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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 맥줏집 이층의 소극장 뮤지컬 <롤 온 더 데이> ROLL ON THE DAY [No.104]

글 |정명주(런던 통신원) 사진제공 |Roy Tan(<롤 온 더 데이>) 2012-05-31 4,334

영국에는 ‘펍(Pub, Public House의 준말)’이라고 불리는 맥줏집이 동네마다 있다. 저녁이면 일을 끝내고 이곳에 들러 술 한 잔을 하는 것이 대부분 직장인들의 주요 일과 중 하나이다. 오는 손님들의 성향에 따라, 동네 위치에 따라 펍의 분위기도 다양하다. 한 가지 공통점은 식사 시간 외에는 제대로 된 안주 없이 감자칩이나 땅콩 정도가 고작이고, 대부분 앉을 자리도 별로 없어 서서 맥주 한 파인트(500ml 정도)를 마시는 것이 상례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소박한 분위기와 오랫동안 전 맥주 냄새로 기억하는 ‘펍’은 영국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술집으로, 그 역사가 천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로 치면 ‘주막’인 셈이다. 오랜 세월 영국인의 삶 속에 중요하게 자리해 온 펍은 먹고 마시고 노는 곳이다. 즉, 술은 기본이고, 여기에 식사와 숙박 시설, 엔터테인먼트까지 제공하는 펍들이 상당수 있다.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펍 문화
펍에서 제공하는 유서 깊은 엔터테인먼트로는 주말의 퀴즈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특히 동네 펍에서는 토요일 오후에 이웃들이 모여 퀴즈 경연에 참여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이 잘 가는 펍에서는 ‘기그(Gig)’라고 불리는, 밴드나 가수들의 연주회를 정기적으로 하는 곳도 꽤 있다. 그래서 펍은 영국의 신예 가수와 밴드들이 언더그라운드 시절에 기량을 닦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펍의 2층에 50석 남짓의 소극장을 운영하는 곳도 상당수 있다. 런던에는 1970년대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한 이러한 펍 극장 중에 음악뿐 아니라 연극과 뮤지컬의 창작 공연으로 명성을 날리는 곳들이 있다. 템즈강 남서쪽 배터씨에 있는 씨어터 503은 창작극 전문 펍 극장으로, 연극 중에서도 정치극 및 시사극으로 유명하다. 현재 절찬리에 공연 중인 로열셰익스피어극단의 뮤지컬 <마틸다>의 대본을 쓴 극작가 데니스 켈리도 젊은 시절에 씨어터 503에 신작을 올린 적이 있다. 카토리 홀이 쓴 <마운틴탑>이란 희곡은 이곳에서 초연한 후 올리비에 연극상에서 최우수 창작극상을 받았으며, 2011년 영화배우 사무엘 잭슨이 주연한 프로덕션이 브로드웨이에 올라가기도 했다.

 

 

오페라와 뮤지컬 전문 펍 극장, 킹즈헤드
1500년대, 헨리 8세가 정부를 만나는 길에 들러 맥주 한 파인트를 마셨다는 킹즈헤드(King’s Head) 펍은 젊은 예술가들이 많이 사는 이슬링튼에 위치하고 있으며, 1970년부터 운영하기 시작한 2층의 소극장에서 수많은 미니 콘서트와 창작극을 소개해 왔다. 이곳에서 초연한 작품 중 40여 편이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로 이전되는 ‘출세’를 경험하기도 했다. 영국의 펑크 밴드로 유명하며 뮤지컬 <쇼크헤드 피터(Shockheaded Peter)>에 출연하기도 했던 타이거 릴리즈(Tiger Lillies)도 젊은 시절 이곳에서 미니 콘서트를 하곤 했다. 최근 킹즈헤드는 음악극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10년부터 오페라업클로즈(OperaUpClose)라는 소형 오페라 기획단을 상주 단체로 두고 있다. 화려한 무대에만 서던 오페라 가수들을 맥주 냄새가 진동하는 허름한 펍 극장 무대에, 게다가 상주 단체로 두는 것 자체가 크게 화제를 모았다. 오페라업클로즈의 첫 번째 기획 공연인 <라보엠>은 2009년 35석의 초소형 펍 극장 콕 타번(Cock Tavern)에서 초연한 후 크게 인기를 끌어 6개월 장기 공연을 이어갔다. 물론 매진 사례를 이루었다고 해도 35석 극장에서 6개월간 126회의 공연으로 유치한 총 관객 수는 4,000명 내외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라보엠>은 런던 시내의 소호극장에서 재공연을 하여 찬사를 받은 뒤, 2011년 올리비에 연극상의 최고 오페라 공연상을 받는 쾌거를 거두었다. 현재 킹즈헤드 펍 극장에서는 비제의 <카르멘>을 공연 중이며, 오는 8월에 개막할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의 세계 초연을 준비하고 있다. 1925년에 발표된 피츠제럴드의 명작 소설을 작곡가 조 에반스와 연출가 리니 리드만이 뮤지컬로 각색한 것이다. 1920년대 미국의 화려한 선율들, 아메리칸 탱고와 왈츠, 래그타임 등을 적극 활용할 예정이며, 소극장 무대에 개츠비의 방들을 섬세하게 꾸며놓고 공연 전후에 관객들이 들어가 볼 수 있도록 특별 무대 장치를 계획하고 있다.

 

 

 

뮤지컬 전용 펍 극장, 란도르 씨어터
런던 남쪽, 저소득층이 많이 사는 클랩함에는 란도르 펍 2층에 란도르 씨어터(Landor Theatre)가 있다. 1994년에 오픈한 이 펍 극장은 1998년에 취임한 예술감독 로버트 맥위어의 지휘 아래 뮤지컬을 중점적으로 기획·제작하여 화제를 모으고 있다. 손드하임의 <폴리스>와 <어쌔신스>, <숲 속으로>를 기획 공연으로 제작해 호평받았고, 오프브로드웨이 작품인
<아이 러브 유 비코즈>를 공연하기도 했다. 물론 50석 남짓한 협소한 극장에서 공연되는 뮤지컬에서 화려함을 기대할 수는 없다. 전자 피아노 한 대, 많아야 세 명 규모의 미니 밴드가 함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마이크도 없이 열창하는 출연진들 역시 4~5명을 넘지 않는다. 란도르 씨어터는 영국의 창작뮤지컬을 선보이는 데도 힘을 쏟는다. 대학 뮤지컬 학과의 우수 졸업 작품들을 정식 프로덕션으로 제작하기도 하고, 신예 작가의 창작뮤지컬을 소개하기도 한다. 골드스미스 대학 졸업생들이 만든 뮤지컬 <오스텐테이셔스(Austentatious, 2009)>가 이곳에서 공연됐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을 연극으로 공연하는 상황을 그린 코미디 작품으로, 웨스트엔드 배우들을 기용하여 꽤 완성도 있는 무대를 선보였다. 2011년에는 영국 작곡가 하워드 구달의 뮤지컬 <하이어드 맨(The Hired Man)>과 로렌스 마크 와이트의 로맨틱 뮤지컬 <투모로 모닝>을 선보여, 타임아웃 매거진에서 평론가가 추천하는 우수 공연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투모로 모닝>은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를 연상케 하는 작품이다. 이혼을 앞둔 커플과 결혼을 앞둔 커플의 이야기가 엇갈리며 이어지는데, 마지막에 이 두 커플이 실은 같은 사람들이라는 설정이다. 작곡가 로렌스 마크 와이트의 가슴을 울리는 잔잔한 선율이 아름다운 뮤지컬로, 이혼하는 커플이 어린 아들을 보면서 ‘저 녀석, 정말 작품이지’ 하고 노래하는 ‘Look What We Made’는 감동적인 가사와 선율로 기억에 남는다.

 

 

 

런던 최소형 펍 극장, 에세트라 씨어터의 <롤 온 더 데이>
올 4월 중순까지 한 달여, 로렌스 마크 와이트가 작곡한 뮤지컬 <롤 온 더 데이>가 런던 캠든타운에 있는 펍 극장 에세트라 씨어터(Ecetra Theatre)에서 상연되었다. 런던의 최소형 프린지 극장으로 자처하는 곳의 작품답게 전자 피아노 한 대와 칸막이 형태의 간소한 무대에 세 명의 배우가 출연하는 작품이다. 2009년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 <투 클로즈 투 더 선(Too Close to the Sun)>을 선보였던 극작가 로베르토 트리피니가 대본과 가사를 쓴 소형 뮤지컬로, 전체 길이가 한 시간 남짓하다. 런던에 사는 불법 체류자인 나이지리아 청년 에코의 이야기로, 아마추어 화가로서 런던 풍경화를 그려 팔면서 평화롭게 살던 그가 갑자기 강제 출국을 당하게 될 처지에 놓이는 비극적인 결말을 그리고 있다. 작가 로베르토 트리피니는 전작인 <투 클로즈 투 더 선>에서도 노년의 헤밍웨이가 자살하기까지의 암울한 말년을 그렸는데, 8년 전에 썼다는 이 작품 역시 전체적으로 밝은 듯하다 결국은 어두운 엔딩을 맞이한다.


막이 오르면 청년 두 명이 뛰어나와 밝게 웃는다. 녹음된 목소리의 투어 가이드가 여기가 그린파크라고 알린다. 버킹엄 궁전을 비롯해 런던의 명소를 소개하는 목소리가 경쾌하게 들리는 가운데, 공원 앞에 가판대를 차리고 서 있는 두 청년이 나타난다. 흑인인 에코는 그가 그린 런던의 풍경화를 팔고 있고, 백인 청년인 댄은 관광 기념품을 팔고 있다. 두 사람이 경쾌하게 노래하는 오프닝 곡은 어여쁜 관광객 아가씨들을 보는 재미로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는 런던 총각들의 노래이다. 이어지는 곡 ‘Wonders of Nature’ 역시 온통 여자에 대한 그리움을 코믹하게 노래한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경이로운 여자들을 가질 수 없는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으로, 두 사람이 장난스럽게 주고받는 농담이 유머러스한 선율로 표현된다. 그러다가 에코가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보게 되면서, 세 번째 노래 ‘The Drum’이 시작된다. ‘모두 하나가 되라’며 울리는 북소리가 들린다는 내용의 이 곡은 스타카토로 빠르게 전개된다. 에코의 고향인 나이지리아의 정치적 혼란과 민주화에 대한 소망을 담고 있다. 군가와 행진곡을 연상케 하는 씩씩함이 한껏 느껴지는 곡이다. 그리고 미스터리한 여인이 나타난다. 너무나 예쁜 미국인 여자가 에코의 그림에 관심을 보이자, 두 청년은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 에코에게 그림을 하나 그려 달라는 그녀의 이름은 라비니아이다. 런던의 풍경이 아니라 그의 고향인 나이지리아의 풍경을 요구하는 그녀의 노래는 손드하임 스타일의 불협화음으로 이어진다. 진지하게 그림 얘기를 하는 그녀를 앞에 두고, 온통 그녀의 몸매만 생각하는 에코와 시샘하는 마음이 가득한 댄이 부르는 노래는 여성 보컬과 대비를 이루며 흥미로운 삼중창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라비니아가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풍경을 상상하는 ‘Where Earth Touches Heaven’은 꿈속의 고향을 그리며 감상에 젖은 에코의 노래가 더해져 서정적인 듀엣으로 발전한다. 자기 그림을 알아주는 여자를 만난 에코는 예술가로서, 남자로서 행복감을 만끽하며 노래한다. ‘내 추측이 틀리지 않다면, 난 이제 반쪽을 찾은 거’라고.

 


며칠 후 다시 찾아온 라비니아와 얘기를 나누던 중, 에코는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으며 사실은 불법 체류자임을 고백한다. 그 순간, 라비니아의 다정하던 목소리가 딱딱하게 바뀌고 미국 영어의 억양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녀는 차가운 영국 영어로 자신의 본명은 클라리스 피곳이며 영국 신문사의 기자로서, 방금 그가 한 말은 모두 녹음되었음을 알린다. 이 순간부터 경쾌하게 진행되던 가벼운 사랑 이야기는 갑자기 비극적 현실의 이야기로 돌변한다. 라비니아는 불법 체류자의 실례를 취재하기 위해 그에게 접근했던 사회부 기자였던 것이다. 카메라맨이 나타나 에코의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라비니아가 에코를 잡으려 접근했다는 차가운 고백과, 이를 믿을 수 없다는 댄, 충격에 휩싸인 에코의 삼중창인 ‘In for the Kill’은 무거운 선율의 반주와 함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적 전개가 연극적이다. 그 뒤를 이은 댄의 말은 더욱 충격적이다. 실은 댄 역시 불법 체류자를 단속하기 위해 위장하고 잠복해 있던 형사였던 것. 라비니아와 댄이 에코를 사이에 놓고 서로 자신이 체포해 가겠다고 다투는 와중에 ‘In for the Kill’은 불협화음이 심화되며 ‘Is It so Hard to Understand?’로 발전하고, 댄이 에코를 테러리스트로 몰아 부치면서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댄은 에코에게 동료들의 이름을 대면 라고스로 보내주겠다고 제안한다. 에코는 배반할 수 없다며 이를 거절하고 나가 버린다. 둘만 남은 댄과 라비니아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헌신하는 자신들을 자화자찬하며 부르는 ‘Roll on the Day’는 극의 흐름상 갑작스런 내용이긴 하지만, 음악적으로는 4분의 3박자의 경쾌한 왈츠 선율이 멋진 듀엣곡이다. 이 곡이 끝날 무렵, 다시 무대에 등장한 에코의 행동은 다시 한번 예상을 뒤엎는다. 자신을 불법 체류자로 체포하고 추방하려는 기자와 형사에게 몰려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게 된 자신의 처지를 언론에 알리고, 기자들이 모인 가운데 조국의 민주주의를 염원하며 온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라이터를 켠다. 이를 말리는 댄과 라비니아의 비명 소리와 함께 막이 내린다.


이렇게 경쾌한 톤으로 시작했다가 다소 사회정치적인 내용의 비극으로 돌변하는 대본은 개연성이 많이 부족하여 보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로베르토 트리피니의 가사는 재치 있는 농담과 불법 이민에 대한 통찰력 있는 언급을 담고 있지만, 전체적인 스토리에 일관성이 부족하다. 각 장면의 연극적인 상황을 음악적으로 잘 표현해 낸 로렌스 마크 와이트의 음악은 뮤지컬의 문법을 훌륭히 따르면서 다양한 색채의 음악을 선사했고, 대본상의 미흡함을 어느 정도 만회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전자 피아노 한 대만으로는 음악적인 완성도와 다양함을 다 보여줄 수 없어 아쉬웠다. 매우 협소한 소극장 작품이기에 연출가 톰 터너의 기량은 크게 눈에 띄지 않았고, 세 명의 신예 배우 아메르사키 오사코노(에코)와 켄드라 맥밀런(라비니아), 숀 키팅(댄)이 나름의 열연을 보이는, 전형적인 프린지 무대였다. 다만 나이지리아인을 연기한 흑인 배우 아메르사키 오사코노의 다소 불안정한 가창력이 아쉬웠다. 전체적으로 흥미로웠고, 특이한 소재를 선택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창작뮤지컬 개발에 열심인 젊은 기획사 스테이지 카인들리와 녹하디 프로덕션이 제작한 <롤 온 더 데이>는 대부분의 프린지 작품들이 그렇듯이 스토리의 구성력과 흡인력 보강이 숙제로 남았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4호 2012년 5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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