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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희랍 희극을 농구 코트로 <리시스트라타 존스> LYSISTRATA JONES [No.103]

글 |정예경 (뉴욕 통신원) 2012-04-21 4,151

리시스트라타 존스? ‘리시스트라타’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으면, 그리스 전사의 투구를 쓴 사람들이 농구공을 튀기는 실루엣이 담긴 이 작품의 포스터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아리스토파네스의 고대 희랍극 『리시스트라타』의 테마를 차용하여 현대적으로 새롭게 창작한 <리시스트라타 존스>! ‘리시스트라타’는 이야기의 여주인공 이름이다.


이 작품은 다운타운을 달구며 차근차근 개발 과정을 거쳐 팬층을 확보하고 브로드웨이로 입성하였다. 요즘 같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이런 역사를 가진 작품이 브로드웨이로 왔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다운타운에선 나름 떠들썩했던 작품인지라, 과연 제2의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쏠렸다. 결과는 예상보다 빨리 막을 내린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의미에서 한번쯤 짚고 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오리지널 줄거리
BC 410년에 창작된 아리스토파네스의 희랍극, 무려 2400년 전에 쓰여진 <리시스트라타>의 내용은 이러하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남편을 전쟁터에 빼앗기고 외롭게 가정을 지키던 부인들의 대표 ‘리시스트라타’는 부인들을 모아 ‘섹스 파업’을 벌이려고 한다. 빨리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끝낼 때까지 남편과 잠자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작품이 ‘희극’이 되는 건 바로 이 순간이다. 부인들은 찬성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도 불편할 것이라 생각하며 리시스트라타의 의견에 선뜻 동의하지 못한다. 하지만 결국 리시스트라타는 그녀들을 설득해 섹스 파업에 돌입한다.


남편들은 부인들의 대응에 당황스러워하다가, 맞불 작전을 쓰기로 한다. 여자들의 예측과는 달리 남편들이 아예 등을 돌려버리자, 여자들마저 이젠 리시스트라타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이 모든 상황의 중재자가 되고, 이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희극적으로 그려진다.

 

 

<리시스트라타 존스>의 배경은 ‘아테네 대학교’
30년간 한번도 이긴 적이 없는 유명무실한 농구부 선수들, 그들의 여자 친구들은 치어리더다. ‘리시’는 우리도 한 번 이겨봐야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하지만, 선수, 치어리더 할 것 없이 모두 일찌감치 포기하라고 말할 뿐이다. 리시는 치어리더들을 설득하여 섹스 파업에 돌입한다. 혼란스러워하던 농구 선수들은 시합에서 또 지게 되고, 여자 친구와도 대립한다. 일이 이렇게 되자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리시를 비난한다.


섹스가 급한 남자들은 창녀까지 만나러 가지만, 마음에 안식을 얻지 못한 채, 결국 그곳에서 모종의 ‘교훈’만 얻고 돌아온다. 한편, 공부밖에 모르다가 리시를 통해 꿈을 노래하게 되었던 친구들은 리시에게 용기를 북돋워준다. 그 후, 농구선수들과 치어리더들은 서로 화해하게 되고, 리시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도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남녀는 다시 짝을 찾는다. 더러는, 남남 커플이 되기도 하고, 커플이 크로스 되는 재미도!

 

 

작품 사이즈의 변화 - 무엇을 얻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브로드웨이로 오기 전, 이 작품이 오프에서 인기 있었던 이유는, 체육관에서 공연을 한다는 점이었다고 한다. 작품 컨셉에 어울리게 실제 장소를 활용하니 박진감 넘치는 안무가 나올 수 있었고, 현장감 때문에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했다. 하지만, 브로드웨이로 오면서, 무대 자체가 되었던 농구 코트는 온데간데없고, 좁은 무대 위에 농구대를 설치해야 했다. 뉴욕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까지 작품을 알릴 수 있는 기회는 확대되었으나, 기존 팬들은 아쉬워했다. 하지만 많은 소극장 작품들이 그렇듯, 스태프들의 유대가 끈끈한지, 막이 내린 지금까지도 인기 있던 넘버들을 가지고 캐주얼한 콘서트를 하는 등 작품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활발히 활동하며 기존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사실 이 작품은 현지 뉴요커들 사이에선 깨나 인기를 얻었다. ‘엄청 웃기는 뮤지컬’로 입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뼛속까지 미국적인 정서를 상징하는 섹스, 스포츠에 대한 소재를 활용한 유머가 팔딱팔딱 살아 숨 쉬는 깨알 같은 대사들이 ‘미국’ 관객을 웃게 했다. 실제로 관객들의 리뷰에는 ‘정말 웃기다!’는 평과, 이런 친구들의 추천으로 공연장을 찾은 현지 사람들이 참 많았다. 안타까운 건, 정말 웃기긴 하지만, 소재가 섹스에 대한 것이어서 민망한 동작이나 의상들이 나오기도 하는데, 단지 ‘웃기다’라는 소리만 듣고 공연장을 찾은 가족 관객들은 당황해 하기도 했다.   


이 뮤지컬이 빨리 막이 내린 건, 아마도 눈길을 잘 끌지 못하는 제목이나 포스터 같은 외부적인 요건뿐 아니라, 장소를 옮기면서 작품이 가진 매력과 독특한 분위기가 반감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농구 코트에 가면 자연히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무대에서는 여러 가지 장치를 통해 끌어올려야 한다. 그래서 배우들은 연신 좁은 무대에서 본인이 가진 에너지를 모든 장면에서 120퍼센트 사용하고 있었다.


장소의 신선함, 고전의 새로운 재해석. 이 작품의 두 가지 매력이 없었다면 애초에 관객 몰이가 불가능했다. 고전을 새롭게 재해석했다는 사실을 알고서 보면 ‘작품이 이렇게까지 재해석될 수 있구나’ 하며 신기해 할 수도 있지만,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그냥 극을 본 사람들은 지저분한 유머와 장면들이 그리 편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브로드웨이에선 일부 팬들의 꾸준한 사랑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이 제작자는 알게 되었을 것이다.

 

 

신나는 음악과 안무
처음부터 끝까지 신나는 음악과 안무는 이 극의 최대 강점이자 단점이 되기도 한다. 모든 음악이 비슷한 톤의 록 비트로 이루어졌는데, 처음엔 신나지만, 2막까지 계속 그런 스타일의 음악을 내리 듣다 보면 귀가 아픈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브로드웨이 스타일’의 엔딩을 의식했는지, 모든 곡에 박수가 나오게끔 클라이맥스가 나중에 오도록 노래를 만들었는데, 가끔은 너무 인위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박수를 쥐어짜는 느낌이랄까.


안무는 정말 ‘격렬’했다. 아무래도 농구 선수들과 치어리더들이 주인공이라는 설정 때문인지, 동작의 속도가 매우 빠르고, 온몸을 다 이용해야 하는 안무가 많았다. 특히, 농구 선수와 치어리더들의 동작을 활용해서 안무로 만든 점은 매우 훌륭했다. 직접 농구공을 튀기며 연기를 하는데, 에너지가 폭발하면서도 농구공 튀기는 속도까지 완벽한 걸 보니 참 신기할 정도였다.

 

어찌나 안무가 격렬하고 장면마다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지, 치어리더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몸매를 보면, 정말로 뼈에 근육만 붙어있는 수준이어서 사실 안쓰러웠다. 배우를 적당히 봐주지 않는 혹독한 안무가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모든 장면에서 배우들은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소극장에서 중극장으로
무려 24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섹스’라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공통된 주제로, 지금까지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테마, 공통된 웃음 코드를 찾아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결국 <리시스트라타 존스>는 안타깝게도 롱런하지 못하고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그래도 어쨌든, 오프에서 브로드웨이로 오며 작품을 키워 보려는 도전을 한 작품이란 데 의의가 있다.


롱런을 하지 못한 두 가지의 이유를 굳이 꼽아 보자면, 마케팅의 비효율과, 참 마음에 안 드는 이유이긴 하나, 업계의 말에 따르면 스타의 부재라는 점이다. 나아가, 이들이 제2의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될 수 없었던 이유는 엄밀히 따지면 그만한 ‘예술적 가치’, 즉 작품 자체가 가진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파격적인 소재의 진행 방식, 파격적인 장면으로 눈길을 끌고, 거기에 더하여 마음을 울리는 주제가 있었던 <스프링 어웨이크닝>에 비해, 희랍극에서 테마를 빌려왔다는 점 빼고는, <하이스쿨 뮤지컬> 또는 <브링 잇 온>과 너무나도 닮은꼴의 이 작품은 오리지널 <리시스트라타>를 이기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소극장에서 중극장으로 작품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작품을 사람들이 사랑했던 이유는 ‘실제 농구 코트’에서 벌어지는 박진감 넘치는 공연이며, 농구장 의자에 앉아 부담 없이 볼 수 있었다는 점인데, 브로드웨이로 오면서 이 작품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잃은 것만큼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했는데, 그것을 작품적 측면에서 채우지 못했다. 아마 농구 코트에 머물렀다면 더 공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장소에 따라 음악 스타일도 변하면 좋았을 텐데, 작품의 자연스런 에너지를 따르지 않고, 계속 관객의 귀에 높은 주파수라는 조미료를 치며 자극만을 추구한 얕은수를 쓴 것이 아쉬웠다. 대중성과 작품성, 초연의 신선함이 공존할 수 있는 작품 개발 과정이 필요하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3호 2012년 4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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