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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프랑스, 뮤지컬 바람이 분다 [No.77]

글 |이동섭(파리통신원) 2010-03-09 6,184

뮤지컬의 아버지라 부를 만한 오페레타의 나라 프랑스이지만, 프랑스인들에게 뮤지컬은 앵글로 색슨족의 문화로 간주해 지금까지 인기 없는 장르였다. <레 미제라블>, <스타마니아>, <에밀리 졸리>와 프랑스 창작 작품들이 아주 가끔 제작되고, <브로드웨이 42번가>, <그리스>, <헤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같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가끔 무대에 오르는 정도였다. 물론, 이런 작품들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프랑스에서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붐을 견인하지는 못했다. 그런 프랑스에서 2009년 하반기부터 갑자기 매우 많은 뮤지컬들이 무대에 올랐다. 과연, 파리에도 서울처럼 뮤지컬의 붐이 일어난 것일까?

 

 


요즘 프랑스에서 뮤지컬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아무리 공연 성수기인 연말연시라 하더라도 이렇게 많은 뮤지컬이 동시 다발적으로 무대에 오른 적은 없었다.
한 번, 이와 비슷했던 때가 있었다. 바로 <노트르담 드 파리>를 시작으로 <로미오와 줄리엣>, <십계>, <어린왕자> 등 대형 뮤지컬이 연이어 발표됐던 2000~2003년이 그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작품 수도 많지만, 전과 확연히 비교되는 특징들이 있어 주목할 만하다. 2000년 초반에는 대형 프랑스 뮤지컬이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그뿐만 아니라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공연과 프랑스어 공연, 유명 프랑스 작품의 앙코르 공연 등 다양한 작품들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메뉴가 다양하다. 그렇다면, 지금 파리에 불고 있는 뮤지컬 바람을 프랑스 뮤지컬의 새로운 부흥기라고 보아야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아우르는 프랑스 뮤지컬의 흐름과 역사에 대한 짧은 이야기로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파리, 뮤지컬의 도시
1999년 8월 말까지 초연한 <노트르담 드 파리>가 메가 히트를 기록하자, 2000년부터 프랑스에는 <십계>, <로미오와 줄리엣>, <돈 주앙>, <어린 왕자>, <글라디아퇴르>, <알리바바>, <신디>, <로쉬포트의 아가씨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십여 편의 대형 뮤지컬이 줄지어 무대에 올랐다.

 

프랑스에 처음으로 불어온 뮤지컬의 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1978년에 발표해 프랑스를 대표하는 뮤지컬로 기록된 <스타마니아>나 <레 미제라블>도 있지만, <노트르담 드 파리>처럼 다른 작품의 제작을 이끌어 붐을 만들어낼 만큼 영향력이 강하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이번에 다시 부는 뮤지컬 바람도 어떤 한 작품의 영향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고 본다면 그 계기는 2006년에 발표해 메가 히트를 기록한 <태양왕>이라 할 수 있다. <십계>의 제작자인 도브 아티아와 알베르 코엔이 태양왕 루이 14세를 주인공으로 다룬 이 작품은 정치, 권력, 음모, 술수 등을 소재로 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사랑을 소재로 한 이야기이다. 작품은 전형적인 뮤지컬 음악이 아닌 클래식, 샹송, 테크노, 댄스, 힙합, 엘렉트로니카 등을 폭넓게 사용함으로써 기존의 가족 단위 관객층에 젊은이들까지 아우를 수 있었다. <태양왕>을 통해 뮤지컬을 처음 접한 젊은 프랑스인들이 또 다른 작품을 찾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영향으로 <클레오파트르>, <조로>, <신데렐라> 등의 대형 뮤지컬들이 연이어 소개될 수 있었다.


이런 작품들의 인기에 고무되었는지, 2005년미국 뮤지컬 역사를 빛낸 <카바레>, <라이온 킹>, <헤어>, <그리스>, <페임> 등의 프랑스어 리바이벌 공연도 지속적으로 프랑스 무대에 오르고 있다. 여기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한 기존 메가 히트작들의 앙코르 공연이 더해졌다. 비록 매 작품 당 평균 15회 공연으로 상연 횟수는 많지 않지만 매년 유명 브로드웨이 작품을 오리지널이나 해외투어 버전으로 무대에 올리는 파리 시립 공연장인 ‘샤틀레 극장’이 뮤지컬을 중심으로 오페라·오페레타·사르스엘라 등 다양한 음악극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아직까지 뮤지컬 전용극장이 없는 파리에서 샤를레 극장은 그 영향력 면에서 꽤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에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사운드 오브 뮤직>, <소야곡>, <레 미제라블> 등이 무대에 올랐다)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이룬 부흥기 
2000년대 초반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로 한국의 뮤지컬 붐이 일었다면, 같은 시기 프랑스에는 창작 뮤지컬인 <노트르담 드 파리>가 그 붐을 견인했고, 몇 년간의 침체기를 거쳐 2000년대 말에 이르러 <태양왕>을 계기로 다시 한 번 뮤지컬 붐이 일고 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때 프랑스의 뮤지컬 붐을 단순한 거품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프랑스 뮤지컬을 이끌고 있는 제작자인 도브 아티아와 알베르 코엔의 역할이다.

그들의 성공은 우연히 얻어진 것이 아니라, <십계>에서 <태양왕>에 이르기까지 그들 나름의 뮤지컬 흥행 법칙을 찾은 결과였다. 그들은 인기 샹송 작곡가인 파스칼 오비스포와 함께 만든 <십계>로 빅히트를 거두었지만, 그 방식을 고스란히 적용한 <글라디아퇴르>로 추락했다. 이런 뼈아픈 실패라는 비싼 수업료를 치른 후 <태양왕>으로 재기, <모차르트>로 랑데부 홈런을 쳤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그들은 어린이 뮤지컬 <신데렐라>를 발표했고, 지속적으로 대형 뮤지컬을 선보일 계획을 밝혔다(더 자세한 내용은 <더뮤지컬> 2009년 12월호를 참조).


여기에 그들이 발굴해서 키운 안무가 겸 연출가인 카멜 우알리(<십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안무, <태양왕>의 안무·연출)는 지난해 <클레오파트르-이집트의 마지막 여왕>으로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이처럼 뮤지컬 전문 인력이 없던 프랑스에서 스타 작곡가는 아니더라도 뮤지컬에 집중하는 고급 인력들이 지속적으로 영입되고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이 프랑스 뮤지컬의 밝은 앞날을 기대하게 만든다. 또한 <카바레>와 <라이온 킹>의 프랑스어 버전을 성공시킨 스테이지 엔터테이먼트사는 대형 주크박스 뮤지컬 <조로>까지 제작하면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뮤지컬, 꿈을 꾸기 위한 예술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과 달리 프랑스 뮤지컬들은 대부분 대형 극장에서 장기 상연된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창작뮤지컬은 브로드웨이 작품들보다 더 큰 상업성을 갖고 있다. 아무래도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프랑스인들을 공략하기에 프랑스 뮤지컬이 더욱 적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좋아하는 소재(역사 속 인물, 고전 소설을 각색)와 프랑스 감성이 강한 노래를 아무래도 영미권 뮤지컬을 통해서는 충분히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상업성을 보장하는 또 다른 요인은 프랑스 지방 관객들이다. 파리의 경우 작품 초연부터 100회 공연 정도에 이르면 관객 점유율이 자연스럽게 떨어지는데, 이때 제작자들은 프랑스 지방도시와 프랑스어권 국가(벨기에, 스위스 등)의 투어 공연을 통해 수입을 극대화시킨다.

 

현재 파리에서 앙코르 공연 중인 <클레오파트르>의 경우 파리와 지방공연을 포함한 대부분의 공연이 90퍼센트 이상 매진되어 총 68만 명 이상의 관객이 관람할 것으로 예상된다. 9백만 유로(153억 원 정도)의 제작비를 투입한 작품의 지방공연 관객 점유율이 높지 않았다면 제작자들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문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뮤지컬을 앵글로 색슨족의 문화라고 거리를 두던 프랑스에서 왜  뮤지컬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일까?

 

 


“정말로, 사람들은 꿈을 꾸기를 원하고 있어요.” 카멜 우알리는 프랑스 일간지 르 파리지엔 Le Parisien 과의 인터뷰에서 뮤지컬이 사랑받고 있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뮤지컬만큼 모든 사람이 가볍고 편하게 볼 수 있는 공연은 없다는 뜻이다. 경제 위기의 여파를 체감하고 있는 프랑스이다 보니, 오페라나 오페레타보다는 가벼운 뮤지컬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또한 <모차르트>, <클레오파트르>, <로미오와 줄리엣>, <조로> 등 대형 뮤지컬들이 비슷한 시기에 상연되면서 자연스럽게 경쟁하다보니, 언론에서도 자주 거론되고 프랑스 관객과의 거리도 좁혀지고 있다. 그리고 이 거리는 앞으로 점점 더 좁혀질 듯하다. 카멜 우알리는 <클레오파트르>의 성공을 뒤로 한 채 2011년 9월 초연을 목표로 한 명의 무용수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뮤지컬 <드라큘라>의 대본을 쓰고 있다, 그리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앙코르 공연을 앞둔 작곡가 제라르 프레스귀르빅은 인간성을 주제로 한 <9999, 두 번째 행운>을 준비 중이다. 이 작품은 3D입체 효과를 사용한 최초의 뮤지컬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77호 2010년 2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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