, 화술 등 전문적이었다. 한 강의 당 1시간 30분씩 진행됐다. 오디션 관련 수업은 학교 공연장에서 진행되었는데, 긴장하지 않게 하려고 홀에서 노래도 하고 공연도 했던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2년제 대학에서 제작실습을 특히 많이 하는 것 같은데, 특이하게 백제예대는 기본기 수업이 꽤 강하더라.
김·서 : 1학년 때는 워크숍이 없다.
서 : 1학년 때는 무조건 스태프를 해야 한다. 그게 하나의 수업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걸 1학기 때 이수하지 않으면, 2학기에 수업 2의 수강신청 자체가 불가능하다.
조 : 우린 1학년 때부터 오디션제이다. 1학년도 오디션을 통해 잘하면 역할도 먼저 할 수 있다.
차 : 우리는 학년 공연은 개별로 하고, 뮤지컬 페스티벌에 갈 때는 전체로 오디션을 본다.
신입생들의 기본기는 어떤가. 순창 씨처럼 기본기를 갖춘 경우 제작 실습을 많이 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모든 학생이 기본기를 갖고 오는 건 아닐 것 같은데.
차 : 많이 모자라는 게 사실이다. 입시 때는 기본기가 좋은 애들도 있는데, 결국에는 다들 서울로 간다. 1~2년 만에 폐지된 학교들을 보면 대부분 지방대학이다. 아무리 일 대 일 수업을 하면 뭐하나.
김 : 나도 기본기라곤 성악뿐이어서 처음에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다들 똑같이 시작하는 것 같다.(웃음) 각자 하나씩 특기는 가지고 있었다. 연기를 잘한다거나, 노래를 잘한다거나. 모든 걸 다 갖춰서 온 사람은 없었다.
조 : 우리 학교는 일반적으로 끼가 많은 아이들이 온다. 입학식 때 총장님과 같이 춤추고 놀 정도로 다들 제각각이라 통제하기가 힘들다. 그래서인지 앙상블이 힘들다.(웃음)
차 : 우린 앙상블은 끝내준다. 현재 프로팀에 못지않다고 생각한다.(웃음)
각 학교마다 외래교수라 하여 많은 현장 출신 스타 교수들을 채용하는데.
김 : 실습 위주로 빨리 진행되다 보니, 현장에 계신 분들이 많이 오셨다. 당시엔 현장 출신 교수님들의 수업을 더 열심히 배웠던 것 같다. 현장에서 바로 통하는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오디션 같은 경우도 있고.
조 : 우리 학교는 뮤지컬 배우를 만드는 학교라기보다는 ‘뮤지컬 배우란 것은 무엇인지 알려주는 학교’였다. 학교에서 먹고 자고 고민했던 것들이 프로 무대로 연장되어 더 깊게 고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결국 대학의 실습은 ‘이건 해도 되겠다, 이건 하면 안 되겠다’를 배우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선생님들을 만났다. 서울예대에 스타 교수님은 많지 않았지만, 스타 교수님들은 자신의 경험과 자신에 익숙한 것을 가르친다. 처음에 학생은 그게 전부인 양 배운다. 하지만 학교 안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그게 전부가 아니구나, 이건 내가 가질 수 있고, 이건 내가 버려도 되겠구나를 알게 된다. 전에 학교에서 LSC(London Studio Center)로 연수를 보냈는데 그 또한, 영국에 가서 배워 오라는 의미보다 영국에 이런 것도 있으니 경험을 해보라는 의미가 더 컸다. ‘이게 정석이지만 네 것을 한번 찾아보라’는 경험의 기회를 주고 또 선택할 수 있게 해준 곳이 서울예대였던 것 같다.
차 : 우리 같은 선생은 가능성을 찾아주고, 스타 선생들은 재능을 만들어서 현실과 잘 맞물리게 해주고, 다 할 몫이 있는 거 같다.
사회에 나와 작품 활동을 하면서 ‘학교 수업 중 이런 점이 보강되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있나?
서 : 재밌는 건 그 학기에 아쉽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매번 다음 학기에 반영이 되었다. 교수님들과 모이는 기회가 많아 학생들이 건의하는 것을 다음 학기에 수정하여 반영하시고 수업이 바뀌니까 계속해서 발전하는 느낌이다.
김 : 우리도 그랬다.
조 : 공연을 끊임없이 하다 보니,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느꼈다. 근데 더 많이 읽고 있는 게 대본이었다. 그 책 한 권을 올리기 위해 몇 개월 동안 그 책 속에 산다. 이 책을 놓으면 또 다른 책을 바로 봐야 한다. 쉬면서 소화하고 정리할 수 있는 타이밍이 더 절실했다.
김 : 제작실습이나 워크숍처럼 공연을 해야 하는 시간이 이렇게까지 많아야 하는지 조금 의문이 있었다. 보는 것도 공부라는데 그 시간에 좀 더 공연을 보고, 좀 더 책을 읽으면 안 될까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계속 밤새워 연습하고 무대를 만들고 사비를 털어가면서까지 공연을 많이 올린다. 물론 도움이 되는 것엔 이견이 없지만, 방법적인 부분에 의문이 든다.
차 : 그러나 실력을 쌓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다. 그렇게 해야 오디션에 붙으니까. 한 배역을 위해 천 명씩 모이는 상황에서 붙으려면 실기를 잘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실습을 시킬 수밖에 없다.
뮤지컬 학과 졸업 이후
전국 20여 개의 학과, 30명 정원이라 치면 약 600명이 매년 졸업하고 있는 것인데, 동기들 중에 몇 퍼센트 정도가 전공을 살리고 있는가?
조 : 30퍼센트 정도. 나머지 70퍼센트 중에도 일반 회사를 다니다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있긴 하다.
차 : 10퍼센트도 많이 진출한 거다.
서 : 입학자 20명 중 절반은 졸업하기 전에 다른 길을 찾는다. 입학한 기수가 전부 졸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확실한 건 열정을 갖고 4년을 다닌 사람은 어떤 역할로든 이 분야에 남는 것 같다.
김 : 맞다. 학교 다닐 때 열심히 하는 친구들은 계속 남는 것 같다. 비율은 10~20퍼센트 정도다.
들어보니 70~80퍼센트의 졸업생은 다른 일을 하고 살아간다. 뮤지컬 전공은 다른 것보다 더 기능적인데 학교에서 배운 것을 활용할 수 없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조 : 학교가 개선해야 할 부분 중 하나다. 현재의 수업은 모두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수업이다. 그러나 개성 있는 캐릭터야말로 무대 위의 주인공이란 생각이다. <지킬 앤 하이드>에는 지킬, <모차르트!>에는 모차르트라는 주인공들이 있지만 <모차르트!>의 신영숙 배우, <살인마 잭>의 최민철 배우 등은 한 곡을 불러도 박수와 기립을 받는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경우도 등장인물 일곱 명이 모두 주인공이다. 극은 콰지모도가 끌고 가지만, 한 명도 기억에 남지 않는 캐릭터가 없을 정도로 모두가 각각 비중이 있다. 뮤지컬 학과가 발전해 나가듯 시장도 더 커지고 발전할 것이다. 언젠간 우리나라도 웨스트엔드에서처럼 60~70세 할아버지도 뮤지컬에 출연하고, 50대 배우가 장발장을 맡게 될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차 : 학교에서는 일단 주인공이 되게 가르쳐도 오디션에서는 어차피 자기에게 맡는 배역을 찾아가서 보게 된다.
조 : 그게 다 프로로 나가는 과정인 거 같다. 학교에서 주인공을 계속 맡은 사람이 자신은 굉장한 줄 알지만, 오디션에서 자꾸 떨어진다. 그런 과정 속에서 자신에게 맡는 역할을 찾아가면서 프로가 된다. 사회에 나와서도 계속해서 배워야 한다. 배우는 배워야 해서 배우다.
학교와 현장 사이를 메울 수 있는 교육기관이 필요하다.
김 : 이쪽 분야가 실기 위주다 보니 계속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 박자 놓쳤다간 티 나게 뒤처지게 된다. 그게 학교 수업에서부터 그렇다.
조 : 맞다. 뒤처졌다는 느낌이 들면 ‘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 라면서 오디션을 겁낸다. 그런 친구들에게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일단 봐. 오디션이 너에게 많은 가르침을 줄 거야’라고 얘기하고 싶다.
서울뮤지컬단과 서울예술단에서 좋은 배우를 많이 배출했다. 이혜경, 김성기, 민영기 씨가 다 거기 출신이다. 여기에서는 작품도 올리지만 평소에는 다양한 트레이닝을 시켜서 능력 있는 배우들을 양성해낸다. 뮤지컬 학과를 졸업하고 재교육을 받을 교육기관이 없어서 개인 레슨에 의존하는 형편인데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기보다 기존에 있는 이러한 곳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재교육의 역할을 맡겨야 한다. 최근 정부 지원금이 줄어서 예전과 같은 왕성한 활동이 어려운 것 같다. 학교에서 진로에 도움을 주는 활동엔 어떤 게 있을까.
서 : 외부 대회에 참여하는 것은 모두 지원 한다.
차 : DS뮤지컬컴퍼니를 차렸다. 졸업생들이 취업도 해야 하고, <점프>나 <난타>처럼 지속적으로 공연하고, 수익도 창출할 생각에 회사를 차렸다. <구름빵>이라는 어린이 뮤지컬을 만들었다. 그 외에는 학교에서 교직이수가 가능하다. 요즘 영상고등학교같이 기능적인 중·고등학교에 뮤지컬 분야 선생님으로 많이 간다.
조 : 동아리 선배들이 지속적으로 모임을 가지면서 후배들을 이끄는 경우가 있다. 서울예대에도 차순례 교수님처럼 컴퍼니를 염두에 두는 경우가 조금씩 생기는 거 같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78호 2010년 3월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