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홀로 보낼 외로운 영혼을 위한
특별 공연
(이하 <크리스마스 싫어>)는 역시
크리스마스 계획이 없었던 네 명의 창작자들이
의기투합해 준비한 선물이다.
그들의 이름은 박천휴, 이나오, 이지혜, 최종윤.
지난 12월 23~24일 프로젝트박스 시야에서
공연된 <크리스마스 싫어>가 더욱 재미있는 건,
술자리에서 나온 아이디어로 시작된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즐기는 기분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그 과정을 소개한다.
앞으로도 이런 신선한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많아지길 기대하며.
# 술자리에서 시작된 이야기
11월 어느 저녁, 여느 때처럼 모여서 먹고 마시길 즐기고 있었던 세 사람, 박천휴와 이나오, 이지혜. 셋 중 누군가 한사람이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만날 이렇게 술이나 마실 게 아니라, 같이 뭔가 해보는 게 어때?” 언젠가 재미있는 일을 벌여보자는 얘기는 창작자로서 죽이 잘 맞는 세 사람이 곧잘 하던 말이었다. 마침 함께 크리스마스 파티를 계획 중이었던 세 사람은 급기야 크리스마스 공연을 만들어보자는 것으로 이야기를 발전시켰다. 공연하는 사람인 그들에겐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파티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는 게 이지혜 작곡가의 설명. ‘홀로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할 (바로 자신들과 같은) 외로운 영혼을 위한 공연을 만들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꽤 진지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런데 어디서? 공연 성사의 기본 조건인 공간이 확보되면 창작자들끼리 뭔가를 시도해 볼 수 있겠지만, 극장의 지원을 받지 않고 공연을 올린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 제작사 없이 그 엄청난 대관료를 어찌 감당하랴. ‘여기라면 어쩌면’ 하는 생각에 문을 두드린 곳이 창작자 지원 사업에 관심이 많은 프로젝트박스 시야다. 그리고 다행히 프로젝트박스 시야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술자리에서 마구 던진 아이디어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프로젝트 박스 시야와 진행 과정이 어땠는지에 대해서 이지혜 작곡가는 이렇게 표현했다. “어느 날 우리가 시야라는 작은 성의 문을 두드리며 ‘크리스마스 파티를 해도 될까요?’ 말했더니, 성주님께서는 인자하게 마당을 열어주시며 이것도 써라 저것도 써라 하셨습니다.”
# 세 가지 색깔의 옴니버스 뮤지컬
‘크리스마스 선물’을 공연 컨셉으로 잡았으니, 그다음은 어떤 형식의 공연을 할지 정할 차례. 가장 먼저 나왔던 이야기는 캐럴을 써서 콘서트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없이 콘서트만 하기엔 심심하지 않겠냐는 의견으로 한 편의 극을 쓰기로 했다. 공동으로 한 작품을 쓰기엔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 옴니버스 뮤지컬을 만드는 것으로 가닥이 잡혀갔다. 이나오, 이지혜 작곡가는 혼자 작업을, 박천휴 작가는 평소 이들과 가까운 또 다른 멤버 최종윤 작곡가와 팀을 이뤄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작품 방향에 대해 제일 먼저 나온 아이디어는 “<론리 액츄얼리>를 만들자”. 이미 눈치 챘겠지만, <론리 액츄얼리>는 크리스마스에 연인끼리 보고 싶은 영화로 꼽히는 <러브 액츄얼리>를 패러디한 제목이다.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이라 불리는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을 불행하게 만들자는게 그들의 생각이었지만, 커플들의 불행한 모습에 낄낄대며 웃고 난 뒤 오히려 더 불행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방향을 바꿨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싫어!” 라고 귀엽게 외치는, 크리스마스가 싫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는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 다 같이 시놉시스 미팅을 한 후 각자 작업을 진행했지만, 각각의 개성이 워낙 다르다 보니, 어느 하나 분위기가 겹치지 않는 세 개의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코믹’ 이지혜의 박장대소 <동빙고 Dreamin’>, ‘멜로’ 박천휴의 코끝 찡한 <더 슈워츠 쇼>, ‘훈훈’ 이나오의 따뜻한 <키다리 아저씨>가 이번 <크리스마스 싫어>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지금까지 어두운 작품을 주로 해왔던 이나오의 경우는 좀 새로운 모습이긴 하지만, 그녀가 이런 훈훈한 작품도 쓸 수 있다는 걸 이 기회에 알아주시길.
# 맞춤형으로 만들어진 무대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이런 공연을 만드는 게 가능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이다. <크리스마스 싫어>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창작자들이 자신만의 감성을 보여줄 수 있는 작업에 목말랐기에 자발적 의욕이 넘쳤으며, 이들끼리 온전히 하나의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뮤지컬계 안팎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이었기에 추진 가능했던 일이다. 예를 들어 뮤지컬계 시스템에 대해 잘 몰랐다면, 공연을 지원해 줄 곳으로 단번에 프로젝트박스 시야를 떠올릴 수 있었을까? 또 어떤 스태프와 배우들이 이 프로젝트에 잘 맞을지 알고 섭외에 나섰기 때문에 빠르게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었다. 단기간에 공연을 만들 수 있는 효율적인 인력 배치로 공연을 올릴 수 있었던 것, 이게 이번 공연의 진짜 특징일 것이다.
이들이 직접 섭외한 연출가와 안무가까지 합류하면서 리딩 형식에서 좀 더 발전한 공연으로 스케일이 커졌다. 그리고 각자의 집에서 공수한 소품으로 제법 그럴듯한 무대를 갖추게 됐다(‘크리스마스 팀’의 단체 채팅방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빨간 전화기 있는 사람?” 같은 ‘소품 구함’ 메시지가 울렸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이들이 이 과정 자체를 무척 즐겼다는 것이다. 따라서 관객들도 객석에서 음주가 가능한 홈 파티 컨셉인 <크리스마스 싫어>를 그저 먹고 마시며 즐기고 갔으면 좋겠다는 게 그들의 바람. 좀 더 바라는 게 있다면 이번 공연으로 창작자들의 아이디어로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좋은 보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4호 2014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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