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분야에서는 세자르상, 칸느 영화제, 도빌 영화제 등 10여 개의 세계적인 영화제를 개최하는 프랑스이지만, 이상하게도 연극, 공연 분야와 관련된 상은 별로 없다. 작품 수가 적어서 그런가 싶지만, 파리와 파리 근교에서 매주 최소 4백여 편의 작품들이 무대에 올려지니 결코 적다고 할 수는 없다. 물론 대부분의 작품이 2백여 석 미만의 중소극장 작품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연 눈에 띄는 시상식으로는 매년 4월말 ‘몰리에르의 밤` Nuit des Molieres 이라 불리는 몰리에르상이 있다.
이미 짐작했겠지만, 몰리에르상은 1987년 프랑스의 대표적인 극작가인 몰리에르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시상식이다. 프랑스 연극사에 비해 다소 늦게 제정된 몰리에르상은 장-미쉘 루지에르 Jean Michel Rouziere 와 제롬 위로 Jerome Hullot 와 같은 사립 극장 대표와 비평가들이 주도해 만들어졌고, 2004년 이후에서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공 극장 대표들도 참여하게 되었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다. 제1회 몰리에르의 밤은 연극잡지들과 관련 기자들과 공,사립 극장 대표들로 구성된 연극비평 조합원들이 함께 모여 치러졌다. 이후 몰리에르상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성립되면서 그들은 전문적이고 예술적인 연극 협회인 ‘아팥` APAT 을 만들고, 이런 종류의 시상식을 만드는데 전문가로 알려진 조지 그라벤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후 매년 4~5월에 파리와 근교의 주요 극장에서 모여 ‘몰리에르의 밤’이라는 시상식을 열었고, 텔레비전 채널 프랑스 2에 의해 프랑스 전역에 생중계되었다.
몰리에르상의 구성은 기본적으로 다른 나라의 연극 관련 시상식과 비슷한데, 남녀주(조)연상, 남녀신인상, 최우수 극단상, 올해의 연극(공연)상, 최우수 작가상, 외국작품 각색상, 최우수 음악극상, 최우수 연출상, 의상디자인상, 무대디자인상, 조명상, 음악상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금 특이한 상은 1988년에 만들어진 ‘최우수 지방분권 공연상’인데, 파리가 아닌 지역에서 공연되는 연극, 공연 작품 중에서 최우수 작품을 선정한다. 이후 2004년과 2005년에는 ‘최우수 지역 공연상’으로, 2006년에는 ‘스페셜 그랑프리 , 지역 공공극장 심사위원’으로, 그리고 오늘날의 ‘몰리에르 지역 연극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외에도 2005년에만 시상했던 ‘몰리에르 예상치 못한 상’이나 ‘최우수 원맨쇼상’ 등처럼 간헐적으로 기발한 이름의 상을 시상하기도 한다. 2006년부터는 모든 부분에 ‘최우수’라는 표현 대신 ‘몰리에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몰리에르상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모든 프랑스 연극인들에게 그 권위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까닭이다.
2004년 ‘아팥’은 몰리에르상의 수상작 선정방식을 사립극장과 공립극장, 전문가집단 등 세 분야에서 심사위원을 각각 6명씩 선정해서 총 18명이 심사를 하고, 이에 정부와 각종 관련 단체의 투표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꾀했다. 2006년 초에는 선정 방식을 다시 바꾸어 1천3백여 명의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몰리에르 위원회’를 만들었다. 그 중 50퍼센트는 지난 19년 동안 몰리에르상을 수상한 150여 명을 포함한 배우들의 몫이었고, 제작자와 배급업자, 작가와 연출가, 비평가와 의상, 조명 등 관련 스태프 3백 명이 포함되었다.
올해로 24회째를 맞이하는 몰리에르의 밤은, 최초로 현재 파리에서 상연 중인 극작가 조르주 페이도의 연극 <그 부인의 어머니>의 한 장면을 상연하며 시상식의 막이 올랐다. 가장 기대를 모았던 남자배우상은 연극 <의상담당자 L`Habilleur 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을 다룬 <필렉테테스> Philoctete 에 출연했던 로랑 테르지에프 Laurent Terzieff 가 받았다. 그는 이미 두 차례 몰리에르 연출가상을 받은 적 있는 연출가겸 배우다.
여우주연상은 <고통>의 도미니크 블랑이 받았다. 음악공연 작품과 관련한 거의 유일한 상인 ‘몰리에르 음악극상’의 영광은 오펜바흐의 <파리적인 삶> 등 총 4편의 작품이 경합을 벌인 끝에 <헤라클레스의 12대의 피아노>에게 돌아갔다. 2008년에 초연된 작품으로, 실력 없고 실수투성이로 보이는 피아니스트와 그의 피아노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툭하면 열쇠를 잃어버리고 피아노 상태는 엉망인데다 의자까지 삐거덕거리는 등 다양한 어려움이 닥치지만 피아니스트는 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자신의 피아노와 자기 방식대로 재구성한 음악의 역사를 관객들에게 풀어놓는다는 이야기다.
비교적 간단한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는데다, 음악과 연극, 그리고 유머가 적절히 잘 녹아있어 관객들에게 쉽고 재밌게 다가간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여기에 끊임없이 수다를 떠는 어릿광대 같은 피아니스트를 완벽하게 소화한 극작가이자 배우, 피아니스트인 장-폴 파레의 기가 막히는 연기 덕분에 파리의 소극장에서 상연된 이후 연일 매진을 기록했다. 지금까지 세 차례나 몰리에르 최우수 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지만 단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던 파레로서는 이번 ‘몰리에르 음악극상’ 수상으로 이전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을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1호 2010년 6월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