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어지간하면 관객들의 흥미를 끈다. 학창 시절이란 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나온 시기라 공감을 이끌어내며, 성인이 되기 직전 순수 반 성숙 반의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지나고 보면 꼭 그렇지도 않지만, 어른이 되기 위한 성장통을 겪는, 인생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방황하던 시기라고 여겨져, 언제고 뒤돌아보며 파헤치고 싶은 소재가 되곤 한다. 백년대계인 교육의 중요성을 고려해 잘못된 교육 현실에 문제 제기를 하는 작품이라면, 사회적 기능을 한다는 명분도 얻을 수 있다.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역시 똑똑한 척하거나 성숙한 척하거나 또는 정말 순수한 고등학생들과, 각기 다른 교육관을 가진 교사들이 등장해 교육 현장을 재현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여타 ‘학원물’과 다른 점은, 역사를 다루는 다양한 방법 중 관객들은 과연 어떤 것에 동의하는지 넌지시 질문을 던지며, 학생만큼이나 교사들도 혼란스러워하고 불안해하는 존재임을 인식시킨다는 데 있다.
<히스토리 보이즈>는 1980년대 영국 북부의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등생들만 모인 ‘옥스브리지’ 반, 영국의 명문대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는 곳이다. 여덟 명의 학생들은 유명 문학 작품이나 학자들의 말을 척척 인용할 만큼 학업 능력이 뛰어나다. 전형적인 캐릭터 구성이지만, 쓸모를 떠나서 학생들이 문학과 예술 그 자체를 즐기도록 돕는 교사 헥터와 대학 입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교사 어윈이 등장한다. 요즘 애들과는 다르게, 학생들에게 삐딱한 구석은 없다. 두 교사가 극과 극의 수업 방식을 택하는데도 어느 한쪽을 비난하지 않는다. 각 수업에 맞게 자신의 마인드를 세팅할 만큼 영리하달까. 그들은 천진하게 즉흥극을 펼치는 데에도, 지적인 토론을 하는 데에도 흥미를 갖고 있다. <히스토리 보이즈>의 작가 앨런 베넷은 어느 한쪽의 교육관을 지지하지 않고 균형 있게 다룬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도 그렇다.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수업에서, 이런 비극적인 일을 어떻게 시험 문제로 인식하고 평가할 수 있냐는 시각과 흥미로운 시험 답안을 위해서라면 이미 수용된 사실을 뒤집는 도발적인 논점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부딪힌다. 비록 듣는 이의 구미를 당기게 할 목적으로 시작한 역사 뒤집기라 할지라도,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평가는 변하기 마련이고 역사는 영원한 진실이라기보다는 승자의 주석 달기에 가깝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실제로 옥스퍼드에서 역사를 가르쳤다는 작가가 던지는 질문은 의미심장하다.
<히스토리 보이즈>에서는 세계를 좌지우지한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질문만큼,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지 답을 찾기도 어려워 보인다. 입시를 위한 시간들은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교사들에게도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겉보기에 명확한 시각을 갖고 있지만, 교사들의 삶은 오히려 학생들보다 더욱 불확실해 보인다. 그래서 순수하고 명석한 학생들이 등장하는 30년 전 영국의 교육 현장에서는 현실 비판적 시선보다 (애든 어른이든) 인간의 성장 과정을 볼 수 있다. 학교는 집단의 역사를 가르치는 곳인 동시에, 개인들의 역사가 일궈지는 곳이니까.
<히스토리 보이즈>의 국내 초연 성과가 긍정적으로 점쳐지는 이유는 로렌스 올리비에상과 토니상을 받은 이력보다는 언제부턴가 흥행 요소가 된 압도적인 남성 배우 출연 비율과 남성간의 동성애 소재에 있다. 이에 더해, 작품 전반을 차지하는 넘치도록 지적인 텍스트 - 불어로 연극을 하는가 하면, 시구를 인용하는 일은 다반사이며, 역사적 사건에 대한 주석들이 줄줄이 쏟아진다 - 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대사 한 줄 한 줄은 관객들의 지적 욕구를 자극하며 반복 관람을 부추길 듯하다.
굉장히 엉뚱하고 자유분방한 수업 방식을 고수하며 학생들을 상대로 성적 쾌락을 느끼는 헥터를 맡기에 그간 배우 최용민이 쌓은 이미지는 무척 곧고 인자하며, 명석하고 냉소적인 역사 교사 어윈을 보여주기에 배우 이명행은 다소 착실하고 진지한 이미지가 강하나, 두 사람이 대비되는 두 교사를 잘 소화해내길 바라본다. 이재균과 김찬호를 비롯한 젊고 열정적인 여덟 명의 남학생들이 어떤 모습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을지도 궁금하다.
3월 8일 ~ 31일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 02) 744-4334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4호 2013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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