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여러 차례 국내 공연 소식이 들렸으나 번번이 무산되고 말았던 <레 미제라블>이 마침내 오는 11월 경기도 용인의 포은아트홀에서 개막한다. 1985년 웨스트엔드의 바비칸 센터에서 초연한 이래 27년째 런던에서 공연하는 최장기 뮤지컬인 <레 미제라블>은 혁명의 시대를 관통하는 대서사시와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음악, 드라마를 효과적으로 진행하는 무대 메커니즘으로 뮤지컬의 바이블로 여겨지는 작품이다.
국제저작권협회에 가입하기 이전 국내에서 몇 차례 해적판 공연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특히 1993년도에는 롯데월드예술극장과 대학로 문예회관(현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경쟁이라도 하듯 같은 시기에 이 작품이 올라가 인기를 끌었다. 지금 시각에서는 여러 모로 열악한 조건하에 올라간 작품이었지만 뮤지컬 팬 중에는 그때의 감동을 간직한 이들이 적지 않다. 2007년 <레 미제라블> 한국 공연을 위해 오디션까지 치렀으나 공연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국내 최초 정식 <레 미제라블> 공연에 출연할 배우들을 선발하기 위해 지난 7개월간 10차례에 걸쳐 오디션을 보았고, 엄격한 오디션을 통해 성인 배우 33명과 아역 배우 9명을 선발했다. 국내 제작에서는 이례적으로 모든 캐릭터가 원 캐스트로 공연한다. <레 미제라블> 한국 공연의 주인공들에게 그동안의 오디션 과정과 소감을 들어보았다. 본 인터뷰는 제작 발표회 인터뷰와 사전 지면 인터뷰를 합쳐 구성하였다.
장 발장 역 / 정성화
보이스 : 드라마틱 테너
캐릭터 : 죄수 번호 24601.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빵을 훔치다 잡힌다. 수감 생활 중 다섯 번의 탈옥으로 19년을 감옥에서 보내다 가석방된 후, 하룻밤 식사와 잠자리를 보낸 성당에서 은쟁반을 훔쳐 달아나다 잡히지만 신부님의 용서로 새 삶을 살게 된다.
‘앞으로 올라갈 일에 기뻐할 겨를도 없다’고 소감을 밝힌 정성화는 ‘뮤지컬 강국이 된 대한민국에서 만든 <레 미제라블>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5차까지 오디션을 거쳐 최종 장 발장으로 선발되었는데, 오디션 기간에 연습할 공간이 없어 동네 플로렌스 노래방에서 아내를 심사위원 삼아 연습했다고 한다. 진지한 캐릭터인 장 발장에 개그맨 출신이라는 것이 영향을 줄까 의식한 탓인지 ‘개그맨 출신의 뮤지컬 배우도 좋은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했다. 그는 런던에 가서 <레 미제라블>을 두 번 보았고 라민 카림루를 만나기도 했다. 런던에 머무는 동안 보컬 코치로 국내에도 몇 차례 내한했던 나이젤 릴리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자베르 역 / 문종원
보이스 : 바리톤 또는 베이스 바리톤
캐릭터 : 법을 엄격하게 신봉하는 경감.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신념이 강한 인물로, 범죄자는 언젠가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고 믿는다. 오랫동안 장 발장을 뒤쫓다 그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구한다. 자신의 신념이 무너지게 되자 자살한다.
자베르 역은 무엇보다 외적으로 냉혹한 이미지가 중요한데 그런 강한 이미지를 지닌 배우를 찾느라 애를 먹다가 문종원을 최종 선발했다. ‘배우 인생의 사춘기 시기였다. 어떤 배우로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레 미제라블> 오디션에 참가했다. 오디션을 보면서 다시 배우로 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자베르 역은 특히 끝까지 오디션을 봤는데 문종원은 총 7차례 오디션에 참가했다. 같은 노래를 100번씩 할 정도로 많은 연습을 했고 실제로 오디션 기간에 참가자 중 실력이 가장 많이 향상되었다. ‘벼랑 끝에 몰린 나를 구해준 작품이다. 꿈꿔왔던 작품인 만큼 후회 없는 무대를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판틴 역 / 조정은
보이스 : 메조 소프라노
캐릭터 : 공장에서 일하던 판틴은 동료들의 음해로 실직하고, 딸 코제트의 양육비를 벌기 위해 매춘부로 전락한다. 장 발장에게 딸을 부탁하고 죽음을 맞는다.
조정은은 한때 에포닌 역으로 물망에 오르던 배우였다. 그녀가 어느 갈라쇼에서 부른 ‘On My Own’이 팬들에게 회자되었고, 한동안 <레 미제라블>이 한다면 에포닌 역은 단연 조정은이라는 공감대가 퍼져 있었다. 실제로 2007년 오디션에서 조정은은 에포닌으로 오디션을 보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판틴으로 돌아왔다. ‘<레 미제라블>은 내게 뮤지컬 배우의 꿈을 심어준 작품이라 내가 할 수 있을까, 망설임이 있었다. 오디션에 참가할 때도 안 될 수 있다는 생각이 90퍼센트였다. 그래서 오히려 편하게 오디션을 치를 수 있었다. 내 의지랑 상관없이 내게 온 역할이어서 특별한 인연으로 느껴진다’는 캐스팅 소감을 밝혔다.
떼나르디에 역 / 임춘길
보이스 : 바리톤 또는 테너
캐릭터 : 작은 여관을 운영하면서 손님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악덕 주인. 코제트를 돌보는 대가로 양육비를 받으면서도 코제트를 하녀처럼 부린다. 혁명 때에는 혼란을 틈타 도둑질을 일삼는다.
<미스 사이공>의 엔지니어를 맡은 배우가 종종 떼나르디에 역도 맡는다고 한다. 비열한 캐릭터나 음흉하면서도 코믹한 느낌이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 속 유일한 공식 커플이라고 소개한 임춘길은 <레 미제라블>은 어린 시절부터 CD를 들으며 선망했던 뮤지컬인데 10주년 기념 DVD를 보면서 커튼콜 때 각국의 장 발장이 국기를 들고 등장하는 장면에서 왜 우리 장 발장은 없을까 의아해 했다고 한다. ‘30주년 땐 정성화 씨가 태극기 들고 갈 수 있지 않을까’라며 기대감을 밝혔다. 작품에서 떼나르디에는 코믹 릴리프로 드라마의 긴장감을 풀어간다. 제작 발표회장에서도 앞으로의 각오를 묻자 ‘1년 정도 지속하는 공연이니만큼 체력이 중요하다. 공연 중 음주는 주 1회만 가볍게 하자’며 너스레를 떨었다.
떼나르디에 부인 역 / 박준면
보이스 : 콘트랄토
캐릭터 : 떼나르디에의 와이프. 떼나르디에와 콤비로 파렴치한 사기를 저지르며 남편보다도 더 탐욕적이다.
떼나르디에 부인 역은 3년 만에 무대에 서는 박준면이 선택되었다. 최근에는 TV 브라운관이나 영화에서 개성 있는 역할로 활약하고 있지만 박준면의 뿌리는 뮤지컬이다. <렌트>와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박준면의 활약을 기억하는 뮤지컬 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무대에 너무 서고 싶었고, 오디션장에서 나를 시험하고 싶었다’며 이번 오디션 참가 이유를 밝혔다. 떼나르디에 부인의 노래들은 음정이 너무 복잡하고 가사가 외우기 어려워서 오디션 때 고생을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준비했고, 오디션 때는 캐릭터와 흡사하게 보이기 위해 점을 찍고 갈 정도로 준비를 철저히 했다. ‘오디션 보면서 OST를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들었는데, 작품의 힘, 음악의 힘만으로 1년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앙졸라 역 / 김우형
보이스 : 바리톤 또는 테너
캐릭터 : 학생 혁명군을 이끄는 리더. 정부군과 대치 중에 장렬히 전사한다.
캐스팅 소감을 묻자 ‘정말 많이 불렀다’며 오디션 동안의 고생을 떠올렸다. 특히 김우형은 <미스 사이공> 지방 공연 중에 오디션에 참여하게 돼서 먼 거리를 오가며 어려운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내가 본 오디션 중에 가장 어려웠고 이렇게 신중하게 배역을 찾은 프로덕션은 처음이었다’고 감회를 밝혔다. 김우형은 2007년 오디션에도 참여해서 앙졸라 역에 최종까지 오르기도 했다. 앙졸라 역할이 자신의 나이나 이미지에 잘 맞는 것 같다며 ‘유일하게 들어오지 않았던 대작에 참여하게 된 것이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마리우스 역 / 조상웅
보이스 : 바리톤 또는 테너
캐릭터 : 앙졸라의 친구이며 학생 혁명군. 코제트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사랑과 혁명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친구들을 버릴 수 없어 혁명에 참여한다. 바리케이드에서 장 발장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다.
조상웅은 <라이온 킹>의 심바로 1년 동안 한국에서 공연했던 시키 배우이다. 일본에서 <코러스 라인>, <캣츠>, <스프링 어웨이크닝>에 참여했다. 2007년 오디션에도 마리우스 역으로 콜백을 받았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참여하지 못했다고 한다. 테너 음색이면서 사춘기의 풋풋함을 지닌 배우를 찾았다는 제작진은 조상웅을 보고 마리우스 역에 낙점했다고 한다. ‘한국 뮤지컬 시장을 잘 알지 못해서 반신반의했다. 꿈같은 기회가 주어져서 무척 기쁘다.’
에포닌 역 / 박지연
보이스 : 메조 소프라노
캐릭터 : 떼나르디에의 딸. 마리우스를 남몰래 사랑한다. 그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바리케이드로 가다가 죽음을 맞는다.
박지연은 ‘‘On My Own’을 부를 수 있는 것만으로 영광이다. 오디션이 힘들었지만 많이 배울 수 있는 기간이었다’고 캐스팅 소감을 밝혔다. 박지연에게 에포닌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역할이다. ‘On My Own’은 대학 입시 지정곡이었고, 대학 1~2학년 때 <레 미제라블> 학교 공연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래서 오디션 공고를 보는 순간 마음이 끌렸다. ‘1차 오디션 때 셀린 디온의 ‘I Surrender’를 한국어로 불렀는데 선곡이 행운이었던 것 같다. 오디션에서 에포닌 노래를 부르는데 진짜 에포닌이 된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4차에 걸친 오디션에 참가해서 에포닌에 캐스팅된 박지연은 캐스팅 발표 소식을 듣고도 실감이 안 났다고 한다.
코제트 역 / 이지수
보이스 : 소프라노
캐릭터 : 판틴의 딸. 어려서 떼나르디에 부부 아래서 자라며 고생을 하다 장 발장의 양녀로 좋은 환경 속에서 자란다. 마리우스와 사랑에 빠진다.
코제트 역에는 2011년 KBS <안녕하세요>에서 뮤지컬에 미친 누나로 출연했던 이지수가 캐스팅되어 꿈을 이뤘다. ‘부모님이 뮤지컬에 반대를 많이 하셨다. 대학 붙으면 마음대로 하라고 하셔서 고등학교 땐 공부에 전념했다. 수능 마치고 우연히 <레 미제라블> 오디션 공고를 봐서 참여하게 됐다.’ 이지수는 1차 오디션부터 10차 마지막 오디션까지 7개월간 내내 오디션을 봤다. 레슨을 받아가며 오디션에 참가해 정말 연습을 많이 했다고 한다. ‘오디션은 워크숍 형태로 연출가의 디렉션을 주어서 역할을 표현할 수 있게 도움을 줬는데 굉장히 공부가 많이 되었다.’ 첫 작품에 이렇게 큰 작품에 참여하게 된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그녀는 ‘무조건 감사할 뿐이다’며 기쁨을 표현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8호 2012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