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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티나 터너의 인생역정을 담은 뮤지컬 <소울 시스터> Soul Sister [No.109]

글 |정명주 사진 |Marilyn Kingwill 2012-10-30 5,759

티나 터너의 인생과 노래를 담은 뮤지컬 <소울 시스터>가 런던의 사보이극장 무대에 올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무대에서의 존재감을 자랑하는 티나 터너, 그녀를 헤로인으로 뮤지컬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로 보였다. 일단 어디서 그런 여배우를 찾을 것인가. 더구나 세계 도처에 그녀를 숭배하다시피 하는 마니아 팬들이 상당수인데, 과연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만할 무대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티나 터너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티너 터너는 마이클 잭슨이나 마돈나만큼 인기 있는 가수는 아니지만, 그녀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티나 터너는 미모나 춤 실력을 자랑하는 ‘보기에 아름다운’ 가수는 절대 아니다. 대신 엄청난 가창력을 뿜어내며 신명나게 춤을 추는 그녀의 무대는 인생의 고단함을 잊게 만드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그것은 아마 세계적인 스타가 되기까지, 특히 가정사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던 그녀의 인생에서 오는 힘일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무대에는 역경을 딛고 일어선 진정한 헤로인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이 있고, 그녀에겐 매우 특별한 마니아 팬들이 있다. 2009년 런던 O2에서 개최된 티나 터너의 콘서트가 좋은 예이다. 인터넷 티켓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전산망이 다운될 정도로 수많은 팬들이 동시에 몰렸는데, 2만석이 넘는 대형 콘서트장을 가득 메운 그녀의 팬들 중 상당수가 동성애자들이었다. 게다가 30~40대 게이 커플 중 상당수가 나이든 어머니를 동반하고 온 점이 특이했다. 객석 곳곳에는 젊은 남자 둘과 어머니, 또는 젊은 여자 둘과 어머니 셋이서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마침내 티나 터너가 무대에 나타났을 때, 칠순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반짝이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고 신명나게 춤을 추는 그녀를 향해 관객들은 존경과 애정을 담아 폭발적인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그때 깨달았다. 티나 터너는 그냥 가수가 아니라, 인간 승리를 몸으로 보여주는 예술가라는 것을. 차별과 폭력, 불행으로 얼룩진 어두운 시절을 겪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존재이며, 살아남은 현재를 축하하는 아주 특별한 가수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뮤지컬 <소울 시스터>를 보기 위해 사보이극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뮤지컬 <소울 시스터>는 안심해도 좋을 만큼, 상당히 괜찮은 주크박스 뮤지컬이었다. 티나 터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애정을 듬뿍 담아 만들어낸, 소박하지만 흥겨운 축하의 무대였다. 그리고 그 일등 공신은 티나 터너 역을 맡은 흑인 여배우 에미 워코마(Emi Wokoma)였다.

 

 

런던의 할렘, 해크니에서 시작된 여정
‘티나 터너와 아이크 터너의 음악과 인생,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 영감을 받아’라는 긴 부제를 단 <소울 시스터>는 런던의 ‘할렘’이라고 할 수 있는 해크니 지역에서 올 4월에 첫선을 보였다. 흑인 인구가 대부분이며 우범지역으로 악명 높은 동네에 자리한 해크니 엠파이어극장은 지역민을 겨냥한 뮤지컬 및 연극으로 특별한 명성을 지닌 곳이다. 얼마 전까지 재정난으로 존폐 위기에 놓이기도 했으나, 주류 무대에서는 보기 힘든 소수 민족을 위한 공연장으로서 의미를 높이 사, 아츠카운슬의 특별 지원금으로 회생했다. 그렇기에 흑인 배우들을 전격적으로 캐스팅한 티나 터너 뮤지컬이 해크니 엠파이어극장에서 개막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소울 시스터>는 올해 4월 초연해 상당한 화제를 불러 모았고, 9월 한 달 동안 사보이극장에서 공연한 후 지방 투어를 시작한다.

 

 

인생 자체가 한 편의 뮤지컬인 티나 터너
공연은 1984년에 발표한 ‘Private Dance’로 시작한다. 빈 무대에 등을 돌린 채 홀로 앉아 있는 티나 터너는 사자 갈기같이 뻗친 금발 머리에 몸에 딱 달라붙는 빨간 원피스를 입은 낯익은 모습이다. 무대 뒷벽에 영상으로 티나 터너 관련 신문 기사들이 지나가는 가운데, 누군가 ‘티나’ 하고 외치는 목소리와 함께 백댄서들이 뛰어나오면서 저음의 유혹적인 노래를 시작한다. 곧이어 뒤에 숨어있는 흑인 밴드가 앞으로 나오면서 꽤 화려한 무대가 자태를 드러낸다. 그렇게 첫 곡이 끝나면 무대가 백스테이지로 전환되고, 공연을 끝낸 티나가 친구와 얘기를 나누는 장면으로 바뀐다. 요즘 잘 지내느냐, 전 남편 아이크와는 가끔 연락하느냐고. 이런 저런 얘기 끝에 ‘아이크’의 이름이 나오면, 공연은 과거로 돌아간다. 1956년, 열일곱 어린 나이의 티나가 아이크를 처음 만났던 때로. <소울 시스터>는 이렇게 현재(1980년대)의 티나가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1950년대에 테네시 시골 동네에서 올라온 열일곱의 처녀가 아이크라는 남자를 만나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하는 과정과, 그녀가 함께했던 반세기에 걸친 미국 대중음악의 역사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밤무대에서 흑인 밴드로 활동하던 아이크를 찾아가 처음으로 오디션을 보고 연수생으로 밴드에 합류하게 되며, 노래 실력이 어느 정도 안정될 즈음, 갑자기 펑크를 낸 유명 가수의 대타로 음반 녹음을 하게 되면서 성공의 기회를 얻게 되는 티나의 인생은 그 자체가 전형적인 뮤지컬 스토리이다.

 

 

무명에서 세계적인 스타가 되기까지
티나라는 예명을 갖기 전, 시골처녀 ‘앤’일 적 시절의 티나 터너가 아이크 앞에서 ‘Amazing Grace’의 첫 소절을 부르는 순간, 티나 역을 맡은 에미 워코마의 폭발적인 목소리는 놀랍다. 그녀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초창기의 티나를 연기할 때는 가창력을 조절하며 어색한 듯 노래하다가,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점차 안정감을 찾으며 발전해가는 과정을 실감나게 연기한다. 아이크의 흑인 밴드에 합류한 후 리허설에서 부르는 블루스곡 ‘You Know I Love You’에서는 아직 세련미가 부족하지만 제법 향상된 가창력을 선보인다. 그녀의 노래에 맞추어 색소폰 연주자 켄튼 노엘이 솔로 부분을 즉흥적으로 연주해주면,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금세 시간이 경과해, 티나는 세인트루이스 스튜디오에서 유명 가수의 대타로 ‘A Fool In Love’를 녹음하게 된다. 이 장면에서 에미 워코마는 마침내 폭발적인 가창력을 보이며, 1960년 미국 R&B 차트에서 2위를 기록했던 명곡을 훌륭하게 재현해낸다. ‘아이크 & 티나 터너’라는 이름으로 미국 전국 투어 공연을 하며 록이 가미된 소울곡 ‘I Idolise You’를 부르는 그녀는 의상과 가발이 눈에 띄게 예뻐진 모습이다. 이렇게 성공가도를 달리며 자신을 발굴해낸 아이크와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하게 된 티나는 아이크와 함께 음악을 만들면서 흐르는 세월에 따라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선보인다. 4명의 멋진 코러스 ‘아이케트’가 합세해 부르는 ‘Shake A Tail Feather’는 신나는 트위스트 곡이고, 코러스걸들이 ‘강강강강’ 하는 신나는 후렴구로 노래 실력을 자랑하는 ‘I’m Blue’는 소울과 블루스, 록큰롤이 절묘하게 혼합된 곡이다.

 

 

 

성공 끝의 불행, 그리고 재기
이렇게 성공과 행복을 모두 얻은 듯하던 티나의 인생은, 남편인 아이크가 코러스걸 중 한 명과 내연의 관계를 맺고 티나와 그녀가 동시에 임신을 하게 되면서부터, 뒤틀리기 시작한다. 부부 사이에 말다툼이 시작되고 아이크의 손찌검이 뒤따른다. 그럼에도 아이크 곁을 떠나지 못하는 티나의 마음이 ‘Poor Fool’이라는 소울곡으로 절묘하게 표현된다. 코카인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아이크의 신경질과 폭력은 점점 심해지고, 이를 참다 못한 티나는 ‘You Should’a Treated Me Right’를 부르며 화를 쏟아낸다. 이 곡은 피아노 솔로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애절한 독창곡으로, 티나 역의 에미 워코마는 온몸으로 절규하며 무대를 장악했다.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 뮤지컬의 경우, 실화에 근거하다 보면 뮤지컬 형식에 맞춰 스토리를 구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나 <소울 시스터>는 티나의 인생 자체가 한 편의 뮤지컬 구조에 완벽히 맞춘 듯이 무명에서 스타로 성공하는 이야기, 그 뒤를 따르는 불행, 역경을 딛고 재기하는 드라마를 가지고 있어서 큰 덕을 본 예이다. 티나 터너의 인생에 일어난 사건들을 차례대로 따라가는 이야기 구조는 자연스럽게 적재적소에 연극적 긴장감과 흥분을 만들어낸다. 1막에서는 무명에서 성공까지, 그리고 성공과 함께 시작된 아이크의 코카인 중독과 그로 인한 불행의 전조를 보여주고, 2막에서는 심화되는 불행과 어떻게든 참아 보려고 불교에 귀의하게 된 사연, 그리고 마침내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한밤중에 맨몸으로 집을 나온 사연을 가슴절절하게 그려낸다. 이미 성공한 가수인 그녀가 길거리에서 잠옷 바람으로 행인에게 ‘저는 티나 터너라고 하는데, 저 좀 도와주세요’ 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은 잘 알려진 일화로 그녀의 드라마틱한 인생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이 모든 불행을 딛고 1980년 혼자 힘으로 재기에 성공한 그녀는 참으로 대단한 의지력의 소유자이다. 과거의 사연을 모두 소개한 후, 2막의 후반부에서는 1980년대 현재의 티나로 돌아온다. 그녀의 대표곡들을 연이어 소개하면서 콘서트를 이어가는 설정으로 공연은 마무리된다. 극장 전체에 불이 밝혀지면서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 속에서 ‘I Can’t Stand the Rain’이 신나게 불려지고, 바로 뒤이어 전설적인 곡 ‘What’s Love Gotta Do With It’이 시작되면 관객들은 모두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이제는 완연히 1980년의 팝송 스타일로 분위기가 바뀐 그녀의 노래들, ‘Steamy Windows’, ‘Addicted To Love’, ‘The Best’가 연이어 불리고, 커튼콜과 함께 시작되는 ‘We Don’t Need Another Hero’에 이르자 일제히 기립한 관객들의 박수 소리에 온 극장이 떠나갈 듯했다.

 

 

스크린을 활용한 다큐멘터리의 느낌
공연 내내 무대 위의 스크린에 각종 신문기사들이 투사된다.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반세기의 역사를 쉽게 설명해주면서, 작품의 전체 분위기를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1960년대 말을 장식한 베트남 전쟁과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암살을 비롯해 세계 유명 인사들의 기사들이 수시로 배경 화면에 나타나며, 장면이 전환될 때는 미리 녹화해둔 에미 워코마의 영상이 인터뷰처럼 삽입된다. 1960~1970년대에 초점을 맞추어 스크린을 적극 활용하고 전체적으로 레트로 풍으로 장식한 디자이너 로라 홉킨스의 감각이 돋보였다. 연극과 오페라 무대에서 주로 활동한 로라 홉킨스는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와 뉴욕의 우스터 그룹의 합작품인 <트로일러스 & 크레시다>를 비롯해, 오는 10월 한국 국립극장에서 공연될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의 <블랙워치> 등으로 크게 호평받은 디자이너다. <소울 시스터>에서는 대형 칸막이 모양의 막이 블라인드처럼 무대를 가로질러 지나가게 하면서 순간적으로 무대가 바뀌는 등 장면 전환에 단순한 경제성을 발휘했다. 

 

 

쇼와와 드라마를 나누어 맡은 공동 연출진
<소울 시스터>는 전체적으로 간소한 버전의 쇼 무대로 연출되었다. 연출가 피트 브룩스(Pete Brooks)는 현재 세인트 마틴스 디자인 대학 교수로 재직 중으로, 주로 엔터테인먼트 공연과 시각 예술 분야에서 활동해온 연출가이다. 그는 이 공연에서 주로 콘서트 장면 구성을 맡은 듯하다. 공동 연출을 맡은 밥 이튼(Bob Eaton)은 주로 지방 소극장 무대에서 활동해온 연출가로, 1981년 존 레논이 암살되자마자 그의 고향인 리버풀에서 연극에 가까운 뮤지컬 <레논(Lennon)>을 써서 발표한 것으로 유명하다(오노 요코가 관여했던 2005년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다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런던과 브로드웨이에 공연했으며, 존 레논 탄생 70주년이었던 지난 2010년에는 영국 최고의 창작극의 산실인 런던의 로열코트극장에서도 공연된 바 있다. 재치 있는 코미디 요소로 특히 호평을 받았던 뮤지컬 <레논>의 경험을 살려 이번 무대에서도 티나 터너의 인생에 코미디와 감동을 적절히 가미해 한 편의 드라마로 구성하는 데 기여했다.


밴드와 코러스 위주의 <소울 시스터>에서 코러스는 4명 안팎으로 화려한 군무는 볼 수 없었지만, 티나 터너 음악의 변천사에 따라 코러스 걸들이 다양한 안무를 소개했다. 흑인 코러스 특유의 댄스 스타일을 살리기 위해, 이번 공연에도 역시 제이슨 페니쿡(Jason Pennycooke)이 기용되었다. 그는 다이내믹한 스냅이 많이 들어간 동작을 중심으로, R&B와 트위스트, 그리고 1980년대 팝송 스타일의 화려한 동작까지 무난하게 소화해냈다. 제이슨 페니쿡은 지난 호에 소개한 <키스 미 케이트>에 출연하고 있고, 최근 <라카지>의 영국 프로덕션에서 집사 자코브 역으로 능글맞은 코미디를 선보여 인기를 모은 바 있다. 흑인 뮤지컬이라면 늘 감초처럼 등장하는 배우로, 재작년에 리바이벌됐던 <파이브 가이스 네임드 모우(Five Guys Named Moe)>와 흑인 뮤지컬로는 드물게 웨스트엔드에 진출했던 <빅 라이프(The Big Life)>를 안무해 올리비에 연극상을 받기도 했다.

 

<소울 시스터>는 티나 터너의 인생 드라마와 반세기에 걸친 노래를 기본 재료로 한 알뜰형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특히 2막의 후반부가 이를 잘 보여준다. 무려 일곱 곡에 달하는 히트곡을 스토리 없이 연달아 부르는데, 관객 반응이 제일 좋은 부분이기도 하다. 경제적인 무대 디자인이나 무난한 연출에서는 대단한 특이점을 찾아볼 수 없기에, 가장 큰 성공 요인은 티나 터너의 인생과 노래를 훌륭하게 재현해낸 에미 워코마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더불어 상대역 아이크를 연기한 크리스 터밍스 역시 좋은 연기력과 가창력, 거기에 기타 실력까지 자랑하며 에미 워코마와 멋진 앙상블을 선보였다. <소울 시스터>는 웨스트엔드 장기 공연을 목표로 기획된 작품은 아니고, 한 달간의 짧은 공연 후 두어 곳의 지방 투어 공연만을 계획한 탓인지 저예산의 알뜰형 무대가 아쉬움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겨진 흑인 배우와 실력 있는 흑인 밴드의 활약으로, 티나 터너의 팬들에게 결코 실망스럽지 않은 감동의 무대를 선사하며 선전하고 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9호 2012년 10월 게재기사입니다.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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