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기획은 ‘신인 배우를 찾습니다’였다. 최근 들어 굵직한 신인 배우들이 눈에 잘 띄지 않는데,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자는 취지의 기획이었다. 이번에는 스태프 편이다. 유망한 신인 배우의 등장이 주춤한 것은 최근의 현상이지만 스태프들은 늘 인력난에 시달려왔다. 뮤지컬 시상식 중 음향이나 조명 스태프의 경우는 몇 년째 같은 인물들이 후보에 오르고 심지어 한 사람이 서로 다른 작품으로 노미네이트되기도 한다. 창작자뿐만 아니라 기술 스태프의 부족도 심각한 수준이다. 이번 기획에서는 새로운 스태프들의 등장이 힘든 공연계 구조를 살펴보고, 새로운 스태프를 조명해보려고 한다.
각 분야와 뮤지컬 관계자들의 추천을 받아 인물을 선정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연출, 무대, 안무, 조명, 음향 각 분야에 따라 인력 구조의 차이가 있었다. 원래는 각 분야의 베테랑 바로 아래 급인 차기 인물을 주목하려고 했으나, 중간층이 취약하거나, 인접 장르에서의 인력 유입도 잦다 보니 아예 그 분야에서는 신예에 대한 주목도가 높은 분야도 있었다. 그래서 연출, 무대, 안무 분야는 차세대 인물을 선정하고, 조명, 음향은 원래 계획대로 차기 인물에 집중하는 이중 기준으로 선발했다.
피로도가 쌓여가는 인력 구조
질문은 명확하다. ‘왜 뮤지컬에는 새롭게 등장하는 스태프들이 드문가?’ 연출, 안무, 조명, 무대, 음향, 의상 각 분야에 탁월한 두세 명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대부분의 뮤지컬 제작에 참여한다. 각 분야의 최고 베테랑들에게 일이 몰리는 것은 어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지난 몇 년간 절대적인 몇몇 이외에 새로운 인물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뮤지컬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되거나 수상한 이들을 살펴보면 스태프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국내 뮤지컬 시장은 지난 10년간 매해 20퍼센트씩 성장해왔다고 한다. 그럼에도 새로운 스태프가 보이지 않는 것은 기현상처럼 느껴진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구조적으로 가능한 것이고 혹여 문제가 없는지를 밝히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유망주를 찾아보기 힘든 시대
새로운 스태프의 부재에 대해 현장의 인력들은 한결같이 새로운 인물을 키울 환경이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일단 공연 스태프 일에 뛰어드는 젊은이들이 환상을 품고 오는데 실제 작업은 막노동과 별반 다르지 않다 보니 현실과 환상의 괴리에서 쉽게 일을 그만둔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연 환경이 열악하다보니 대형 제작사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처우도 나빠서 젊은이들이 오래 버티지 못한다. 국내 최고 음향디자이너로 꼽히는 김기영 디자이너는 새로운 스태프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로 상황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내가 시작했을 때는 음향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도 없었다. 전문 음향 회사가 있었지만 그곳에서는 공연을 몰라 실수가 많았다. 다들 실력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과 아무래도 실력 차이가 크게 나기 때문에 제작사에서는 안전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몇 년 전에는 몇몇 주요 스태프들과 제작사들이 새로운 스태프를 양성하자는 취지로 가능성 있는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었는데 작업 퀄리티에서 워낙 큰 차이가 나자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한다.
시장 규모가 커지면 물리적인 한계 때문이라도 스태프층이 넓어질 수밖에 없다. 시장이 크게 성장한 것은 사실이나 실제적으로 한 달에 오르는 대형 뮤지컬은 공연 성수기인 12월이 아니면 대여섯 편에 지나지 않는다. 재공연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재공연의 경우 스태프들이 고민해야 할 영역이 줄어든다. 파트별로 차이가 있는데 음향이나 조명의 경우 배우들과 늘 붙어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디자인을 확실히 해주면 나머지는 오퍼레이터들이 운영할 수 있기 때문에 무리가 따르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분야에 비해 여러 작품에 참여할 수 있다. 음향이나 조명은 베테랑 디자이너가 여러 작업에 참여하는 대신 팀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도제식의 노하우 전수가 이루어지고 있는 편이다. 김기영 음향디자이너 팀이었던 양석호 디자이너가 독자적으로 활동하게 된 것이나, 이우형 조명디자이너와 함께 작업한 나한수 디자이너가 다음을 잇는 차기 주자로 꼽히는 것이 그러한 전수의 예이다.
무대나 의상, 연출, 안무 분야는 한 작품에 집중해야 하는 물리적인 시간이 많다 보니 아무래도 여러 작품에 참여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이들 분야에서도 눈에 띄게 활동하는 베테랑 아티스트는 서너 명에 그친다. 무대 디자인의 경우 연극이나 오페라 등 인접 장르에서 수혈이 많다 보니 중견층이 비교적 두터운 편이다. 해외에서 공부를 하거나 작업을 하다 온 해외파들에게 간간이 기회가 주어지는데 해외파들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해외파들은 국내 작업 환경이나 공연장 환경을 잘 이해하지 못해 시행착오를 많이 겪게 된다. 무대 세트에 쓰이는 나무만 하더라도 해외에서는 잘 말린 것을 사용해 뒤틀림이 적지만 국내 환경은 그렇지 못하다. 또한 각 극장들의 핸디캡을 숙지하지 못하다 보니 실제 무대화했을 때 무대 효과가 떨어지게 된다.
의상 디자인은 다른 분야에 비해 몇몇 사람들에게 의존하는 의존도가 낮고 비교적 세대 교체도 원활히 이루어지는 편이다. 2000년대 초반에는 안현주, 조문수 디자이너가 부각되었다가 최근에는 일본에서 패션디자이너로 활동하다 돌아온 한정임 디자이너와 해외파인 김영지 디자이너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무대 파트에서는 해외파의 갑작스러운 등장이 어려웠지만 의상의 경우는 작업의 특성상 비교적 해외파들이 잘 적응하고 두각을 보인다. 인접 장르나 해외에서 온 의상디자이너가 몇몇 작품에서 재능을 보이면서 비교적 쉽게 정상의 위치에 오르곤 한다. 그 대신 의상 파트는 중간층의 인력들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그만큼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길이 막혀 있다는 의미이다.
반면, 연출 영역 역시 확실한 몇 명의 연출자에게 작품이 몰리고 있는데 차기 연출자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해외 연출자를 초빙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라이선스 공연 비중이 많다 보니 해외 연출가들이 작품이나 음악극에 대한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프로듀서들이 선호한다. 그러나 언어나 정서의 벽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반면 안무 영역은 인접 장르에 뛰어난 안무가들이 있지만 이야기가 있는 무용이라는 뮤지컬의 특성 때문에 인접 장르의 안무가들이 잘 넘어오지 못하고 있다. 현재 안무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이란영, 강옥순은 1세대 뮤지컬 안무가 서병구의 제자였듯이 안무 영역 역시 도제식으로 노하우가 전수되고 있다.
이제 결론을 내릴 때가 되었다. 왜 새롭게 등장하는 스태프들이 드문가? 앞서 살펴본 대로 각 영역에 따라 사정이 다를 것이다. 종합해보자면 몇몇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작업이 몰리는 것은 그들이 여전히 최고이고, 그들만으로도 시장이 유지되기 때문일 것이다. 허탈한 대답이다. 그러나 이 대답은 뮤지컬계가 안고 있는 또 다른 문제를 제시한다. 시장의 성장에도 몇몇 뛰어난 스태프들에게만 중요 작업이 주어진다면 결국 그가 한 작품에 투자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은 점점 줄어들게 된다. 작업을 많이 하면서 기술도 향상되고 노하우도 늘어나겠지만 그만큼 매너리즘을 경계해야 한다. 서숙진 무대디자이너는 “작업을 많이 하다보니까 극장 환경이나 재료들의 특성도 알고 하다보니 새로운 시도보다는 안전한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프로듀서가 베테랑 디자이너와 함께 작업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안정된 퀄리티를 보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같이 과도한 작업이 몰린다면 국내 최고의 스태프들은 창의적인 아티스트라기보다는 숙련된 기술자로 전락할 위험이 높다. 김기영 음향디자이너도 비슷한 일화를 들려준다. “<천국의 눈물> 때 프랭크 와일드혼이 한국 음향감독들은 대단하다고 칭찬을 하고 갔다. 해외에선 보름 걸릴 것을 한국에선 하루 만에 해낸다고. 칭찬이지만 부끄러웠다.” 숙련된 능력을 한국에서는 열악한 환경을 커버하는 수단으로만 사용하고 있다. 그렇게 적은 시간 안에 그 누구보다도 빨리 작업을 끝내지만 결국 퀄리티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맘마미아> 같은 경우는 셋업만 한 달을 했다. 그러나 창작은 일주일도 주지 않는 게 현실이다.
몇몇 베테랑 스태프들이 무리해서 일정을 맞추고 있는 작업을 이젠 좀 나누어주고 그들에게도 각각의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것이 한국 뮤지컬계 전체를 볼 때 바람직한 일이다. 이에 더뮤지컬이 각계 스태프들의 의견을 모아 주목할 만한 차세대 또는 신예 스태프들을 소개한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5호 2011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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