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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AT THE END] 작은 벌들의 비행 [No.99]

글 |김영주 2012-01-09 3,981


처음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미학자이자 평론가인 진중권 씨와 <나꼼수> 지지자들의 충돌 때문이었다. 그가 <나꼼수>라는 팟캐스트 프로그램의 신봉자들이 보이는 맹신적인 태도를 ‘닭들의 부흥회’라고 냉소적으로 표현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누리꾼 다수와 저 전설적인 ‘키보드 워리어’ 출신의 논객 사이에 날선 공방이 오가는 것을 보면서 2009년 겨울 『교수대 위의 까치』 출간 직후 인터뷰 때 그에게 최근 당신에 대한 대중들의 호감도가 뜨거운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났다. 
“촛불 집회 이후로 좋은 분위기가 오래 가는 것 같은데 <디 워>나 황우석 사태 때의 대중과 지금 편 들어주는 대중들은 결국 같은 대중이에요. 그런 것보다는 지금 내가 옳은가가 중요해요. 내가 잘못했는데 대중들이 환호하면 그건 잘못된 거고, 내가 옳은 말을 했는데 대중들이 싫어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죠. (……)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가 자기 생각과 맞아떨어지는 이들은 통쾌해하는 건데, 그건 사실 본질적인 부분은 아니에요.”
정부비판적인 성향의 웹사이트에서 그에 대해 쏟아지는 격한 반응들을 보면서 2년 전 그의 답변이 마치 예언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대체 어떤 프로그램이기에 이런 충성도 높은 팬들을 거느리게 되었나 호기심이 생겼다. <딴지일보>의 김어준 총수와 시사평론가 김용민 전 교수, 정봉주 17대 국회의원(내년에 19대 총선이 치러진다)과 <시사인>의 주진우 기자까지 4인방이 고정 패널로 진행하는 이 팟캐스트 프로그램은 올해 4월 28일 ‘BBK 총정리’ 편으로 시작해서 11월 22일 현재 29회 ‘중앙일보, 곽노현, 그리고 맥쿼리’까지 업로드 되었다.

 


때때로 게스트가 나오기도 하는데, 정부여당의 당대표와 제1야당의 당대표가 모두 출연한 적이 있을만큼 그 면면은 공중파 시사 프로그램 못지않다. 공중파 시사 프로그램과의 결정적인 차이도 있다. 서울 시장 선거가 끝난 직후 유시민, 노회찬, 심상정을 초대해놓고 그들을 ‘떨거지 3인방’이라고 놀려먹으면서 스스로 자신이 떨거지가 된 이유에 대해 참회하고 재활해야할 이유를 설명하라고 종용한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를 불러다 놓고 눈썹 문신 시술을 어떻게 받았냐고 추궁한다. 전직 장관도, 국회의원도, 당대표도 <나꼼수> 월드에서는 채신머리없이 낄낄거리고 너나 할 것 없이 바보 취급을 하는 그 화법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고 대중이 단지 권위를 해체하고 조롱하는 풍자에 맛을 들여서 이 프로그램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나꼼수>는 대체로 대중이 알고 싶은 이야기를, 대중이 듣고 싶은 화법으로, 확신에 차서 말한다. 평범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그 관계나 사건의 맥락이 전혀 잡히지 않는 BBK사건이나, 저축은행 사건, 자원외교의 맹점에 대해서 족집게 과외 식으로 핵심을 정리하면서 적절한 비속어와 풍자, 뻔뻔스러운 유머를 뒤섞어 내놓는다. 대기업과 언론과 권력 기관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의 밑바닥에 깔린 숨은 의미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나꼼수>의 4인방은 지금껏 진보진영에서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는 고고한 자긍심으로 유지해왔던 마지노선을 거침없이 넘나들면서 인신공격이나 흑색선전이 아니냐는 반문이 나올 만한 ‘떡밥’들을 겁도 없이 던진 다음 ‘이건 다 소설이야! 그분은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잖아?’라고 변죽을 올린다. 


인도의 작가 아룬다티 로이는 첫 소설로 부커상을 수상한 이후 사회고발을 위한 연설문과 에세이만을 쓰고 있는데, 저서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제국 가이드』에서 흥미로운 비유를 했다. 그녀는 자본과 권력을 등에 업은 제도권 언론과 그에 저항하는 뉴 미디어의 관계를 ‘늙은 들소와 그를 귀찮게 하는 벌떼들의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넓은 평원을 육중한 몸으로 움직이면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들소는 비단 제도권 언론만이 아니라 권력 그 자체로 치환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소통 불능의 상태로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하는 들소를 골치 아프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벌떼는 제 역할을 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이 벌떼의 윙윙거리는 날갯짓에 사실과 진실을 알고자 하는 노력을 모두 맡겨도 괜찮은 것일까. <나꼼수>를 ‘닭들의 부흥회’로 만드는 것은 게릴라 전법을 쓰고 있는 4인방이 아니라, 자신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경전처럼 받들어 모시는 수용자의 태도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9호 2011년 12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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