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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프리뷰]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이성과 감각을 일깨우는 공연 모둠 [No.109]

글 |이민선 사진제공 |한국공연예술센터 2012-10-17 3,797

공연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은 제각각이다. 눈으로 드라마를 좇기만 해도 웃음과 울음이 절로 터져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가벼워지는 공연이 있는가 하면, 평소에 잠자고 있던 두뇌를 일깨우고 감각을 총동원시켜 무대 위의 저들이 대체 뭘 보여줄 심산인지 뚫어져라 보지 않으면 금세 관람에서 낙오되는 공연도 있다. 후자의 경우, 관객에게 집중력과 이해력, 인내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스스로 어떤 결론을 내리든 정복하고 나면 좀 더 특별한 희열을 느끼게 한다. 당신에게 지적인 기쁨을 안겨줄 27편의 공연들이 10월 5일부터 27일까지 대학로 일대에서 펼쳐진다. 12회를 맞는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Seoul Performing Arts Festival(이하 SPAF))의 부제는 ‘당신의 두뇌가 두근두근 뛴다!’이다.

 

<(아)폴로니아>

 

 

여러 장르가 융합된 해외 초청작

공연 축제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해외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SPAF에도 폴란드, 호주, 루마니아 등에서 온 연극 5편과 프랑스, 독일, 일본 등에서 제작된 무용 7편이 초청됐다. 이들은 주된 표현 방식에서 연극 또는 무용 장르로 구분되어 있으나,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표현 방식을 융합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는 전 세계 공연계의 흐름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개막작인 폴란드 연극 <(아)폴로니아((A)pollonia)>에는 텍스트와 라이브 음악, 서커스, 영상 등의 재료들이 섞여 있다. 어두운 역사 속에서 희생된 여인과 신화 속 여인들을 등장시켜, 폴란드가 겪은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표현했다. 폴란드에서는 물론, 프랑스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크쥐스토프 바를리코프스키가 연출한 작품이다. <(아)폴로니아>는 2009년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초연해 호평받았던 작품으로, 인터미션을 제외하고도 3시간 45분 동안 전개되는 다소 무시무시한 공연이다. 진화하는 공연의 미래상을 미리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명의 크쥐스토프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 폴란드 연출가의 작품 <오디세이>는 춤과 음악, 영상을 활용해 고전을 포스트모던하게 재창조했다.

 

전통적으로 구분된 장르를 섞은 것만큼, 각국의 창작자들이 머리를 한데 모은 것이 눈에 띈다. <나, 로뎅(Eu, Rodin)>은 연인이었던 로뎅과 까미유 끌로델의 이야기를 독백 형식의 대사와 춤으로 표현하는데, 프랑스 극작가와 벨기에 안무가, 루마니아 연출가가 손을 잡고 내놓은 작품이다. 무용과 음악 사이의 경계를 허문 <시로쿠로(シロクロ)>는 일본 피아니스트 토모코 무카이야마와 네덜란드 안무가 니콜 뷰틀러가 합작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유행했던 클래식 댄스 콘서트에서 창작의 씨앗을 얻었다는 이 작품은 클래식 피아노 연주와 무용수의 움직임, 그리고 설치 미술의 조화를 보여준다.

 

라이브 공연의 특성상 모든 작품들이 매일 조금씩 다른 결과물을 보여주지만, <소아페라(Soapera)>와 <거리에서(En Route)>는 더욱 가늠하기 힘든 현장성을 자랑한다. <소아페라>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무대에 거대한 비누 거품이 가득 찬다. 비누 거품 속을 유영하는 무용수들의 몸은 그 자체로도 춤이라는 표현 장르가 되지만, 그들의 움직임이 거품과 함께 만들어내는 형상 역시 또 하나의 시각 예술이 된다. 이는 프랑스 현대 무용의 대표주자인 마틸드 모니에의 작품이다. 그렇다면, 2009년 멜버른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첫선을 보였던 <거리에서>는 무엇을 배경으로 할지 예상되는가. 그렇다, 이 작품은 극장이 아닌 거리, 서울의 거리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진정한 라이브 예술 이벤트이다. 아티스트들은 참가자들에게 오디오 설비와 휴대 전화를 제공하고, 미리 섭외해둔 식당과 카페 등 도시 곳곳으로 관객들을 안내한다. 도시가 무대가 되고, 관객은 또 다른 배우이자 여행자로서 아티스트와 소통하면서, 익숙했던 공간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느끼게 된다. 한 회 공연에 7명의 관객만 참가할 수 있으니, 일상의 공간을 신선한 여행지로 경험하고 싶은 관객들에게는 좀 더 부지런한 손길이 요구된다.

 

<소아페라>(좌) <거리에서>(우)

 

 

신선하고 실험적인 국내 초청작

SPAF는 국내외에서 이미 인정받은 작품 대신 실험적인 시도로 동료 창작자 및 관객들을 자극하는 작품을 소개하는 공연 축제라는 특색을 지니고 있다. 한국공연예술센터 최치림 이사장과 연극 평론가 김윤철, 이진아 등의 선정 위원들은 작품의 창작 의도 및 표현 방법에서 신선함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선정해 소개한다. 국내 초청작의 경우, 해외 작품에 비해 규모는 다소 작지만, 창작자들의 개성이 뚜렷이 드러나고 동시대적인 감각을 자랑하는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는 셰익스피어의 <맥베드>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맥베드에게서 세계 현대사 속에 존재하는 독재자들의 모습을 보고, 맥베드를 발가벗긴다. 연출가 배요섭은 사회적 이슈를 공연의 재료로 활용함으로써 사회참여적인 예술 작품을 보여주고자 한다. 권력자를 고발하는 광대들이 등장하며, 일부 장면들은 광대와 관객들이 함께 만드는 즉흥극으로 이루어진다. 극단 노뜰은 스페인 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까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베르나르다>를 선보인다. 이 작품은 사회적 규범을 따른다는 명목으로 딸들을 억압하는 어머니가 행하는 보이지 않는 가정 폭력과 딸들이 갈망하는 자유를 그린다. 바깥은 홍수가 난 상황, 의식하지 못한 사이 집 안으로 차오른 물과 싸우다가 그 물 때문에 이 가족은 파괴된다. 가족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킨 것은 어머니의 엄격한 규범이 아니라 외부의 물이었던 것처럼. <베르나르다>의 무대는 실제 물로 채워진다. 시각적 효과를 위한 물이 아니라 사람을 압박하는 정서적인 기능을 하는 물이, 작품과 관객 간의 소통에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지 궁금하다.

 

<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좌) <베르나르다>(우)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9호 2012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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