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뉴욕에서는 두 편의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이 한창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두 작품 모두 흥행성과 작품성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내년 시즌의 브로드웨이 진출을 적극 타진하고 있다.
먼저 지난 5월에 막을 내린 뮤지컬 <키드> (The Kid)는 뜻하지 않게 아기를 맡아 기르게 된 동성애 커플에게 벌어진 해프닝을 다룬 작품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토니상을 수상한 뮤지컬 <애비뉴 큐>를 제작한 극단 `뉴 그룹` The New Group에서 제작했고, 브로드웨이 진출은 <저지 보이즈>를 제작한 `닷지 시어트리컬스` Dodge Theatricals에서 맡기로 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일곱 번째 대통령 앤드류 잭슨의 일대기를 소재로, 극단 `레 프레르 꼬르뷔지에` Les Freres Corbusier 의 예술감독인 알렉스 팀버스 Alex Timbers가 대본과 연출을 맡고 극단 `시빌리언스` The Civilians의 상임 작곡가인 마이클 프리드먼 Michael Friedman이 가사와 곡을 쓴 <블러디 블러디 앤드류 잭슨> (Bloody Bloody Andrew Jackson)이다.
극단 ‘레 프레르 꼬르뷔지에’는 입센의 희곡 `헤다 가블러`를 로봇이 출연하는 공연 <헤다트론> (Heddatron)으로 만드는 등 파격적인 컨셉으로 뉴욕에서 근래 주목 받고 있는 극단이다. 이번 공연은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중인 뮤지컬 <헤어>를 제작한 뉴욕의 대표적인 극단인 ‘퍼블릭 시어터’와 공동제작으로 만들어졌다.
역사 속 인물로 뮤지컬 만들기
한국 관객에게는 낯설 수도 있겠지만 앤드류 잭슨은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학생 시절 역사 수업 시간을 통해 익히 들어왔던 미국 건국 초기의 유명한 대통령이다. 현재도 그에 대한 관심은 지대해서, 존 미첨 Jon Meacham이 쓴 그의 전기 `미국의 사자: 백악관의 앤드류 잭슨` 은 2009년도에 퓰리처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앤드류 잭슨은 여러 면에서 현 오바마 대통령과 비교되기도 하는데, 먼저 그는 이전의 대통령들과는 달리 비주류, 즉 비 엘리트 출신으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최초의 인물이다.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영국과의 전쟁을 통해 영웅으로 부각되었고, 대중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미국 초기 엘리트 정치인들의 집단인 민주공화당에 맞서 대중정치를 중심으로 하는 민주당(현 미국 민주당)을 설립하였다.
하지만 그에 대한 역사가들의 평가는 첨예하게 대립된 견해를 보여왔다. 영국과의 전쟁을 실질적으로 마무리하고 미국의 영토를 통합하여 두 배로 늘리고, 그리고 대중에 기반한 민주주의를 확립한 업적은 호의적으로 평가 받고 있다. 반면, 국립은행을 폐지하는 등 지나친 포퓰리즘 정책으로 경제의 파탄을 가져왔고, 또 미국의 인디언들을 보호구역으로 이주시키고 그 와중에 무수한 인디언을 죽게 만들어 ‘미국의 히틀러’라는 오명으로 불리기도 하는 등 부정적인 면도 지적된다.
어쨌든 그의 강한 카리스마와 굴곡 넘치는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로 만들어지기에 손색이 없었고, 이 공연에서 그의 모습은 최근 유행하는 `이모 록` (Emo Rock) 장르의 팝 스타로 설정되기에 이르렀다.
이모 록은 Emotional Hardcore의 약어로서 멜로디 중심의 감정적 표현, 그리고 고백적인 가사를 특징으로 하는 록 장르이다. 아마 가장 가까운 컨셉 뮤지컬로 브로드웨이에서 히트를 기록한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들 수 있겠다. <블러디 블러디 앤드류 잭슨>은 캐릭터가 지니고 있는 저항성, 그리고 음악의 장르적 유사성 때문에 많은 평론가들에 의해 <스프링 어웨이크닝>과 비교되어 소개되고 있기도 하다.
역사 속 인물 비틀기
이 작품은 앤드류 잭슨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지만 일관적인 구조와 스토리의 매끈한 전개를 일부러 거부하고 있다. 이는 대본과 연출을 맡은 알렉스 팀버스의 공연이 갖는 특징이기도 한데, 그의 극단은 실제 역사의 인물들을 기존의 역사적 맥락에서 분리해 낯선 설정과 상황 안에 배치함으로써 현대의 정치적, 문화적 상황에 맞는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 속의 앤드류 잭슨은 ‘뉴 올리언즈 전쟁의 영웅’ 그리고 ‘재선한 미국 대통령’이라는 직함에 맞는 진지한 인물이기보다, 반항적이고 과욕에 넘치는 그리고 좌충우돌하며 갈피를 못 잡는 코믹하고 풍자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때로 유치하기도 하지만 이런 코믹한 설정은 <블러디 블러디 앤드류 잭슨>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공연의 시작은 전동 휠체어에 탄 고지식해 보이는 역사 선생님의 딱딱한 수업으로 시작되는데, 극이 전개됨에 따라 극 중 앤드류 잭슨은 자기 스스로 이야기를 전개하기로 마음먹고 여선생을 권총으로 쏴 죽인다. 황당하지만 코믹한 상황이 공연 곳곳에서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빈번하게 발생한다.
무대적 형상화
처음 공연장에 들어서면 마치 19세기의 대저택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천정에는 무수한 샹들리에가 달려있고 극장 벽은 붉은 벨벳 천으로, 무대 바닥은 중후한 느낌이 나는 카펫으로 덮여있다. 벽에는 19세기 당시 화풍의 초상화가 화려한 황금색 액자에 넣어져 걸려있고 무대 곳곳에 박제된 동물의 장식품들이 보인다.
하지만 극중 인물의 의상은 시대를 넘나든다. 출연진들은 때로는 청바지와 자켓을 걸치고 나타나기도 하고, 셰익스피어 시대 의상처럼 목과 소매에 장식을 달고 나타나기도 한다.
음악 반주는 피아노와 기타, 그리고 드럼으로 간단하게 구성하였고, 그들 역시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자리를 잡고 있다. 배우들은 헤드셋 마이크보다는 무선 핸드 마이크를 사용해 노래를 부르는데, 이 역시 <스프링 어웨이크닝>과 같이 록 장르의 특성을 살리려는 시도로 보인다.
공연은 콘서트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주인공 앤드류 잭슨 역을 맡은 벤자민 워커 Benjamin Walker를 중심으로 여러 명의 배우가 여러 역할을 해나가면서 관객에게 앤드류 잭슨의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형식이다.
극장을 나서며
뉴욕의 오프-브로드웨이 공연은 브로드웨이와는 달리 참신하고 파격적인 시도를 종종 자신의 무기로 삼는다. 그래서 공연들의 스타일이 다양하고 때로는 설익었지만 새로운 시도들이 낯설지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들은 주로 젊은 연극인들로부터 시작된다. 어쩌면 이는 상업적인 경쟁이 지배하는 뉴욕의 공연계에서 젊은 연극인들이 살아남기 위한 전략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때때로 이러한 시도들이 관객의 호응을 얻어 주류 연극의 판도를 바꾸기도 한다. 이 공연을 보고 나오면서 개인적으로 한국 공연계에서도 이러한 시도들이 자주 보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2호 2010년 7월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