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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20세기 뮤지컬 대가들의 작품 두 편 손드하임의 <로드쇼> & 쿠르트 바일의 <스트릿 신> ROADSHOW & STREET SCENE [No.97]

글 |정명주 (런던 통신원) 2011-10-18 4,575

올 9월에는 런던의 소극장에 20세기 미국 뮤지컬 대가들의 작품이 두 편이나 올라 화제를 모았다. 메니에르 초콜릿 팩토리에서는 2008년 뉴욕 퍼브릭시어터에서 선보였던 손드하임의 최신작 <로드쇼>를 소극장 프로덕션으로 축약하여 선보였고, 영빅시어터에서는 2008년에 제작했던 쿠르트 바일의 <스트릿 신>을 다시 한번 같은 무대에 올렸다. 두 작품 모두 20세기 전반 미국의 정신을 담은 뮤지컬로, 런던의 관객들에게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기회를 제공했다.

 

 

 

 

메니에르 초콜릿 팩토리의 <로드쇼>는 2008년 뉴욕 퍼브릭시어터에서 초연되었던 작품으로, 역시 손드하임의 작품인 <스위니 토드>를 액터뮤지션 버전으로 만들어 브로드웨이까지 진출시켰던 영국 연출가 존 도일(John Doyle)이 창의력을 한껏 발휘했다. 1920년대 알래스카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골드러시, 그리고 플로리다를 중심으로 한 부동산 붐을 배경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두 형제, 윌슨과 애디슨의 일대기를 그린 이 작품은 지난 10여 년간 여러 명의 유명 연출가를 거치며 수정을 거듭해 왔다. <태평양 서곡>와 <어쌔신>을 통해 호흡을 맞춰 온 작가 존 와이드먼과 작곡가 손드하임의 세 번째 공동 창작으로, 전작 두 편과 함께 아메리칸 드림을 그린 정치적인 색채의 3부작을 이룬다. 수십 년에 걸친 두 형제의 모험과 여정을 통해 20세기 초 미국의 발전사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그 방대한 내용 때문에 결정판으로 요약되기까지 오랜 수정과 각색을 거쳐야 했다. 1999년 영국 연출가 샘 맨더스의 연출로 3주간 워크숍 프로덕션으로 처음 선보인 후, 2차 수정 버전은 <골드>라는 제목으로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이후 미국 연출가 할 프린스가 합세해 작품을 다시 다듬은 후, <바운스>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2003년 시카고와 워싱턴의 케네디센터에서 막을 올렸다. 그리고 2008년 대본작가 존 와이드먼이 <스위니 토드>의 연출로 유명해진 존 도일과 접촉하면서 다시 한번 대폭적인 축소 수정이 이루어졌다. 결국 95분짜리 중간 휴식 없는 간소한 뮤지컬 <로드쇼>가 존 도일의 연출과 디자인으로 뉴욕의 퍼브릭시어터에서 개막을 맞았다. 이번 메니에르 초콜릿 팩토리 소극장의 <로드쇼>는 역시 존 도일의 연출로, 퍼브릭시어터에서 공연했던 95분짜리 대본과 음악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면서 소극장 공간에 맞게 밴드를 13인조에서 8인조로 재편하고 캐스트 역시 15명에서 13명으로 축소한 버전이다.

 

 

 

 

공연은 애디슨이라는 건축가가 재능을 제대로 발휘도 못해보고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코러스로 이루어진 애디슨의 지인들이 그의 재능이 ‘아깝다(Waste)’고 노래를 할 때 애디슨의 형 윌슨이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과거로 돌아가 이 두 형제가 알래스카로 금광을 찾아 떠나게 된 사연이 시작된다. 아직 어린 두 청년 윌슨과 애디슨의 아버지는 세상은 ‘이제 너희들 손에 있다(It’s in Your Hands Now)’며 멀리 떠나 세상을 경험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두 형제는 어머니의 응원을 받으며 금광을 찾아 알래스카로 가는 배에 오른다. 엘도라도의 꿈(‘Gold!’)을 안고 알래스카에 도착한 그들이 만나는 것은 극심한 추위와 얼어붙은 땅뿐이다. 낮에는 금을 찾아 땅굴을 파고, 밤에는 추위를 피해 작은 침낭 안에 서로 꼭 끌어안고 같이 자는 상황이 되면서 애디슨은 친형인 윌슨에게 묘한 ‘형제간 이상의 애정’을 느낀다. 그것이 불편한 윌슨은 호텔을 찾아 마을로 떠나는데 마을에서 도박사들을 만나면서 노름(‘The Game’)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이때부터 두 사람의 인생은 각자의 길로 나뉘지만, 애디슨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윌슨은 돈이 떨어질 때마다 그를 찾아온다. 윌슨은 애디슨이 건축 디자이너로 자리를 잡자마자 첫 번째 여자 고객을 꼬셔서 결혼을 해버리기도 하고, 그의 주택 디자인을 이용해 플로리다에서 부동산 장사를 하기도 한다. 매번 애디슨은 윌슨에게 이용을 당하는 기분에 젖고, 그래서 자신의 인생은 윌슨 때문에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죽고 나서 다시 만난 애디슨과 윌슨은 그들의 인생 역정이 그래도 참 즐거운 모험이었다며 마주보고 웃는다.

 

<로드쇼>에는 손드하임의 전작 <어쌔신>을 떠올리게 하는 손드하임 특유의 멜로디가 자주 등장한다. 주인공 애디슨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찾은 뒤, 첫 남자 친구 홀리스와 함께 부르는 ‘The Best Thing That Ever Happened’은 고음과 저음을 오르내리는 전형적인 손드하임식의 내러티브 넘버로 시작했다가 서정적인 선율로 발전하는 아름다운 곡이다. 애디슨의 엄마가 좀처럼 얼굴을 보기 힘든 아들 윌슨을 원망하며 부르는 ‘Isn`t He Something’은 3,40년대 흑백영화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잔잔한 멜로디가 따뜻한 곡이다. 그러나 이 두 곡을 제외하고는 크게 기억에 남는 멜로디가 없는 것이 이 작품의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퍼브릭시어터에서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무대가 앞에 있고 객석이 무대 뒤에 설치된 세팅이었으나, 이번 소극장 공간에서는 객석을 양쪽으로 설치해 관객들이 서로 마주 보게 하고 그 사이에 좁은 통로를 연기자들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트레버스 무대를 사용하여 관객들과의 친밀도를 더했다. 애디슨과 윌슨 역을 맡은 데이비드 베델라와 마이클 집슨을 비롯하여 공연 내내 무대에 등장하는 11명의 영국 중견 연기자들은 훌륭한 앙상블을 선보이며 관객과 함께 모든 장면의 목격자가 된다. 공연 내내 무대 공간을 종횡무진하며 미국 달러를 무대와 객석에 멋지게 뿌리면서 ‘골드 러시’의 분위기를 만들고, 인도와 일본으로 여행하는 ‘애디슨의 여행(Addison’s Trip)’을 화려하게 시각화하며, 플로리다 부동산 시장의 붐(‘보카 라통(Boca Raton)’)을 신명나게 재현한다. 간소한 무대 디자인과 역동감 넘치는 앙상블의 활용으로 보기 드문 무대를 제공한 존 도일의 연출이 돋보였고, 전 출연진의 앙상블이 훌륭한 공연이었음에도, 손드하임의 <로드쇼>는 기대만큼 훌륭한 작품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원작 자체가 짧은 시간 동안 너무나 다양한 공간과 사건들을 다루며 숨 가쁘게 달려가는 두 형제의 모험 이야기이면서도, 정작 중요한 두 주인공의 내면의 동기와 갈등, 화해 등을 심도 있게 보여줄 순간들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할 틈이 없는 채로 다른 시공간으로 전환을 거듭하는 바쁜 전개가 관객과 등장인물 간의 거리감을 좁힐 기회를 주지 못했다. 음악적으로도 등장인물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가슴에 와 닿는 선율이 별로 없이, 역사적 풍경을 보여주는 겉만 화려한 코러스들의 노래가 많아서, 시각적 화려함 속에 감상적 빈곤함을 드러내는 작품이 되고 말았다.

 

 

반면, 영빅시어터의 <스트릿 신>은 시각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풍부한 감동의 무대였다. <서푼짜리 오페라>로 유명한 작곡가 쿠르트 바일이 사반세기 전에 쓴 오페라에 가까운 작품으로, 1947년에 브로드웨이 아델피 극장 초연 당시 토니상 음악상 부문에서 수상한 전설적인 명작이기도 하다. 이번 프로덕션은 2008년 영빅시어터에서 제작하여 전회 매진을 기록한 이후, 올해 다시 제작되어 9월 15일부터 한 달간 공연한 다음 10월 중순까지 전국 투어에 들어간다. 크지 않은 영빅시어터의 무대에 30인조 규모의 오케스트라가 1층과 2층으로 나누어 도열해 있고, 어른과 아이들을 합쳐 총 31명의 출연진이 열연하는 규모가 큰 작품이다. BBC 콘서트 오케스트라와 사우스뱅크 신포니에타 투어링 오케스트라가 번갈아 출연하고, 루이샴 합창단을 비롯해 다수의 어린이 및 청소년들이 출연한다. 1940년대 맨해튼 남동부에 위치한 빈민가의 하루를 그린 이 작품은 퓰리처상을 받은 엘머 라이스의 희곡을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으로, 엘머 라이스가 직접 대본을 쓰고 미국의 대표적인 흑인 작가이자 시인인 랭스 휴즈가 가사를 입혔다. ‘아메리칸 오페라’라고도 불리는 이 작품은 쿠르트 바일 특유의 감성적인 클래식 선율에, 재즈와 블루스 선율까지 더해진 음악의 향연이다.


막이 오르면 기록적인 폭염을 맞은 뉴욕 할렘가의 3층짜리 연립주택이 보인다. 무대 바닥은 객석 쪽으로 멀리 나온 돌출 무대로, 왼쪽으로는 객석 끝까지 길게 사선으로 다리처럼 놓인 통로가 있다. 그곳을 통해 퇴근을 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오고, 아이들은 무대 바닥에 분필로 낙서를 하며 장난을 치고 돌아다닌다. 계단에 나와 앉아있는 아줌마들이 잡담을 나누며, ‘끔찍하다, 이 더위(Ain’t It Awful, the Heat?)’라고 노래한다. 그렇게 모여 수다를 떠는 동네 아줌마들을 통해 동네 사람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이 소개된다. 위층에 사는 안나는 요즘 남편 몰래 딴 남자를 만나는 것 같다고 하고, 누구네 딸은 장학금을 받았다고도 한다. 그리고 조금 지나 구설수의 주인공인 안나와 그녀의 남편 프랭크가 등장한다. 매우 신경질적이고 폭력적으로 보이는 프랭크 앞에 초라하게 선 안나가 노래한다. 인생이 이렇게 지루한 회색빛이 될 줄을 ‘어찌 미처 몰랐을까(Somehow I Never Could Believe)’라고. 동네 사람들과 다정한 말을 주고받으며 웃음을 나누는, 작은 행복을 꿈꾸었을 뿐인데 그마저 현실에서 이룰 수 없다는 내용의 이 뮤지컬 넘버는 안나 역의 엘레나 페라리가 가슴 절절하게 부르는 아름다운 소프라노 곡으로 랭스턴 휴즈의 고운 가사가 매우 인상적이다.


이렇게 현재의 불행을 서글퍼하는 안나와 그녀의 가족들의 이야기가 작품의 기본 줄거리를 이룬다. 안나의 다 큰 딸 로즈에게는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고 싶지 않냐(‘Wouldn’t You Like to Be on Broadway?’)며 유혹하는 직장 상사 해리가 있고, 외로이 집이나 지키며(‘Lonely House’) 몰래 그녀를 흠모하는 소심한 동네 청년 샘도 있다. 또한 안나의 어린 아들 윌리는 동네 친구들이 엄마를 ‘창녀’라고 불렀다며 싸움을 하고 오기도 한다. 그리고 안나의 가족들 주변에는 유태인, 이탈리아인, 아프리카인 등 다양한 인종과 배경의 동네 사람들이 여러 가지 서브플롯을 형성하고, 음악적으로도 다양한 색깔을 제공한다. 동네 청년이 부르는 ‘내겐 구슬과 별이 있지(I`ve Got a Marble and a Star)’는 흥청거리는 블루스 선율이 즐거운 뮤지컬 곡이고, 소심한 청년 샘이 부르는 ‘외로운 집(Lonely House)’은 가슴 짠한 재즈 선율이 애잔하다. 안나의 남편 프랭크가 동네 사람과 언쟁 끝에 부르는 노래, ‘옛날식으로 되게 해야 해(Let Things Be Like They Always Was)’는 푸치니의 오페라에 가까운 테너 곡이다.


결국 안나가 바람을 피운다는 소문이 사실로 밝혀지고, 남편 프랭크가 안나를 살해하는 것이 작품의 기본 사건을 이룬다. 하지만, 그것은 이 동네에서 하루 동안 일어났던 크고 작은 일상 중의 하나에 불과하기도 하다. 사건 전후로 퇴근길에 동네 아줌마들을 위해 아이스크림콘을 사 들고 와서 나누어주며 즐겁게 ‘아이스크림 6중창(Ice-cream: Sextet)’을 부르는 유머 넘치는 이탈리아 아저씨 리포도 있고, 밤사이 산통에 들어간 아내를 걱정하는 젊은 남편의 이야기도 있고, 밤새 길가에서 ‘달빛 얼굴과 별빛 눈길(Moonfaced, Starry-Eyed)’로 춤을 추고 노래하는 행복한 젊은 연인 딕과 메이도 있다. 하나하나의 인물마다 특유의 걸음걸이와 옷차림이 있고 개성에 맞는 음색이 주어진다. 그렇기에 시각적으로나 음악적으로 매우 컬러풀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특히 어린이 합창단을 활용하여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어린이들의 귀여운 모습으로 무대를 장식하고, 예기치 못한 순간에 하얀 드레스를 차려입은 아리따운 소녀들이 등장해 합창을 들려주는 사랑스러운 장면을 제공한 연출가 존 풀야메스는 풍성한 공간 감각과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필자가 공연을 본 날(9월 17일) 연주를 맡았던 BBC 콘서트 오케스트라 연주와 키스 록하트의 지휘는 큰 박수를 받을 만했다. 특히 2층에 일렬로 앉아 있던 12명의 관악기 연주자들의 연주는 탁월했다. 심장에 와 닿을 듯 깊은 소리로 다가오는 트럼본, 때로 가슴을 절절히 울리는 듯한 오보에 선율, 그리고 낭만적인 클라리넷의 연주가 귀를 즐겁게 했다. 

 

여주인공 안나 역의 엘레나 페라리는 비극적인 오페라 곡들과 함께 아들 윌리에게 부르는 노래 ‘너 같은 사내아이(A Boy Like You)’를 비롯한 사랑이 듬뿍 담긴 뮤지컬 넘버를 감동적으로 들려주었다. 남편 프랭크 역을 맡은 제오프 돌튼은 연기에 있어 다소 모노톤이기는 했지만, 폭력성이 드러나는 분노한 중년 남자의 모습을 실감나게 연기했으며, 음악적으로는 ‘문제 있을 줄 알아(There`ll Be Trouble)’와 같은 곡에서는 생생한 위협을 담아냈고, 아내 안나를 죽이고 나서 부르는 ‘나도 그녀를 사랑했어(I Loved Her Too)’에서는 구차한 살인자의 변명을 잘 표현했다. 딸 로즈 역의 수잔나 허렐은 가냘픈 외모와 아름다운 음색으로 선전했다. 그녀를 흠모하는 샘과 함께 부르는 오페레타풍의 노래 ‘기억해 내가 널 걱정하는 걸(Remember that I Care)’에서는 난이도가 높은 곡을 훌륭하게 소화하는 가창력과 흡인력을 발산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연기력보다는 가창력에 중점을 둔 오페라 가수 위주의 캐스팅이었고, 전 출연진이 쿠르트 바일의 명곡들을 빛낼 만큼 탁월한 실력을 자랑하는 보기 드문 무대였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7호 2011년 10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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