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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Oh!Broadway]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예술의 브랜딩 [No.88]

글 |지혜원(공연칼럼니스트) 2011-01-10 5,827


충분한 정보도 없고, 다른 소비자의 평가도 접하지 못한 신제품을 선택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무엇일까? 시장에 새로 나온 상품으로 소비자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신뢰와 호기심을 자극해야 한다. 이 때 가장 주요한 요소로 작용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어떤 회사에서 만들어진 제품인가 하는 ‘브랜드’일 것이다. 과연 공연예술서도 브랜드 가치는 존재할 수 있을까?

 

 

 

공연예술의 브랜드 가치
최근 국내 공연계에서 몇몇 배우의 스타 마케팅을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티켓 파워가 있는 스타 배우를 캐스팅하면 별도의 마케팅 전략 없이도 티켓 판매 수입이 배우의 고액 출연료를 넘어설 수 있다는 자칫 근시안적인 시각이 업계 관계자들의 우려를 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스타 마케팅도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마케팅 전략의 일부가 될 수 있다. 브로드웨이에도 유명 배우를 캐스팅해 작품에 흥행성을 더하려는 시도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일회성 공연이 아닌 롱 러닝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한, 두 배우의 스타성보다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을 통해 관객들이 믿고 선택하는 공연으로 독자적인 브랜드를 형성해가는 것이 보다 안전한 방법이다.


브랜드란 일반적으로 한 회사나 제품을 대표하는 이름 혹은 심볼로서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로부터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하는 차별화된 가치를 말한다. 쉽게 말해 신제품이 출시되었을 때, 이미 잘 알려진 브랜드의 제품일 경우 상품보다는 회사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선뜻 구매를 결정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브랜딩이란 이러한 경쟁관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나름의 개성을 개발하는 전 과정과 연관된다. 다시 말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회사나 제품의 신뢰를 높이고 로고나 심볼 등 차별화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마케팅 과정을 모두 포함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공연이나 영화 등 문화예술 장르에 있어 브랜드란 무엇과 연결될 수 있을까? 스티븐 스필버그, 제임스 카메론과 같은 스타 영화감독, 스티븐 손드하임, 앤드류 로이드 웨버 등 이름만으로도 작품의 스타일을 짐작하게 하는 유명 작곡가들은 그들의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관객들에게 어느 정도의 기대와 신뢰를 불러일으킨다. 


앞서 언급한 스타 마케팅 역시 한 명의 스타가 한 공연을 대표하는 이미지이자 그 공연의 브랜드 자체로 인식될 수 있다면 브랜딩에 도움이 된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승부수를 던지는 것은 해당 스타가 없는 공연에는 무엇도 남지 않게 되는, 오히려 위험천만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 2003년 휴 잭맨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더 보이 프롬 오즈> (The Boy From OZ) 의 경우 ‘휴 잭맨의 <보이 프롬 오즈>’로 통할만큼 그가 없는 이 작품은 상상할 수 없었다. 결국 공연 중 그의 휴가를 떠난 동안 공연을 취소하기로 결정을 했을 만큼 그의 브랜드에 의존했던 프로듀서들은 휴 잭맨의 계약이 끝나는 시점인 2004년 9월 폐막을 결정했다. 휴 잭맨이 아닌 다른 유명 배우가 <보이 프롬 오즈>를 계속 공연한다고 해도 흥행을 이어가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오페라의 유령>, <라이온 킹>, <시카고> 등 브로드웨이에서 10년 이상 공연이 계속 되고 있는 공연들에도 브랜드 가치는 존재한다.  <오페라의 유령>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유령의 가면, <라이온 킹>의 노란 바탕의 사자 얼굴, <시카고>의 블랙과 레드의 자극적인 포스터 등 이들 작품은 광고, 홍보물에 사용되는 이미지와 글씨체까지 모든 프로덕션에서 통일성을 유지함으로써 작품과 연결되는 브랜드를 만들어왔다. 또한 투어공연이나 라이선스 공연에 있어서도 작품의 퀄리티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프로듀서의 노력 또한 작품의 브랜드 가치와 연결된다. 전 세계 어느 프로덕션을 보더라도 작품의 이름만으로 믿고 선택할 수 있는 브랜드를 구축하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특히 영화나 공연 중 한 장르에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 다른 장르로 이행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는 추세에서 작품의 브랜드 가치는 프로듀서들에게 있어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브랜드는 개별 작품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내에서도 ‘브로드웨이 공연’이라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를 지닌다. 실제 브로드웨이의 극장주·프로듀서 협회인 더 브로드웨이 리그는 ‘브로드웨이’ 자체의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을 해오기도 했다. 브로드웨이 공연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프로모션의 목적도 있었지만, 브로드웨이 내에서는 물론 미국 내 투어 프로덕션에 있어서도 브로드웨이 퀄리티의 프로덕션 (퍼스트 클래스 프로덕션) 을 다른 프로덕션과 구분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했다. 하지만 각기 다른 공연을 본 관객들의 다양한 경험을 ‘브로드웨이’라는 브랜드로 통합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만족스럽지 않은 작품을 관람한 한, 두 번의 부정적인 경험이 ‘브로드웨이’라는 브랜드에 타격을 줄 수도 있기에, 이는 개별 작품의 브랜드를 구축하는 일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브랜드로 승부하는 지역 비영리 공연장
롱 러닝 작품들이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는 것만큼이나 비영리 공연장들은 나름의 개성으로 특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편의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는 경우 10년, 20년 이상 장기 공연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한 해에 개막하는 작품의 20~30% 작품만이 겨우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5년 이상 공연되며 브랜드 가치를 키워가는 작품의 수는 이보다 훨씬 밑도는 수준이다. 하지만 매년 새로운 시즌작품을 선보이며 단체의 고유한 컬러를 유지해야 하는 비영리 공연단체는 브랜드 가치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한다. 개별 작품의 브랜드가 작품 한 편의 상품가치에 주목한다면, 비영리 공연단체는 관객들이 해당 공연단체를 믿고 작품 혹은 연간 회원권의 구매하도록 하기 위해 관객과의 신뢰도를 쌓아가는, 보다 장기적인 브랜딩 작업에 집중한다. 게다가 브로드웨이 작품들은 (상업 공연이든 비영리 단체의 공연이든 간에) ‘브로드웨이’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어느 정도의 브랜드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미국 내 각 지역에 포진하고 있는 지역 공연단체들은 사정이 다르다. 자체 시즌 작품으로 1년 내내 지역관객과 꾸준히 소통해야 하는 이 단체들이야말로 전 방위 브랜딩 전략을 필요로 한다.


지역 공연장들 중에는 브로드웨이 프로듀서가 직접 참여하는 투어공연 유치에 주로 활용되는 극장들도 있다. 하지만 대표적인 지역 비영리 공연장들은 자체 내 시즌을 운영하며 직접 제작에 나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 전역에 자리잡은 크고, 작은 비영리 공연장의 수는 수천 개에 달하지만 지역 공연장들의 공식 연합인 리그 오브 레지던트 시어터 (League of Regident Theatres) 에 속한 지역 공연장의 수는 76개에 이른다.

브로드웨이의 극장주·프로듀서 협회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이 단체는 지역 공연장들이 배우와 연출자, 안무가, 디자이너 등과의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기준이 되는 표준계약서를 각 노동조합과 협의한다. 비영리 공연단체들은 상업 공연에 비해 흥행의 성패에 덜 민감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에 새로운 작품의 개발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선다. 대부분의 비영리 공연단체가 새로운 프로제트의 개발을 각 단체의 지향점으로 두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각 단체의 미션이 다르듯 각 단체에서 제작하는 작품의 성격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이미 고전이 된 명작들을 새롭게 해석해 무대에 올리는데 주력하는 단체도 있고, 새로운 공연의 개발과 제작에 힘을 쏟는 단체도 있다. 가족과 어린이 관객을 위한 공연만을 제작하기도 하고, 미국의 작가에 의해 쓰여진 작품들로만 시즌을 채우는 공연단체도 있다.


지역 공연단체의 브랜딩은 일반적으로 상품이나 서비스의 브랜딩 과정에서 사용되는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 공연단체의 브랜드란 말하자면 그들만의 고유한 개성 (personality) 으로 대변될 수 있다. 브로드웨이의 작품들이 같은 시기에 공연되는 다른 작품들과 경쟁한다면, 비영리 공연단체들은 같은 지역에 있는 다른 공연단체들 사이에서 보다 확실한 자신들만의 색깔로 관객을 사로잡아야 한다. 특히 상업공연과는 달리 싱글 티켓의 판매보다는 재원형성을 위해 멤버쉽이나 서브스크립션 회원제로 고정적인 관객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비영리 공연단체들은 관객들의 신뢰를 얻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작업은 주위의 다른 공연단체들과 비교해 자신들의 강점과 약점이 될 수 있는 요소들을 정확히 짚어낼 필요가 있다. 앞으로 단체가 나아가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정하고, 스태프는 물론 이사진의 구성에서부터 운영방식, 작품 선정에 이르기까지 일정한 방향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목표와 지향점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의 주된 관객층이 어떠한 예술적인 요구를 갖고 있는가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지역의 사회적, 역사적 배경은 물론 직면한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지역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하면서도 단체의 목소리를 유지하는 방향을 설정해 나가야 한다.

 

라 호야 플레이하우스

 

 

브랜딩을 위한 예술감독과 이사회의 역할
비영리 공연단체의 지향점을 설정하고 그에 따른 작품과 프로그램들의 운영으로 브랜드를 구축해감에 있어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각 단체의 예술감독 (artistic director) 과 이사진 (board of trustees) 이다. 비영리 공연단체는 규모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크게 단체의 운영을 담당하는 매니징 디렉터와 프로덕션을 책임지는 아티스틱 디렉터의 체제로 나뉘어 운영된다. 이사진은 대게 그 지역을 대변하기 위해 다양한 계층과 직업군에서 선발되는데 단체의 인사권은 물론 운영에 있어 크고, 작은 결정에도 함께 의견을 모은다. 예술감독의 역할은 각 공연단체가 고유한 성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당 단체의 예술적 성향을 이해하고, 이에 따라 작품의 선정부터 프로그램 운영에 있어 적절한 선택을 내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또한 해당 지역의 관객들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그들의 예술적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지역의 관객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코네티컷 주에 위치한 롱 왈프 시어터 (Long Wharf Theatre) 의 예술감독인 골든 에델스테인 (Gordon Edelstein) 은 “비영리 공연장은 공립 도서관과 비슷한 서비스를 관객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베스트셀러나 신작도서를 우선적으로 비치해놓은 서점이 아니라 양질의 도서를 다양하게 갖추어놓은 공립 도서관처럼 지역 공연장은 여러 채널의 지원을 통해 운영되는 비영리 단체이니만큼 관객의 목소리에 보다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관객의 의견을 수렴하는 창구로 이사진의 역할을 강조한다. 평소 예술분야의 경험에만 국한된 자신의 한계를 일반회사, 은행, 관공서, 병원, 학교 등 다양한 분야에 몸담고 있는 이사회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채워주고 있다는 것이다.
<쏘롤리 모던 밀리>, <저지 보이즈>, <멤피스>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샌디에고의 라호야 플레이하우스 (La Jolla Playhouse) 의 현 예술감독이자 <올 슉 업>, <재너두>, <멤피스>의 연출가로도 유명한 크리스토퍼 에슐리 (Christopher Ashley) 는 예술감독의 역할 중 하나로 각 작품에 맞는 연출가와 크리에이티브 팀을 꾸려냄으로써 지역의 관객들에게 새로운 아티스트를 찾아주는 것을 꼽는다. 또한 자신들이 제작한 작품이 브로드웨이로 진출해 큰 성과를 내어온 것에 대해서는 “<멤피스>가 2010년 토니상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것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지만 지역 공연장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무엇보다 지역 관객을 위한 공연을 만들어내는 것”라고 이야기한다. “브로드웨이는 목적이 아니라 보너스”라고 강조하는 그는 실제로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이듬해인 2008년 지역 공연예술의 발전을 위해 레지던트 시어터 프로그램 (Resident Theatre Program) 을 신설했다. 샌디에고에 자리잡고 있는 영세한 공연단체들 중 가능성이 있는 단체를 선별해 일정 기간 동안 극장의 공간과 장비의 사용을 무상으로 지원하고 마케팅과 기부금 유치에 대해서도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2011년에는 지난해에 이어 샌디에고 아시안 아메리칸 레퍼토리 시어터 (San Diego Asian American Repertory Theatre) 가 선정되었으며 이들이 주최하는 제 2회 단편 연극 페스티벌이 개최될 예정이다.

비영리 공연단체의 브랜드는 공연을 관람하러 온 관객이 공연장에서 느끼는 모든 경험의 일부가 모여 만들어진다. 따라서 상업 공연들이 시도하는 단순히 티켓을 팔기 위한 수단이 아닌, 극장을 소유하고 있는 공연단체의 브랜딩 전략은 보다 다양한 방식에서 시도될 수 있다. 한 편의 개별 작품이 아니라 매년 운영되고 있는 연간 프로그램의 구성에서부터 공연장 공간의 활용, 교육 프로그램의 구성 등 관객들에게 제공되는 프로그램마다 각 공연단체만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요소는 다양하다. 공연예술에 있어 브랜딩은 ‘티켓이 아니라 경험을 파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관객이 어떤 공연단체를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경험이 곧 다른 공연장과는 구별되는 가치가 된다. 지원금과 기부금으로 재정을 확충하는 미국의 비영리 지역 공연장의 경우 단체의 존속을 위해서도 특화된 개성과 관객과의 적극적인 소통활동을 통해 각자의 지역 사회에서 독자적인 브랜드를 구축해가는 것이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8호 2011년 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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