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윅> 10주년, <지킬 앤 하이드> 10주년, 그리고 <베르테르> 15주년. 우리나라 뮤지컬 역사에서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작품들이 의미 있는 해를 맞을 때마다, <더뮤지컬>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역대 출연 배우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받아 특집 페이지를 꾸몄습니다. 어쩌다 보니 매번 공교롭게 이 축하 기사를 진행하게 됐는데, 답변을 보내준 많은 배우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조승우입니다. 우선 세 작품에 다 참여했다는 점, 그리고 기쁜 날을 축하하자는 세 번의 요청에 기꺼이 함께해줬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죠. 그리고 무엇보다 조승우가 보내는 글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자기의 진짜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읽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마음이 꾹꾹 담긴 답변을 읽다 보면 추억에 잠긴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진다고 할까요. 제가 받은 인상을 독자 여러분과 나누기 위해 그가 쓴 세 편의 추억담을 한 번에 모아봤습니다. 그의 일상적인 어투를 전하기 위해 교정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점, 미리 말씀드립니다.
<헤드윅> 10주년
2014년 5월 13일~10월 19일/ 백암아트홀/ 헤드윅 역
Q. 기억에 남는 일화
2005년 초연 때... 엄청난 대사 분량 때문에... 순간 대사를 까먹고 이츠학(백민정 누나)한테 가서 다음 대사 뭐냐고 물어봤음... 그래서 누나가 가르쳐 줬음...
2013년 공연 때 ‘오리진 오브 러브’를 부르는 도중 음향 사고가 있었는데... 마이크 없이 생목으로 불렀음. 사람들은 그때가 가장 짜릿했다는데... 난... 등에 식은땀이 흘렀음. 하지만 군대 음향병 출신이었던 난... 곧 음향 시스템이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애드립을 쳤음. 재미있었음.
Q. 내가 생각하는 베스트 장면
첫 장면과 끝 장면이 가장 좋음.
자신이 겪어온 삶의 아픔을 화려한 치장으로 가리며 들어왔지만... 결국 그 길로 나갈 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모든 것을 털어낸 상태로 나가게 되는...
Q. 10주년 축하 메시지
어느덧 10주년이네요. 처음엔 다들 낯설어 했던 <헤드윅>이었지만 이젠 좀 친숙해졌지요? 10년 동안 헤드윅으로 무대에 많이 섰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세 시즌에 걸쳐 많은 걸 느끼고 함께 성장했답니다. 그리고 이번 네 번째 시즌에 합류하게 되었는데요... <헤드윅> 속에서 많은 보물 같은 감정을 찾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마 저에게 헤드윅은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습니다. 10년 동안 쇼노트, 앵그리인치 밴드, 헤뒥들... 이츠학들... 그리고 관객 여러분들 고생 많으셨고 많이 사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함께 축하하고 축하받읍시다요~~
<지킬 앤 하이드> 10주년
2014년 11월 21일~2015년 4월 5일/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지킬 & 하이드 역
Q. ‘지킬’ 하면 생각나는 것은?
2004~5년 오디뮤지컬에서 보낸 <지킬 앤 하이드> 자료 중 안소니 왈로우의 2 디스크 OST를 듣고... “저는 못해요. 능력 밖의 일입니다”라고 딱 잘라 거절했었던 일... 그렇게 세 번을 거절했던 일...
연습에 들어가 데이빗 스완 연출님과 극을 만들어가던 중...
풀리지 않거나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 있을 때마다 과감하고 무모하게 연습 중단을 요청하고 통역과 함께 두 시간씩 대화를 나눴던 기억.. 데이빗 연출님이 나를 트러블 메이커라고 놀렸던 기억.
공연장을 터뜨려버릴 것만 같았던 정한이 형의 파워풀한 ‘얼라이브’
그렇게 초연 첫 공연이 올라가고 정한이 형의 공연이 끝났을 때 일제히 일어서 감동의 박수를 쳐주던 관객들..
그리곤...
그 공연을 보면서 다음날 있을 나의 공연 생각에.. 도망가고 싶었던 마음...
나의 첫 공연을 마치고 일어서서 박수 쳐주는 관객들을 보았을 때 터져 나왔던 눈물...
일본 도쿄 공연에서 3일 만에 온 성대 결절.
그 목 상태로 오사카 공연까지 마치고 돌아왔을 때의 미안함과 허탈함.
‘더 웨이 백’을 부르다가 무대 위에서 기절해서 크루들에게 실려 나왔던 기억.
1막 마지막 ‘얼라이브2’를 연기하다가 지팡이로 주교를 내리치는 장면에서 허리 추간판 탈출증 증세가 도져 진통제와 복대 두 개에 의지해 겨우 공연을 마치고 병원으로 실려 갔던 일...
얼마 전 런던에 가서 조용히 템즈 강변을 거닐면서
많을 생각을 하게했던 소설 속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Q. ‘지킬’이 나에게 준 선물
두려움과 자신감. 확신. 패기. 물질적 부와 명예. 뮤지컬 배우로서의 위치. 그리고 오만함과 자만.
무너짐. 절망. 다시 한 번 두려움. 극복. 그리고 자신감. 확신. 노력... 열정.
Q. 10주년을 맞은 <지킬 앤 하이드>에게 한마디
10주년을 축하하며 앞으로 있을 공연에 최선을 다해 기대에 보답할 수 있는 최선의 공연을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데이빗 그리고 컴퍼니, 스탭 분들, 배우 분들, 관객 분들 고맙습니다.
<베르테르> 15주년
2015년 11월 10일~2016년 1월 10일/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베르테르 역
Q. <베르테르>(2002)를 공연하던 시절에 관한 기억
그 당시 저는..
실제로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했고
1년 반 동안 가슴이 타들어가는
짝사랑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저의
애타고 죽을 것만 같았던 마음을
무대 위에 고스란히 펼쳐 놓았던 것 같습니다.
Q. 가장 좋아하는 장면
‘하룻밤이 천년’ 장면입니다.
실제로도 정말 설레는 넘버입니다.
Q. 잊지 못할 기억
추상미 누나와 공연할 때였는데..
몸을 돌려 격하게 키스하는 장면에서
서로 이가 부딪쳐
둘 다 입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후로 몇 회 동안은...
격한 듯 격하지 않은
은근한 입맞춤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 아는 이야기가 됐지만..
그때 이석준 알베르트님과 추상미 롯데님이 비밀 연애를 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처음으로 알았던 사람이 저였던 것 같습니다. 매우 놀리기도 하면서 축하해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그 둘은 <베르테르>의 ‘달빛산책’의 장면처럼 서로를 바라보며 세종문화회관 계단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걸어 올라가고 있었죠.
<베르테르>가 만들어낸 최고의 커플입니다.
Q. ‘베르테르’ 하면 생각나는 얼굴
극단 갖가지의 심상태 대표님입니다.
그 분은 유난히
남자의 깊고 거대한 사랑 이야기에 집착하시는데..
눈빛을 보고 있으면 베르테르였다가
어느새 카르멘의 돈 호세가 되어 있는 게 인상에 많이 남았고 그 분의 순수한 마음을 좋아합니다.
물론 떠오르는 사람은 무지 많죠. 고선웅 작가님(당시 연출), 구소영 누나(음악감독), 신소영 누나(당시 음악 조감독)
정말로 무서웠던... 김법래 형.
머슴! 카인즈의 최고봉 최민철 형 등등요..
Q. <베르테르>를 공연하던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때는 너무 아팠어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네요..
Q. <베르테르>가 내게 소중한 이유
<베르테르>에서 사람을 많이 얻었고..
제가 몰랐던 사랑의 느낌이랄까...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모든 공연이 끝나고 공연장 근처 호프집에서
쫑파티를 하던 중.. 배우 스탭들이 테이블에 올라가서 재밌게 노래하고 춤추는데...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줄줄 흘러서 울었는데... 그때 구소영 누나가 저를 안아주면서 “왜 우는 거야?”라고 물어봐서.. 그때 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게... 너무 행복해서....”
Q. <베르테르>가 15주년을 맞아 기쁜 점
제가 알기론 그 어느 나라에서도『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뮤지컬로 만든 적이 없다 했습니다. 오페라로는 만들어졌지만..
세계에서 우리가 첫 번째로 뮤지컬 <베르테르>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저는 13년 전에 출연하고 나서 그 후로 재공연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15년이라는 세월 동안 묵묵히 버텨줘서 너무 고마운 작품입니다.
이렇게 15주년 공연을 할 수 있게 모든 것을 마련해준
갖가지 심상태 대표님과 구소영 누나, 조광화 샘.
그리고 마니아 성향이 있는 이 작품이..
상업적으로 잘되든 안 되든
조건 없이
믿고 발전시키고 제작해주고 지원해준
씨제이 제작사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Q. 15주년 팀에게 건네는 축하인사
하루에 12시간씩 주 6일을 연습하고 있는
우리 팀이여~~!!
날은 추워졌어도 구슬땀은 여전하고
그 맑은 눈동자들에 맺히는 눈물방울이 얼마나
순수해 보이고 예뻐 보이는지 그대들은 알까?
때론 너무들 많이 울어 눈물이 마를까 걱정되지만..
우리는 정말로 의미 있고 소중한 작품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합시다.
무대에 올랐을 때
진심을 담아 무대의 넘치는 꽃들처럼...
관객들에게 향기를 느끼게 하고
그 향기 간직할 수 있게 하는 공연으로 만들어 갑시다.
뮤지컬 <베르테르> 15주년 축하합니다.
저도 축하 인사 받아야죠?
대단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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