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공연예술의 중심인 뉴욕. 이곳은 빠르게 움직이는 공연시장 못지않게 예술교육 분야도 활기를 띠고 있다. 뉴욕대학교, 컬럼비아대학교, 줄리아드 음악대학교, 맨해튼 음악대학교 등 작은 맨해튼 시내 안에는 좋은 대학들이 적지 않게 포진되어 있다. 이들 중 명성만큼이나 좋은 시어터 교육 프로그램들을 제공하고 있는 뉴욕대학교를 방문해, 그들의 뮤지컬 수업을 참관해 보았다.
시장의 성장과 함께 늘어나는 뮤지컬 교육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대학에는 뮤지컬에 대한 관심의 증대와 더불어 뮤지컬학과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기존의 연극영화과나 성악과 등에서 뮤지컬 전공을 분화시키거나, 아예 독자적으로 뮤지컬학과를 운영하는 학교도 늘고 있다. 정규교육기관뿐만 아니라 사설교육기관과 뮤지컬 학원, 영어뮤지컬 유치원까지 생겨나고 있는 추세다.
이런 속도라면 몇 년 사이 한국은 그야말로 뮤지컬 천국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급속도로 늘어나는 교육기관들이 모두 잘 짜인 수업의 내용과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들었다. 또한 뮤지컬의 본고장인 뉴욕에서는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뮤지컬 전문 교육이 이루어지는지도 궁금해졌다. 필자가 졸업한 대학에서도 대학원 수준의 연기교육이 시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뮤지컬 전문 교육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브로드웨이에서 활동 중인 배우들과 함께 일을 하기도 하고 그 중 몇몇은 사적인 관계로 지내고 있기도 하지만 보컬 트레이닝 과정이나 오디션, 리허설 정도를 지켜보았을 뿐이지 뮤지컬 배우를 위한 전문 교육에는 무지했기 때문이다.
불현듯 몇 해 전, 뉴욕대학교의 학생들이 공연한 <숲속으로>를 관람한 생각났다. 학교 극장에서 공연한 학생들의 작품이었기에 규모 면에서는 프로페셔널 공연에 비할 바가 못 되었지만 규모의 약점을 아이디어로 커버한 창의성과 프로 배우들 못지않은 학생들의 실력에 놀랐었다. 뉴욕대학교는 문화예술의 중심인 뉴욕 안에서도 자유롭고 창의적인 예술교육 기관으로 유명하다.
특히 단과대학 중의 하나인 티쉬예술대학 Tisch School of the Arts 은 연기, 무용, 드라마, 공연이론, 디자인, 뮤지컬 작곡 등의 전공을 제공하며 다양한 공연분야의 과정을 제공하고 있다. 과정에 따라 학사 또는 석사과정을 개설해 놓고 있는데, 연기전공의 경우 석사 전공의 대학원 과정도 따로 개설되어 있다. 하지만 이곳의 연기전공은 (미국 내 다른 대학의 연기전공학과 마찬가지로) 연기 자체에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지 특별히 뮤지컬 연기에 더욱 치중하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뉴욕대학교에는 별도로 스테인하르트 단과대학 Steinhardt School of Culture, Education, and Human Development 내에 뮤직 시어터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석사과정으로 개설되어 있는 보컬 퍼포먼스 Vocal Performance 전공을 개설하여 보다 심도 깊은 오페라, 뮤지컬 퍼포먼스 트레이닝 코스를 제공한다.
학생들이 개인 레슨은 물론, 스튜디오 워크숍, 강의, 마스터 클래스, 세미나 등을 통해 뮤직 시어터에 필요한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쌓아나갈 수 있도록 마련된 과정이다. 각 과정에 대한 정보가 학교 홈페이지에 나와 있지만 그것만으로 뉴욕대학교의 뮤지컬 교육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보컬 퍼포먼스 Vocal Performance 학과 학과장으로부터 뉴욕대학교의 프로그램에 대해 직접 설명을 듣고 수업에 참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뉴욕 대학교 뮤지컬 수업을 참관하다
필자가 방문한 수업은 대학원 2학기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노래 분석 song analysis 수업이었다. 밤새 내린 폭설에도 아랑곳없이 교실에는 열다섯여 명의 학생들이 오전 9시 30분 수업을 위해 모여 앉아있었다. 필자를 초청한 보컬 퍼포먼스 학과의 학과장 빌 웨스브룩스 Bill Wesbrooks 와 수업 중 피아노 반주를 담당할 피아니스트와 인사를 나눈 뒤 학생들 틈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대학원 과정에 수학하고 있는 학생들은 기본적인 연기와 노래 실력을 이미 갖추고 있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는 뮤지컬 넘버를 소화하는 테크닉보다는 노래로 연기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수업은 학생들이 한 명씩 앞으로 나와 각자 연습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첫 번째 학생이 나와 피아노 반주에 맞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토니가 부르는 ‘마리아’를 선보였다. 이미 몇 차례 연습을 거듭한 듯 익숙해보였다. 학생의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난 후 빌 교수는 노래를 마친 토니가 마리아를 향해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물었다. 토니가 마리아에게 호감을 느끼는 정도인지, 아니면 이미 사랑에 빠진 것인지, 마리아를 어떤 여자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지금 이 고백을 하는 토니 자신은 자신만만한 상태인지, 혼자서만 들떠있는 것은 아닌지…. 이어 토니는 어떤 캐릭터인지, 마리아는 또 어떤 여성인지, 마리아의 어떤 모습에 반한 것인지 등의 질문도 이어진다. 연결된 장면들 안에서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학생 본인의 경험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질문들도 함께 던져졌다.
마리아를 보고 한 눈에 반한 토니의 심경을 세밀하게 이끌어내기 위한 직품들이었다. ‘토니라면 이 노래를 이렇게 불러야한다’라고 지시를 내리기보다, 학생 자신이 감정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고 기다려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감정과 목소리 톤, 호흡, 자세를 바꿔가면서 여러 차례 같은 곡을 반복한 학생이 비로소 이 한 곡을 통해 토니와 마리아의 관계를 보다 이해한 듯 만족스럽게 노래를 마친다. 그리고 나면 빙 둘러앉은 학생들이 각자 동료가 해석한 곡에 대해 한 마디씩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고, 빌 교수는 이 곡을 소화해낸 학생에 대한 총평을 통해 이 곡을 계속 연습해야 할지 혹은 다른 곡으로 넘어갈지를 결정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한 학생의 레슨이 끝이 났다.
이어 두 번째 학생이 <소야곡>A Little Night Music의 ‘인 프레이즈 오브 우먼` In Praise of Women 을, 다음 학생이 <더 윌 로저스 폴리스> The Will Rogers Follies 의 ‘노 맨 레프트 포 미` No Man Left For Me 를 이어서 불렀다. 수업진행 방식은 첫 번째 학생과 비슷했지만 각 학생들이 선택한 뮤지컬 넘버에 따라 학생들의 기량에 맞게 유동적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노 맨 레프트 포 미’를 부른 학생은 본인이 연습해온 수준이 이미 수준급이어서 필자를 포함, 교실 안에 있던 모두가 박수를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 빌 교수 역시 특별한 코멘트를 하기 전에 다른 학생들의 생각들을 물었고, 많은 학생들이 그녀가 노래를 해석하는 방식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경우 작은 몇몇 부분을 지적해주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음 곡을 준비해도 좋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2시간 30분간의 수업시간 동안 다섯 명의 솔로와 한 팀의 듀엣에게 이와 같은 방식의 수업이 진행되었다. 한 명 혹은 한 팀당 20~25분여의 시간이 할애되는 셈이다. 듀엣의 경우 약간의 장면 연기가 함께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두 사람이 함께 연기할 때에는 관객들을 향한 감정전달만이 아니라 둘 사이의 오고 가는 감정연기가 중요한 부분으로 지적되었다. 학생들은 비록 한 장면, 한 곡의 노래이지만 다른 배우와 함께 호흡을 맞추는 연습을 통해 노래하며 연기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수업은 약 5분여의 휴식시간을 가진 것을 제외하고는 바쁘고 알차게 수업이 진행되었다. 2시간 30분까지 수업을 참관하기로 했을 때 다소 긴 수업시간에 대해 우려했던 것이 무색하리만치 수업에 푹 빠져들었다. 수업이 끝난 후 빌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보다 자세하게 알게 된 보컬 퍼포먼스학과의 교과과정은 더욱 흥미로웠다.
특히 뮤지컬 배우의 가장 중요한 덕목을 연기로 꼽는 부분에서 더없이 공감하며 그와의 대화는 더욱 즐겁게 이어졌다. 뉴욕이 공연예술의 중심으로 자리잡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로 분석될 수 있다. 체계화되어 있는 산업 시스템, 수준 높은 예술 환경, 탄탄한 관객 층 등 얼핏 생각해도 떠오르는 주요한 요소들이 있지만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공연예술 교육에 대한 그들의 고민과 노력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요소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보다 체계화된 뮤지컬 교육이 하루빨리 자리잡기를 바라며 빌 교수와의 인터뷰를 정리해본다.
Interwiew 뉴욕대학교 보컬 퍼포먼스 학과 학과장, 윌리엄 웨스부룩스 William Wesbrooks
Q. 수업 중에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들과 대화하는 방식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노래 분석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줄 수 있나? 이 수업의 목표는 무엇인가?
A. 노래분석 수업의 목표는 학생들 각자가 노래를 통해 연기하는데 필요한 다양한 드라마틱한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내고 컨트롤 하는가를 학습하는 것이다. 배우가 노래를 잘 소화하기 위해서는 각 캐릭터의 이야기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학생들은 1년간(2학기, 각 14주) 10~12곡, 그리고 약 3개의 장면을 연습하게 된다. 보통은 학생들이 직접 자신이 연습할 곡이나 장면을 선택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야 본인에게 중요하거나 본인이 원하는 노래를 연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학생의 특성에 맞는 노래나 장면의 선택을 도와주기도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뮤지컬 넘버의 선곡은 각 학생이 보이스 레슨 시간에 연습을 원하는 노래로 제출한 곡들을 기반으로 하며, 장면 선정은 그들이 장면을 선택하고 나의 심사에 통과한 후에 연습을 시작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Q. 뉴욕대학교의 보컬 퍼포먼스 과정은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른 수업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
A. 학부 과정과 대학원 과정이 마련되어 있다. 각 과정은 기본적으로 보이스 레슨, 연기 수업, 워크숍 등의 수업들을 조합하여 운영되는데, 대학원 과정은 학부 과정에서보다 심화된 수업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대학원의 경우 일정 수준 이상의 수준을 갖춘 학생들만을 선발한다. 두 과정 모두 학생들이 노래와 연기는 물론 노래로 연기하는 법, 장면 연습, 뮤지컬 레퍼토리, 오디션 준비, 비즈니스 준비 수업 등을 통해 배우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을 키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Q. 뉴욕대학교 이외에도 예일대학교, 컬럼비아 대학교 등 미국 내 유수의 학교들에 좋은 공연예술 교육 프로그램이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뮤지컬을 위한 교육이 얼마나 이루어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뉴욕대학교의 보컬 퍼포먼스 학과와 이들 학교와 차별화되는 점은 무엇인가?
A. 미국에는 많은 학교에 학부과정으로 뮤직 시어터(오페라와 뮤지컬) 프로그램이 있다. 하지만 대학원 수준으로 뮤직 시어터 전공이 개설되어 있는 학교는 많지 않다. 우리 학교의 뮤직 시어터 프로그램이 다른 학교와 차별화되는 점은 무엇보다 학위가 시어터 전공이 아니라 음악 전공으로 수여된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보컬 퍼포먼스 전공의 음악 학?석사 학위를 수여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보컬 테크닉과 연기 테크닉을 함께 교육하는 보다 다양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Q. 수업 중 한국 유학생 한 명과 인사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학생 말고도 이 학과를 거쳐 간 학생이 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 학생들을 가르칠 때의 경험을 얘기해 줄 수 있나?
A. 지난 9년간 보컬 퍼포먼스 전공의 학과장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동안 7~8명의 한국 학생들이 대학원 과정에서 학위를 취득했다. 우리 프로그램에 합격한 학생들은 모두 훌륭한 보컬 테크닉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유학생으로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극복해야 했기에 그들의 좋은 노래 실력은 다른 학생들에 비해 더욱 중요했다. 한국 학생들은 대게 처음에는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을 주저하기도 하지만 일단 적응하기 시작하면 영어에 대한 이해가 매우 빠른 듯 하다. 연기하는 것은 어느 정도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성격을 필요로 한다. 보통 아시아 학생들은 미국 학생들에 비해서 천성적으로 예의가 바른데, 예의가 지나치게 깍듯한 것은 때때로 배우에게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Q. 뮤지컬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언인가?
A. 뮤직 시어터 교육의 가장 기본은 보이스 자체를 훈련하는 것이다. 선생으로서 내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모든 것들은 그들이 좋은 목소리로 연기할 수 있을 때에만 그 진가가 전달된다. 대본이나 가사에 표현되는 있는 언어로 연기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79호 2010년 4월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