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 매체는 전 세계에서 동시간에 동일한 감동을 전할 수 있다. 반면 라이브를 특징으로 삼는 공연 예술은 오직 상연 장소에서만 작품의 아우라를 접할 수 있다. 바로 그 점이 공연 예술의 특장점이기도 하지만,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없는 한계가 되기도 한다. 이런 공연 예술의 물리적 한계를 디지털 기술로 극복하는 프로젝트가 영국 내셔널 시어터의 ‘National Theatre Live(이하 NT Live)’다. 공연 실황을 전 세계에 생중계하는 이 프로젝트는 도입 초기에 연극의 극적 요소를 카메라로 잘 포착해 전할 수 있을지에 회의적이었지만, 24개국 80만 명의 관객이 시청하게 되면서 이런 우려를 말끔히 씻었다. 특히 내셔널 시어터의 대표작 <워 호스(War Horse)>는 NT Live를 통해 DVD 판매 수익만으로 제작비를 모두 충당하고 남을 정도로 큰 성과를 얻은 바 있다.
바로 그 화제작이 NT Live를 통해 한국에서 최초로 관객과 만난다. <워 호스>는 내셔널 시어터가 연출가 톰 모리스, 남아프리카 극단 핸드스프링 퍼펫 컴퍼니와 함께 2007년에 초연한 후 지금까지 웨스트엔드 상설 공연장에서 연일 매진을 이루는 작품이다. 30년간 전 세계 독자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으면서 영국을 대표하는 문학 작품으로 인정받은 동명 원작은 웨스트엔드뿐만 아니라 브로드웨이에서도 상연돼 2011년 토니상 최우수 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또 이 연극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동명 영화로도 유명하다. 연극을 보고 큰 감동을 받은 스필버그 감독이 직접 연출을 맡아 지난 2011년 스크린에 올린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소년 앨버트와 그의 애마인 조이의 이야기를 담은 이 연극은 소년과의 우정과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말의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앨버트는 아버지가 사온 망아지에 ‘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정성껏 기른다. 늠름한 경주마로 자란 조이는 앨버트와 함께 들판을 뛰논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전쟁으로 조이가 기병대에 팔려가면서 둘은 이별을 맞이한다. 전쟁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조이는 마음속으로 앨버트를 그리워하면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앨버트는 조이를 찾아 다시 데려오기 위해 군대에 지원하고, 포화 속에서 온갖 고생을 겪던 조이와 감동적인 재회를 한다.
토니상 5개 부문을 휩쓴 드라마의 탄탄한 구성이나 가슴 따뜻한 이야기도 훌륭하지만, 더 인상적인 것은 실제 크기로 만들어진 생동감 넘치는 말 인형이다. 이 인형은 흔히 보이는 천으로 재봉된 부드러운 질감의 형태가 아니다. 골격을 이루는 뼈대와 약간의 가죽으로 피부를 표현한 형상은 극사실적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거친 형상의 인형이 마치 살아있는 말처럼 걷고, 뛰며, 섬세한 표정 연기로 사람과의 교감까지 보여준다. 세 명의 인형술사는 각각 머리와 앞발, 뒷발을 조종하며 한 마리의 말을 완벽하게 연기한다. 재채기나 떨림, 말의 소심한 성격까지 섬세하게 표현하는 조종술은 탄성을 자아낸다.
이런 아날로그적인 노력이야말로 무대 앞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이지만, NT Live는 그 명성에 걸맞게 이런 미세한 부분까지 세련된 영상으로 담아냈다. 2월 27일 웨스트엔드 공연으로 전 세계에 중계되는 <워 호스>는 한국에서는 앙코르 상연 형식으로 며칠 늦게 관객과 만난다. 국립극장은 극장에 설치될 대형 스크린에 HD 프로젝터를 사용해 <워 호스>의 생생한 장면과 감동을 전달할 계획이다.
3월 15일~16일 /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 02) 2280-4114~6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5호 2014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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