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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무대에서 다시 만난 추억 속 연인 <러브 스토리> Love Story [No.88]

글 |정명주(런던통신원) 2011-03-04 4,586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여주인공을 그렸던 가슴 아픈 추억의 영화, <러브 스토리>가 영국산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연극 및 뮤지컬의 창작 산실로 유명한 치체스터 페스티벌 극장에서 지난 5월 처음 선보인 후, 뮤지컬 스타 마이클 볼이 전격 프로듀서로 나서면서 지난 12월 6일 런던의  더치스 극장에서 막이 올랐다.  원작 소설 및 영화의 작가인 에릭 시걸이 초연 직전, 4월에 타계하면서 뮤지컬 무대를 보지 못한 것을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 했지만, 그의 재기 넘치는 대사와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는 지방극장을 거쳐 6개월만에 웨스트 엔드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품격있는 음악과 재치넘치는 대사

영화의 주제곡으로 사용되었던 프랜시스 레이(Francis Lai)의 아름다운 사랑의 테마, ‘러브 스토리’가 그대로 살아있는 뮤지컬 <러브 스토리>는 영국의 중견 작곡가 하워드 구덜(Howard Goodall)이 작곡한 체임버 뮤직이 단아하고, 러닝타임 1시간 15분 가량인 간결한 작품이다.  ‘무슨 말부터 해야할까, 스물 다섯,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아야 했던 그녀의 이야기를 시작하려면’하고 말하는 남자주인공 올리버의 첫 대사를 그대로 살린 첫 번째 뮤지컬 넘버는 다소 어두운 분위기를 던지며 이야기를 열었다. 바흐와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피아니스트였던 여주인공 제니를 추억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그래서 4중주의 현악기와 어우러진 피아노 선율이 아름다운 곡들이 주를 이룬다. 특히 여주인공 제니역의 엠마 윌리엄즈가 직접 피아노로 주제곡 ‘러브 스토리’를 직접 연주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전반적으로 영화의 내용에 충실한 내용이면서, 감정을 억제하고 차분하게 이야기와 음악을 풀어간다. 그래서 원작 미국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눈물을 자아내는 멜로드라마틱한 감성은 부족하지만, 대신 두 주인공의 톡톡 튀는 재치 있는 대사를 영국적인 유머로 재현하면서 둘의 사랑이 발전되는 과정에 보다 초점을 두었다.


그런 의미에서, 원작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눈밭에서 제니와 올리버가 뒹구는 낭만적인 장면이라면, 영국인들이 만든 뮤지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제니가 올리버에게 파스타를 만들어주는 코믹한 장면이다. 무대 위에 부엌의 싱크대가 밀려 나오면, 제니 역의 배우 엠마 윌리엄즈는 실지로 무대 위에서 국수를 삶고 토마토소스를 만든다. 극장 안에 가득 고소한 소스와 올리브 오일의 냄새가 진동을 하고, 제니는 빠른 속도로 “링귀니, 리가토니, 페투치니, 카넬로니” 하면서 파스타의 이름을 열거하는 코믹한 뮤지컬 넘버, ‘파스타’를 부르며 요리를 한다. 5분도 채 되지 않는 노래가 끝나는 순간에 맞추어 ‘짠!’하고 파스타를 접시에 담아내는 그녀를 향해 객석에서 큰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엠마 윌리엄스의 재발견

이번 작품의 스타는 역시, 깜찍한 이탈리안 아메리칸, 제니 역에 열연한 엠마 윌리엄즈라고 할 수 있다. 단아한 단발머리에 깍쟁이 같은 얼굴을 가진 윌리엄즈는 까칠하면서 사랑스러운 제니를 훌륭하게 재현했다. 하버드대 재학생이자 아이스하키 선수인 부잣집 도련님, 올리브가 제니가 사서로 일하는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오면, 말 한마디 지지 않고 톡톡 쏘아붙이는 제니의 매력이 제대로 드러난다. ‘돈만 많지 머리는 나쁘죠?’하고 맹랑한 질문을 던지는 제니에게 ‘그쪽은 뭐가 그렇게 똑똑한데요?’하고 올리버가 묻는다. ‘왜냐면 난, 당신같은 사람이랑은 커피 마시러 안 갈거니까.’하고 대답한다. ‘누가 커피 마시자고 한데요, 그럴 생각 없는데’하고 올리버가 심통을 놓으면, 제니는 ‘그러니까 머리가 나쁜거지’하고 쏘아댄다.  원작영화에서도 유명했던 이러한 명대사들을 엠마 윌리엄즈는 맛깔스럽게 소화하며 큰 박수를 받았다.  뮤지컬  <치티 치티 뱅뱅>의 오리지널 캐스트로 시작하여, <투모로우 모닝 (Tomorrow Morning)>, <모델 걸 (A Model Gir)l>과 같은 소형 창작극에 출연한 바 있고, 웨스트엔드 작품으로는 <수잔을 찾아서(Desperately Seeking Susan)>, <조로(Zorro)> 등에서 주연을 맡으며 주목을 받기 시작한 배우이다. 새침한 용모에 맑은 음성의 풍부한 가창력을 소유한 재원으로, 이제 까지 출연작들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지만, 이번 <러브 스토리>를 통해 도약의 기회를 맞이한 듯 보인다.


반면, 어수룩한 부잣집 도련님, 올리버 역을 맡은 마이클 자비에르(Michael Xavier)는 이번 무대에서 가창력을 발휘하기는 했지만, 연 기면에서는 다소 위축되어 보인다. 올리버는 집안 좋고 학벌 좋은, 일명 `킹카`라고 할 수 있는 역할인데, 어쩐지 마이클 자비에르가 연기하는 올리버는 매력을 별로 찾아볼 수 없는 키만 크고 어눌한 청년으로 표현되었다. 특히 재력가이자 갑부인 아버지에 맞서 무모하게 반항하는 아들을 연기하는 장면에서는 괜히 목소리만 높이는 모습이 내면연기의 부족을 절감케 했다.  전작인 <오페라의 유령>에서 보여주었던 멋진 라울의 모습이나, 올 초, <숲속으로(Into the Woods)>에서 빨간 망토 아가씨를 유혹하는 변태 늑대로, 보이는 여자마다 눈길을 던지는 신데렐라의 바람둥이 남편, 프린스로 열연했던 그가 이번 무대에서 별다른 매력을 발산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오히려 제니의 아버지, 필 역을 맡은 피터 폴리카푸의 연기가 훨씬 돋보였다. 입이 걸걸한 고집이 세지만, 따뜻한 가슴을 가진 전형적인 이탈리아인 필은 파스타 가게를 운영하면서 홀애비로 혼자 딸 제니를 애지 중지 키워 온 아버지이다. 욕을 곧 잘하는 제니의 입심과 고집 센 성격은 그런 아버지에게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올리버와 결혼하기 위해 피아노를 그만 두겠다고 선언하는 제니 앞에, 목소리 한 번 크게 냈다가 본전도 못 찾는 아버지를 연기한 피터 폴리카푸는 인간미가 물씬 나는 인물을 재현하여 박수를 받았다.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서브 플롯 없이 단순하고 속도감 있는 이야기로 구성된 이번 무대는 각색자, 스티븐 클락 (Stephen Clark)의 손길이 많이 보였다.  작곡가 하워드 구덜과 함께 5년여에 걸쳐 완성했다는 이번 작품은 두 주인공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며, 두 사람이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약속하는 순간까지를 30분 여안에 숨 가쁘게 달려간다.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야외 장면들은 모두 실내 장면들로 대체되어 속도감은 배가 되었다.  때로는 맛깔 난 대사를, 사랑이 커가는 순간을 즐길 사이도 없이 너무 서둘러 몰아가는 것은 아닌 가하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원작에 담긴 유머와 재치는 대부분 그대로 살아 있었지만 한편으로 가슴 저린 사랑의 표현들은 많이 삭제되었다.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야’와 같은 명대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을 비롯하여, 눈물샘을 자극할 만한 순간들을 도려내어 버린 것은 아쉬움이 남았다. 대신, 원작영화에는 없었던 제니의 돌아가신 어머니를 무대에 소개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왠지 <빌리 엘리엇>의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작지만 알찬 무대

거의 축약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집약된 1시간 15분간의 무대는 연출가, 레이첼 카바나우 (Rachel Kavanaugh)의 신속한 동선과 무대전환으로 다이나믹함을 살렸다.  버밍험 레퍼토리 극장을 주무대로 하여 뮤지컬 <피터팬>, <오즈의 마법사>, 연극으로는 <벗꽃동산>, <바냐 아저씨>, <인형의 집> 등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상당한 경력의 연출가인 레이첼 카바나우는, 대사의 감칠맛을 잘 살리면서 두 주인공의 치고받는 앙상블을 훌륭하게 만들어 냈다.  무대를 온통 하얀 색으로 장식한 디자이너, 피터 매킨토시의 미니멀한 무대를 배경으로 대도구를 이용하여 좁은 더치스 극장의 무대공간을 적극 활용하는 효율성 있는 무대였다.


작곡가 하워드 구덜은 에미상을 비롯해 무수한 음악상을 수상한 경력의 작곡가로서 연극 및 영화, TV에서 활발하게 활약해 왔다. 특히 합창음악을 많이 작곡한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7명의 코러스를 활용한 가곡 스타일의 중창 및 합창곡을 많이 선보였다. 클래식한 느낌의 중창곡들은 감정이입을 하기 다소 어려운 절제된 미학을 선보이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총 15곡 정도가 선보인 이번 무대에서는, 코믹 넘버인 ‘파스타’와 함께 사랑의 듀엣 ‘우리가 아는 모든 것(Everything We Know)’이 서정적인 선율로 제일 큰 박수를 받았다.

 

 

 

조금 더 솔직했더라면

전반적으로, 뮤지컬 <러브 스토리>는 소박하고 단아한 작품이다.  단순한 무대 미학과 정제된 스토리 라인, 고상한 음악, 흠잡을 데 없는 연출로 영국적인 세련미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세계의 수많은 관객을 울리게 했던 명화, <러브 스토리>를 무대화하는데 그러한 영국적 접근이 최선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남기는 작품이기도 하다. 원작 영화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누구나 가슴 저린 장면, 그녀가 고통을 숨기며 애써 아무렇지 않아 하는 모습, 그 앞에서 무력해 하며 가슴이 미어지는 올리버의 모습 등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어느 정도 눈물어린 순간을 고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는 이 모든 장면들이 너무도 순식간에, 흘러가듯 처리되었다.  관객으로서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이미 제니는 병원 침대에서 숨을 거둔다.  그리고 다시 첫번째 뮤지컬 넘버가 합창으로 반복되면서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아름답고 멋졌던 그녀의 이야기를’ 하면서 막이 내린다.  


지나치게 감상적인 접근은 영국인들에게 호평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통념이기는 하다.  하지만, 근래 히트작인 <빌리 엘리엇>이나 <더티 댄싱>과 같은 뮤지컬을 보면, 분명 영국에도 분명, 눈물나는 스토리를 좋아하는 관객들이 존재한다.  지나치지 않는 선에서의 멜로 드라마적인 감상은 비극적 러브스토리를 그리는 데 어느 정도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런 맥락에서 뮤지컬 <러브 스토리>는 뭔가 5% 부족한 무대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감성이 부족하고 보다 애절한 선율이 부족하고, 무엇보다 뜨거운 가슴을 느낄 수 없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품이 괜찮은 `수작`인 것도 사실이다. 엠마 윌리엄즈의 연기가 훌륭하고, 하워드 구덜의 음악의 세련미가 탁월하고,스티븐 클락이 각색이 군더더기 없이 정갈하다.  다만, 너무 짧게 축약된 이야기가, 너무 이성적으로 각색된 작품의 톤이, 너무 고상한 음악이 울고 싶은 관객을 울지 못하게 할 뿐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8호 2011년 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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