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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런던] 웨스트엔드의 어제, 오늘, 내일 [No.66]

글 |김준영(런던 통신원) 2009-03-23 8,073

“1840년 런던, 동쪽의 베스날그린(Bethnal Green)과 화이트채플(Whitechapel)지역은 노동계급의 주거 밀집지역이었으며 런던 웨스트엔드(West End)의 극장거리인 드러리(Drury Lane)가 주변까지 이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그들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은 부부와 네다섯 명의 아이들 그리고 가끔 조부모까지 환풍도 되지 않는 좁은 방 한 칸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었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거리는 버려진 인분과 오물로 인한 악취로 가득 차 있었으며 촘촘히 붙은 집과 집 사이엔 젖은 빨래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위 글은1845년 발표된 엥겔스의 저서 영국 노동계급의 조건(Condition of the Working Class in England)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2009년 겨울 런던,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놓인 드러리가 주변을 매일같이 돌아보며 과거 모습을 상상할 수도 또 남아있는 모습의 일부도 발견할 수 없었다. 1820년대부터 시작되었다는 산업화 이후 신흥부자인 상인계급과 귀족들의 욕구로 조성된 웨스트엔드는 지금 우리에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이번 기획에서는 세계 뮤지컬 의 창이라는 웨스트엔드의 과거를 먼저 돌아보고 오늘날 웨스트엔드가 갖고 있는 경제적 위상과 현재 런던 극장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 그리고 이를 풀어가는 이들만의 방식을 통해 앞으로의 웨스트엔드를 살펴보고자 한다.
 
웨스트엔드의 어제와 오늘


런던 극장협회(The Society of London Theatre, 이하 SOLT)에 따르자면 1576년 런던에 첫 극장이 들어서기 전 공연은 경우에 따라 술집이나 관공서의 뒤뜰에서 그리고 부유층이 소유한 넓은 저택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쇼디치(Shoreditch)지역에 처음 지어진 이 이름 모를 극장의 임대 기간이 만료된 1597년 극장 운영자 겸 배우였던 리차드 버바지(Richard Burbage)는 당시 사용했던 건축자재를 모두 뜯어내어 지금의 셰익스피어 극장이 위치한 사우스뱅크(South Bank)지역 템즈강 옆에 처음으로 더 글로브(The Globe)라는 극장을 1599년 완공한다. 그리하여 리차드는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리어왕, 오델로를 공연한 첫 연기자로 등록되었다.
첫 웨스트엔드 극장은 1663년에 드러리가를 중심으로 지어졌지만 1672년 화재로 불탄 것으로 기록되어있으며, 세인트 폴(St. Paul) 성당을 설계한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이 디자인한 두 번째 극장 시어터 로얄(Theatre Royal)이 1674년에 똑같은 지점에 지어져 문을 열고 그로부터 약 120년간 유지되어왔다.
같은 시기에 헤이마켓(Haymarket), 시어터 로얄 코벤트 가든(Theatre Royal Covent Garden) ―현재 로얄 오페라 하우스― 등 서너 개의 극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서서히 웨스트엔드라는 개념이 진화되기 시작했단다.
오늘날 웨스트엔드는 19세기에 이르러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당시 상류사회에서는 극장에 가는 것이 아주 매력적인 일이었고, 큰 유행이었다 한다. 웨스트엔드의 척추 역할을 하고 있는 쉐프츠베리(Shaftesbury) 거리가 조성된 19세기 말로 접어들면서 마침내 그 모습이 완성되었고, 당시 지어진 화려하고 아름다운 극장들은 현재까지 유지 보수되어 완벽하게 사용 되고 있다.


문득 왜 런던의 많은 곳 가운데 하필 웨스트엔드가 공연산업으로 특징지어지는 지역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세계의 많은 도시들은 그 서쪽에 조금 더 경제적인 지위가 높은 사람들끼리 이웃한다고 한다. 아마도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제시한다면 바람이 그 쪽에서 불어오기 때문이라는데, 결국 초기 산업사회가 양산해냈던 각종 오염된 공장의 찌꺼기와 연기를 피하기 위해 부유층이 자연스럽게 이주해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SOLT가 밝히고 있는 근거 역시 역사적인 로마의 도시 유형을 간직한 중세 런던의 서쪽 끝 웨스트엔드는 오랫동안 상류층이 선호하는 주거지역으로 주목 받아왔다고 밝히고 있고, 이는 붐비는 도시에서 풍기는 오염된 공기를 날려버리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이기 때문이었다고 쓰고 있었다. 또한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를 포함해 연속적으로 지어진 궁전들이 들어선 곳이며 17,18세기를 지내오는 동안 값비싼 타운하우스(town house), 유행을 타는 상품을 전시하고 판매했던 상점들, 공원들이 조성되었으며, 이들 상류층을 만족시키기 위한 오락 산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인근지역인 홀본(Holborn), 코벤트 가든은 상대적으로 가난한 주거 지역이었으나 세기를 거슬러오며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상류층의 요구로 19세기에 이르러 마침내 모두 재정비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극장 거리이며 ‘시어터랜드’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영국 상업연극의 진원지인 웨스트엔드는 결국 런던의 서쪽에 위치한 사실을 근거로 단순하게 이름 지어진 것이지만 지역과 관계없이 극장의 크기와 지명도에 따라 템즈강 건너에 위치한 국립극장과 동쪽에 위치한 바비칸(Barbican)극장도 웨스트엔드에 편입시킨다. 그러나 진정 시어터랜드의 중심은 현재 6개의 뮤지컬 극장을 갖고 있는 세프츠베리 거리를 뜻한다고 하니(사진1, 2 참조), 아마 한 번쯤 런던 시내를 여행했던 사람이라면 아래 사진이 익숙해 보일 것이다.

 

사진 1: Piccadilly Circus looking up Shaftesbury Ave in central London UK, 1949

 

사진 2: similar position taken by Tom Box on 13th August 2006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20세기 초 런던의 극장산업은 두 개의 현대적인 극장 ―국립극장과 바비칸―을 완성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해왔다. 게임 산업이나 영화, 텔레비전 등으로 집약되는 대체 산업의 약진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웅장하고 화려한 극장의 유지, 보수의 비용이 높아지면서 최근 끊임없는 위협에 노출되고 있지만 많은 웨스트엔드 극장들이 거대 극장조직에 흡수 통합되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다.

현재 이러한 그룹의 예를 들어보면 앰베서더 시어터 그룹(Ambassador Theatre Group),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가 이끄는 리얼리 유스풀 그룹(Really Useful Group), 그리고 카메론 메킨토시(Cameron Mackintosh)의 델폰트 메킨토시 그룹(Delfont Mackintosh Group)이 있으며 이들 그룹들이 소유한 웨스트엔드의 극장은 아래 도표와 같다.

 

21세기를 맞이해 웨스트엔드에 새로운 가족이 소개되었다. 2008년, 카메론 메킨토시의 델폰트 메킨토시 그룹이 세프츠베리 거리에 미국의 유명한 작곡(사)가 스티븐 손드하임(Stephen Sondheim)의 이름을 딴 극장이 그것이며 이는1931년 이후 처음 등장하는 새로운 극장이라 하니 축하해야 할 소식인 것 같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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