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를 쓰다보면 간혹 곤란할 때가 있다. 첫 번째 경우는, 작품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가 거의 겹쳐서 비수기에 괜찮은 신작이 전무할 경우. 두 번째는 독자들에게 소개하려 고르고 골라 관람한 작품이 별 다섯 개 중 별 세 개에 겨우 미칠 때. 독자들에게 죄송하지만 미리 이실직고하자면, 이번 호에 이 두 가지 고민이 맞물렸다. 그럼에도 이번 연재를 쉬지 않은 것은, 작품의 완성도는 떨어지더라도, 그 이야기의 무게 자체만 따져보자면 소개할 가치가 꽤 있다고 생각했고, 또 한편으로 브로드웨이의 크리에이터들이 범한 실수를 타산지석으로 삼아볼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1960년대 팝의 여제, 더스티 스프링필드
<포에버 더스티>는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소울팝 스타 더스티 스프링필드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다룬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이다. 그녀의 노래를 바탕으로 한 주크박스 뮤지컬로 만들었다. 요즘의 젊은 세대가 더스티 스프링필드를 모른다고 해도, 그녀의 노래는 이미 한 번씩은 들어봤을 것이다. 많은 가수들이 ‘I Only Want To Be With You’, ‘The Look Off Your Eyes’ 같은 그녀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했기 때문이다.
더스티 스프링필드의 국적은 영국으로, 본명은 메리 오브라이언이다. 그녀는 오빠 톰과 함께 ‘더 스프링필드’라는 그룹을 결성하여 활동하고 미대륙에 이름을 알리지만, 자신만의 음악적 색깔을 찾기 위해 팀을 해체하고 싱글 가수로 전향한다. 블루 아이드 소울 뮤직으로 스타덤에 오르는 그녀. 하지만 개인적인 삶은 순탄치 않았다. 동성애가 죄악시되었던 시대에 레즈비언이었던 그녀는, 전 세계 투어를 다니며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지내야 했고, 약과 술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며 개인적으로 힘겨운 시간들을 보낸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는 등 성공적인 커리어를 갖게 되었지만, 유방암 판정을 받고 화려했으나 힘들었던 일생을 마감한다.
더스티 스프링필드의 인생은 흥미로운 점이 많다. 인종 갈등이 심했던 시대에 흑인 음악 소울을 하는 영국 백인 여자였다는 점, 레즈비언이었다는 점, 알코올 중독으로 재활 치료를 받는 등 삶이 순탄치 않았다는 점. 미국에서 소울 음악을 하는 백인 여자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였는지, 레즈비언으로서의 정체성과 인간관계의 혼란 등 집중 조명할 수 있는 요소가 정말 많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제일 아쉽다.
팝스타는 인생 역경이 많다. 누가 봐도 부러운 자리지만, 그 인기가 언제 떨어질지 몰라 불안해 하고, 팬들의 기대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란 그 사람이 되어보기 전까진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일반인들이 이런 팝스타의 일생을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극을 만들어서 보여주고자 한다면, 그 팝스타가 어째서 그런 삶을 살아야만 했는지, 연민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해주는 탄탄한 플롯이 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욕심 넘치는 주연 배우와 끼를 감당 못하는 조연 배우
앞서 언급한 대로 <포에버 더스티>는 더스티 스프링필드의 굴곡진 일생을 다룬 작품이지만, 사실 무대 위 그녀의 삶은 별로 파란만장해 보이지 않았다. 알코올 중독으로 폭력적이 된다거나, 레즈비언들의 섹스 장면 등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충격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의 인생이 파란만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설득력이 없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주연 배우가 2006년부터 <포에버 더스티>의 공동 작가로 참여했는데 이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배우 개인의 욕심과 자아가 들어간 작품은, 그의 1인극이 아닌 이상 극의 균형이 깨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성룡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연륜 있는 배우에서 감독으로 전향한 경우도 있지만, 그들은 감독이 되기 전에 배우로서의 충분한 이력을 쌓았다. 하지만 이 주연은 배우로서조차 불안했다. 노래는 발성의 불안정함으로 음정이 떨어지기까지 했다. 가왕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배우로서 지지 않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는데, 그만한 에너지가 부족했다.
반대로 조연으로 출연했던 흑인 여배우는 특유의 소울이 너무 넘쳤다. 넘치는 성량과 파워풀한 가창력, 에너지 넘치는 댄스는 주연을 압도했고 박수도 제일 많이 받았다. 하지만 역할로서의 인물이 아닌, 자기 자신을 너무 드러내는 바람에 내내 캐릭터가 붕붕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배우들이 호연을 펼쳐도 일반인들이 보기에 레즈비언의 사랑을 100% 이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인데, 두 사람의 호흡이 안 맞으니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다. 동성애를 소재로 했지만, 지난 호에 리뷰를 썼던 <베어>에서의 가슴 절절한 사랑은 느껴지지 않았다.
창작자와 배우가 그 인물을 좋아하는 마음은 무대에서 논리적이고 치밀한 계산 없이 전달될 수 없다. 열심히 노래하고 목청껏 소리 지르며 30초짜리 감성을 말초적으로 자극하더라도, 뮤지컬이란 장르에서 속임수는 통할 수 없다. 쇼맨십이나 스타성으로 극을 끌어가기엔 두 시간이란 시간은 너무 길고 관객들도 영리하다. 만약 스타 한 명으로 쇼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것은 그냥 팝 그 자체인 편이 나을 것이다.
결론은 <포에버 더스티>는 더스티 스프링필드가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이었음을 반증해준 작품이라는 것이다. 창작 팀은 그녀를 좋아하여 작품을 만들기까지 수년의 세월과 노력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더스티가 될 수 없었던 배우의 역량으로 인해, 원래의 인물이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가 더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오프브로드웨이 작품의 고민
브로드웨이 작품들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연출가가 많은 전환 기법을 쓴다. 무대 세트가 천장에서 내려오기도 하고, 무대 밑에서 올라오기도 한다. 하지만 극장 규모나 자본 문제로 오프브로드웨이 작품에서는 이런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장면 전환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연출가의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일 것이다. 장면 전환을 어떻게 유려하게 하느냐에 따라 극의 매끄러움과 완성도가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오프브로드웨이 작품에서는 전환 장면이 관객에게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면에서는 빠르고 간결한 무대 전환이 어울리는 게 당연하다. 또한 배우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오프브로드웨이 공연만의 재미가 아닐까. 하지만 <포에버 더스티>에서의 무대 전환은 그 간결함을 남용하여 그야 말로 ‘정신없이’ 진행되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여주인공이 “클레어, 나 레코딩 계약하고 올게”라고 말하고 나서, 잠시 후 단상 아래로 내려와서 레코딩 계약 조건을 이야기하며 짧게 협상한다. 그리고 다시 단상 위로 올라와서 “클레어! 계약은 성공적이었어!” 이렇게 단순한 극 진행과 장면 전환이 또 있을까. 차라리 생략해도 될 장면일 뻔했다. 이것은 전적으로 작가와 연출의 상상력 부족이라고밖에 생각이 안 된다. 이런 불필요한 장면이 몇 군데가 있었고, 그 군더더기를 이어 붙이려다보니 장면 전환도 어수선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포에버 더스티>는 극의 완성도 때문에 평단은 싫어하지만, 작품성이야 어쨌든 두 시간 음악을 들으면서 즐기려는 관객들은 좋아하는 작품이다.
오프브로드웨이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선 이야기
연극이나 뮤지컬은 시공간의 편집이 수시로 가능한 영화와는 다르다. 따라서 긴 시간의 이야기를 다루는 일대기적 작품은 공연으로 만들 때 상당히 주의해야 한다. 인생을 압축해서 시간 순으로 보여주다 보면, 중심 사건에 집중하기가 어렵고 노래만 들려주는 쇼에 그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사건 중심이 아닌, 인물 중심의 작품들은 태생적으로 이런 고민을 안고 있다.
이런 면에서 <포에버 더스티>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주크박스 뮤지컬 <맘마미아>나 거슈윈의 음악에 새 이야기를 입힌 <나이스 워크 이프 유 캔 겟 잇> 등과 차이가 있다. 아바, 거슈윈의 노래는 흥행 보증수표가 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탄탄하게 극을 끌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아는 프로듀서들은 음악에 빚은 지되, 음악이 모든 것을 책임지게는 하지 않았다. 그것이 차이다. <포에버 더스티>는 음악을 너무 남용했다. <맘마미아>나 <나이스 워크 이프 유 캔 켓 잇>은 익숙한 히트곡에 극적인 드라마까지 잘 엮여졌으며 그것이 바로 히트의 키포인트였던 것이다. 작가와 작곡가의 역할은 뮤지컬에서 동등하게 중요하다. 왕년의 히트곡에 힘을 기대어 뮤지컬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순진하다 못해 바보 같은 생각 아닌가.
어쨌든 한 사건이 아닌, 일대기를 다룬 뮤지컬들은 주인공이 굉장히 매력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이야기를 무대 위에 옮겨놓을 때는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의 일생을 사실에 기반해 보여주면서, 어떤 부분은 더 흥미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몇 달 전 본지에 리뷰로 썼던 <채플린>도 역시 같은 어려움을 겪었다. 단지 <채플린>은 브로드웨이 작품이라 규모가 훨씬 크고, 쇼적인 요소를 많이 넣어서 사람들을 계속 집중시켰기 때문에 그런 문제들이 상대적으로 가려진 것뿐이다. 하지만 <포에버 더스티>는 규모상 그런 쇼를 할 수 있는 여건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데 더스티는 화려했던 여가수가 아닌가? 더스티란 인물을 선택했으면, 프로듀서는 오프브로드웨이가 아닌 브로드웨이를 정공법으로 뚫었어야 했다. 이들은 ‘판’을 잘못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채플린>은 일단 팝스타가 주인공인 작품이 아니다. 무비스타가 주인공인 드라마 중심의 작품이다. 그래서 특정 장르의 음악팬만 좋아하는 <포에버 더스티>와는 또 차이가 있다.
필자의 사견을 피력해보자면, 더스티의 일생을 보여주더라도 꼭 그녀의 음악만으로 모든 것을 채워 넣을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팝은 3~4분 안에 클라이맥스가 나오고 끝나는데, 뮤지컬은 작곡가가 의도적으로 클라이맥스를 넣지 않는 경우도 많다. 모든 넘버에 클라이맥스가 나오면 극의 흐름에 방해가 되고, 이는 극에 몰입하는 데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뮤지컬 넘버로 팝 음악을 수용할 땐 이런 문제가 있다. 또한 유명한 후렴구만 들려준다고 뮤지컬을 보러 온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뮤지컬은 뮤지컬이다. 종합예술인 뮤지컬이란 장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팝 음악을 효과적으로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주연배우가 쉴 새 없이 노래하느라 지쳐 보이는 것보다는, 핵심 포인트에서만 더스티의 노래가 흘러나왔다면 훨씬 감동적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극장 문을 나서며…
<포에버 더스티>에 대해 혹평했지만, 역시 주크박스 뮤지컬이란 프로듀서들에겐 좋은 아이템이다. 아무리 망해도 기본적인 흥행은 한다는 것. 극 구성이 좀 아쉬워도 과거를 회상하고 싶어 하는 관객들이 기꺼이 돈을 쓰러 오기 때문이다. <포에버 더스티> 역시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수많은 관객들이 더스티 스프링필드의 노래를 라이브로 듣기 위해 극장을 찾아왔고, 어쩌면 그들에겐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3호 2013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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