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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새로울 것 없는 주크박스-무비컬 <9 to 5> [No.70]

글 |이곤(뉴욕통신원) 2009-07-08 6,609

미국은 학교도 그렇지만 공연계도 가을이 그 해 시즌의 시작이다. 때문에 대개의 시상식이 5월과 6월에 몰려있다. 지난 6월 7일에 있었던 토니상 시상식은 2008~2009 시즌을 마감해가는 브로드웨이의 가장 큰 행사였다. 토니상 시상식은 수상 당사자에게는 비할 데 없는 커다란 영예를 안겨주었지만, 막상 수상에서 탈락한 공연 팀에게는 남은 여름 시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무거운 과제를 던져주었다.

 

 

토니 상 시상식 후의 브로드웨이
뉴욕 타임즈에 의하면 올해 토니상 수상 결과가 그리 큰 매출 효과를 가져다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주요 수상작들이 모두 이미 브로드웨이에서 흥행 성공을 거두고 있는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뮤지컬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해 10개 부문을 수상한 <빌리 엘리어트>와 연극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3 개 부문을 수상한 <갓 오브 카네지(God of Carnage)>는 이미 뛰어난 작품성과 함께 흥행에서도 좋은 실적을 거두고 있었다.
토니상 시상식은 오히려 수상에서 배제된 공연들을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중도 탈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올해 3월 1일 개막한 <아가씨와 건달들> 리바이벌 공연은 6월 14일 일요일 공연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 좋지 않은 비평과 함께 관객동원에서도 고전하다가 결국 막을 내린 것이다. 수상 실패는 작품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공연 역시 막을 내리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연극 부문에서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리즌즈 투 비 프리티(Reasons to be pretty)>는 그간 부진했던 관객 동원을 만회할 절호의 기회로 토니 상 수상을 기대했지만 역시 수상에 실패함으로써 같은 날 막을 내렸다. 이로써 위 두 작품이 공연되었던 극장은 이미 막을 내린 연극 <33 베리에이션즈>와 <느릅나무 밑의 욕망>을 올렸던 공연장과 함께 다음 시즌을 기다리며 올 여름을 비어있는 채 보내게 되었다.

 

 

뮤지컬 <9 to 5>와 영화 <9 to 5>
오늘 이야기할 뮤지컬 <9 to 5> 역시 4개 부문에서 토니 상 후보에 올랐지만 결국 무관에 그쳤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조기에 막을 내린 작품들과는 달리 흥행에서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9 to 5>는 이 공연 제작자가 애써 강조하듯이 올 해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신작들 중에서 가장 흥행 성공을 거두고 있는 작품이다. 이 공연은 현재 한 주에 70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리며 브로드웨이 박스오피스 10위권 안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작품성 면에서 그리 괄목할 만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이 작품이 흥행에서 선전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원작인 영화의 명성에 힘입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브로드웨이의 주 관객층을 형성하고 있는 뉴욕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9 to 5>라는 제목은 우선 친숙하게 느껴진다. 1980년에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는 제인 폰다, 릴리 톰린, 돌리 파튼 등 당대 유명 스타들이 출연해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성차별주의자이자 전제주의적인 직장 상사 프랭크 하트를 납치해 복수하는 과정이 코믹하게 그려진 이 영화는 파트리샤 레스닉과 콜린 히긴스가 함께 대본을 쓰고 콜린 히긴스가 연출했다. 이 영화는 그 해 최고의 흥행실적을 거둔 코미디 영화로 기록되었고 돌리 파튼이 부른 영화의 주제곡 <9 to 5>는 그 해 아카데미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또한 돌리 파튼은 이 작품을 통해 처음 영화배우로 데뷔했는데, 직장 상사의 끊임없는 성적 유혹의 대상이 되는 비서 도랠리 역할을 그녀만의 개성으로 잘 소화함으로서 가수뿐 아니라 배우로서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파트리샤 레스닉이 대본 작업에 참여한 이 뮤지컬은 원작 영화의 줄거리를 그대로 차용해 왔다. 영화는 페미니즘이 한창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던 당시의 시대적인 분위기를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전제주의적인 남성우월주의자 직장 상사인 프랭크 하트의 횡포에 분노한 세 여자 바이올렛, 주디, 도랠리는 우연한 소동 끝에 그를 납치해 집에 감금한다. 그리고  프랭크의 결제를 위조해 평소에 그에 의해 무시되었던 아이디어들을 업무에 시행한다. 그들의 시도는 사무실의 분위기를 쇄신하고 동료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냄으로써 탁월한 업무 성과를 만들어낸다. 결국 탈출에 성공한 프랭크가 그들의 음모를 밝히려는 순간 회장이 찾아와 탁월한 업무성과를 낸 프랭크를 승진시켜 볼리비아로 발령 내고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볼리비아에서 원주민에 납치되어 죽는다) 바이올렛을 파트의 책임자로 앉힌다.
가디언 지의 한 비평가는 주인공들이 실현한 아이디어인 직장 내 탁아소 설치, 일자리 나누기 (Job Sharing), 그리고 탄력 근무제 등이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편견 때문에 현재에도 여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아이디어라면서, 이 공연이 비록 70년대의 얘기를 다루고 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관객들에게도 시대를 뛰어넘는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많은 평론가들은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사회적 메시지는 이미 이 시대에 진부한 것이 되어버렸고 공연에서는 단지 성차별적인 남자 상사에게 복수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의 코믹함과 오락거리만 부각되었다고 평가한다.


개인적으로 객석에 앉아있으면서 이 공연이 가지는 사회적 메시지에 대해 관객이 어떻게 느끼는지는 가늠하기 힘들었지만 적어도 공연에서 간간히 튀어나오는 성차별적인 대사에 대한 관객들의 적극적인 반응은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육감적인 몸매를 지닌 비서 도랠리에게 “너는 단지 커다란 젖가슴을 지닌 비서일 뿐이야”라고 모욕하는 프랭크의 대사에 관객들은 술렁거렸고, 자기와 잤다는 소문을 사내에 퍼트린 프랭크에게 권총을 들이대며 “앞으로 나에 대해 한 번만 더 안 좋은 소문을 퍼트리면 이 권총으로 널 수탉에서 암탉으로 만들어 주겠어.”라고 위협하는 도랠리의 대사는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를 불러일으켰다.

 

 

돌리 파튼과 뮤지컬 <9 to 5>
이 뮤지컬의 또 다른 흥행 성공요인을 들라면 돌리 파튼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공연에서 음악과 가사를 담당한 돌리 파튼은 미국 컨트리 음악의 대표적인 가수이자 작곡가로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예인이다. 이 뮤지컬은 돌리 파튼이 직접 쓰고 불러 유명해진 기존의 대표곡들 뿐 아니라 이번 공연을 위해 새로 만든 다수의 곡들 또한 포함하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승진에서 늘 좌절되는 바이올렛의 심정을 다룬 ‘원 오브 더 보이즈(One of the Boys)’나 1막의 엔딩 곡 ‘샤인 라이크 더 선(Shine Like the Sun)’, 그리고 ‘아이 저스트 마잇(I Just Might)’ 등이 바로 새로 만들어진 곡들이다.


그녀의 곡들 중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노래는 도랠리 역을 맡은 미건 힐티가 부른 ‘백우즈 바비(Backwoods Barbie)’였다. 돌리 파튼은 이 곡의 가사를 통해 도랠리라는 캐릭터뿐 아니라 자신의 심정 역시 드러내기도 하였다. 그녀는 이 노래에서 “나는 늘 오해되어왔어. 생긴 것 때문에. 겉만 보고 판단하지는 마. 왜냐면 나는 정말 좋은 책이니까”라고 말하면서 섹스 심볼적인 이미지로만 평가되어 온 자신에 대한 세간의 인식에 반박한다.
돌리 파튼의 곡은 심플하지만 강한 느낌을 주는 멜로디와 호소력 있는 가사를 통해 극의 내용을 잘 전달하고 있다고 평가 받았다. 이런 호의적인 평가는 그녀의 토니 상 음악상 부문 후보 선정으로 이어졌지만 아깝게 <넥스트 투 노멀>의 톰 킷과 브라이언 요키에 밀려 수상하지 못했다.

 

 

캐릭터와 함께 살아 숨쉬는 배우들
능력 있고 자신감 넘치는 직업여성이지만 단지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늘 승진에서 배제되는 바이올렛을 연기한 앨리슨 재니는 이 뮤지컬을 통해 그녀의 뛰어난 연기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그녀는 뮤지컬보다는 연극과 TV배우로 많이 알려져 왔지만 이 공연을 통해 뮤지컬 배우로서의 재능 역시 입증시켰다. 그녀의 강력한 카리스마는 관객을 그녀의 이야기 안으로 강하게 끌어들이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뉴욕의 많은 비평가들은 그녀의 연기가 이 공연이 지니는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그녀 또한 강력한 토니상 여우주연 후보로 꼽혔지만 역시 <넥스트 투 노멀>에서 어머니 역을 열연한 앨리스 리플리에 밀려 수상하지 못했다.


자신의 섹시한 용모 때문에 직장 상사에게 성희롱을 당하고 또한 그의 모함 때문에 여자 동료들에게서도 따돌림을 당하는 비서 도랠리 역할은 미건 힐티가 연기했다. 미건 힐티는 영화에서 돌리 파튼이 보여주었던 개성적인 화술과 창법을 무대에 성공적으로 재현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신선한 극적 재미를 안겨 주었다. 
남편이 자신의 비서와 바람을 핀 후 평범한 주부에서 직장여성으로 변신을 꾀하는 주디 역할은 스테파니 블록이 맡았다(영화에서는 제인 폰다가 이 역할을 맡았는데 재미있게도 제인 폰다는 브로드웨이 연극 <33 베리에이션즈>의 주인공으로 바로 옆 극장에서 공연을 했다). 그녀는 직업여성으로서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캐릭터의 심정을 담은 이 뮤지컬의 대표곡 ‘겟 아웃 앤드 스테이 아웃(Get Out and Stay Out)을 뛰어난 가창력으로 소화해 관객의 열렬한 박수를 이끌어내었다.


마크 쿠디쉬 는 세 여성이 증오하는 직장 상사 프랭클린 하트 역할을 코믹한 연기로 잘 소화하였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내었던 배우는 케시 피트제럴드였다. 그녀는 악덕 직장 상사 프랭클린을 흠모하는 나이든 비서 로즈 역할을 맡았는데 자신이 사랑하는 프랭클린을 위해서 세 주인공의 계획을 염탐하고 저지시키는 역할을 코믹하게 무대에 그려내었다. 그녀는 화장실에서 부르는 노래 `하트 투 하트 Heart to Hart`를 통해 프랭클린에 대한 그녀의 욕망을 코믹하게 드러냈다. 또한 그녀의 다른 곡  `5 to 9`은 주제곡 ‘9 to 5’의 패러디로서 퇴근 시간인 5시에서 9시 사이가 프랭클린을 볼 수 없는 그녀에게 너무 큰 고통의 시간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많은 볼거리 속에서 길을 잃다
이 공연의 연출을 맡은 조 만텔로 Joe Mantello는 뮤지컬 ‘위키드’의 성공을 통해 상업공연 연출로서 확실한 입지를 굳혔다. 올해 뮤지컬 ‘팔 조이’를 연출하기도 했던 그는 두 공연에서 모두 세련되고 안정된 연출 솜씨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극의 정수를 관통하는 형상화를 통해 관객에게 충격을 주는 느낌을 그의 연출에서 경험하기는 힘들었다. LED로 이루어진 후면 벽을 통해 투사되는 각종 영상 이미지, 그리고 리프트와 원격장치를 통해 이동하는 무대장치는 장면변환을 시각적인 볼거리로 만들어내었지만 극의 본질에 부합되는 무대는 아니었다. 올해 브로드웨이 공연 중에 이목을 끈 무대는 대개 심플하면서도 극의 본질을 강하게 반영하는 공연들이었다.  <왕은 죽어가다>에서는 서커스 공연처럼 화려한 천으로 이루어진 무대가 왕의 죽음과 함께 무너져 내림으로써 극장의 황량한 벽과 왕의 마지막 모습을 병치시키며 강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었다. ‘노르만 콘퀘스츠’에서는 원형 극장 안에 원형의 무대 그리고 그 위에 거꾸로 매달린 미니어처 저택의 모습을 통해 극의 공간적 배경을 연극적인 상상력으로 형상화해 내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의 무대는 극의 본질과 부합되어 나오는 강한 울림을 관객에게 전달하지 못했다.


연출은 또한 앙상블의 안무 장면을 통해 극의 단조로움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안무를 담당한 앤디 블랑켄블러는 ‘인 더 하이츠’에서 극의 내용과 유기적으로 결합된 안무를 보여줌으로써 강한 인상을 남겼었다. 이 공연에서도 거리의 군중 장면이나 바삐 돌아가는 사무실 장면을 통해 그의 안무 실력을 유감없이 드러냈지만 극의 본질과는 유리된 채 다분히 기능적인 역할에 그쳤다. 그의 안무는 인상적이었지만 인물들의 움직임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못했고 단지 매끄러운 전환을 위한 시각적인 볼거리로서만 부각되었다. 뮤지컬 ‘인더하이츠’로 작년에 토니상 안무상을 수상했던 그는 올해에도 후보에 올랐지만 <빌리 엘리어트>의 피터 달링에게 수상의 영광을 넘겨야 했다.


뉴욕 타임즈의 비평가인 벤 브렌틀리는 이 공연을 ‘겉만 요란했지 속은 비어있는’ 공연이라고 평했다. 이는 다분히 극의 본질보다는 관객의 흥미에 초점을 맞춘 무대와 안무 그리고 연출의 의도에 기인한 것으로 보여진다. 뮤지컬 <9 to 5>는 신작 뮤지컬로서 많은 관객의 관심을 이끌어내며 좋은 흥행성적을 내고 있지만 기존의 주크박스 뮤지컬의 경계를 뛰어넘는 참신함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앞을 가늠하기 힘든 현재 브로드웨이 공연계의 불안함을 극복하는 방법은 기존의 뮤지컬 레퍼토리에 비슷한 하나를 더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새로움은 기존의 익숙해져 있는 코드를 허무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기존 질서의 붕괴는 새로운 환경변화에 맞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다. 브로드웨이를 압박하고 있는 현재의 경제위기 역시 그 타개책을 위해 기존 경제 관념과 체계에 대한 새로운 변화를 필요로 하고 있다. 브로드웨이 공연의 부흥도 바로 이러한 도전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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