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유령>이 낳은 신데렐라
2002년은 뮤지컬계에 있어 과거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한 해였다. 120억 원이 넘는 제작비를 들인 <오페라의 유령>의 성공 이후 <레 미제라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갬블러>, <풋루스>, <몽유도원도> 등 크고 작은 뮤지컬들이 연이어 무대에 올라 관객을 맞았다. 작품수가 많아지고 관객층이 넓어지면서 차세대 뮤지컬 스타의 출현에 대한 기대도 높아졌다. <오페라의 유령>의 크리스틴 역으로 캐스팅되어 뮤지컬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김소현은 2002년 한국 뮤지컬계에 나타난 대표적인 새 얼굴이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됐다’는 말처럼, 인형처럼 귀여운 외모와 4옥타브를 넘나드는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김소현은 단숨에 뮤지컬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배우라면 누구에게나 평생의 은인 같은 작품이 있기 마련이다. 김소현에게는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데뷔작 <오페라의 유령>이 그렇다. 성악전공자가 뮤지컬 무대에 서는 일이 드물었던 시절, <오페라의 유령>은 많은 성악도들을 뮤지컬 무대에 세웠다. “2002년이요? 어휴,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준 시간인데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나는 걸요.” 큰 눈망울을 반짝이며 환하게 웃는 김소현은 당시를 추억하는 동안 ‘운이 좋았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에 캐스팅되기 전까지 김소현은 한 편의 뮤지컬도 본 적이 없었다. 서울대 성악과 학?석사, 95년 슈베르트 콩쿨 입상, 96년 중앙 콩쿨 입상, 97년 KBS 신인 음악 콩쿨 1위, 97년 독일가곡 콩쿨 입상, 98년 한국 청소년 성악 콩쿨 1위…. 그녀의 프로필이 말해주듯 김소현은 그저 ‘클래식 음악과 오페라에 미쳐 있던’ 성악도일 뿐이었다. 뮤지컬 경험이 전무했던 그녀는 오히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하얀 도화지’라는 호평을 받으며 이혜경과 함께 크리스틴 역에 캐스팅되었다. “워낙 대작인데다 그때 한참 인터넷 붐이 일었던 때라 정말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것 같아요. 뮤지컬 배우들의 팬 사이트도 그때 많이 생기지 않았나요? 공연 전부터 (이)혜경 언니와 저를 놓고 인터넷 공방이 펼쳐졌어요. 언니가 주 5회, 제가 주 3번 공연했는데, 뮤지컬이 처음이다 보니 좋지 않은 평도 굉장히 많았어요. 상처도 많이 받고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나중에는 저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위해서 제 손으로 직접 팬 사이트도 만들고 그랬어요.”
<오페라의 유령>이 공연하는 동안 김소현은 대부분의 시간을 공연장에서 보냈다고 했다. 자신의 공연이 없는 날에는 객석에서, 혹은 무대 옆에서라도 공연을 관람했다. “그땐 다른 공연은 거의 안 봤던 것 같아요. 공연 후반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연습 일정과 겹치긴 했지만 7개월 내내 극장에 들러서 모니터를 했어요. 작품의 매력에 푹 빠져버려서 힘든 줄도 모르고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2002년 월드컵도 김소현에게는 남들과 다른 추억을 남겨주었다. “제 공연이 있는 날 한국전 경기가 많이 열렸거든요. 객석을 가득 채운 붉은 악마들 앞에서 노래를 했었어요. 당시 월드컵 때문에 대부분의 공연이 관객 수가 줄었다는데, <오페라의 유령>은 언제나 만원이었어요. 프리미엄까지 붙은 티켓도 많았던 것 같아요. 제 친구 중에도 웃돈 주고 티켓을 산 사람이 있는 걸요.”
김소현은 자신이 뮤지컬 배우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 <오페라의 유령>으로 시작된 뮤지컬 붐 덕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페라의 유령>에 바로 이어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출연하지 않았다면 다시 오페라 무대로 돌아갔을지도 모르겠어요. 마침 클래식 발성을 요하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오디션이 있어서 도전할 수 있었죠. 다른 뮤지컬이었다면 오디션을 볼 생각조차 못했을 거예요. 그게 제 운명이었나 봐요.”
재밌게도 김소현은 자신이 뮤지컬 무대에 계속 남기로 결심한 계기를 윤영석, 류정한과 함께 한 <오페라의 유령> 투어 콘서트로 꼽았다. 커튼콜 때마다 들려오는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소리가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관객이 없으면 연습실이나 마찬가지잖아요. 뮤지컬 팬들의 반응은 오페라 관객들과 많이 달랐어요. 무대 앞까지 달려 나와서 박수를 보내고 꽃도 주시고…. 정말 우리를 사랑해주고 공연을 즐기고 있다고 느껴졌어요.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거든요. 또 우리말로 노래를 하다보니 교감이 더 많이 됐던 것도 같아요.”
이후 김소현은 매년 두세 편의 뮤지컬에 주역으로 출연하며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마리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롯데, <그리스>의 샌디, <지킬 앤 하이드>의 엠마, <대장금>의 장금이 등 굵직한 작품의 여주인공으로 잇달아 무대에 올랐다. 누구나 알 만한 뮤지컬의 ‘착하고 예쁘고 공주 같은’ 역할 대부분이 그녀의 차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화려하게만 보이는 여주인공의 자리는 이전까지 연기를 배운 적 없는 김소현에게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앙상블,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땀 흘린 배우들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겠지만, 저 나름대로는 굉장히 힘든 시간들이었어요. 연기를 배운 적 없으니 현장에서 하나씩 배워나가는 수밖에요. 그때만 해도 연극과 출신 배우들이 대부분이어서 노래만 하던 저는 아웃사이더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녀 스스로 자신을 ‘뮤지컬 배우’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도 4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하지만 ‘연기가 한결같다’는 평가는 꼬리표처럼 그녀의 뒤를 따라다녔고, 김소현은 정형화된 이미지를 벗기 위해 연극 <미친 키스>, 드라마 <왕과 나> 등에 출연하면서 다양한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기대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한 그녀는 자신의 이미지를 인정하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갔고 마침내 <마이 페어 레이디>로 2008년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오는 9월 다시 크리스틴으로 무대에 설 예정이다.
무대 위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금씩 성장한 김소현이 웃으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더 이상 2002년의 크리스틴을 만나지 못하실 거예요. 제게 부족한 게 뭔지 알고 있고 이제는 그것을 채우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할 예정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