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인터뷰 | 박일규 교수의 NYU 체험기(1) ‘10분짜리 뮤지컬’을 만드는 기쁨 [No.91]

글 |박일규 사진 |박일규 2011-05-06 5,859

2011년 2월 2일 아침 10시에 내린 케네디공항은 눈비가 뒤섞인 강풍이 불고 있었다. 1980년대의 JFK공항청사를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커다란 사진 속에서 “Welcome to New York!`하며 반겨주는 러시아의 전설적인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였다. 그러나 당시 아메리칸 발레시어터(ABT)의 예술감독이었던 그가 사라진 이후 뉴욕을 대표할 만한 독보적인 예술가가 탄생하지 못한 때문인지 세계 최고의 문화예술의 도시인 뉴욕에 왔다는 설렘이 예전보다는 덜 하였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공항 밖에서는 아무도 날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 교포 한 분이 슬며시 다가와서 맨하탄까지 나가시 택시 제의를 해왔다. 그 분 덕택에 편안하게 들어선 이스트빌리지 4가에 위치한 라마마 에넥스극장(La MaMa Annex Theater)은 이제는 엘렌 스튜어트극장으로 이름이 바뀌어져 있었다. 그리고 마마는 더 이상 이 극장에 살지 않았다. 마마가 살아 있었다면 날 무척이나 반겨주었을 텐데…1) 마마와 나는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에 연출가와 배우로 만났었다. 1998년 나는 이태리 스폴레토에서 매년 여름에 열리는 라마마 움브리아연극제(LA MaMa Umbria Theater Festival)의 개막식에 초청을 받아 참가하였다. 개막식공연을 마친 후 연출가 안드레이 서번(Andrei Serban)과 톰 호건(Tom O`Horgan)2) 등의 연기워크샵에 참여하기 위해 6주간을 더 머물렀고 마마가 연출한 작품 <속죄Redemption>에 배우로 출연하며 그녀와 가까워졌다. 그 당시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있었으나 영화 <언페이스풀>에서 리처드 기어와 공연한 다이안 레인이 딸을 데리고 방문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다이안은 어릴 때부터 라마마를 드나들며 배우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마마를 깊이 사랑했다. 그녀는 <속죄>의 리허설 도중 연습실에 들어왔다. 때마침 나는 대금을 불며 장구를 치고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그녀는 내가 휘몰이장단으로 가락을 바꾸자 갑자기 뛰쳐나가더니 거의 삼십분 이상 미친 듯이 즉흥 춤을 추었다. 하얀 대리석 벽으로 둘러싸인 연습실에서 신들린 무당처럼 춤추던 다이안과 그걸 보며 박수치며 흥겨워하던 마마의 모습을 생각하니 아득히 멀어져 간 시간에 대한 회한에 갑자기 몸이 떨린다.
 
나는 마마의 뒤를 이어 La MaMa의 예술감독이 된 미아 유Mia Yoo3)의 배려로 라마마 기숙사에 머물게 되었다. 엘렌 스튜어트극장 4층의 기숙사에 들어서니 한 방에 4명이 쓸 수 있도록 간이침대들이 놓여 있었고 옆 침대에 있던 마마의 손자인 토마스가 날 보고 머쓱하게 인사를 건네 왔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누었으나 그 이후로 이 기숙사를 떠날 때까지 한 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미아 유는 내가 지내기엔 부적합하다고 만류했으나 나는 이곳이 편안했다.4) 그 이유는 이곳이 1984년 뉴욕대학원 시절에 안무했던 <춘궁기>라는 현대무용을 공연했던 장소이기도 했지만 마마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 더욱 그랬다.
 

뉴욕의 라마마 클럽극장 입구에 있는 故 엘렌스튜어트 여사의 사진 앞에 선 미아 유 예술감독

 

 

2월 초였으나 뉴욕대학교의 2학기는 이미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2009년 12월 풀브라이트재단의 펠로우쉽이 결정된 직후 나는 모교인 뉴욕대학원의 뮤지컬창작과에서 나의 프로젝트를 연구·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일 년에 걸친 교섭 끝에 티쉬예술대학 학과장인 사라 슐레징거(Sarah Schulezinger)는 나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졸업한 지 26년 만에 꿈에 그리던 방문학자(Visiting Scholar)가 되어 NYU에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교수아파트에 살 수 없는 것을 제외하곤 교수나 다름없는 위치에서 연구와 공부를 하게 된 것이 나는 너무 행복했다.


3월의 도시 뉴욕에는 벌써 봄이 내려앉았다. 성급한 사람들은 벌써 반소매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 오늘 크런치라는 헬스클럽에서 빈야샤 요가를 마치면서 날 뉴욕에 보내주신 모든 사람들과 이 도시에 감사했다. 그동안 나의 정신은 황폐해졌고 현대무용가였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정도로 몸도 망가져 있었다. 고혈압과 당뇨가 시작되었고 관절마다 성한 곳이 드물었다. 그러나 뉴욕의 한 달은 여러 측면에서 나를 변화시켜 주었다.


NYU 재학시절 나는 스타인하르트교육대학의 전자음악과에서 전자음악을 부전공으로 선택하였다. 1982년은 전자음악의 초기로 미디혁명5)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전자음악을 기초로 하여 무용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고 귀국 후에도 연극음악 등 꽤 많은 공연음악을 작곡할 수 있었다. 이번 풀브라이트에 제출한 프로젝트에도 뮤지컬 작곡이 포함되어 있었고 연구기관으로 GMTWP를 선택한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1년과정의 학생들의 창작실험실 수업인 「10분짜리 뮤지컬」만들기 발표회

때론 브로드웨이의 전문배우들이 초빙되어 오기도 한다.

 

 

마침내 GMTWP를 비롯한 티쉬예술대학의 모든 수업을 듣고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내게 주어졌다. 그래서 처음 들어간 수업이 일 년 과정의 ‘10분짜리 뮤지컬’ 수업이었다. 이 수업은 대본·작사·작곡가들이 한 팀이 되어 일주일에 한 번씩 10분짜리 뮤지컬을 작곡·발표하면 학생들과 세 명이상의 교수들이 비평을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리라이팅Rewriting을 하여 그 다음 주에 다시 발표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수업을 지켜보면서 학생들의 진지함과 팽팽한 긴장감 그리고 그들의 전문가적인 수준과 냉혹하리만큼 신랄한 학생들과 교수들의 비평에 “아! 이래서 이 학과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구나!”라고 탄복하였다. 대부분의 교수들이 토니상을 탔거나 후보에 올랐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 그들의 비평 한마디 한마디는 학생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고 있었다. 특히 학과장인 사라 슐레징거에 대한 학생들과 교수들의 존경과 믿음은 가히 절대적이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오늘의 GMTWP의 명성과 성공은 사라의 헌신적인 노력과 능력으로 인해 가능했다고…

 

 

극작가이며 학과장인 사라 슐레징거 교수

 

 

GMTWP는 새로운 뮤지컬과 오페라의 창작을 위하여 작곡·작사·대본의 협동작업에 주안점을 두고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에 설립되었고 학생 개개인의 예술관을 바탕으로 형식과 내용의 완벽한 결합과 독창적인 방법을 통한 뮤지컬과 오페라의 창작을 교육의 목표로 삼았다. 학생들은 2년 과정을 통하여 창작의 협업기술, 개작, 독창성의 계발, 스토리텔링, 콘텐츠개발을 강화하는 웍샵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2년 과정 기말의 전막 졸업공연을 위해서 브로드웨이의 현장에서 활약하는 연출가와 배우들이 초청된다. 전반적인 커리큘럼은 전통적인 교육과정에서 탈피하여 협업을 강조한다. 이 협업은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본 개념이다. 대부분의 수업은 전임교수(Core)과 초빙교수(Adjunct)들로 구성되는 팀티칭으로 진행되며 학생들도 2~3명의 한 팀으로 구성되어 수업에 참여한다.

 

그리고 모든 수업은 창작실험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1년 과정에서 학생들은 교대로 돌아가며 팀을 이룬다. 그들은 동료들과 함께 구상하고 토론하며 쓰고 다시 고쳐 쓰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렇게 창작된 작품을 동료와 교수들 앞에서 발표한 후 피백과 비평을 받게 된다. 때로는 마이클 존이나 시빌 또는 레이첼같은 현재 미국의 최고의 대본가와 작곡자들인 교수들의 비평이 너무나 정확하고 혹독하여 학생들은 상처를 받기도 하고 학생과 교수 간에 난상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학생들의 예술적 소양과 장인적 기량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창작실험실의 1년 과정 초반의 학생들은 독백, 대화, 다양한 노래의 스타일, 짧은 장면들로 구성된 ‘특정한 시점(Moments`에 대해 쓰는데 몰두한다. 그리고 여러 시점들로 이루어진 전체의 스토리텔링의 세계를 탐험하며 1년 과정 후반 내내 단막 뮤지컬을 쓰는데 총력을 기울이게 된다. 2년 과정의 학생들은 전막 오리지널뮤지컬의 창작에 심혈을 기울여 정해진 시간 안에 초고를 완성해야한다. 그리고 완성된 초고를 가지고 전문배우들과 리딩의 시간을 가지며 리라이팅6)을 시작한다.


창작실험실을 지원하는 수업으로 각종 세미나수업이 있다. 1년 과정은 주로 20세기의 미국의 연극과 뮤지컬의 창작자들에 대한 연구를 중심으로 하고 2년 과정은 브로드웨이 현장과 연계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의 교수들이 최고의 현업 작가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과 친분이 있는 최고의 프로듀서들이 초빙교수로 오는 등 가장 이상적인 산학협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하면 일급 교수들이 있기에 그 주변의 일급 예술가들이 강의에 초빙되고 따라서 학생들도 졸업과 동시에 브로드웨이 뮤지컬 창작집단의 최상위층에서 그들의 경력을 쌓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1기 졸업생인 위니 홀츠만(Winnie Holzman)은 <위키드>의 대본으로 토니상의 후보에 올랐으며 드라마데스크 어워드를 수상하였다. 그녀는 1984년 재학시절에  스테판 손드하임, 할 프린스, 아서 로렌츠, 베티 콤덴, 아돌프 그린, 레너드 번스타인7) 등 최고의 교수들에게 사사받았다.

 

 

가운데가 <위키드>의 작가 위니 홀츠만 

 20기인 2년 과정의 학생들로서 오른쪽의 한국유학생은 이윤미 황민정

 

 

전임교수들로는 작곡전공의 프레드 칼(Fred Carl)과 멜 마빈(Mel Marvin)교수, 대본과 작사 전공의 마틴 엡스타인(Martin Epstein,) 로버트 리(Robert Lee), 시빌 피어슨(Sybille Pearson), 그리고 학과장인 사라 슐레징거 등이 있고 대표적인 초빙교수들로는 마이클 존(Michael John), 마르고 라이언(Margo Lion), 레이첼 쉔킨(Rachel Sheinkin), 윌리암 핀(William Finn), 마리 코스탄자(Marie Costanza)를 비롯한 23명의 비상근교수들8)이 있다. 그러나 여섯 명의 전임교수들이 오랜 시간동안 동고동락하며 GMTWP를 위해서 희생적 헌신을 함으로써 전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성공적인 교육과정이라는 오늘날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현재 미국의 뮤지컬은 역사적으로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 제롬 컨, 오스카 해머슈타인 2세, 스테판 손드하임 등이 혁신적으로 발전시킨 형식으로 충전되었던 창조적 에너지는 이제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1950년대에는 뮤지컬넘버들이 빌보드차트의 상위권을 독차지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록뮤직이 미국의 대중적인 음악계에서 브로드웨이뮤지컬 음악을 완전히 밀어내었다. 그동안 록뮤직은 지속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였고 브로드웨이 뮤지컬음악 역시 ‘브로드웨이의 사운드’라는 독자적인 체계를 완성시키면서 발전해왔으나 대중음악과 서로 조화를 이루지는 못하였다. 그 결과 시대에 뒤떨어진 음악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제 새로운 극작가와 작곡가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미국 뮤지컬의 미래는 없다. 그들의 등장은 새로운 형식의 뮤지컬의 탄생을 위한 횃불에 불을 붙일 것이다. 그래서 NYU의 GMTWP의 존재는 더욱 소중해지고 그 가치는 더욱 높아지는 것이다.


창작실험실을 통한 만들어진 ‘10분짜리 뮤지컬’과 ‘20분짜리 뮤지컬’의 발표수업과 그 리라이팅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교수들에게 이 작품들을 사장시키지 말고 활용할 것을 제안했으나 그것을 수용할만한 학과나 단체가 마땅치 않았다. 티쉬예술대학의 연기과에서는 <카바레>, <유린타운>, <암살자들>같은 전통적 뮤지컬을 위주로 실습작품으로 올리고 있기 때문인지 뉴웨이브 뮤지컬9)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같은 예술대학이며 같은 건물에 공존하는 연기과와 뮤지컬창작과가 서로 연계, 순환되지 않는 것은 뜻밖이었다. 또한 스타인하르트교육대학 보컬퍼포먼스학과(Vocal Performance Program 역)시 손드하임과 그 이전의 뮤지컬작품을 실습하는데 그치고 있었다.10) 나는 서울예술대학 연기과의 ‘공동창작실습’수업과 NYU의 GMTWP의 ‘10분짜리 뮤지컬’의 ‘창작실험실’수업을 연계하는 아이디어를 착안해냈고 결국 두 대학의 승인을 얻어냈다.

 

이스트빌리지 그레이트 존스街에 있는 서울예대의 컬쳐허브 스튜디오에서 안산의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필자

 

 

이것은 서울예술대학이 오래 전에 뉴욕의 이스트빌리지에 뉴욕과 안산을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화상수업을 위한 컬쳐허브Culture Hub라는 스튜디오를 설립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더욱 바빠졌다. 나는 요즘 뮤지컬작곡 프로젝트와 화상수업,「10분짜리 뮤지컬」과 「20분짜리 뮤지컬」의 대본과 가사의 번역작업, 요가수업, 보컬퍼포먼스학과의 브라이언 길(Brian Gill)교수에게 받는 보컬 개인렛슨 등으로 눈 코 뜰 새 없다는 말을 실감하며 뉴욕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각주)-----------------
1)마마는 故 엘렌 스튜어트Ellen Stewart의 애칭이다. 1950년대 패션디자이너로 출발했던 그녀는 라마마La MaMa, E.T.C. (Experimental Theatre Club)를 설립하면서 연출가, 제작자로 변신하였고 제 3세계의 연극인들을 뉴욕무대에 소개했다. 그녀의 연극활동으로 인해 Off- Broadway라는 용어가 생겨났을 정도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연극계에 끼친 그녀의 공로는 지대하였다. 마마는 오랫동안 심장병을 앓아오다 2011년 1월 13일 91세의 일기로 뉴욕시의 베스 이스라엘병원에서 영면하였다.


2)안드레이 서반은 루마니아 태생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연출가이다. 새롭고 혁신적인 연출과 무대로 유명하다. 1992년부터 미국의 콜럼비아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 소개된 작품은 <트로이의 여인들>이 있다. 톰 호건은 미국의 영화감독이자 뮤지컬연출가이며 배우 작곡가 연주가로도 활약했다. 그는 총체연극을 추구했으며 대표적인 작품들은 <헤어>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등이 있다. 나는 그의 작품 <형제들Brothers>에서 예수로 출연하였다. 동양예수를 놓고 내 방밑의 창가에 와서 연출자에게 항의하던 이태리배우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3)미아유는 미국 콜럼비아대학 연극과 졸업생으로 연출가 안드레이 서번과 크리스틴 링크레이터에게 사사받았으며 1995년부터 라마마의 그레이트 존스 레퍼토리극단(Great Jones Repertory Company)의 단원으로 활약하였다. 그녀는 로얄쉑스피어극단과 덴버연극센터의 합작품인 <탄탈루스Tantalus>에서 주역으로 발탁되어 엘렉트라, 이피게니아, 헤르미오네 등을 연기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50여년의 역사를 가진 라마마의 제2대 예술감독으로 세계 인류의 소통과 평화를 추구했던 엘렌의 비전을 실천하는 동시에 젊고 신선한 에너지를 가지고 라마마의 프로그램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 그녀는 현재 라마마의 예술감독 외에 라마마움브리아연극제, 극작가웍샵, 라마마 무브스댄스페스티벌 등의 총감독 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인으로서 미국 내에서의 그녀의 위치는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그녀는 서울예대 유덕형총장의 외동딸이기도 하다.


4)언제나 뉴욕에 오면 무의식적으로 몸을 사리게 된다. 그것은 궁핍의 극치를 경험했던 유학생 생활 때문일 것이다.


5)MIDI는 Musical Instrumant Digital Interface의 약자로 모든 악기 간에 서로 디지털 호환을 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6)졸업생인 김혜영의 경우 <선 피쉬sunfish>를 미국 보스톤무대에서 초연하는데 8년동안의 리라이팅을 했다.


7)특히 레오니드 번스틴의 학생들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그는 학생들을 집으로 데려가 밤을 새며 강의를 하였고 아침을 먹고 계속해서 강의를 할 정도로 GMTWP에 대해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8)학과 교수들에 대해서는 추후에 자세하게 소개한다.


9)나는 GMTWP에서 만들어지는 뮤지컬들을 뉴웨이브 뮤지컬New Wave Musical Theater라고 부르고 싶다.

10)NYU의 뮤지컬관련학과는 MFA학위의 GMTWP, BFA와 MFA학위가 있는 연기과와 Vocal Performance Program 등 세 학과가 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1호 2011년 4월 게재기사입니다.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