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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인류를 구하는 4인조 아카펠라 뮤지컬 <바버쇼페라> Berbershopera [No.89]

글 |정명주(런던 통신원) 사진 |Manuel Harlan 2011-03-16 4,793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4인조 아카펠라 뮤지컬 시리즈로 지난 3년 간 꾸준히 큰 인기를 얻었던 바버쇼페라 Barbershop Opera 프로덕션이 최신작 <아포칼립스 노우!> Apocalypse No! 로 웨스트엔드에 입성했다. 2월 초까지 3주간 공연될 이번 작품은  밀레니엄을 맞아 지난 2천년 간의 인류 역사에 대한 감사결과보고서를 받아본 하느님이  인간세상은 구제불능이라고 결론짓고 인류의 멸망을 감행한다는 세기말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환상적인 화음과 개그쇼에 가까운 유머가 만발한 신나는 뮤지컬코미디이다. 

 

 

 

소박하고 기발한 이발소 사중창단
이번 작품을 직접 쓰고 연기한 4인조 극단, 바버쇼페라 프로덕션은 2008년 처음 단체를 결성하여, 데뷔 공연 <바버쇼페라>로 에딘버러 MTM 뮤지컬 시상식에서 창작뮤지컬 대상과 가사상을 수상하였고, 2008년 <바버쇼페라 II>, 그리고 올해 <아포칼립스 노우!>까지 연속 3년간 뮤지컬가사상을 수상한 바 있는 언어감각의 귀재들이기도 하다. 한국과도 인연이 있어, 2008년 오디뮤지컬에서 후원을 했던 MTM 뮤지컬 시상식에서 데뷔공연으로 `오디뮤지컬 창작뮤지컬상`을 받았고, 2009년 작품인 <바버쇼페라 II>의 경우는 2010년 대구뮤지컬페스티벌에 초청되어 최고남자배우상(롭 카스텔)과 최고여자배우상(라라 스텁스)을 거머쥐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4인조의 탄탄한 앙상블, 어디로 튈지 예상할 수 없는 기발한 스토리 전개는 그들의 독보적인 재능이다.
‘바버숍 쿼르텟’ Barbershop Quartet 즉 ‘이발소 사중창’이라고 할 수 있는 아카펠라 사중창단은 실제 1940년대 이발소에서 시작된 음악적 형식의 하나이다. 미국 오하이오에 있는 이발소집 아들들이 모여 만든 중창단, 밀즈브라더즈 The Mills Brothers 를 시작으로 해서, 뉴올리언즈를 비롯한 미국의 각지의 이발소 주변에서 실제로 흑인 가스펠 중창단들이 활동하였다. 그렇게 시작한 흑인 영가풍의 남성 사중창단은 악기 없이 보컬만을 사용하여 4명이 화음을 넣어 부르는 아카펠라 4인조 형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대개 리드 싱어인 멜로디를 선창하면 테너가 그보다 높은 음역으로 화음을 넣으며 따라 오고, 베이스와 바리톤이 저음으로 합세하면서 화음을 완성해 가는 형식이다. 대부분의 곡들은 쉬운 가사와 단순한 멜로디로 구성되며 애드립으로 리드미컬하게 화음을 넣는다.


이러한 바버샵 사중창단의 전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3년 전 영국의 뮤지컬계에 신선하게 데뷔한 바버쇼페라 프로덕션은, 남성 아카펠라 사중창단의 전통적인 포맷에 여성을 한 명 끼워 넣음으로써 재미와 새로운 화음을 더했다. 남성화음에 있어서도 약간의 변화를 두어 바리톤 없이, 테너에 롭 카스텔 Rob Castell 과 피터 소렐 카메론 Peter Sorel Cameron 이 선전하고, 베이스에는 톰 새들러 Tom Sadler, 그리고 여성 소프라노로는 라라 스텁스 Lara Stubbs 가 활약하는, 약간은 사이비 성격의 바버샵 사중창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예외적으로 여성을 포함한 혼성 이발소 사중창단, 바버쇼페라의 특징은 이들이 펼치는 스토리와도 연결된다. 첫 작품인 2008년의 <바버쇼페라>는 유로 이발사 오페라 경연대회에 참가하기로 한 남성4중창단이 테너를 맡은 친구가 도착하지 않아 대회참가를 못하게 된 설정으로 시작했다. 때마침 지나가던 한 아가씨가 시간 많은 소프라노 디바인 것을 알게 되고, 마침 그녀의 이름마저, 테너 친구와 같은 토니라는 것을 알고는 그녀를 감언이설로 꼬여서 함께 경연대회에 나가는 내용의 코미디였다.


이러한 설정은 세 번째 작품 <아포칼립스 노!>에서도 그대로 사용되었다. 하느님의 명령으로 묵시록을 수행하게 된  네 명의 기사 ‘악마’, ‘기근’, ‘역병’, ‘전쟁’, ‘죽음’이 말을 타고 사탄의 체육관에서 모이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죽음이 오지 않아 멸망 대작전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데, 마침 할로윈 파티에 가던 초등학교 여선생이 장난감 말을 타고 죽음의 사자 복장으로 나타난다. 파티장소인 ‘세인트 앤’ 체육관을 찾아 가던 길인 베스는 발음이 비슷한 ‘사탄’ 체육관으로 잘못 찾아온 것이다. 게다가 그녀의 이름 베스 Beth 는 죽음 Death 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하여 세 명의 묵시록의 기사들과 합류하게 된 베스가 4인조 기사단을 이루어 인류를 멸망시키러 떠났다가 우여곡절 끝에 신의 계명이 적인 두루마리를 찾아내어 오히려 인류를 구제한다는 황당무계한 내용이다.

 

 

 

인간세계를 구하는 40년대 스윙 뮤직
공연이 시작하면 별도의 대도구 없이 번호가 써진 상자 네 개만 놓여있는 빈 무대에, 밀레니엄 감사결과를 요구하는 위엄 있는 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어 감사를 맡았던 천사, 라파엘, 유리엘, 가브리엘 등이 허둥지둥 등장한다. 후광 모양의 흰색 머리띠를 두른 네 명의 천사들은 멋진 재즈풍의 노래 ‘오 신이여’를 통해 하느님과 대화한다. ‘바바라람바~’식의 코러스가 리드미컬한 이 첫번째 뮤지컬 넘버의 요지는 인류는 가난과 권력, 공해, 그리고 바람 제대로 안나오는 핸드드라이어 때문에 이제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신이 묻는다. 왜 하필 핸드드라이어냐고. 유리엘 천사가 대답한다. 손 씻고 바람 제대로 안나오는 핸드 드라이어에 손 말리는 것처럼 짜증나는 일이 어디 있냐고. 그게 바로 인간세상이 잘못되어가고 있는 증거라는 것이다. 그렇게 어이없이 묵시록의 시행이 결정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귀여운 동요풍의 노래가 즐겁게 들리는 초등학교 교실이다. 꼬마 세 명이 연말 성극을 준비하며 예수의 탄생 장면을 연습하고 있고, 여선생 베스가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꼬마 세 명은 상자에서 순식간에 나타난 손 인형 세 개로 표현된다. 이 때 교장선생님이 나타나 성극연습은 필요 없다고 말한다. 어설픈 의상에, 되지도 않는 연기로 학부모들한테 창피나 당한다면서 그만두라고. 그리고 이 학교 자체가 내년부터 문을 닫기로 했다는 청천 벽력같은 소식을 전한다. 베스는 흥분하면서 ‘나한테 이럴 수가?’  How Can You Do This To Me 를 디바 팝가수 스타일로 멋지게 열창한다. 아이들(남자배우들)이 옆에서 사랑스럽게 코러스를 넣는 가운데.  


다음 장면은 사탄의 체육관에서 묵시록의 기사들, 전쟁, 역병. 기근, 이렇게 세 명이 사뭇 비장한 서사적 분위기를 흉내내며 ‘Man on Horse’를 노래하며 등장한다. 그들은 네 번째 기사, ‘죽음’이 아직 오지 않는 것을 의아해 하는데, 때 마침 나타난 것은 죽음의 사자 복장을 한 초등학교 여선생 베스이다. 어리둥절한 상황 속에 베스는 묵시록의 네 번째 기사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얼떨결에 엮인 베스는 인류가 멸망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 꼬치꼬치 캐묻게 된다. 그러다가 알게 된다. ‘기근’은 사실 요리와 음식을 매우 좋아하는 가정적인 기사이며, ‘전쟁’은 친구를 사랑하는 온순한 성격이고, ‘역병’은 위생관념이 사뭇 철저한 완벽주의자이며, 기본적으로 모두 평화주의자라는 것을. 지옥에서 왔지만, 사실 천국에 가기 위해 이번 임무를 맡게 되었다는 세 명은 흥겨운 알앤비 버전의 뮤지컬 넘버를 통해 자기들에 직업에 대한 불만을 절절히 토로한다. 마치 직장인들처럼. 그리하여 베스에게 역전의 기회가 온다. 그녀는 40년대 스윙 뮤직 풍의 노래를 통해 천국에 가고 싶다면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 아니라, 인류를 구제하면 되지 않느냐고 설득한다. 결국 그들은 잃어버린 3계명이 적힌 두루마리를 찾아서 그것을 실현함으로써 인류 구원 대작전을 시행하기로 한다.  
이어지는 상황들은 더욱 황당무계하게 전개되면서 네 주인공들이 종횡무진 하는 가운데 극의 속도감이 더해진다. 계명이 적힌 두루마리를 가지고 있다는 러프티 수녀님을 찾아갔다가, 5000명의 고아들에게 밥을 해주게 되고, 두루마리의 자물쇠를 열기 위해 열쇠를 가지고 있는 해적 스쿱멜론볼을 찾아 먼 길을 떠난다. 피터팬과 매우 닮은 퍼시햄과 결투 중이던 스쿱멜론볼 선장은 후크선장과 매우 닮았다. 이렇게 묵시록은 동화와 섞여들고 스토리는 점입가경으로 판타지 모험 소설처럼 발전한다.

 

 

 

 

극적 완결성을 갖춘 웨스트엔드 판 바버쇼페라
흥미로운 점은 이번 런던 웨스트엔드 공연의 후반 내용은 작년 여름 에든버러의 버전을 대폭 수정, 확장시킨 버전으로 스토리의 전개가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에든버러 공연의 경우는 프린지의 성격상 60분으로 제한된 러닝타임에 맞춘 공연이었고, 내용면에서는 묵시록의 수행이라는 설정까지는 같았지만, 인류 멸망의 원인을 돈, 사랑, 정치, 바람 잘 안나오는 핸드 드라이어로 설정하고, 각 요인을 사전에 인류역사에서 제거하기 위한 인류구제작전이 벌어졌다. 예를 들면 돈을 없애기 위해서는 화폐가 사용되기 이전인 고대 맘모스가 거닐던 물물교환시대로 돌아가 화폐 자체의 발명을 막아버렸고, 요크셔 푸딩을 먹으면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는 배리 화이트라는 남자를 찾아가서 요크셔 푸딩의 배급을 끊어 버렸으며, 시민사회의 개념이 생기기 직전인 고대 그리스를 찾아가 사람들에게 우조 술을 잔뜩 먹여서 정치적인 사고 자체를 못하게 막아버리는 것이 주요 여정의 내용이었다. 그리고 물론 핸드 드라이어를 발명한 독일 발명가를 찾아가 그가 만든 모든 기계를 부셔버리는 폭력적인 해결도 잊지 않았었다.


그에 비해, 80분 길이로 늘어난 이번 런던 공연은 묵시록과 계명에 연관된 성경의 내용들을 확대 사용하면서 전체적으로 통일성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 내었다. 예를 들면 결말 부분의 경우에는 우여곡절 끝에 입수한 두루마리에 적힌 계명이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선택된 자만이 읽을 수 있는 것이라는 설정을 추가하였다. 그리고 그 선택된 자가, 어린이 성극에서 예수 역을 하던 꼬마였으며, 그가 계명의 내용이, 깨끗이 씻고(반-역병), 친구를 만들고(반-전쟁), 밥 잘 먹으라(반-기근)는 것이었음을 확인하게 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는 보다 에피소드 중심으로, 축제 성격에 맞는 상황 코미디로 풀어내었다면, 이번 웨스트엔드 공연은 성경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앞뒤가 딱 맞는 극적 구성력에 보다 신경 쓴 작품으로 재구성하였다. 

 

 

 

 

관록과 재능을 가진 네 배우의 앙상블
공연적인 면에서 바버쇼페라 프로덕션의 매력과 장점은 여전했다. 순간적으로 상황이나 배경을 이동하는 연극적 재치, 소품 하나를 이용해 간단히 인물을 표현하고 역할을 변경하는 순발력, 거기에 연극적 상상력이 최대로 동원되면서 극적 재미를 증폭시킨다. 후광 모양의 흰색 머리띠를 쓰면 천사가 되고, 그것을 벗고 고개를 돌리면서 후드를 뒤집어쓰면 지옥에서 온 묵시록의 기사들이 되는 것이다. 특히 인류멸망을 앞두고 천사들과 지옥 기사간에 논쟁을 벌어지는 장면에서는 초속으로 머리띠를 쓰고벗기를 반복하면서 4명이 동시에 일인 이역을 하는 모습이 커다란 박수를 받았다.  이렇게 코메디아 델 아르떼를 연상케 하는 온 몸으로 보여주는 희극이 바로 바버쇼페라 4인조의 장기이다.  여자 역할을 능글맞게 연기하는 남자배우들의 연기는 박수를 자아내고, 빠르게 주고받는 대사에 담긴 재치와 장난기에 폭소가 터져 나온다.
특히 남자배우 롭 카스텔 Rob Castell 과 톰 새들러 Tom Sadler 가 직접 쓴 대본은 뜬금없는 상황전개, 감칠맛 나게 맞춘 운율, 각종 영화의 패러디 등으로 재기발랄하다. 표정 연기가 일품인 롭 카스텔은 때로 엉터리 이탈리어를 절묘하게 사용하며 제법 오페라다운 발성으로 열창을 선보이는 훌륭한 연기자이다. 어수룩한 표정의 피터 소렐 카메론 Peter Sorel Cameron 은 노래 실력은 다소 부족하지만 성실한 연기를 통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그리고 아리따운 미모에 독보적인 노래 실력까지 갖춘 라라 스텁스 Lara Stubbs는 그야말로 무대의 꽃이 된다.

 

 

이렇게 4명의 배우가 만들어내는 앙상블은 연출가 사라 티플 Sarah Tipple의 터치가 더해져 에너지와 속도감이 넘치는 신나는 무대를 만들어 낸다.
음악적으로 바버쇼페라 프로덕션의 <아포칼립스 노우!>는 바버샵 쿼르텟의 정통성을 잇는 작품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코미디로 재탄생한 이들의 `바버쇼페라`는 또 다른 사중창단의 역사를 만들면서 남 못지않은 화음을 자랑한다.  노래 스타일에 있어서도 흑인영가풍에서, 재즈, R&B, 팝송, 탱고, 발라드, 동요, 민요 등 다양한 형식을 넘나들며 풍성한 하모니를 시도한다.  허리에 차고 다니는 피리 하나로 음을 맞추며 즉석에서 화음을 만드는 그들의 아카펠라는 마치 마법처럼 진기하다. 그래서 마법같은 매력의 바버쇼페라 프로덕션, 그들의 신작은 또 어떤 모습일지 올 여름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9호 2011년 2월 게재기사입니다.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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