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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기획-2] 나한수, 여신동, 양석호 - 이 스태프를 주목하라 [No.95]

글|배경희 | 사진제공|두산아트센터(<잠 못 드는 밤은 없다>) 2011-08-31 5,739

각계 스태프들의 의견을 모아 주목할 만한 차세대 또는 신예 스태프들을 소개한다.

 

“간단히 말해 다음 타자라고 보면 돼요.” 공연 조명의 스승 이우형은 나한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드라마를 이해하면서 부드럽게 빛을 살리는 디자이너’라는 설명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일지라도, 나한수는 경력 20년 차의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업계의 숨은 실력자다. 경력에 비해 그의 이름이 덜 알려진 건 그가 오랜 기간 극장에서 근무한데다(그는 두산아트센터에서 조명감독 겸 기술감독으로 8년간 근무했다), 유학 생활로 인한 공백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일리노이 주립대에서 어시스턴트십을 마치고 귀국해 프리랜서로 활동을 시작했으니 앞으로는 여기저기서 더 자주 보게 될 이름이라는 것. 

 


20년 전, 그러니까 조명디자이너라는 명칭조차 없던 시절에 그는 어쩌다 무대 조명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담임선생님의 무지로 이 길로 들어서게 됐죠.” 사연인즉 기자가 되길 희망했지만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할 성적이 안 되자 선생님이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는 것. “기자? 그거 방송국에서 일하는 거 아니냐? 그럼 연극영화과 가.” 그렇게 얼결(?)에 진학한 서울예대에서 진로를 찾는 시점에 학교 내 극장 스태프로 일하게 됐고, 그게 출발점이 됐다. “첫 학기에는 무대 디자인을 했는데 선배들이 넌 조명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래요. 조명도 좋죠. 제가 그랬어요. 그때는 다 좋았으니까.”
시작이야 엉뚱했는지는 몰라도, 파도에 휩쓸리듯 여기까지 온 건 아니다. “지금은 컴퓨터 버튼 하나로 다 되는 세상이지만 그때는 전부 아날로그 식이었어요. 내가 스위치를 올리면 불이 들어오고 관객이 눈을 뜨는 느낌, 거기서 쾌감을 느꼈죠.” 그는 학창 시절 첫 공연을 올리던 날의 기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고, 그건 방송국을 비롯한 다른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조명디자이너의 역할은 무엇일까? “시각적인 분위기를 설정해주는 서브의 역할이죠.” 따라서 그는 늘 두 가지 생각을 마음에 담아둔다. 조명은 혼자 존재할 수 없으며 공연은 공동 작업이라는 것을 인식할 것, 배우라는 오브제를 어떻게 비춰서 관객에게 지금 상황을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할 것. 그의 작업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디자인의 첫 단계는 감성 리서치다. “형용사 리서치를 많이 해요. ‘따뜻함’, ‘부드러움’, ‘아프지만 사랑스러운’ 이런 식으로 이미지를 찾는 거죠. 그렇게 찾은 이미지가 창문에 앉아 있는 여인이라고 한다면, 그 분위기에서 감성을 찾는 것이 빛을 얻어내는 방법 중의 하나예요.” 그는 자신은 타고난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도 의도적으로 빛을 연구하려고 애쓴다고 말한다. 이 말의 의미가 궁금하다면 길을 가다 ‘저 노을을 어떻게 빛으로 표현할 수 있지?’를 고민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된다. 나만의 노하우가 있느냐는 질문에 “디자인 자체는 백지 한 장 차이며, 준비 과정에 얼마나 참여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답하는 사람이니, 그와 함께 작업한 이들로부터 열성적이고 성실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건 당연하다. 그렇다면 나한수가 생각하는 좋은 작품은 무엇일까? “좋은 작품은, 시대를 반영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자칭 예술가란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역시 우리의 이야기를 어우를 수 있는 공연을 올리는 거겠죠. 그리고 이상의 작품을 실현하기 위해 스태프들이 초기 단계부터 함께 모여서 조금씩 발전시킬 수 있는 프로덕션이 꾸려진다면, 더 바랄 게 있을까요?”

 

 

 

 

 

 

 

 

 

 

 

 


“저한테는 리딩이 제일 중요해요.” 여신동은 배우인가? 아니, 이 사람의 현 직업은 무대디자이너. “무대미술과 미술의 다른 점은 무대에는 무생물과 생물이 공존한다는 거예요.” 그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재차 설명한다. “제가 세트라는 무생물을 만들어 놓으면, 그 안에 배우라는 생물이 들어와서 살아 움직이는 거잖아요.” 두 요소가 한 공간에 어우러져 호흡할 수 있도록 배우에게서 디자인의 구체적인 이미지를 얻는 것, 이것이 그의 작업 방식이다. 예를 들자면 이 배우의 성향은 이러하므로 이런 길을 만들어 줘야겠다는 식이다. 따라서 첫 대본 리딩 날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것은 물론이고, 작업 중간 틈틈이 연습실을 찾는다. 언젠가 한 공연 관계자에게 여신동은 미술감독까지 겸임이 가능한 인재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소설가 구보씨의 1일>에서 무대 디자인은 물론이고 세트 및 영상과 일러스트 등의 미술적 장치를 총괄하는 미술감독을 맡았던 경험이 있고(참고로 그는 학창 시절 무대조명을 복수 전공했으며, 실제 조명디자이너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 작품으로 동아연극상을 받았으니 재능이 남다른 건 분명하다. ‘안티 성향’을 가진 자신이 무대디자이너가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해도 말이다. 그렇다면 그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화가가 되려고 했죠, 화가. 하하.” 그의 말에 따르면 어린 시절 엄마 손에 이끌려 다양한 예체능 종목을 배우러 다녔는데 다른 건 다 땡땡이 치고 안 갔지만, 미술 학원은 빠지지 않고 꾸준히 다녔다는 거다. 고등학교 때까지 그림 그리는 것밖에 몰랐던 미술학도, 솔직히 말해 나르시시스트 예술가에 가까웠을 것 같은 그가 무엇에 마음이 뺏겨 사람들로 욱적북적거리는 이 동네에 오게 된 것인지 궁금해진다. “그림은 평면 작업이잖아요. 그런데 큰 공간에 내가 그린 그림을 많은 사람이 함께 본다는게 멋있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이제와 돌이켜 보면 자신은 현장감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것이 큰 이유다. 그가 지양하는 것은 가짜로 진짜를 모방하는 일. 따라서 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세트 같은 느낌을 주고 싶지 않으며,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더 가짜처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그 의미는 그의 작업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서울 달동네의 골목길을 옮겨 놓은 것 같은 <빨래>나 한가로운 말레이시아 리조트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던 <잠 못 드는 밤은 없다>와 같은 무대들 말이다.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소품들을 공수하기 위해 얼마나 발품을 들였을지 무대만 봐도 그 노고가 느껴질 정도다. 물론 현실 풍경을 재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말을 구태여 할 필요는 없을 거다. 잘 팔리는 디자이너가 아닌 좋은 작품을 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지만 이 분야에서 최고가 돼야겠다는 욕심은 없다. 대신 ‘어, 저런 걸 무대에 가져올 수 있나?’ 하는 새로운 오브제를 사용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대도 미술적인 디자인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 그것이 그의 꿈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 양석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가씨와 건달들>이라는 뮤지컬을 관람하게 되는데, 그건 인생의 전환점이 될 만한 사건이었다. 생애 첫 뮤지컬에 지나치게 감동을 받은 나머지 ‘뮤지컬 음향이 내 길이요’ 같은 대단한 결심을 했던 건 아니지만, 어쩐지 객석 뒤에 자리한 음향 믹서에 호기심이 갔고 음향 엔지니어링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으니 말이다. 원래 그가 준비했던 건 미대 입시. “그때는 국내에서 음향을 접할 방법이 많지 않았어요. 음향 엔지니어로서의 길을 찾기 위해 과감히 일본으로 출국하게 된 거죠.” 그가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오사카 스쿨 오브 뮤직에서 산업 음악을 공부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서 주변의 소개로 서울예술단에 들어갔다. 이건 진로의 방향을 바꾸는 두 번째 사건. 사실 그가 하고 싶었던 건 콘서트 엔지니어링 일이었지만(그는 유학 생활 동안 본 조비 콘서트의 음향 크루로 일했던 경험을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꼽았다.) 서울예술단에서 본격적으로 뮤지컬을 접하게 되면서 뮤지컬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 디자이너가 되기 전 일반적으로 거치는 과정인 오퍼레이터를 거쳐서 그가 처음으로 디자인을 맡은 작품은 <알타보이즈>. “첫 작업이라 단단히 각오를 하고 준비를 많이 해서 그런지 힘들진 않았어요. 재미있게 했습니다.” 그 후 <첫사랑>, <소리도둑>, <미녀는 괴로워> 등 다양한 창작 뮤지컬에 참여했다.

 


그에게는 실례일지 몰라도 잘하면 본전, 못하면 역적(?)이 되는 공연 관련 직종을 꼽으라면 상위권을 차지할 사람은 아무래도 음향 스태프가 아닐까. 좋고 나쁨의 차이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어도 아주 작은 실수는 모두가 단박에 알아차리니 말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음향 디자인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죠. 음향 디자인이 뭡니까? 라는 질문을 많이 받기도 해요.” 그렇다면 질문에 대한 양석호의 답은? “말 그대로 소리의 디자인입니다. 작품의 컨셉에 맞는 청각적인 색깔을 보여주는 것이 저의 역할이죠. 누구나 소리를 낼 수는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 악기와 배우의 소리를 담아서 드라마를 표현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입니다.” 그래도 도통 감이 오지 않는다면 <미스 사이공>의 헬리콥터 신을 떠올려보자. 헬리콥터 신은 영상으로 처리되지만 실제 헬리콥터가 한 바퀴를 돌아서 착륙하는 느낌을 받지 않나. 이처럼 드라마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소리를 찾는 것이 디자이너의 일이다. 장비를 선택하고, 스피커를 배치하고, 소리의 밸런스를 맞추는 일도 포함되는 것은 물론. 하지만 음향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건 대사의 전달이라고 말한다. “어떤 가수의 콘서트를 보러 갈 때는 가사를 듣기 위해서 가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뮤지컬은 드라마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관객들은 싫증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관객이 듣기에 편안한 소리, 양석호가 생각하는 좋은 음향이다. 따라서 그가 추구하는 최우선의 가치는 ‘자연스러움’이다.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소리가 아닌 배우가 이 앞에 있으면 정말 이 앞에서 말하는 느낌, 배우의 목소리 그대로 들려주는 것 말이다. “시작하는 친구들에게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다치지 않고 즐겁게 하자고요.” 여전히 현장에서 뛰는 것이 좋고, 땀을 흘리면서 일하는 셋업 과정이 가장 보람차다는 양석호의 이야기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5호 2011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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