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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쇼는 멈추지 않는다! 즉흥 뮤지컬 <쇼 스탑퍼!> [No.68]

글 |구지혜(런던통신원) 사진 |Gabrielle Motola 2009-06-08 6,500

즉흥극은 이탈리아의 희극인 코메디아 델아르테(Commedia dell’arte)에서 시작됐다. 코메디아 델아르테는 16세기 후반에 처음 만들어져서 그것이 쇠퇴하기 전인 18세기까지 이탈리아는 물론이요 프랑스, 영국 등 유럽 전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또한, 유럽의 많은 공연 장르의 형식과 기교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영국의 전통 인형극인 펀치 앤 주디(Punch and Judy), 프랑스의 판토마임(Pantomime) 등이 대표적인 예다.

오늘 우리가 만나 볼 웨스트엔드의 뮤지컬, <쇼 스탑퍼(Show Stopper!)>는 바로 이 전통 즉흥극의 형식을 빌어서 만든 색다른 즉흥 뮤지컬(Improvised Musical Theatre)이다.

 

Photo by Gabrielle Motola


 

말한다. 객석은, 웃기거나 미치거나!


뮤지컬 <쇼 스탑퍼!>는 영국의 즉흥 공연 전문 극단인 더 스티킹 플레이스 극단(The Sticking Place Theatre)의 신작 뮤지컬이다. 더 스티킹 플레이스 극단은 독창적인 즉흥극  연구에 힘쓰고 있는 실험극단인데 작년 초 영국 최초로 50시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공연을 하는  <50시간 논스탑 즉흥 드라마 공연(A 50 hour Non-stop Improvised Soap Opera)>을 무대에 올려 화제가 된 바 있다. <쇼 스탑퍼!>는 스티킹 플레이스 극단 소속 배우이자 연출가인 딜런 에머리, 아담 메기도, 그리고 켄 캠벨(Dylan Emery, Adam Meggido and Ken Campbell) 세 사람의 공동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 <쇼 스탑퍼!>는 작년 여름 에든버러 축제에서의 성공적 공연을 시작으로, 런던 동쪽의 킹스 해드 극장(The Kingshead Theatre)에서 2008년 9월부터 현재까지 인기리에 연장 공연 중이다.


4월 초, <쇼 스탑퍼!>의 두 번째 관극 차 극장을 찾았을 때 125석의 객석은 관객들로 여전히 꽉 차있었다. 초연 이후 반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 쇼 스탑퍼!>가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은 공연 평론가들의 호평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공연이 재밌다”는 관객들 간의 입소문도 한몫 했다. 중소규모 극장의 뮤지컬, 그것도 <쇼 스탑퍼!>같은 신작 뮤지컬이 관객과 공연 평론가 양쪽 모두에게 사랑 받고 연장 공연까지 하는 일은 사실 드문 일이다. 관객들이 <쇼 스탑퍼!>에 관심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즉흥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주는 독특한 매력, 예측할 수 없는 공연이라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화려한 오케스트라나 첨단 장치들을 겸비한 사실적인 무대 장치 같은 것은 <쇼 스탑퍼!>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무대는 한마디로 심플함 그 자체다. 무대의 왼쪽에는 검정과 빨간색이 조합된 정장 또는 블랙진을 입은 여덟 명의 배우들이 앉아있다. 배우들 바로 옆에는 옷걸이가 있는데 옷걸이에는 역시 검정, 빨간색의 모자와 지팡이 스카프 등의 기본적인 소품들이 걸려있다. 무대의 오른 쪽에는 작은 화이트보드가 있고 그 옆에 작가이자 연출자 역할인 배우가 앉아있다. 그의 화이트보드 아래로 작은 타악기들이 두어 개 놓여있고, 낡은 피아노 한 대와 연주자가 있다. ‘여기서 정말 뮤지컬 한 편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과 궁금증이 들 무렵 무대 불이 꺼지면서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영국 최고의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말하는 연출가(물론 설정이다). 그는 매킨토시에게 지금 엄청난 작품이 있다고 거짓말을 한 뒤 관객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공연 타이틀을 시작으로 주인공 이름, 뮤지컬의 장르, 음악 스타일, 춤 스타일, 대강의 큰 주제와 극의 배경 등 마치 스페셜 요리를 주문 받듯 관객들의 주문대로 칠판에 받아 적은 연출가는 엄청난 대작이 만들어 질 것 같다며 곧바로 오프닝 넘버를 배우들에게 주문한다. 이날 뮤지컬의 제목은 <파리 동물원의 미스터리!>  배우들은 관객들의 요구한 세부적인 사항까지 잘 기억하고는 곧바로 고릴라, 사육사, 매점 아가씨 등등 각자의 역할을 맡아 오프닝 넘버를 부른다.

 

그리고 이어서 파리 동물원의 고릴라와 사육사들 간의 미스터리가 펼쳐진다. 그 사이 연출가는 노트에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스토리와 관객들의 반응을 관찰하며 빠른 속도로 극을 전개시켜나갈 스토리를 기록한다. 즉흥 뮤지컬이라는 타이틀을 무색하게 할 만큼 배우들은 순발력 있게 기본적인 관객들의 요구 사항에 살을 붙여 너무나 멋진 한 편의 뮤지컬을 만들어내는데…. 중간 중간 얘기가 너무 삼천포로 빠지거나 난관에 부딪칠 때면 연출가는 쇼를 중지(stop!)시키고 새로운 방향이나 대사를 배우에게 주문한다. 때로 연출가는 관객이 요구했던 특정 단어, 예를 들어“고릴라의 궁둥이”를 배우에게 1분 동안 세 번 대화 속에 넣으라고 시키는 등 배우들이 풀지 못하는 코미디 상황을 증폭시켜주는 역할도 한다. 관객들은 자신들이 주문한 요구 사항이 하나씩 무대에서 하나의 장면으로 만들어질 때마다 탄성을 지르고 폭소를 연발하니 그 어떤 공연보다 객석 분위기는 뜨겁고 열광적이다. 게다가 공연을 시작할 때는 중구난방으로 흘러가는 것 같지만 점점 관객들이 원하는 그 느낌 그대로 하나도 놓치지 않으면서도 뮤지컬의 기본 형식과 느낌을 살려 한 편의 훌륭한 뮤지컬이 완성되는 것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Photo by Gabrielle Motola


만든다. 무대를, 소통 혹은 즉흥.


<쇼 스탑퍼!>와 같은 즉흥 뮤지컬이란 장르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이런 형식의 공연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특히 미국의 경우는 즉흥 뮤지컬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미국의 즉흥 뮤지컬로는 캘리포니아와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1998년부터 지금까지 공연 중인 <오프닝 나잇: 더 임프로바이즈드 뮤지컬>(Opening Night:The Improvised Musical!)과 2003년 이래로 활발한 즉흥 뮤지컬 공연을 하고 있는 언스크립트 씨어터 컴퍼니(Un-ed theatre company)의 공연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많은 대중에게 알려지고 사랑을 받았던 것은 ‘즉흥 텔레비전 드라마’라는 독특한 형식의 쇼인 <후즈 라인 이즈 잇 애니웨이(Whose line is it anyway!)>이다. <후즈 라인 이즈 잇 애니웨이>는 본래 영국의 라디오 쇼 프로그램이었는데 1988년 텔레비전 쇼로 다시 만들어지면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영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2006년까지 쇼가 계속되었다.


 즉흥 공연의 성패는 바로 “관객과 배우. 객석과 무대 이 둘 사이의 소통이 얼마나 잘 이뤄지느냐에 달려있다.<쇼 스탑퍼!>도 예외는 아니다. <쇼 스탑퍼!>라는 공연을 보여주는 것은 배우지만 공연을 만드는 것은 결국 관객 자신이기 때문이다. 엄연히 따지면 관객과 배우, 이 둘의 합작품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따라서 다른 뮤지컬 공연과는 달리 <쇼 스탑퍼!>의 배우들은 이 각본 없는 뮤지컬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관객들이 매 순간순간 어떻게 반응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순발력 있게 읽어 내리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따라서 배우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은 소극적이고 얌전한 관객들만 객석을 가득 메웠을 때다. 다행스럽게도 <쇼 스탑퍼!>를 보러 오는 관객들은 뒷짐 지고 앉아있는 소극적인 태도는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신나게 웃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신나는 즉흥 뮤지컬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뭔가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분명히 즉흥적으로 매일 공연이 바뀐다고 명시되어있으나 잘 살펴보면 여러 가지로 비슷한 패턴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특히 플롯과 캐릭터는 왠지 모르게 비슷하다. 그 비밀의 구조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인물의 삼각 대비 구도이다. 즉, ‘주인공’과 그 주인공을 방해하는 ‘악당’, 그리고 메인 플롯 안에 막간극 형태로 코믹한 상황 코미디를 만들어내는 ‘단역들’이 삼각 대비 구도의 인물들의 모험, 사랑 그리고 악마적 심리 상태를 반영하여 매일 매일 관객들의 주문이 바뀌더라도 신속하게 그 주제와 이야기를 삼각 구도에 맞춰 풀어간다. 이야기의 소재가 달라도 비슷한 플롯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고릴라 사육사가 동물원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헤매던 중 사랑에 빠지고,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데 방해꾼의 음모에 휩싸여 어려움에 빠지지만 결국에는 모든 문제를 풀고 동물원에 평화가 찾아온다는 식이다. 아무리 즉흥이라고 하지만 기본적인 법칙은 분명 존재한다는 말인데 이 즉흥의 절대 법칙을 ‘많은 관객들이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가장 통속적인 스타일의 인물과 플롯을 바탕으로 공연의 실패율을 줄이려는 긍정적인 노력’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세부적인 공연의 구조를 관객들이 눈치 챌 사이도 없이 <쇼 스탑퍼!>는 박진감 있게 공연을 이끌어 가고 있었다. 물론 < 쇼 스탑퍼!>가 아무리 공연을 잘 만들어도 장르의 특성상 예술적인 가치나 미학적인 구도를 만들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 스탑퍼!>가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까닭은 다른 뮤지컬 장르와는 달리 관객에게 어쨌든 늘 새롭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쇼 스탑퍼!>와 같은 즉흥 뮤지컬이 좋은 반응을 얻는 현상을 현대 관객 연구 차원에서 접근해본다면 “현대인들이 현재적이고 경험적인 미디어 문화를 점점 더 선호한다”는 로스코(Rosco)의 ‘멀티 플랫폼 이벤트’이론과 연관 지을 수 있다. 즉 현대 관객들은 박제처럼 고정된 공연보다는 생동감 있고 살아있는, 거기에 한 가지 더, 어디로 갈지 모르는 현장성(Reality) 있는 공연을 통해 즐거움을 찾고 있다는 말이다.

 

Photo by Gabrielle Motola

 

묻는다. 극장 문 앞에서, 미워도 다시 한 번?


<쇼 스탑퍼!>는 초연의 성공에 힘입어 올해는 종전에 1막이었던 공연을 2막으로 늘였다. 또한 배우들도 작년에 비해 훨씬 안정감 있고 노련하게 연기하는 등 발전된 면이 많이 보였다. <쇼 스탑퍼!>는 낡은 피아노와 몇 개의 작은 타악기 그리고 모자와 지팡이 스카프뿐인 무대를 썼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최소한의 것으로 최고의 공연을 만들어 내고 있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초연 때와는 달리 배우들끼리 대사가 엇갈리고 한 장면이 쓸데없이 늘어지는 등 작은 실수가 몇 번 발생하는 안타까운 모습도 발견됐다. 매 순간 긴장이 요구되는 즉흥 무대에서 대사도 노래도 플롯도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보니, 배우들이 매너리즘에 빠지기라도 한다면 외워서 하는 고정된 공연에 비해 쉽게 그 틈새를 관객들에게 들키기 때문이다. 또한 공연이 2막으로 늘어나면서 1막 초반에 관객들이 던져준 주문 사항들로 2막까지 극을 이끌고 가기에는 모든 소스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결국 2막에서도 배우들의 코믹한 연기 덕분에 여전히 웃음이 터지기는 하지만 억지로 극을 끌고 간다는 인상을 지울 수는 없다.


공연이 끝나자 < 쇼 스탑퍼!> 는 짧은 설문 조사를 관객들에게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설문 조사의 질문 중 흥미롭고 의미심장한 질문이 포함 돼있었다. 그건 바로 ‘다시 공연을 보러 오시겠습니까?’라는 질문. <쇼 스탑퍼!>는 공연을 처음 보는 관객들에게 즐거운 저녁 한때를 충분히 즐기기에 완벽한 모든 것을 제공한다. 관객이 원하는 스토리, 관객이 원하는 춤과 노래. 무엇 하나 빠진 것이 없다. 하지만 극장측의 설문조사 질문 내용처럼 관객들이 <쇼 스탑퍼!>를 두 번, 세 번 다시 보러 올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끌던 코메디아 델아르테가 18세기가 되면서 갑자기 쇠퇴한 까닭은 다름 아닌 즉흥극이 주는 신선함이 사실은 ‘즉흥을 위한 즉흥’ 이었다는 것을 관객들이 알아챘기 때문이다. 물론 코메디아 델아르테가 일정한 패턴의 캐릭터와 플롯을 갖고 움직인다는 것을 관객들이 알고 공연에 식상함을 느끼기까지는 무려 1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여기에서 코메디아 델아르데가 설정된 ‘즉흥을 위한 즉흥’ 너머로 그들만의 독창적인 즉흥공연 기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라는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정말 좋은 뮤지컬과 그렇지 않은 뮤지컬의 차이점 중 하나는 ‘공연이 관객을 다시 극장으로 돌아오게 할 힘을 갖고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 이제 막 <쇼 스탑퍼!>를 보고 극장 문을 나서는 저 관객들은 ‘다시 공연을 보러 올 것인가’라는 질문에 과연 뭐라고 대답했을까? 그들은 다시 극장으로 돌아올까? 

 

 

>> 2009년 6월까지 런던 공연 예정
공연 정보 및 티켓 구입: box office:(+44)08444122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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