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한 획을 그은 <레 미제라블>
나의 뮤지컬 데뷔작은 1978년도에 공연된 <땅콩 껍질 속의 연가>지만,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을 걷게 한 작품은 <레 미제라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8년 초연 당시 마리우스로 제작사의 콜을 받아 참여하게 됐는데(그때는 지금처럼 뮤지컬 시장이 활성화됐던 때가 아니라 공개 오디션 자체가 없었다),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던 뮤지컬이라 어떤 작품인지 잘 모른 채로 오디션을 보러 갔던 기억이 나요. 책과 영화를 보고 ‘음, 이렇겠구나’ 하고 대충 상상하고 갔던 거죠.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일지 몰라도 그때는 정식으로 라이선스를 받아 공연할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작품의 소스를 구해 와서 그걸 보고 우리나라에서 제작해 공연을 올리는 식이었죠. <레 미제라블>은 영국 연출가 패트릭 터커가 무대며 의상이며 소품까지 모든 소스를 다 구해와 공연한 거였는데, 나중에 브로드웨이 공연 영상을 보니 우리나라에서 했던 것과 거의 비슷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한편으로는 재미있었어요. 무엇보다 외국인 연출가와 작업하는 것도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세 달 동안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다보니 말 한마디 안 통하지만 느낌으로 교류하고 단어 하나로 소통할 만큼 밀착돼 있었죠.
좌우간 그때는 보통 열정이 아니었어요. 내 인생에서 가장 도전적이었고, 열정적인 시기였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열심히 했으니까요. 개인 연습실이 부족해 매일같이 연습실 쟁탈전이 벌어졌고, 더블 캐스트인 고인배와 거의 매일 새벽까지 연습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나는 노래를 했던 사람이고 고인배는 연극을 했던 친구라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작품 이야기로 밤을 새우는 날이 부지기수였고요. 그런데 이 모든 건 다 집에 쌀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공연에 빠져있는 철없는 남편을 격려해준 아내가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죠. “지금껏 당신이 어떤 일을 할 때도 이만큼 열정적인 적은 없었다”며 “뮤지컬이 당신이 가야할 길이니 힘들지만 끝까지 한번 해봐라”는 아내의 격려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있을 수 없을 겁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4호 2011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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