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 로터리를 지나 성북동으로 이어지는 골목으로 들어서면, 참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게릴라극장, 선돌극장, 연우소극장 등 거리 곳곳에 위치한 소극장들이 뿜어내는 열기 때문이다. 일명 오프 대학로 거리라 불리는 이곳은 대학로의 상업화에 밀린 연극인들이 하나둘 둥지를 틀며 형성되기 시작, 상업성에 벗어난 독특하고 실험적인 무대로 연극 애호가들의 꾸준한 발길을 모으고 있다. 위치는 변방이지만, 무대는 사실상 연극의 핵심에 서 있는 것이다. 그 중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는 국내 유일의 연출가 동인제를 이어오고 있는 특별한 곳이다. ‘혜화동 1번지’는 1993년 연극의 고정 관념을 벗어나 개성 넘치는 실험극을 선보이겠다는 기국서, 이윤택, 채승훈 등 1기 동인들의 결의로 탄생했다. 바로 전 기수 동인들이 다음 기수 동인을 만장일치로 선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며, 김광보, 박근형, 이성열, 최용훈, 양정웅 등 현재 대학로를 주름잡는 연출가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2011년 출범한 5기 동인은 윤한솔, 이양구, 김수희, 김한내, 김제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발언권을 확대하는데 활동의 초점을 두고, 1년에 두 차례 봄가을에 열리는 혜화동 1번지 페스티벌 또한 재연작이 아닌 초연작으로만 채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늦은 봄 시작되는 혜화동1번지의 2013년 봄페스티벌은 ‘국가보안법’이란 묵진한 주제를 꺼내들었다. 국가보안법에 대한 두려움이 창작자의 예술표현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해보겠다는 목표 아래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는 다섯 편의 연극이 무대에 오르게 된다. 법정극 형식을 표방한 이양구 연출의 <모의법정>을 시작으로, 김제민 연출의 <무림파혈전>, 김수희 연출의 <괴물이 산다>, 윤한솔 연출의 <빨갱이. 갱생을 위한 연구>, 김한내 연출의 <레드 채플린> 등이 축제의 장을 이어간다. 이들 무대는 국가적인 규제에 의해 파생되는 창작자의 자기 검열에 대한 문제의식을 세상 밖에 과감히 내던지며 우리의 의식을 깨워준다. 다섯 무대가 뿜어내는 열기에 한껏 취하는 사이, 어느새 봄이 지나가고 뜨거운 여름이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온천
<아시아 온천>은 한일 양국의 대표극장인 예술의전당과 동경 신국립극장의 공동제작 연극이다. <야끼니꾸 드래곤>으로 화제가 된 재일교포 극작가 정의신의 신작으로, 국립극단 예술감독 손진책이 연출을 맡아 더욱 기대를 모은다. 작가의 전작들은 주로 한국과 일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이번 작품은 보편적인 사람들에게 주목해 주제의 폭을 확장시킨다. 배경은 오래된 전통과 인습을 지켜오고 있는 아시아의 어느 섬나라로, 온천의 원천을 찾기 위해 섬에 몰려든 이들과 섬마을 주민들 간의 갈등과 화합을 그리고 있다. 손진책 연출 특유의 에너지가 무대를 신명의 장으로 이끄는 가운데, 서상원, 정태화, 가쓰무라 마사노부 등 한일 개성파 배우들이 정교한 앙상블을 이룬다.
6월 11일~16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주머니 속 선인장
극단 산수유가 핀란드 여류작가 안나 크루게로스의 <주머니 속 선인장>(원제:A Lousy Performance)을 국내 초연한다. <경남 창녕군 길곡면>, <기묘여행> 등 인간 본질을 섬세히 끄집어냈던 류주연이 번안과 연출을 맡았다. <주머니 속 선인장>은 수치심을 주제로 한 공연을 6일 앞두고 위기에 빠진 한 극단의 이야기다. 배우와 연출가는 갑작스레 정신병원에 수감된 극작가 대신 공연을 완성시키기 위해 각자 수치스러웠던 과거를 꺼내놓는다. 실연의 아픔, 친구들로부터의 소외, 부부 사이의 갈등 등 마치 주머니 속 선인장처럼 우리를 아프게 하는 상처들이 극중극 형식으로 하나씩 무대 위에 펼쳐진다. 권지숙, 구시연, 김선영, 신영진 등이 출연한다.
5월 29일~6월 16일, 설치극장 정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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