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면 한 장면 창작자와 배우들의 숨은 노력이 담겨 있는 창작뮤지컬!
연출가들이 말하는 창작뮤지컬 장면의 숨은 이야기를 모아보았다.
이재준 연출의 <번지 점프를 하다>
‘어떻게 알아’
대근과 기석이 인우가 태희를 만날 수 있게 돕는 부분인데, 재연 때 노래가 바뀌다보니 장면 풀기가 쉽지 않았어요. 앙상블의 등장을 두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떻게 해도 좀 애매한 거예요. 연습 과정에서도 수정을 많이 했죠. 앙상블들을 인호 주변으로 모이게 하는 방법을 찾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그들을 모으려면, 부탁을 해야 하고, 부탁을 하려면 뭔가 줘야 하잖아요. 그들에게 식권을 나눠주면서 인호를 도와달라고 하면 좋을 것 같더라고요. 여기에 임기홍 배우가 시대상을 살려 운동권 학생 느낌으로 학우들을 모으자는 의견을 덧붙이면서 지금의 장면이 완성됐죠.
장유정 연출의 <그날들>
‘나의 노래’
처음에는 지금처럼 다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이 아니었어요. 앙상블 배우들은 그냥 샤워실 뒤에 서 있는 설정이었죠. 그런데 옷을 안 입고 서 있는 설정이다 보니 배우들이 뒤에서 괜히 몸을 가리는 거예요. 정말 웃기더라고요. 또 배우들이 뒤에 계속 서 있으니 심심하잖아요. 음악이 나오니깐 이때다 싶어 몸을 실룩실룩 움직이더라고요. 안무 선생님이 따로 시키지도 않았거든요. 그런 모습이 재밌었어요. 그래서 다 샤워실 밖으로 나오라고 했죠. 이 장면을 새롭게 만들어 보자! 원래는 배우들에게 상체 탈의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는데, (웃음) 이 장면 때문에 배우들이 상체 탈의도 하게 됐죠.
‘먼지가 되어’
‘먼지가 되어’는 원래 정학이 노래였어요. 연습 때도 계속 정학이가 불렀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대극장 초연은 트라이아웃할 수 있는 기회가 드물잖아요. 그렇다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할 순 없었어요. 그래서 연습 4주차부터 연습실에 관객들을 불러 모았고, 대학원 연구처럼 설문지를 돌렸어요. 질문 중 하나가 무영이가 그녀를 위해 죽는 것이 이해가 되느냐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해가 된다는 답변이 약 60퍼센트밖에 안 되더라고요. 이건 극을 고쳐야 한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극을 여기 저기 편집을 해보고, 노래를 바꿔야 할 것 같아 정학 역의 배우들을 따로 불러 의견을 구했죠. 정학 역이 모두 선배 배우들인데, 자기 역할의 솔로곡을 후배에게 양보한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게다가 공연을 2주 남겨 놓은 상황이었고. 그런데 너무나 흔쾌히 찬성하시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결국 ‘먼지가 되어’가 무영의 노래가 되었어요. 그리고 나서 다시 데이터 조사를 했더니 무영의 선택이 이해된다는 답변이 80퍼센트가 넘게 나오더라고요. 이렇듯 나름에 과학적인 방법으로 탄생하게 된 장면이죠.
추민주 연출의 <빨래>
‘자 마시고 죽자’
2006년 상명아트홀 공연 때였어요. 당시 배우들끼리 즉흥 연기를 한 적이 있어요. 동료가 회사에서 부당하게 해고를 당했을 때 벌어진 일에 대해서요. 누군가 부당하게 해고를 당한다면, 아무리 직장에서 아옹다옹 싸우는 사이더라도 위로를 하게 되잖아요. 어디야, 우리 술 한 잔 하자! 이런 순간을 즉흥적으로 연기하면서, 모두가 공감을 했어요. 맞아, 이런 게 우리 사는 모습이지. 그러고 나서 일 년 후, 정말 이 장면을 무대에 올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추가한 장면이라 기억에 많이 남아요.
‘슬플 땐 빨래를 해’
공연을 만들면서 팀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우리가 빨래를 통해 가장 보여주고 싶은 정서는 무엇일까? 바로 시원함이었어요. 시원하고 즐겁고 해방되는 기분! 어떠한 감정의 해소 같은 거죠. 그러다가 당시 제작감독이었던 김희원 배우가 아이디어를 냈어요. 빨래가 춤을 추는 건 어떨까? 그래, 맞아! 빨랫줄도 춤을 추고, 빨래를 하면 비눗방울도 생기니깐 비눗방울도 춤을 추게 하자. 춤 출 수 있는 건 다 춰보자! 그래서 탄생하게 된 장면이에요.
최성신 연출의 <공동경비구역 JSA>
‘그때 나는 죽었다’
거제도 포로 수용소 장면에 베르사미의 아버지가 등장해요. 원래는 앙상블 중 한 명에게 그 역을 맡길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베르사미 역을 맡은 양준모 배우가 꼭 자기가 아버지를 연기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야 베르사미가 아버지를 이해하는 과정이 잘 보이지 않겠느냐고.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아 바로 반영했죠. 또 기억에 남는 건, 이 사건이 지금 세대는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대본을 처음 봤을 때 배우들의 연기를 끌어올리는 게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정열 배우가 열혈 운동권 출신이거든요. 아픈 역사 속에 담긴 정서를 뽑아내는 힘이 굉장했죠. 단순히 연습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정서였어요. 맞아, 이게 우리 역사지! 많은 걸 설명하지 않았는데, 젊은 배우들도 금세 그 정서를 이해하더라고요. 우리 핏속에 공유하고 있는 정서가 있다는 걸 느낀 장면이었죠.
‘유치한 잘난 척 놀이’
남자들만 모여 있다 보니, 술도 많이 마시고 군대 이야기도 많이 하면서 재밌게 작품을 만들었어요. 수혁이가 북쪽 처소로 넘어가 경필과 우진을 만날 때, 배우들에게 주문한 포인트가 있었어요. 진짜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의 반가운 눈빛, 따뜻한 정이 느껴져야 한다! 이런 건 단순히 연습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무슨 방법이 있겠냐고 배우들에게 물었죠. 다들 술 먹는 방법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며칠동안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놀았죠. 신기하게도 그러고 난 뒤 연습을 하니 정말 제가 생각한 느낌이 확 나더라고요. 어렵다고 생각한 지점이 의외로 쉽게 풀렸죠.
노우성 연출의 <셜록홈즈: 앤더슨가의 비밀>
‘시작 됐어’
<셜록홈즈>의 특징은 창작 과정에서 구상한 것을 99퍼센트 그대로 무대에 올린다는 거예요. 연습 전에 모든 장면이 명확하게 나와 있었죠. 그러다 보니 연습 과정만큼 작곡가와의 작업도 기억에 남아요. 작품이 미스터리 추리물이라 음악이 사건을 담아내는 역할을 해야 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여느 뮤지컬처럼 주인공의 정서를 진솔하게 담고 있는 발라드곡이 없어요. 그래도 에릭이란 인물은 그의 선택에 대해 스스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필요할 것 같았어요. 이 장면을 통해, 작곡가에게 처음으로 정서적인 면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죠. 그런데 기존 작업과는 정반대되는 스타일의 음악이라 그런지, 한동안 결과물이 안 나왔어요. 그러던 찰나 작곡가가 개인적인 아픔을 겪게 됐고, 그 다음날 새벽 5시에 곡을 받게 되었죠. 절절하더라고요. 스태프와 배우들 모두가 바로 공감할 수 있었죠. 창작자들의 실제 감정을 담겼을 때 훌륭한 작품이 탄생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던 장면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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