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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디셈버> 향수와 대극장의 벽을 넘지 못하다 [No.124]

글 |박병성 사진제공 |호호호비치 2014-01-28 3,618

2013년 가장 큰 관심을 받은 창작뮤지컬 <디셈버, 끝나지 않은 노래>(이하 <디셈버>)가 베일을 벗었다. 영원한 가객 김광석의 노래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김광석의 미공개 곡 수록, 영화계 신생 강자 뉴의 뮤지컬 도전, 김준수 캐스팅, 공연과 영화를 넘나드는 재주꾼 장진의 작 및 연출 등 <디셈버>는 숱한 이슈를 만들며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공개된 작품은 기대를 충족시키진 못했다. <디셈버>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관문을 넘어야 했다. 하나는 대극장 그것도 국내에서 가장 큰 공연장 중 하나인 세종문화회관 공연이라는 것과, 또 하나는 진한 추억이 담긴 김광석의 노래를 뮤지컬 넘버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래와 드라마의 조율
김광석의 노래를 뮤지컬 넘버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매력이면서 한편으로는 족쇄가 된다. 노래 자체의 매력이 크고 관객들도 잘 알고 있지만 그래서 그 노래가 지닌 향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를 엮어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맘마미아!>가 아바의 노래들로 전혀 새로운 한 편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한 이후, 대부분의 주크박스 뮤지컬들은 <맘마미아!>의 전략을 취했다가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그래서 다음으로 찾은 방법이 노래를 부른 아티스트(혹은 아티스트를 연상케 하는 주인공)를 등장시켜 노래와의 거리감을 최대한 줄이려 했던 <저지보이스>, <광화문연가>과 같은 형식이다.


<디셈버>는 지욱이 음악을 작곡하던 중 운동권 학생 이연을 만난다는 설정에서 <광화문연가>의 흔적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김광석과 무관하게 별개의 드라마를 만든 <맘마미아!> 방식을 따랐다. 1막에서는 시와 음악을 즐기는 지욱이 운동권 학생인 이연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매우 단순한 이야기를 1시간 반 가량 한다. 그 긴 시간을 메우는 것은 김광석의 노래이다. 지욱이 묵는 하숙집의 아침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과 ‘일어나’를 부르고, 아들을 군에 보낸 하숙집 부부는 ‘어느 60대 노부부의 노래’를 부르며, 학교 축제의 노래 자랑 장면에서는 ‘나의 노래’를 부르는 식이다. 서로 다른 가치관을 지닌 지욱과 이연이 사랑을 이루어가는 메인 플롯과는 거리가 있는 장면들이 1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장면들은 드라마를 전개시키기 위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기 위해 중심 플롯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전개하는 인상을 준다. 그러니 드라마가 산만해질 수밖에 없다.

 

 

이연이 전경들로부터 도주 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작곡하고 있던 지욱을 훔쳐보면서 둘의 사랑은 시작되고, 학교에서 재회한 후에도 이 노래를 계기로 둘의 관계가 깊어진다. 이 곡은 둘의 아픈 이별을 예감하게 해 뮤지컬 넘버로 충분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거기까지이다. 두 사람이 사랑이 맺어지는 과정이 로맨틱하지만 너무 쉽게 별다른 갈등 없이 사고로 인한 이별을 맞게 된다. 새로운 갈등을 만들 힌트를 김광석의 노래 중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나마 둘의 관계에 갈등을 일으킬 만한 인물이 군대에서 사고를 당하고 전역한 이연의 운동권 선배 훈이지만, 셋이 만나는 첫 장면에서 이연의 사고로 사랑을 종말을 맞는다. 또한 군대 장면에서 이등병 훈은 지나치게 코믹 캐릭터로 빠져버려 연적의 가능성을 좁게 했다. 이연과 훈의 관계를 암시하기 위해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는 사이에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로 이연이 종종 위문편지를 보냈고 그로 인해 둘이 남다른 감정을 품었음을 암시하지만, 상황과 노래가 어울리지 못해 생뚱맞은 장면이 되어 버렸다. 지욱을 한결같이 좋아했던 하숙생 여일과, 여일의 일편단심 성태가 또 다른 사랑의 축을 형성하지만, 서브플롯의 역할보다는 코믹 릴리프로 그치고 만다. 결국 1막 한 시간 반 동안 메인 플롯은 평면적으로 제시될 뿐 입체적인 양상을 보여주지 못한다.

 

2막은 20년 후 현재이다. 뮤지컬 연출가가 된 지욱이 지하철에서 이연을 많이 닮은 뮤지컬 배우 지망생 화이를 만난다. 2막에서는 여전히 이연의 그림자를 놓지 못하는 지욱이 화이를 통해 그녀에게서 벗어나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한다. 이연을 닮았기 때문이 아닌 화이 자체로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없고, 화이 역시 자신은 이연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단지 지욱이 자신을 닮은 첫사랑을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는 이유로 20살의 차이가 나는 그에게 끌리게 된다. <번지점프를 하다>처럼 전생의 문제라면 설득력이 있지만 지욱도 화이도 이연이 아닌 화이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해야 한다고 하면서 끌리는 이유는 이연 때문이다. 그래서 이연의 사진이 무너져 내리는 상징적인 영상으로 의도를 보여주었지만 어디까지나 의도로 그치고 말았다.

 


넓은 무대에 대한 부담감
창작자에게 세종문화회관은 확실히 부담스런 공간이다. 대극장 공연 경험이 많지 않은 장진에게 세종문화회관은 도전이었을 것이다. <디셈버>는 주로 실사 영상을 배경으로 걸어두고 세트의 변화로 공간을 창출하는 방식을 취한다. 하숙집 주변이었을 때는 달동네의 실사 영상을 사용하지만, 이연의 죽음 장면에서는 핏물이 번지는 듯한 심리적인 영상을, 납골당 장면에서는 이연의 사진을 클로즈업 해서 무너지는 상징적인 영상을 사용한다. 무대 세트 역시 하숙집 장면에서는 사실적이면서도 어딘지 우화적인 세트가, 운동권 학생들의 아지트는 짓다만 가건물 같은 심리적인 세트가, 현대에는 비교적 사실적인 세트가 사용된다. 전체적으로는 사실적인 무대를 중심으로 장면에 따라 변형을 취한 것이다. 해당 장면을 떼어놓고 보면 더 효과적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그것이 무대 컨셉의 부재로 느껴졌다. 무대를 통해 작품의 컨셉을 이해하게 되는 때가 많은데, 이 작품에서는 그것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많은 장면에서 넓은 세종문화회간 무대를 그저 빈 무대로 남겨두고 배우들로 채우고 있어 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단순히 느낌뿐만 아니라 대극장 장면을 만들기 위한 떼씬들은 대부분 메인 플롯과는 관계가 없는 장면이라 확실한 볼거리를 주지 못하면 긴장을 느슨하게 할 뿐이다. 1막에서 하숙집 사람들의 아침 장면, 대학 축제 장면은 대극장 특유의 비주얼적 재미를 주지 못하고 그저 김광석의 노래를 한 곡 끼어넣는 데 만족해야 했다. 전체 무대 공간을 채울 비주얼 컨셉이 약하다 보니 배우들을 등장시켜 빈 공간을 채워야만 했다. 비워두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의미 없는 사람들이 부산하게 지나다녀 집중력을 떨어뜨렸다. 특히 대극장의 부담을 코믹한 장면으로 극복하려는 시도가 종종 보였는데 대부분 역효과만 일으켰다. 방송국에서 지구 온난화로 날씨가 따뜻해지는 한 시골 마을과 연결하는 장면은 tvN의 프로그램의 한 대목을 보는 것 같았다. 그 자체로는 웃긴 내용인지 모르겠지만, 불필요하게 삽입된 코믹 장면은 유머의 수준이나 코믹 정도와 상관없이 싸늘한 냉소를 흐르게 만든다.

 

대극장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핵심 캐릭터가 네 명밖에 등장하지 않는 작품이 이렇게 산만한 전개를 할 필요도 없고 비주얼적으로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도 적지 않았을까. <디셈버>는 새로운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선택했지만 평면적인 드라마와 노래를 부르기 위한 극 전개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드라마와 녹아드는 장면에서 장진 특유의 위트 있는 대사들이 빛나고, 배우들의 뛰어난 가창력은 김광석을 추억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부실한 드라마 속에서도 이연과 화이의 색다른 매력을 확실하게 구분해서 보여주었던 신예 김예원은 <디셈버>의 수확이다. 극장 규모가 작았더라면 무리수도 적어지고, 작품의 장점도 더 잘 드러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4호 2014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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