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이 아닌 적은 용서하라 <그을린 사랑>
창밖으론 메마르고 고요해서 더 잔인한 사막이 보인다. 서늘한 회벽의 건물 안에선 군인이 열 살도 채 안 된 소년들의 머리를 깎고 있다. 무력하게 제 머리카락을 군인에게 맡긴 한 소년은 날선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한다. 배경으로 흐르고 있는 라디오헤드의 ‘You and Whose Army’가 그 눈빛에 절묘하게 어울리는 첫 장면부터, 영화는 130분간 관객의 시선과 영혼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국내에선 작년에 개봉한 캐나다 영화 <그을린 사랑>은 내전 속에서 누구보다 참혹하게 생을 버텼던 한 여자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영화는 곳곳에 산재한 전쟁의 참상과 여인의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었고, 무엇보다도 강렬한 미장센이 무척이나 영화적이었던 터라, 이것이 동명의 연극을 원작으로 했음을 뒤늦게 알고선 무척이나 놀라웠다. 스크린을 거치지 않고서 그 참혹함을 직접 마주하는 것은 여간 불편하지 않을 텐데…. 세계 유수 영화제뿐만 아니라 국내 영화 팬들에게도 상당히 회자되었던 이 영화의 원작 연극이 국내 무대에 오른다.
레바논 태생의 캐나다인 와즈디 무아와드가 극본과 연출을 맡은 <그을린 사랑(원제는 Incendies, 불어로 화마, 폭발 또는 비유적으로 전쟁을 뜻한다)>은 2003년에 프랑스에서 초연됐다. 이야기는 나왈의 유언장에서 시작된다. 이란성 쌍둥이인 아들과 딸에게 남긴 것으로, 아버지와 형(또는 오빠)을 찾아서 그녀의 편지를 전하라는 내용이다. 아버지의 생존 사실과 형의 존재 사실을 몰랐던 남매는, 말년을 침묵으로 일관하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지만, 그 뜻에 따르기로 한다. 아버지와 형을 찾기 위해서 남매는 어머니의 삶을 되밟는다. 나왈은 내전 속에서 환영받지 못한 임신과 출산을 하고,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는 죽임을 당하고 아들은 빼앗겨 보호소에 맡겨진다. 후에 그녀는 아들을 찾으려 행방을 뒤쫓지만, 기록의 회로는 전쟁으로 파괴되고 폐쇄돼 아들의 생사 유무조차 알 수 없게 된다. 남의 세력 다툼으로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무력하게 빼앗긴 분노는 그녀에게 암살범이라는 멍에를 쓰게 만들고, 그녀는 오랜 세월 감옥에서 육체적, 성적 고문을 당한다. 전쟁이 끝난 후, 나왈은 전범 재판에서 그토록 찾았던 아들을 만나게 된다. 어머니의 과거를 추적하던 쌍둥이 남매는 결국 아버지와 형을 찾게 되는데, 일 더하기 일이 이가 아니라 일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감출 수 없다. 오이디푸스 신화에 비견되는 이 비극은 아들이 제 눈을 찌르는 대신 어머니의 사랑과 용서로 끝을 맺는다.
올 로케이션 촬영으로 나왈의 삶의 여정을 시각적으로 반추한 영화와 달리, 연극은 대사로 사건들을 재현한다. 나왈의 말과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풍부하고 강렬한 언어가 주는 깊이와 밀도를 경험할 수 있을 듯하다. 연극에는 세 명의 나왈이 함께 출연한다. 세 배우가 각각 10대의 나왈, 20~40대와 60대의 나왈을 맡았다. 이는 그녀의 물리적인 연령의 변화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60대의 나왈이 말하는 내용을 젊은 나왈이 한 무대에서 재현함으로써 그녀의 기억과 망각이 연결되고, 관객들로 하여금 그녀의 비극을 좀 더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이와는 반대로 대부분의 배우들이 일인다역을 맡는데, 어머니의 과거를 되짚는 과정에서 만나는 조력자들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극의 보편성과 편재성을 드러낸다. 이연규와 배해선, 이다아야가 각 연령대의 나왈을 연기하며, 김주완과 이진희, 남명렬, 이윤재 등이 출연한다. 배삼식 작가가 드라마투르기에 참여하고, 김동현이 연출을 맡아 작품에 신뢰감을 더한다. 얼마 전 제대한 뮤지션 정재일이 음악과 음향 작업을 맡았다. | 6월 5일 ~ 7월 1일 / 명동예술극장 / 1644-2003
강에서 가족을 기다리는 여자들 <과부들>
전쟁은 장정들을 데려간다. 그들은 적의 총알받이가 되거나 적으로 오해받아 고문을 당하곤 한다. 죽거나, 살아도 죽은 것과 다름없어진다. 그리고 마을에는 여자들과 아이들만 남는다. 원치 않게 과부가 된 이들에게서는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본질적인 전쟁의 참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칠레 출신으로, 1970년대 피노체트 군사 정권 때 미국으로 망명한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이 쓴 희곡 「과부들」 역시 그렇다. 「과부들」은 군사 쿠데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이 전쟁과 다를 것이 무어겠는가.
산골 마을에 남겨진 과부들은 사회적으로 가장 약자의 위치에 있다. 지식, 정보와는 멀리 떨어진 그들이 군인들에 대항해 총칼로 맞서겠는가, 아니면 말로 맞서겠는가. 그들은 전쟁이 끝난 후 마을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부임한 군 대위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군부의 뜻에 반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정의에 이끌려 군에 저항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굽은 강줄기를 따라 시체 한 구가 떠내려 온 것이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고 온몸이 상한 남자 시체는 누군가의 아버지거나 남편, 또는 아들일 것이다. 과부들은 가족이 죽은 게 아니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시체라도 발견해서 장례를 치르고 싶은 마음이다. 생사도 모르는 가족들을 기다리는 그 마음이 오죽하랴. 대위는 시체의 신원을 확인하고 장례를 치르게 허락하면 그의 죽음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시체를 유야무야 처리하려 한다. 그러는 사이, 두 번째 시체가 강으로 떠내려 온다. 군인들은 시체를 유기하는 것이 누구의 속셈인지 전전긍긍하지만, 과부들이 바라는 것은 그저 가족들이 (살아서든 죽어서든) 돌아오는 것뿐이다. 과부들은 군인들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시위라기보다는 제를 지내듯 하나둘 강가에 모여든다. 배경은 사실적이지만 사건과 행동은 초현실적이고, 과부들의 저항은 외적 선동에 따른 것이 아니라 내적 본능에 의해 일어난다.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는 가족들과의 만남은 지금도 곳곳의 과부들의 가장 큰 바람일 것이다. | 6월 1일 ~ 10일 /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 02) 813-1674
당신의 아이가 뭘 했는지 아는가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제목이다. 철없는 아이들이 실수가 아닌 잘못된 일을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적반하장일 때 으레 ‘니 부모는 대체 어떤 인간이냐’고 운운한다. 그만큼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의 책임을 묻는 것일 터. 학교 폭력을 소재로 하고 있는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역시 학생보다 학부모에 초점을 맞춰, 현재를 사는 학부모들의 삐뚤어진 사고방식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학업 성취도도 시설도 우수한 국제 중학교에서 자살 사건이 일어난다. 그 학생이 남긴 유서에는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실과 함께, 가해 학생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연극은 학교 측의 연락을 받고 학교 회의실에 모인 가해 학생 부모들이 이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학교 폭력에 대한 어른들의 무책임함과 이기주의를 목도하게 한다. 가해자로 지목된 다섯 아이들은 등장하지 않고 부모들의 대화만으로 극이 진행되는데, 뚜렷하게 구분되는 부모들의 캐릭터를 통해 그들의 자녀들 또한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왕따를 도모하는 아이들처럼 부모들 역시 개개인에게는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으나, 하나의 목적을 위해 뭉치는 순간 집단적인 가면을 쓰고 양심의 가책 없이 범죄를 도모하게 된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던 ‘이지메’를 소재로 하타자와 세이고가 쓴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도 ‘왕따’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어른들이 어떤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지, 학생이 아닌 학부모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가는 입장으로서 극 중 학부모들을 욕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를 느끼게 된다. 김광보가 각색과 연출을 맡았고, 손숙과 박용수, 박지일, 이대연, 서이숙 등 실력파 중견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폐쇄된 공간에서 점점 궁지로 몰리는 구성과 현실을 충실히 반영한 대사가 큰 힘을 발휘하는 공연으로, 이 대본의 씁쓸한 맛을 살리는 데 더없이 충분한 캐스팅이 눈에 띈다. | 6월 24일 ~ 7월 29일 / 세종M씨어터 / 1544-1555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5호 2012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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