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엘 도르프만의 <죽음과 소녀>가 두산 아트랩에서 지난 1월 6일~7일 양일간 쇼케이스로 공연됐다. 양손프로젝트의 박지혜 연출이 선보인 <죽음과 소녀>는 8장으로 구성된 원작에서 3장만을 취하고, 사실주의인 작품을 심리적인 방식으로 재현하여 깊은 인상을 주었다. 쇼케이스이기 때문에 간소화한 면도 있지만 무대 세트는 긴 테이블 여러 개와 로베르또가 앉은 의자만을 사용했다. 긴 테이블은 기본적인 구역을 나누는 틀로서 기능하기도 하고 심리적인 장애물로서 작용하기도 했다.
<죽음과 소녀>는 독재 정권을 거치고 난 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상처를 응시한다. 독재 정권하에서 투쟁을 했던 변호사이자 인권위원회 대표인 헤라르도는 갑작스런 자동차 고장이 발생해 곤란을 겪고 있을 때 지나가던 의사 로베르또의 도움을 받게 된다. 헤라르도는 로베르또를 집에 초대해 술을 대접하고 잠자리까지 제공한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상황이 변해있다. 로베르또는 의자에 포박되어 있고, 헤라르도의 아내 빠울리나는 그를 총으로 위협한다.
박지혜의 <죽음과 소녀>는 가장 긴장감이 높은 이 지점부터 극을 시작한다. 독재 정권하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던 시절 빠울리나는 눈가리개를 한 채 고문을 당했는데, 그녀는 로베르또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가 자신을 고문한 의사라고 믿는다. 남편 헤라르도는 목소리만으로 의심하는 아내를 설득하고 만류하려 하지만 아내는 고집을 굽히지 않고 로베르또에게 모든 것을 고백한다면 용서해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남편은 로베르또가 아내를 강간하고 고문한 인물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면서도, 아무 증거 없이 무고한 사람(그것도 은인)을 감금하고 폭력을 가하는 것이 아닌지 갈등한다. 남편과 로베르또는 정신적으로 불안한 빠울리나가 사고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단 그녀의 말을 들어주기로 한다. 그래서 아내에게 일어난 일을 남편이 먼저 듣고 녹음한 후 그것을 로베르또에게 전해줘서 그대로 말하고 용서를 구하도록 한다. 빠울리나는 로베르또의 고백을 듣고 용서하기로 하고 남편에게 숨겨둔 로베르또의 차를 가져오라고 보낸다. 남편이 나가자 그녀는 로베르또에게 총을 겨눈다.
과거의 상처가 되살아나 약속을 어기고 그를 살해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애초부터 남편과 로베르또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 빠울리나 역시 목소리만으로 이자가 정말 자신을 고문한 자인가 하는 일말의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이야기할 때 함께 고문에 참여한 사람의 이름을 살짝 바꾼다거나, 약간의 상황을 일부러 바꿔서 고백했다. 그런데 로베르또는 그녀가 고쳐서 전한 이야기를 모두 바로잡아서 이야기했던 것이다. 확신한 빠울리나는 로베르또에게 총을 겨눈다.
그녀가 방아쇠를 당겼을까? 그 전에 정말 로베르또는 빠울리나를 고문한 의사일까? 스토리상 로베르또의 혐의는 충분하다. 하지만 여전히 로베르또가 고문한 의사가 아닐 여지는 남아 있다. 어쩌면 이것이 빠울리나가 겪은 신체적,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정신적 착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그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로베르또가 그 의사인가, 아닌가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재 정권 안에서 한 인간을 파멸시킨 폭력과, 15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씻을 수 없는 상처에 초점이 놓인다. 박지혜 연출도 이 점에 대해서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 박지혜 연출의 <죽음과 소녀>에서는 로베르또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를 등장시키지 않았다. 총 세 명의 배우가 등장하는데 아내 빠울리나와 남편 헤라르도 역만 등장하고 로베르또는 의자에 묶여 있는 것으로 설정하고는 끝이었다. 그 대신 이들의 주변을 맴돌며 이야기에 끼어들고, 상황을 묘사하는 해설자를 등장시킨다. 해설자는 주로 의사 로베르또의 말을 대신해 주지만 로베르또의 말뿐만 아니라 빠울리나의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생각들을 그녀가 말하기 전에 미리 말하기도 하고, 남편의 생각들도 같은 방식으로 전달한다. 해설자는 이 상황을 지배하고 있는 전지전능한 인물이자, 이 상황을 파멸로 이끄는 악마 같은 느낌을 준다.
박지혜의 <죽음과 소녀>는 로베르또의 실체를 삭제함으로써 이 작품을 빠울리나의 개인적인 복수나 상처의 문제가 아니라 독재권력하의 폭력과 그로 인한 개개인들의 보편적인 고통을 응시하게 한다. 그녀를 고문한 것이 로베르또인지 아닌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누구였든 그녀를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비인간적인 폭력을 가했다는 사실이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러한 폭력을 가한 권력, 힘의 실체이다.
박지혜 연출은 권력을 상징하는 도구로 마이크를 사용한다. 마이크는 주로 해설자가 사용하지만 때로는 빠울리나나 헤라르도도 마이크를 사용한다. 마이크의 사용은 비교적 일관되게 주도권을 잡은 이가 말을 할 때 사용하게 한다. 빠올리나가 자신이 도움을 준 은인임을 강조하며 헤라르도에게 자신을 도와야 한다고 윽박지를 때나, 반대로 헤라르도가 빠올리나를 강요 반, 설득 반으로 아내의 말을 따르도록 할 때 마이크를 사용해서 말한다. 마이크의 사용은 동등한 대화 방식을 파괴한다. 마이크는 일방적인 소통을 강요한다. 그래서 폭력적이다. 해설자가 주로 마이크를 잡고 있는 것은 상대적으로 힘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전지전능하게 현재 상황이나 심리를 설명하고, 로베르또가 아니면서 로베르또를 대신한다.
지난 독재 정권하에서 이루어진 폭력, 아문 듯하던 생채기가 덧나고 고통이 새어나오는 과정을 해설자는 즐기듯이 전개해간다. 이 장면이 박지혜 연출의 탁월함이 빛나는 순간이다. 마지막 순간 빠올리나는 로베르또가 묶여 있다고 설정한 의자에 겨누었던 총구를 해설자에게 돌린다. 이 장면은 충격적인 인식을 동반한다. 빠올리나는 상처받은 개인을 뛰어넘어 부당한 폭력에 고통을 받은 대표자로서 그것을 가해한 폭력, 그것을 야기한 시스템에 총구를 겨눈 것이다. 이로써 개인적 복수는 확장되어서 일방적인 권력과 그들이 벌인 난폭한 폭력을 겨냥하게 된다. 연출은 원작에서 진정으로 겨누고 싶었던 실체를 캐릭터화해서 빠올리나에게 그것을 실행하게 한다. 강렬한 마지막 장면은 사실주의 원작에서는 달성하기 힘든 메시지의 명확한 성취를 이루어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1호 2012년 2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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