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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런던] 런던 코미디 극장의 뮤지컬 <선셋 블러바드(Sunset Boulevard)>1 [No.65]

글 |구지혜(런던통신원) 사진 |Alastair Muir 2009-02-16 8,506


공간은 침묵하지 않는다
런던 코미디 극장의 뮤지컬 <선셋 블러바드(Sunset Boulevard)>

 

우리나라 식당의 간판을 보면 유독 ‘원조’ 혹은 ‘오리지널’이란 단어를 자주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오리지널, 원조에 거는 기대감을 의식해서일까? 하지만 정작 너무 ‘오리지널’이 많아 무엇이 진짜배기인지가 헛갈릴 때가 많다.
최근 웨스트엔드의 많은 제작자들은 사뭇 우리나라의 ‘원조’ 식당 간판들처럼 원조보다 더 원조 같은 리바이벌 작품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본래 많은 자본이 요구되는 대형 프로덕션들을 소규모로 축소시켜 새롭게 만들어내는 작업들이 한창인데 이중 대표적인 것이 스티븐 손드하임의 뮤지컬 <스위니토드>와 <소야곡>,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선셋 블러바드>(이후 선셋), 그리고 질 산토리엘로(Jill Santoriello)의 <두 도시 이야기>등이 있다.
소극장에서 본래 대형 프로덕션이었던 작품을 재구성해서 담아내는 작업은 큰 극장에서의 작업보다 훨씬 위험부담이 크다. “오리지널” 프로덕션이 관객들에게 각인시킨 강한 이미지를 바꾸고 실험적이지만 결코 어설프지 않게 만들어야 하는 부담감이 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프로덕션에서는 잘 드러내기 힘든 창작자들과 배우들의 창의력이 돋보일 수 있다는 장점도 갖고 있다.

 

 Norma Desmond(Kathryn Evans), Photo by Alastair Muir


 

숨 쉬고 일어나서 뛰어라, 공간은 침묵하지 않는다

 

뮤지컬 <선셋>이 스테이지 뮤지컬로 처음 등장한 것은 1993년, 런던이었다. 빌리 와일더(Billy Wilder)의 1950년 영화를 바탕으로 로이드 웨버가 작곡, 돈 블랙(Don Black)과 크리스토퍼 햄튼(Christopher Hampton)이 작사한 <선셋>은 트레번 넌이 연출해서 아델피 극장(Adelphi Thea)에 올려졌다. 하지만 <선셋>을 본 평론가들의 대다수가 <선셋>의 음악이 너무 반복적이며 거대한 공간과 제작비를 요구하는 무리한 작품이라며 혹평했다.

물론 평론가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선셋>을 사랑했고, 같은 해 LA 공연을 시작, 캐나다, 독일, 호주 등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2001년 영국 투어 공연을 끝으로 <선셋>은 무대에서 잊힌 공연이 되고 말았다. 로이드 웨버는 3년 전 플레이빌(www.playbill.com)과의 인터뷰를 통해 “<선셋>이 돈이 좀 많이 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제작비를 줄일 방법을 누군가 찾는다면 우리는 <선셋>을 다시 무대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라며 아쉬워했다.

 

근본적인 제작 여건에 대한 애로사항은 로이드 웨버에게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늘 무거운 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8년 겨울, 런던의 중극장인 코미디 극장에서 로이드 웨버의 소망대로 제작비를 최소화한 새로운 모습의 <선셋>이 부활했다.

<선셋>의 무대는 심플하고 상징적인 몇 가지의 소품들과 장치들로 이뤄져 있다. 먼저 무대의 중심에 주인공 노마 데스몬드의 저택의 계단이 놓여있고 그 계단 아래 노마의 소파와 피아노 그리고 몇 개의 의자 등이 있으며 그 주변엔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이 카바레 공연장처럼 둘러싸고 있다. 놀랍게도 주인공 노마와 조를 비롯한 총 13명의 배우들은 배우의 역할은 물론이요, 오케스트라의 연주자, 무대 위의 장면 전환을 해주는 스테이 매니저, 각가지 효과를 전담하는 음향효과 등 일인 다역 역할을 해낸다. 특히 13명 배우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펼치는 첫 장면은 인상적이다. 악기를 때로는 악기가 아닌 또 하나의 배우처럼, 또 하나의 소품처럼, 때로는 또 다른 공간처럼 제약과 형식을 깨고 썼다.

 

이렇게 악기와 배우의 혼연 일체된 모습은 ‘조의 미스터리한 죽음’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호기심과 공포감을 마구 뒤엉켜 충돌하게 하고, 이 엄청난 사건에 직면한 무대 위 인물들의 혼돈된 감정을 실타래처럼 얽어놓기에 충분했다. 배우가 직접 연주에 연기까지 하는 방식의 공연 기법은 최근 웨스트엔드에서 낯설지 않은데 작년 거의 두 시즌을 충격과 감동으로 선사하고 갔던 더 시네마 헤이마켓의(The Cinema,    Norma and Max Von Meyerling(Dave Willetts), Photo by Alastair Muir

Haymarket) 브리프 인카운터(Brief Encounter)가 좋은 선례다. 하지만 <브리프 인카운터>가 영화 스크린과 라이브 연극 무대의 시공간적 거리감과 거친 이음새를 좀 더 자연스럽고 연결하고 예술적으로 승격시키기 위해 배우들에게 연주와 연기를 넘나들게 했다면 <선셋>은 작은 무대 공간을 단 1센티도 침묵하지 않게 하기 위한 시공간적 풍부한 원근감과 ‘무대는 비록 작지만 결코 작지 않다’는 역설적인 묘미와 자유로운 움직임을 허락하기 위해 배우가 연주도 하고 연기도 하고 노래도 부른다.

또 최소화된 소품들의 눈부신 활약상-이를 테면 의자가 문이 되고 의자가 되고 다시 간판이 되는-에 준하여 악기들도 배우의 분신이면서도 또 다른 소품과 또 다른 배우로서 놀랍게 변신한다. 이렇다 보니 인형극에서 인형과 배우와의 관계설정의 모순처럼 악기가 배우인지 배우가 악기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신선하고 가히 센세이션한 장치들도 계속 반복되다 보니 1막이 끝날 무렵이 되면 신선함도 이내 식상해지기 쉽다.

 

물론 반복적인 멜로디를 신선한 편곡으로 업그레이드 시키는 등 비주얼이 뽑아낼 수 있는 한계를 극복해보려고 했지만 슬그머니 눈꺼풀은 자꾸만 내려간다. 다행인 것은 이 곤란한(?) 눈꺼풀과의 힘겨운 전쟁은 극적으로 점점 스릴 넘치는 2막이 되면서 끝이 난다는 거다. 모든 뮤지컬의 기본 요소를 다 떠나서 <선셋>은 2막이 1막보다 스토리가 흥미진진하며 재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관객의 눈꺼풀을 내리고 올리는 막중한 임무와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 걸까?

 

깨어진 유리 조각 사이로 잃어버린 과거 속에 잠들다

 

왕년에 잘나갔던 최고의 여배우였지만 이제는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며 현재의 자신의 삶을 인정하지 않는 중년의 여인, 노마. 그녀는 다시 스크린에 복귀할 수 있다는 환상을 품은 채 그녀의 꿈을 실현시켜줄 작가를 찾고 있다. 바로 이때 그녀 앞에 나타난 것은 젊은 작가, 조(Joe Gillis). 사채업자에게 쫓기고 있던 조는 자동차 사고로 운명처럼 노마의 저택에 들어가게 되고 노마로부터 거부할 수 없는 위험한 계약을 제시 받는다. 그녀를 위한 시나리오를 써주면 거액의 작가료를 주겠다는 것! 이로서 조와 노마는 서로 다른 꿈을 꾸며 함께 지내게 된다. 노마는 점점 광적으로 조에게 집착하고, 조는 노마를 벗어나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조는 노마도 그녀의 저택도 쉽게 벗어날 수가 없다. 마침내 자신이 꿈꾸던 화려한 과거의 환형이 현실 속에 깨지는 순간 노마는 현재와 과거의 유리된 공간을 부수고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형태 없는 과거 속에서 들어간다. 하지만 조는 노마에게 과거는 죽었다며 분노를 터트리고 혼돈과 슬픔에 빠진 노마는 조를 총으로 쏴서 죽인다.

작지만 꽉 찬 느낌의 <선셋>의 리바이벌 프로덕션은 이 슬픔과 기쁨의 공간을 제단사의 꼼꼼하고 섬세한 맞춤옷처럼 근사한 새 옷을 입었다. 상징적인 소품과 무대를 많이 이용됐는데 오리지널 프로덕션에 등장했던 대형 풀장과 그 위에 떠있던 조의 모습 대신 강렬하고 심플한 검은 그림자를 썼는가 하면 노마의 저택의 계단의 1층 아래 부분은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거미줄과 먼지로 가득한 낡은 모습으로 만들어서 노마의 과거와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등 <선셋>이 갖고 있는 컨셉과 등장인물의 감정과 성격 등을 함축적으로 보여줬다. 한편 자동차 격투장면을 프로젝션, 미디어를 쓴 장면이나 노마의 저택과 조의 아파트 그리고 술집과 사무실 등을 악기와 의자들로 구성한 장면 등은 다소 억지스럽고 조잡스러운 부분도 발견됐다. 하지만 무대 공간과 음악의 슬기로움과 연출가의 풍부한 상상력을 방해하는 옥의 티는 정작 다른 곳에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주인공 노마역할을 맡은 캐스린 에반스(Kathryn Evans)이다. 조 역할을 맡은 벤 고다드(Ben Goddard)와는 달리 캐스린은 노마가 갖고 있는 다각적인 캐릭터를 소화하지 못했다. 표독스럽고 사이코틱하면서도 뭔가 모르게 묘한 매력을 뿜어내야 하는 노마의 이미지가 캐스린 안에서는 뭔가 정제되지 않고 불순물이 섞인 물처럼 탁하게 나왔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여배우로서의 매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그러다보니 제 아무리 활기찬 악기와 배우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시종일관 펼쳐지고 있지만 관객들은 자꾸만 1막에서 눈꺼풀이 감기는 것이다. 그녀의 부자연스러운 제스츄어와 억지로 만들어내는 강한 눈빛은 차라리 한편의 코미디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슬픔은 풍화되고 나는 잠든 너를 그리워한다

 

`무언가를 잃었다`는 상실감이 주는 슬픔은 그 어떤 슬픔보다 깊고 아프다. 하지만 누군가를 잃어버렸다는 `타인의 부재`보다 더 큰 슬픔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자아의 상실감`이다. 뮤지컬 <선셋>은 과거에 대한 집착과 혼돈 그 안에서 오는 상실감을 노마라는 중년의 여성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무대 위에 1층 계단이 2층의 낡은 계단에서 멀리 내려다 볼 때 비로소 아름답다고 느껴지듯이, `아름다웠던 순간` 또한 시간이 흘러 `추억`으로 기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시간이 흐르면 슬픔도 흙처럼 물처럼 그렇게 세월 속에서 풍화되듯 노머의 슬픔도 언젠가는 풍화되리라. 자신의 발 밑으로 잠든 조를 바라보는 노머는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슬픔은 풍화되고 나는 잠든 너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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