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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ULTURE IN MUSICAL] 스타가 된 범죄자들 [No.127]

글 |이민선 2014-04-09 4,012

스타가 된 범죄자들

20대 젊은 커플이 전국을 돌며 은행 강도짓을 하고 있다.
혀를 차는 정도로는 모자란, 말세라며 통탄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커플 강도에게 환호를 넘어
응원을 보내고 있다. 털러 간 은행에서 볼모로 잡은
인질에게 사인 요청까지 받는 스타가 된 범죄자,
<보니 앤 클라이드> 속 주인공의 이야기다.
악명 높은 범죄자가 스타 또는 영웅으로 대접받다니,
대체 어찌된 일인가?

 

 


안티 히어로에 대한 지지

 

영화와 뮤지컬로 제작된 <보니 앤 클라이드>의 주인공들은 지지리도 가난했다. 때는 1930년대, 미국은 경제 대공황을 겪고 있다. 빈곤한 하층민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가
난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꿈꾸는 바를 이루기는커녕 사람다운 대접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때. 대중들은 평범한 젊은이들이 범죄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사회적 약자인 그들에게 연민과 공감을 느끼게 된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다 우연히 범죄에 발을 들여놓게 된, 시대의 희생양이라는 의미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무지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힘들 때 사회가 정해놓은 규칙을 뒤엎고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암울한 사회의 서민들이 대리 만족할 수 있는 영웅의 탄생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따라서 안티 히어로가 주인공인 작품에서 정부는 무능력하게 그려지기가 일쑤고, 약자들은 신뢰하기 힘든 공권력에 대항하는 인물이 계속 맹위를 떨쳐주기를 바라게 된다. 일반적인 인식에서 죄수와 교도관 중 정의로운 편에 선 이는 교도관이지만, 클라이드를 면회 온 보니의 허벅지를 더듬거나 담배 뇌물을 받고 죄수들의 부정행위를 눈감아 주는 교도관을 보고 있노라면, 관객들은 자연스레 교도관이 아닌 죄수인 클라이드의 편에 서게 된다.
정부 또는 경찰들에 반하는 범죄자에게 열광하는 현상은 실제 역사 속에서도 볼 수 있다. ‘스타 범죄자’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존 딜린저는 미국 중서부에서 열한 차례의 은행 강도를 저지르고 두 번 탈옥했지만 비난보다는 추앙을 받은 갱스터다. 그는 당시 경제 공황기의 원인으로 지적받은 은행만을 노려 범행을 저질렀고, 이런 이유로 국민들의 지지를 얻었다. 게다가 그는 소위 ‘얼짱’이었다. 신문들은 미남 강도의 대담한 범죄 행각에 대해 자극적으로 보도해댔고, 대중들은 영화 속 주인공 같은 멋있는 범인에 빠져들었다. 그의 실화를 스크린으로 옮긴 <퍼블릭 에너미>에서 딜린저를 연기한 배우가 조니 뎁이니, 범죄자의 인기를 가늠할 만하다.
‘얼짱 강도’니 ‘얼짱 살인범’ 등으로 불리며 범죄자가 옹호를 받는 일은 최근 한국에도 있었다. ‘예쁘면 착하다’더니, 미남 미녀 범죄자를 향한 비난은 반대의 경우보다 강도가 약했고, 심지어 ‘예쁜 사람이 그럴 리 없다’ 식의 동정론이 일기도 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이런 범죄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은 이들이 만든 온라인 팬 카페는 수만여 명의 회원을 모으기도 했다.

 

 

 

 

돈 되는 범죄 콘텐츠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 속 연쇄살인범 역시 준수한 외모를 자랑한다. 그는 공소시효가 지난 자신의 범행 내용을 한 권의 책에 담아 출판한다. 대중들은 경악하면서도 자극적인 소재의 책에 호기심을 갖게 되고, 범죄자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명성을 얻는다. 게다가 그는 수려한 외모와 언변으로 대중들을 사로잡는데, 이에 숟가락 얹는 것이 언론이다. 연일 대중들의 구미를 당기는 돈 되는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범죄자를 스타의 위치에 올려놓은 것. 언론이 범죄자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는 동안 오히려 대중들은 그가 살인마임을 망각하게 된다.
<시카고> 속 두 살인범 벨마 켈리와 록시 하트가 세간의 스타가 되는 데도 언론이 한몫했다. 이 작품의 배경은 1920년대 미국 시카고, 사회·경제적으로 공포에 가까운 혼란 속에서 마피아가 주름잡던 때였다. 범죄가 성행하니 보통의 사람들에게도 폭력 및 살인은 일상이 되었을 터다. 벨마는 불륜을 저지른 남편과 여동생을, 록시는 정부를 우발적으로 죽이고 쿡 카운티 교도소에 수감된다. 감옥에서 그들의 범행은 단죄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로 둔갑한다. 대중들은 섹스와 살인 등 자극적인 소재에 관심을 갖고, 그들이 어떻게 왜 살인했는지 궁금해하기 때문이다. 죄수와 간수 사이의 모종의 거래, 재판에서 승소하려는 변호사의 사실 조작이 더해져, 벨마와 록시는 하룻밤 사이에 범죄자에서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변신한다. 먹잇감을 찾는 언론이 달려들어 거짓 사연을 확대 재생산하니, 미모의 죄인이 스타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말도 안 되는 일 같지만, 거짓을 진실로 퍼뜨리는 데 언론만 한 무기가 없고 비열한 언론이 무지한 대중을 휘두른다는 사실은 이젠 통설이 되지 않았나.

 

 

100년 전과 다름없이 지금도, 옳고 그름을 떠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콘텐츠는 불티나게 소비된다. 영화 <블링 링>은 패리스 힐튼과 린제이 로한, 올랜도 블룸 등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의 집에 몰래 들어가 그들의 옷장에서 현금과 명품들을 훔친 10대들의 실화를 담고 있다. 그들은 범행 사실을 숨기고 부끄러워하기보다 훔친 옷과 가방을 당당히 걸치고 다녔으며, 심지어 훔친 물건을 들고 사진을 찍어 자신의 SNS에 올리기도 했다. 더욱 황당한 사실은 이들의 페이스북에 친구 신청을 하는 이들이 수백 명에 달했다는 것. 그들의 범행 사실을 공유하며 소비하기 원하는 이들에 의해, 10대 절도범들은 유명 인사가 되었다. 철없는 이들은 자신의 범행에 대해 “범죄자도 스타가 되는 세상이죠. 보니와 클라이드처럼”이라는 말을 남겼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왕왕 존재했고 작품을 위한 흥미로운 소재가 되는 스타 범죄자의 이야기는 범죄를 미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 쉽다. 하지만 범죄자에 열광하는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은 암울하고 정의롭지 못한 시대적 상황이다. 공권력의 권위가 떨어지고 경제적인 불평등이 심화돼 부당함과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을 때, 대중들은 사회적 강자에게 저항하는 범죄자들에게 마음이 이끌릴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더불어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은 현대 사회를 반영한 많은 작품들의 과제다. 주인공들은 왜 범죄자가 되었고 대중들은 왜 그들에게 열광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쓰디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7호 2014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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