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이름 체호프가 어김없이 우리의 마음을 두드린다. 양파처럼 벗기고 벗겨도 끊임없는 매력을 쏟아내는 체호프. 그 끝을 알 수 없는 매력에 수많은 연극인들이 매료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런 일이다. 체호프에게 안 어울리는 계절이 있겠냐만 가을에 만나는 체호프는 왠지 더 애틋하다. 가을의 정서는 그의 고전들이 담고 있는 깊이에 더욱 짙은 향기를 더하기 때문이다.
올가을은 체호프 다시 읽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인 것 같다. 먼저 한일 양국의 대표 창작자들의 교류로 탄생하는 실험적인 체호프가 눈에 띈다. <깃븐우리절믄날>의 극작ㆍ연출가 성기웅이 각색하고 극단 도쿄데쓰락 대표 타다 준노스케가 연출하는 <가모메>는 <갈매기>를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 시대로 끌어와 조선인과 일본인, 지배와 피지배 등의 복잡한 맥락으로 변주한다. 한국어와 일본어 2개국 언어공연을 선보인다는 점도 특색 있다.
새롭게 조명되는 감각적인 체호프도 만날 수 있다. 명품극단은 그간 무대에서 주목받지 않았던 체호프의 단편소설 두 편에 집중한다. <6호 병동>과 <어느 관리의 죽음>이다. <6호 병동>은 김태현이 각색하고 김원석이 연출한 <라긴>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타인을 향한 잔인함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한 무대이다. <어느 관리의 죽음>을 각색한 <유령>은 극단 연출부에 소속된 서은정의 첫 연출작이다. 한 하급공무원의 죽음을 둘러싼 찰나의 사건들이 보다 감각적으로 되살아난다.
고전의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무대도 빼놓을 수 없다. 명동예술극장의 <바냐 아저씨>. 극단 백수광부의 대표 이성열이 연출하고 백성희, 이상직, 한명구 등이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신뢰가 더해지는 무대다. 인물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울림이 고전 연극의 깊이를 한층 진하게 전해줄 것이다.
아버지의 집
제2회 벽산희곡상 수상작인 <아버지의 집>(김윤희 작)은 집과 아버지의 존재에 대한 세밀한 정서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새긴다. 주영, 소현, 송현, 케이타는 모두 아버지의 부재로 자신의 삶이 완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집이 해체되고 다시 지어지는 과정 속에서 이들은 아버지의 부재를 통해 나와 가족의 존재를 확인하고 스스로를 찾아간다. 이 작품은 남산예술센터와 <하녀들>, <헤다 가블러>의 박정희 연출의 첫 작업이란 점에서도 기대를 모은다. 신철진, 김승철, 김학선, 김정은 등이 출연할 예정이다.
10월 2~20일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동토유케
<니 부모의 얼굴이 보고 싶다>의 작가 하타자와 세이고와 연출가 김광보가 <동토유케>로 또 한 번 조우한다. <동토유케>는 피해자 유가족들이 피의자의 사형을 직접 집행하는 가상의 제도 ‘사형집행관제도’를 통해 불완전한 존재의 인간이 한 인간의 생명을 거두는 것을 완전하게 판단할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끔찍한 살인자의 사형 집행에 피해자의 유가족들이 직접 참여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사회 문제를 적나라하게 꼬집는 블랙코미디다. 어색하고 묘한 상황으로 가득한 이 독특한 이야기는 김광보 연출 특유의 세련되고 감각적인 무대로 한층 특별한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우승현, 정연준, 정석우 등이 출연한다.
10월 4~13일 선돌극장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1호 2013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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