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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강렬한 메시지, 아쉬운 무대화 <스카츠보로 보이즈> The Scottsboro Boys [No.87]

글 |이곤(뉴욕 통신원) 사진 |Joan Marcus 2011-01-10 5,097

별다른 대형 히트작이 없는 올해의 브로드웨이는 참신한 소재를 바탕으로 제작된 오프 브로드웨이의 뮤지컬들에게 그 빈틈을 내어주는 분위기이다. <블러디 블러디 앤드류 잭슨>, <더 오펀즈 홈 사이클> (The Orphans` Home Cycle) 등이 차별화된 소재와 아기자기한 구성으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는 가운데, <스카츠보로 보이즈> 역시 1930년대 미국에서 발생한 실화를 바탕으로 기존 브로드웨이와는 차별화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메시지
<시카고>의 콤비 존 캔더와 프레드 엡이 각각 작곡과 작사를 담당하고 연출자이자 안무가인 <컨택트>의 수잔 스트로만이 연출을 맡은 <스카츠보로 보이즈>는 1931년 미국남부에서 인종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참극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알라바마로 향하는 기차에 탑승해 있던 올렌 몽고메리(17), 클라렌스 모리스(19), 헤이우드 패터슨(18)등의 흑인청년 8명과 한명의 흑인 소년 로이 라이트(13)는 아무런 관련 없이 백인 여성 두 명을 강간했다는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이 사건은 그들이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마치 실제 있었던 사건처럼 둔갑하게 되고, 미국전역에서는 그들을 규탄하려는 사회적 움직임이 일며 억울한 흑인 청년 9명의 인생을 차압하게 된다. 그리고 45년이 지난 후에야 그들은 무죄를 인정받게 된다. 뮤지컬은 그들의 체포과정과 감옥에서 겪게 되는 사건들 그리고 가석방의 과정과 감옥에 여전히 남게 되는 이들의 사연을 연대기적 순서로 엮어내고 있다.


인종문제를 둘러싼 비극적인 사건이 백인이 주 관객 층인 브로드웨이의 무대에서 재해석되었다는 흥미로운 일이다. 창작자들은 이 사건이 가지는 아이러니함에 냉소적인 해석과 유머를 가해 그들이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9명의 죄 없는 흑인청년들이 겪어낸 삶의 비극과, 당시 사건과 연계되었던 인물들에 대한 해학적인 시선에 미국 사회상을 결합해 전체적으로 냉소적이면서 유머러스한 연출을 선보인다.   

 


존 캔더과 프레드 엡에 의해 탄생한 음악 또한 기존 브로드웨이의 오케스트라 곡들과는 차별화된 컨트리 감각의 선율과 발라드적 감성의 곡들이 하모니를 이루어 극의 스토리를 엮어 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인물들이 당시에 겪었을 아픔이 묻어나는 ‘컴백 홈’ 등의 발라드 곡은 흑인 배우들 특유의 허스키하면서 깊이 있는 보이스가 얹혀져 객석을 숨죽이게 만든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비극적인 장면을 경쾌하게 풀어내면서 그들의 아픔을 한층 더 드러낸 아이러니한 연출이다. 예를 들면, 극의 초반 감옥에 갇힌 이들이 전기고문을 당하는 장면을 탭 댄스의 경쾌한 리듬으로 처리하는데, 리듬이 주는 경쾌함과 극적 내용이 묘한 대비를 이루며 가슴 한켠이 서늘해지는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특히 극의 후반부에 대표곡인 ‘스카츠보로 보이즈’의 경쾌한 선율을 배경으로 연출된 삐에로 장면이 압권이다. 미국사회의 희생자로 자신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청년들이 삐에로 분장을 하고 등장해 사회자의 지휘에 맞춰 노래하고 연기 하다가 마침내 삐에로 분장을 천천히 지우고 무대 밖으로 사라지는 장면은 그들이 겪어낸 아픔과 동시에 이 공연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아쉬운 무대화
하지만 냉소적인 해석이 만들어낸 효과적인 장면들 외에는 여러 가지 아쉬운 점이 드러났다. 가장 부각되는 것은 캐릭터 활용의 실패다. 무거운 주제를 재치 있게 풀어가려고 선택한 1인 다역들의 코믹스러움이 지나치게 구태의연해 오히려 극을 상투적으로 만들어버렸다. 브로드웨이 관객들은 즐기기 위해 비싼 표를 구입한 만큼 마음껏 웃고 즐기려는 오픈 마인드의 성향이 강한데, 너무나 쉽게 읽혀버리는 상투적인 코믹 캐릭터의 활용은 오히려 객석에 찬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상투적인 코믹함보다 각각의 인물들이 겪었을 아픔을 더 심도 있게 풀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실제로 이 공연에서 관객을 숨죽이게 만들었던 때는 바로 그런 순간들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조슈아 헨리 (Joshua Henry), 조쉬 브렉켄리지 (Josh Breckenridge), 제레미 검즈 (Jeremy Gumbs) 등의 젊은 흑인배우들이 연기한 9명의 캐릭터들이 효과적으로 구분되지 않았고, 이 공연의 유일한 백인배우이자 미국사회를 대표하는 인물로 묘사된 존 컬럼 (John Cullum, 토니상 수상자이자 브로드웨이 데뷔 50주년을 맞은) 은 기대에 비해 밋밋한 연기를 선보였다. 하지만 이는 그의 캐릭터를 마치 병풍처럼 배치하고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전체적인 캐릭터 활용의 문제로 보인다. 


무대 활용 또한 아쉬움을 남긴다. 텅 빈 무대에 의자와 탬버린, 천 등을 이용해 전환하는 무대 활용은 이 공연이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느낌이었다. 전체적으로 텅 비어 보이는 무대는 브로드웨이의 큰 극장을 효과적으로 채우기엔 준비가 덜 된 인상을 풍겼으며, 이러한 점이 기존 브로드웨이의 알찬 무대에 익숙해져 있는 관객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한계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지의 평가
현지의 평가는 상당히 상반적이다. 메시지가 주는 의미를 깊게 받아들인 관객들은 `근래 몇 년간 가장 훌륭한 브로드웨이 작품, 심각한 주제가 브로드웨이에서 상연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재발견` 등을 거론하며 별 5개의 별점을 주는 반면,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연출의 한계`를 지적하며 별 한 개를 주는 등 보기 드물게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이유는 사회적 이슈를 뮤지컬의 형식을 빌려 전달하는데 성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브로드웨이 공연을 찾는 주요 관객층은 삶의 여유가 있는 뉴욕의 중장년층이나 관광객이고, 흑인과 유색인종의 수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극장에서 상당수의 흑인관객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이 작품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단체로 온 듯한 흑인 여성 관객들이 내지르는 탄성을 들으며, 극에서 다루고 있는 인종문제가 더 이상 지나간 사건이 아니라 여전히 그들의 삶에 내재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백인 커플이 눈물을 훔치는 모습에서는 그들이 인종문제를 떠나 그들의 역사 속에서 개인들이 겪어낸 비극을 고스란히 느끼는 모습이었고, 다수의 백인관객들이 공연관람 후 기립 박수 치며 환호하는 모습에서 미국사회의 아이러니함과 동시에 변화의 조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공연을 바라보는 관객들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7호 2010년 12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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