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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프리뷰] 아직 오지 않은 <878미터의 봄> [No.102]

글 |박병성 사진제공 |남산예술센터 2012-03-21 3,700

제 1회 벽산희곡상 수상작으로 한현주 작가의 『878미터의 봄』이 선정되었다. “과거와 현재, 현실과 초현실을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과거의 비밀을 내밀하게 드러내는 흥미로운 극 구성”, “탄탄한 플롯과 사회 현실에 대한 예리한 시선, 그리고 유려한 언어적 감각과 연극적 무대 감각을 두루 갖춘” 작품이라는 심사평대로 과거의 잘못을 생매장해버린 폐광촌의 카지노를 중심으로 상처의 주변에서 부표처럼 떠도는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장소는 폐광촌 일대와 카지노이다. 카지노가 들어선 것 이외에는 변한 것이 없는, 여전히 상처의 자국이 시꺼멓게 남아 있는 이곳에 준기가 찾아온다. 준기는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광부였던 아버지를 매몰 사고로 잃고 고향을 떠나 어머니와 외지를 떠돌며 지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때 서로 좋아하는 사이였던 우영과 마을 어른들은 준기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고, 그의 눈치를 본다. 이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극은 17년 전에 벌어졌던 일들을 굳이 감추려고 들지는 않지만, 또 명확히 드러내지도 않는다. 단편적인 사실들을 파편적으로 노출해서 그 사실의 조각들을 꿰맞춰가는 유사 추리극적 흥미를 준다.

 

준기가 알지 못하는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비밀이 매몰된 탄광에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17년 전 탄광이 붕괴되고 한 사람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다. 생사도 알길 없고 구출 비용이 과다하다는 이유로 회사는 관리주임 이근석을 시켜 가족들에게 많은 보상금을 주겠다고 설득하고 구조를 포기한다. 그러나 사장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도망가고 유족들은 고향을 떠났다. 매몰된 탄광에서 자본의 논리로 구조의 시도조차 받지 못하고 버림받은 사람이 바로 준기의 아버지이다. 준기는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가짜로 매장한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기 위해 고향에 들린 것이다.

 

등장인물은 두 세대로 나누어진다. 한 세대는 17년 전 막장 붕괴 사고 때 잘못된 선택으로 평생 죄의식 속에 살아가는 부모님 세대이다. 관리주임 이근석은 죄의식에 시달리며 정신을 놓아버렸고, 그때 붕괴 사고로 다리를 다친 탁기철은 입을 다무는 조건으로 이근석의 돈을 갈취하며 카지노에서 막장 인생으로 살아간다. 다른 한 세대는 자식 세대이다. 준기는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알지 못하고 이근석의 딸 우영은 아버지의 죄를 유산으로 물려받아 사건을 은폐하는 데 동참한다. 그녀는 탄광촌의 또 다른 막장인 카지노에서 딜러로 일하며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킨다.

 

<878미터의 봄>은 외부와의 끈을 유지시켜 이것이 한 탄광에서 벌어진 비극으로만 그치지 않고, 우리 시대의 상처임을 상기시킨다. 어느 날 카지노에 나타난 장석우는 이 문제의 카지노에 등장해 돈을 탕진하려 든다. 정신 나간 것처럼 칩을 뿌려대던 그는 결국 카지노에서도 쫓겨난다. 장석우는 아내에게 내연남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실을 방기한 채 아내가 죄의식에 시달리도록 했고, 그런 아내가 카지노 근처에서 내연남과 자동차 사고로 숨지면서 막대한 보험금을 받게 된 것이다. 장석우와 아내는 모두가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다. 작품은 장석우를 통해 버림받은 준기 아버지도, 또 그를 버렸던 마을 사람들도 결국 같은 피해자임을 강조한다.

 

 

또 하나의 외부와의 끈은 기업의 부당 해고에 맞서 대형 크레인에 올랐던 김철강이다. 준기가 폐광촌으로 오기 전 김철강의 다큐를 제작하다가 1부 방영 후, 좌천되어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다. 김철강의 이야기는 뉴스를 통해 근황과 활동이 보고된다. 김진숙 노조위원을 상기시켰던 김철강은 결국 대형 크레인에서 뛰어내린다. 작가는 수십 미터 높이의 좁은 공간에서 투쟁했던 김철강과, 878미터 막장 밑에서 아무 잘못 없이 죽어간 한 광부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작품은 마치 17년이 지나도 전혀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재현되는 현실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라는 듯, 17년 전의 상처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현실 속에 과거의 흔적이 불쑥불쑥 몸을 내밀고, 현실과 비현실이 구분 없이 교차된다. 

 

3월 20일~4월 8일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 02) 758-2150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2호 2012년 3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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