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돌기노프의 작은 뮤지컬이 한국에서 거둔 성공에 힘입어 현해탄을 건너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까지 최재웅과 김무열은 누구 못지 않게 큰 공을 세웠다. 그 두 사람이 7월 19일부터 29일까지 열흘간 도쿄에 머물면서 일본 관객 앞에 섰다. 신 국립극장의 예술감독을 지낸 쿠리야마 타미야가 연출한 호리 프로덕션판 <쓰릴 미>는 총 27회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고, 그중 5회의 공연을 한국 배우들이 맡은 것이다. 무덥고 습하기로 악명 높은 7월 말의 도쿄에서 일본 연출의 작품에 참여한 최재웅이 그 과정에서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정리해 보내왔다. 극장과 숙소와 술집만 오갔고, 도쿄와 서울이 너무 똑같아서 ‘트래블’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말할 만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고 잘라 말하는 그가 가능한 한 충실하게 되살린 2012년 7월, 도쿄의 <쓰릴 미>에 대한 기억이다. (편집자 주)
한국에서의 연습
올 초, 일본에서의 <쓰릴 미> 공연이 기획되고 팀이 꾸려지면서 뭔가 새로운 버전의 공연이 될 것 같다는 기대감으로 여름을 기다렸다. 나와 무열이, 둘 다 다른 공연과 일이 많았기 때문에 일정을 맞추기가 힘들었지만 서로 시간이 맞을 때는 만나서 대본 연습을 했다. 그동안 여러 번 공연을 했고 또 워낙 둘 다 공부를 많이 한 작품이라 대사 암기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로 대사 리듬을 잡는 연습을 중점적으로 했다. 출국하기 전, 일본에서 조연출과 스태프가 와서 함께 연습하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분들이 오기 전까지 대사 호흡을 완벽하게 맞춰놓아야 했다. 그리고 일본 스태프가 한국에 머무는 4일가량의 연습 기간에 일본 연출님의 해석에 따른 움직임과 일본 공연 조명에 맞는 동선을 그야말로 초스피드로 외워야 했다.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것과 일본 공연의 동선이나 연출적인 부분들이 너무나 달랐지만 일단은 무조건 외워야 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서의 연습을 마치고 일본으로 출국하게 되었다.
일본에서의 연습
공항에 도착하니 일본의 여름은 습하고 더운 날씨였다. 나와 무열이, 피아니스트 성민이, 그리고 뮤지컬해븐 식구들은 일본 땅을 밟자마자 <쓰릴 미> 공연이 진행되고 있는 극장으로 향했다. 낮 공연 관람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공연장은 하네다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텐노즈아이루에 있는 은하극장이었다. 그날 우리가 보게 된 <쓰릴 미>는 한국에서 함께 인터뷰를 했던 마리오와 니로의 공연이었다. 한 번 본 사이지만 다시 보니 반가웠다. 극을 시작하기 전에 만나서 간단히 인사를 하고 공연을 관람했다.
극장의 분위기는 상당히 고풍스러운 느낌이었는데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볼 때의 거리가 꽤나 가깝게 느껴졌다. 400~500석의 중극장 규모이고 3층까지 객석이 있었는데 2층이나 3층에서도 관람하기에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극장의 규모를 굳이 한국과 비교하자면 연강홀이나 동숭아트센터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어쨌든 공연을 보고 난 후의 느낌은…, 나나 무열이나 성민이나 모두 같았다. ‘아, 어떡하지! 큰일 났다!’ 왜냐하면 대사의 리듬이나 피아노의 리듬, 그리고 움직임과 신의 해석 등이 우리가 그동안 공연해왔던 것들과 너무 달랐다. 어쨌든 이런저런 걱정을 하면서 공연 관람을 마치자마자 긴시초라는 곳에 있는 연습실로 곧바로 향했다.
연습실에서 일본 <쓰릴 미>를 연출한 쿠리야마 연출님을 드디어 만났다. 쿠리야마 연출님은 일본에서도 아주아주아주 유명하신 분이라고 한다. 첫인상은… 무서웠다. 심형래 아저씨와 닮은 외모에 흰머리가 인상 깊었다. 하지만 그 무서움이 사라지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연습을 지켜보면서 상당히 부드럽고 배우들을 존중해주시는 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일본의 <쓰릴 미>
연습 기간에 가장 힘든 작업은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였다. 애초에 걱정했던 작품의 해석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연습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우리의 해석과 연출님의 해석이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다. 단지 그 표현 방법이 달랐을 뿐, 신의 목적과 인물의 목적은 동일했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공연과 일본 공연의 가장 큰 차이점은 호흡의 빠르기에 있었다. 우리 공연이 직행열차라면 일본의 <쓰릴 미>는 정거장마다 서는 열차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한국 공연은, 특히 나와 무열이의 경우는 대체적으로 빠른 템포로 마지막 곡까지 이어지는데, 일본 공연은 각각의 신이 독립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하나의 신 안에서도 긴 포즈와 호흡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다 보니 러닝 타임도 일본 공연의 경우 한국의 <쓰릴 미>에 비해 약 10분 정도 더 길게 나온다. 쿠리야마 연출님은 그 긴 호흡과 여유를 강조하셨다.
쿠리야마 연출님과 연습을 하면서 느리고 긴 호흡의 연기와 표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실제로 공연을 하면서 그가 원했던 효과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 나와 무열이가 한국에서 최근에 한 작품이 <광화문 연가>였기 때문에 일본판 <쓰릴 미>의 느리고 긴 호흡에 적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광화문 연가> 역시 재치와 센스로 전개되는 공연이 아니라 느린 호흡의 진득함으로 이어가는 공연이기 때문에 쿠리야마 연출님이 강조하셨던 포즈와 신의 호흡 등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습하면서 가장 힘이 들었던 것은 표현 방법이었다. 해석은 같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매우 달랐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음, 예를 들면… 나는 ‘파이널 쓰릴 미’ 신, 그리고 무열이는 ‘어프레이드’ 신 같은 경우인데 이게 어떻게 다르냐 하면, 음… 그냥… 다 달랐다…. 참 다른데, 정말 다른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없다. 어쨌든 단기간의 연습 동안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 공연의 특징과 장점 등을 최대한 살리고 쿠리야마 연출님이 생각하시는 중요한 포인트와 연출적인 부분 등은 연출님을 믿고 따르는 방법을 선택해 아주아주 열심히 연습했다.
공연은 정말 재미있게 했다. 다행히 관객 분들도 객석을 꽉 채워주셨고 놀라운 집중력으로 공연을 관람해 주셨다. 초반에는 숨쉬기 힘들 정도로 조용한 객석에 바로 적응이 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큰 무리 없이 공연을 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공연을 재미있게 했다고 자평하는 것은, 이번 공연이 뭔가 새로운 공연이 되었고 객석과 무대 사이를 채운 공기가 처음 느껴보는 색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도 재미있고 즐겁게 공연을 할 수 있었다.
첫 공연이 끝난 후에는 모든 일본 배우들과 원작자인 돌기노프 형아까지 와서 축하를 해주었다. <쓰릴 미>를 통해 처음으로 3개국의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와인을 마시는 자리까지 마련됐다. 모두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에 자리는 아주 간단하게 마감되었다. 그렇게 남은 4회 공연까지 열심히 했고 일본에서의 공연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한국에서도 많은 분들이 응원하러 일본까지 와주셔서 큰 힘이 되었다. 그분들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나중에 혹시 기회가 된다면 도쿄 버전을 한국에서 <쓰릴 미>를 사랑해주시는 여러 관객 분들께도 선보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8호 2012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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