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뮤지컬&컬처 | 공연을 즐기는 새로운 관람법 <쇼는 계속 되어야한다> [No.82]

글 |이동섭(파리통신원) 사진제공 |제롬벨 Ballet de Lyon 무용단, 이동섭, Theatre de la ville de Paris 2010-09-28 5,096

공연이 쇼라면, 쇼는 재미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쇼들은 별로 재미가 없다. 왜 그럴까?

저마다 이유가 다르겠지만, 나는 작품을 대하는 ‘이상한 엄숙주의’를 지적하고 싶다. 그것은 연예인에게 도덕성을 요구하는 한국 사회의 기묘함과 짝을 이루는 ‘공연 작품이란 진지하고 무게감이 있어야 깊이 있(고 좋은 작품이)다’는 편견과 선입견이다.

재치 있고 가벼우면 (재미는 있지만) 무게가 없고 천박하다는, 1970년대 아니 1950년대, 아니 뭐 하여튼 꽤나 19세기적인 잘못된 사고방식 말이다. 이런 생뚱맞은 편견의 최대 가해자이자 피해자는 역사적인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과연 몇 편의 역사극이나 재미있게 보았을지 궁금하다. 우리는 공연장에 들어서기도 전에 이미 작품이 강요할 식상한 교훈과 위대하신 인물의 놀랍도록 뻔한 스토리에 압도당한다. 이런 엄숙주의는 내용의 빈약함뿐만 아니라 극의 형식마저 경직화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뮤지컬 <태양왕>은 우리의 세종대왕 같은 프랑스의 루이 14세를 소재로 다루면서도 ‘왕의 사생활’이라는 도발적인 해석과 새로운 연출 방식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엄숙주의를 벗어나 재미난 공연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문제를 생각해볼 좋은 작품이 있다.

 

 

 

극의 형식이 작품의 재미에 미치는 영향
여기 한 편의 무용(으로 분류되어지는) 작품이 있다. 그런데 시작부터 영 심상치가 않다. 제목은 당당히 퀸의 노래 제목이기도 한 `쇼는 계속 되어야한다` The Show Must Go On 라고 달고 있지만, 정작 ‘쇼’답지 않게 극이 시작된다.

조명이 꺼지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대표곡인 ‘Tonight’이 흘러나온다. 곡이 끝나면 무대가 환해지면서 무용수들이 등장할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비틀즈의 ‘Come Together’가 바로 이어졌다. 관객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그들 중 일부는 후렴구인 ‘come together right now over me’를 어색한 영어 발음으로 따라 불렀다. 두 번째 노래가 끝나자 비로소 무대에 불이 켜지고 스물다섯 명의 무용수들이 걸어 들어오자 관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신나는 테크노 음악이 들려오고 관객들은 기대에 부풀어 무대를 지켜보지만, 무용수들은 춤을 추는 대신 가만히 제자리에 서서 객석을 둘러보고만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이 뭔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리라 직감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다. 무용수들은 공연 내내 거의 춤을 추지 않고 가만히 서서 관객석을 노려보고(관객들은 ‘나를 위해 춤 춰줘요, 제발’ 하며 부탁하고), ‘춤’이라고 해봐야 ‘마카레나’라는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는 군무 정도이고(관객들은 ‘이게 뭐야, 무용이 아니잖아!’ 하며 소리치고), 음악에 ‘맞춰’ 움직이지 않고 이상한 동작을 반복하며(관객들은 ‘그게 춤이냐?’라고 비웃고), 무용수들은 각자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다가 절정 부분을 라이브로 부르거나(관객들은 ‘같이 듣자’, ‘나도 듣고 싶다’며 애원하고), 영화 <타이타닉>의 뱃머리 장면(여자주인공을 뒤에서 안는 장면)을 따라하다가 노래에 맞춰 무대 밑으로 사라져버린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음악과 무용수의 ‘정상적인’ 관계는 매번 이런 식으로 어긋난다.


재밌는 것은, 이렇게 음악과 무용의 관계가 어긋날수록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는 점점 흥미로워진다는 점이다. 물론 그 재미는 무대 위가 아닌 무대 아래 관객석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말이다. 관객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허술해 보이는 공연을 만만하게 여기게 되고 점차 무대를 향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표출하기 시작한다. 무용수들이 가만히 있으면 관객들이 일어서서 춤을 추거나 야유를 보내고, 에디트 피아프의 ‘장밋빛 인생’이나 사이먼 앤 가펑클의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와 같은 유명 곡이 나오면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휴대폰이나 라이터를 꺼내들고 마치 대중 가수의 콘서트장에 온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이런 식의 작품을 기대하지 않고 온 관객 중 일부가 공연을 보다가 나가면, ‘오 제발! 떠나지 말아요’, ‘조금 있으면, 아마 춤 출 거예요!’라고 큰소리로 말하는 관객도 발견할 수 있다.

 

이렇듯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에는 다른 공연이라면 상상도 못할 상황이 계속 벌어진다(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이런 분위기를 주도하기 위해 몇몇 관객을 미리 객석에 배치해두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보다 견고하게 나뉘어 있던 무대와 객석 사이의 장벽이 무너졌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관객들은 무용수들만큼이나 자주, 혹은 더욱 많은 볼거리를 만들어 낸다. 재미있는 공연을 좋아하는 우리가 현대무용 안무가인 제롬 벨이 만든 무용 공연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를 눈여겨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관객은 구경꾼일까? 참여자일까?
장르를 불문하고, 현대 예술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관객을 어떻게 작품 속에 참여시킬 것인가?’일 것이다. 작품 외부에 떨어져 존재하던 관객을 어떻게 작품의 한 요소로 포함시켜서 ‘구경꾼’이 아닌 ‘참여자’로 만들 것인가. 무대와 객석의 구별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우리나라의 마당극과 달리, 철저한 단절을 기본 전제로 발전해 온 서양 (음악)극에서 이 문제는 형식의 본질을 뒤엎을 만큼 중요하다. 음악극은 크게 연극과 콘서트 양 갈래에 제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불과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단연 음악극은 연극에 의해 완전히 점령당했다. 음악극으로서 뮤지컬도 서커스나 극의 흐름에 방해되는 볼거리(섹시한 무희들의 군무 등)를 제거시켜 나가면서 정체성을 완성시켜왔다.

자연스럽게 콘서트가 주는 활기와 가벼움, 무대(위 배우)와의 적극적인 반응과 호응은 자제해야할 무엇이 되었다. 이런 경향은 1970년대 극이 ‘텍스트’에서 ‘상연’ 중심으로 넘어가면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2010년 6월호 로버트 윌슨의 <서푼짜리 오페라> 참조) 또한, 이 시기부터 뮤지컬의 인기를 압도하기 시작한 팝음악과 MTV의 인기도 그 변화의 한 몫을 차지했다. 우리 시대에 들어서는 연극은 콘서트를, 콘서트는 연극을 탐하고 있다. 여러 공연들이 극의 재미를 작품의 스토리보다는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과 극의 형식적인 측면의 변화에서 찾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제롬 벨의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쇼가 계속 되어야한다
이 작품이 객석에서 얌전히 박수쳐야할 때(라고 배운 순간에만) 박수를 치는, 경직된 공연 문화를 가진 한국에서는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이게 뭐야?’라며 속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제롬 벨이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에서 의도했던 관객들의 정확한 반응일 것이다. 누군가가 ‘공연이란 어떤 스토리나 교훈을 전달해야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 있게 ‘꽤 잘 쓰인 스토리의 작품들도 줄 수 없는 교훈을 당신들에게 주고 있다’고 대답하겠다. 왜냐면 당신의 견고한 공연 관람태도를 무너뜨렸고, 작품에 대한 고집스런 경건함도 녹여버렸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공연 내내 가만히 앉아서 구경하는 재미 대신, 관객들에게 무용수와 작품을 가지고 한바탕 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꽤 얌전한 관객이었던 나는 공연 내내 무대와 객석에서 벌어지는 두 개의 작품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처럼 무대와 객석의 관계를 변화시킬 때, 관객은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나 작품자체를 만만하게 폄하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르셀 뒤샹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변기에 서명을 해서 미술관에 전시한 이후, 우리는 예술 작품은 관객의 시선이 개입되면서 비로소 완성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제롬 벨의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퀸의 전설적인 히트곡인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를 마지막 곡으로 무대와 관객석이 혹은 무용수와 관객들이 함께 만들어낸 쇼는 끝이 나지만, 관객들은 이 작품을 통해 습득된 공연을 즐기는 새로운 태도로 인해 다른 작품들도 새롭게 즐길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극의 기본적인 형식을 근본적으로 뒤집는 재미있는 쇼는 앞으로도 계속 되어야 할 것이다.

 

 


Ballet de Lyon 안무 Jerome Bel

2010년 5월 18일 ~ 20일  Theatre de la ville de Paris
6월 18일 ~ 19일: Cork (Ireland) Cork Midsummer Festival
2011년 2월 16일, 18일: Rennes (France) Opera de Rennes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2호 2010년 7월 게재기사입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