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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프리뷰] 정태춘, 박은옥 콘서트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No.102]

글 |김영주 사진제공 |쇼노트 2012-03-07 4,452

시인, 다시 세상을 노래하다

 

중학생 시절,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간 콘서트는 정태춘과 박은옥이라는 낯선 이름의 포크 가수들의 공연이었다. 게스트로 나오는 해바라기가 오히려 더 유명하다고 생각하면서 앉아있었는데 어떤 곡을 들은 순간부터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가난한 어머니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러 간 사이에 아이들이 길에 나가 위험한 일을 당할까봐 밖에서 열쇠로 문을 잠갔는데, 불이 나서 남매가 함께 목숨을 잃은 비극에 대한 노래였다. 부부가 노래를 하는 동안 스크린에는 그 노래를 들은 아이들이 희생된 또래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그린 그림들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 후 이런저런 자리에서 두 사람의 노래를 몇 번 더 들었다. 마지막은 6년 전 종로에서였다. 그냥 길을 걷고 있었는데, 사람이 조금 모일 수 있는 공간에서 익숙한 목소리의 두 사람이 노래를 하고 있었다. 대추리에 미군 기지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기 위한 거리 콘서트였다. 평택 출신인 남편이 자신의 고향 마을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 했기에 거리에 나왔다면서 박은옥은 허술한 스피커를 통해 대추리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 흔한 사랑 노래’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통용될 만큼 대부분의 대중가요는 남녀 간의 사랑을 말하고 있지만, 자기 노래에 담아내는 ‘사랑’의 범위가 훨씬 더 넓은 가수들도 있다. 특히 포크 가수들에게서는 이별의 고통마저 달콤한 청춘의 전유물, 연애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사랑이 아니라 이 세상을 힘겹게 살아가는 모두에 대한 연민과 연대감이 공존하는 넓은 의미의 ‘사랑 노래’를 자주 들을 수 있다.

 

독재 권력이 기타 치고 노래하는 이들의 목까지 죄어오던 살벌한 시대에 오직 노래만을 무기로 최전방에서 싸웠던 사람들 중에서도 청태춘과 박은옥은 자신들의 세계관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듀오였다. 1978년 ‘시인의 마을’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정태춘의 데뷔 앨범에서는 차분한 의지가 담긴 자아성찰을 엿볼 수 있는 동명 타이틀곡 ‘시인의 마을’과 서정적인 연가 ‘촛불’이 큰 사랑을 받았다. 음악적으로 변화가 온 것은 그가 신인 가수인 박은옥을 만나 결혼을 하고 내놓은 두 번째 앨범 「사랑과 인생과 영원의 시」, 그리고 3집 「새벽길, 우네」부터였다. 포크와 국악을 접목시킨 곡들은 대중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뮤지션으로서 나아갈 길에 방향을 제시했다. 1984년 부부는 ‘청태춘과 박은옥’이라는 정직한 이름의 듀오를 결성하고 ‘정태춘 박은옥의 얘기 노래마당’이라는 제목의 소극장 투어 콘서트를 3년간 이어갔다.

 

 

정의롭지 못한 세상의 맨얼굴을 직시하고 외면하고 싶은 잔인한 현실의 뒤에서 고통받는 약자들을 위해 뜨거운 목소리로 노래했던 그들에게는 ‘저항 가수’라는 영예로운 이름이 따랐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가난한 사람과 억압받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던 그 이름이 어쩐지 부담스럽고 불편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정태춘은 2002년 내놓은 10집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이후 10년을 침묵했다. 그리고 “시대를 경멸하는 방법으로 시인은 시를 쓰지 않고, 가수는 노래하지 않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던 것은 절필을 다소간 변명하는 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차분하게 고백하며 돌아왔다.

 

그는 소통을 포기하고 침묵한 시간 동안 절망을 뛰어넘을 만큼의 열정을 찾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에게 다시 곡을 쓰게 한 것은 사랑하는 아내가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 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그 사랑의 힘으로 10년 만에 다시 부르는 노래가 궁금하다면, 이 공연을 놓쳐서는 안 된다.

 

3월 6일 ~ 3월 11일 / KT&G 상상아트홀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2호 2012년 3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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